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95화 (195/366)
  • 195화

    ―콰과광!!

    간발의 차였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저 거대한 창에 몸이 그대로 꿰뚫려 지금쯤 목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불쑥 다가온 공포에 순식간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윽…….”

    왼쪽 팔에서 날카로운 고통이 피어올랐다. 간신히 피하긴 했지만 날렵한 선단의 끝이 팔을 찢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 탓에 바닥 위로 피가 흩뿌려졌다. 아이테르의 로브의 자연 치유 효과를 믿으며, 일단 눈으로 칼리의 창을 좇았다.

    ―휘이잉.

    창은 다시 무서운 속도로 내게 달려들었다.

    ―탕!

    그것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칼리의 창 몸체에 닿아 궤도를 바꾸자, 창이 허공을 빙그르르 돌다 다시 우뚝 섰다.

    칼리의 창은 마치 나를 공격하기 위해 기네쉬 헌터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았다. 녀석을 우연히 만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나를 다짜고짜 공격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오히려 기회야.'

    칼리의 창과 단둘이 있을 기회는 결코 흔치 않았다. 여기서 녀석이 정말로 비스인지 확인할 수 있다면… 적어도 파편을 파괴할 첫 번째 단계는 통과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끼기기긱!!

    날아오는 창을 배트 형태의 자아로 막은 후, 양팔에 힘을 주어 버티는 동안 오른쪽 눈을 감았다. 녀석은 이곳에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도 당연히 보이겠지.

    묵직한 힘이 팔을 타고 전해졌지만 이를 악문 채 이 공간을 빠르게 훑었다.

    그러자 시야의 왼편 끝, 아무것도 없던 사원의 벽 위로 글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

    [어둠 속성]

    [고유 스킬 S등급]

    [S급 소환계 스킬 ‘칼리’ : 죽음과 파괴의 신 칼리를 소환한다. 칼리는 자아가 있으며 자신의 모습을 마음대로 숨길 수 있다. 소환자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힘이 약해지고, 소환자가 사망할 시 함께 소멸한다.]

    [소환체 스킬 ‘삼라만상'’ :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

    [소환체 스킬 ‘변신’ : 칼리 스스로가 무기가 된다. 소환자가 무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시전 중에는 소환자 이외의 생명체에게도 무조건 인식된다.]

    [연계 패시브 스킬 ‘현신’ : 칼리가 소환자의 몸에 빙의한다. 몸의 주도권은 소환자에게 있으며, 칼리와 동일한 힘을 낼 수 있으나 장시간 사용 시 기절한다.]

    [A급 은신계 스킬 ‘밤의 장막’ : 주변 환경의 일부가 된다. 은신 상태를 인지한 상대에게는 형체가 흐릿하게 노출된다.]

    [귀속 무기 없음]

    ―쾅!!!

    “컥……!”

    창을 밀어 버린 후 확성기 형태로 바꾸어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일렁거리는 벽에 닿자 붉은 망토를 뒤집어쓴 사람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툭.

    하지만 이내 그의 몸은 누군가 들어 올린 것처럼 둥실 뜨더니 반대편 벽 쪽에 앉혀졌다.

    ‘소환체가 옮긴 건가?’

    그러고 보니 아까까지 나를 맹렬하게 쫓던 검푸른 창은 온데간데없었다.

    “젠장할……!”

    그때, 붉은 망토를 입은 사람이 입가를 벅벅 닦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쓰고 있던 망토의 모자가 벗겨져 그의 얼굴이 훤히 보였다.

    ‘저 사람은……!’

    햇볕에 그을린 듯한 피부와 고집스럽게 다물린 입술, 그리고 아무것도 섞지 않은 붉은 물감 같은 눈동자.

    틀림없이 이 사람은 내가 죽였던 사도 '쿠마리', 비스였다.

    ―쾅!

    “윽!”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칼리의 창의 양손에 검은 액체가 부글부글 끓더니, 이내 검과 낫으로 변했다.

    ―쨍그랑!

    실드 덕분에 첫 공격은 막았다. 하지만 녀석의 힘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강해 무기를 든 양손으로 실드를 내리치자마자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우우웅.

    방아쇠를 길게 당기자 비스가 순간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런 그를 향해 자아를 겨눈 그 순간.

    “읏.”

    기다란 낫도 내 목 밑으로 스윽 들어왔다. 목에 닿는 서늘한 감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뒤로 살짝 물러났다. 피 냄새를 머금은 나무 향 같은 것이 코를 찔렀다.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구나.”

    낫을 따라 시선을 쭉 옮기니 그곳엔 검푸른 피부를 가진 여자의 팔이 있었다.

    ‘이 소환체가 비스의 스킬인가…….’

    아까 봤던 상태창에 의하면 이 소환체의 이름은 칼리, 죽음과 파괴의 신이라고 했다. 머리와 팔을 여러 개 가지고 있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파스스.

    칼리가 비스의 옆으로 날아가자 낫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도 비스를 향해 겨눴던 자아를 거두고 목을 매만졌다. 다행히 큰 상처는 느껴지지 않았다.

    격렬했던 전투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죽일 듯이 달려들던 비스도 어느새 차분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고, 이따금 칼리와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칼리의 창, 맞지?”

    ‘일단 창조자 얘기는 피하자.’

    비스는 내가 자신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창조자나 사도 이야기를 꺼내면 그의 경계심만 높일 뿐이다.

    비스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아, 통역기가 없어서 못 알아듣겠구나…….”

    “알아들어.”

    내 중얼거림에 비스가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자, 옆에 있던 칼리가 키득거리며 비스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이 아이는 나와 일심동체야. 신인 내가 네 말을 알아들으니 당연히 이 아이도 알아듣는 거지.”

    분명히 칼리는 스킬로 소환한 존재가 맞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와 대화하고 있었다. A급 소환계 헌터인 김민숙 헌터조차 자신의 소환수와 저렇게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나도 ‘속마음 전화기’가 없으면 녹두랑 말이 안 통하는데.’

    저 기묘한 존재에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알아듣는다니 다행이네. 날 왜 공격한 건지 꼭 듣고 싶었거든.”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불쾌]

    당연하게도 비스는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는 듯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너처럼 그냥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이곳에 온 거야.”

    “…안 물어봤어.”

    “그럼 날 왜 공격한 거야?”

    그의 표정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나를 죽이려 꽤 큰 위험을 감수했는데도 막상 그것에 실패하자 대화할 의지마저 잃은 것처럼 보였다.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 아니야?”

    “그런 거 없어. 내가 오해했다.”

    그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곤 던전 안쪽으로 고개를 슬쩍 뺐다. 내부 팀에 섞여 던전을 빠져나갈 생각인 듯했다.

    ―탁.

    “아, 저기……!”

    그리고는 정말로 나를 지나쳐 던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아무리 불러봐도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젠장, 돌아볼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겠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점점 흐려지는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비스 바즈라차르야!”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가 동요한다.]

    그의 형체가 선명하게 돌아왔다. 어느새 모습을 감췄던 칼리마저 다시 나타나 커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발언 결과 : 당혹]

    “너, 그걸…….”

    그는 당황한 기색을 숨길 여유도 없는지 입술을 달싹이며 칼리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맞지? 20년 전쯤에 로열 쿠마리로 선발됐었고.”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당혹]

    ―챙!

    그때 칼리가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들었다. 그의 공격을 실드로 한 번 막은 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도 검은 연기를 뿜으며 내 뒤를 쫓았다.

    ―끼기기긱.

    그가 든 검과 나의 배트가 맞닿자 수십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담았다.

    “협박하는 거야? 저 아이의 정체를 공개해서 외지인인 네가 얻는 이익이 뭐가 있다고?”

    “협박할 생각 없어.”

    “그런 것치곤 말하는 게 꽤 위협적이…….”

    “칼리 님.”

    비스가 칼리를 저지했다. 칼리는 몸을 움찔 떨며 비스를 흘긋 보곤 내게서 떨어졌다. 나도 저린 양손을 털며 다시 땅 위로 착지했다. 비스는 무덤덤한 얼굴로 아랫입술만 잘근거리고 있었다.

    ‘인간적인 부분을 파고들어 볼까.’

    목을 한 번 가다듬은 후, 비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비스, 내가 네 정체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생각은 진짜 조금도 없어.”

    “…….”

    “그냥 네가 어쩌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된 건지 궁금했을 뿐이야.”

    내 말에 비스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피의 인드라 자트라 사건 이후 갑자기 모습을 감춘 것도 궁금하고.”

    “…SS급, 꽤 많은 걸 알고 있구나.”

    “관심이 좀 많거든.”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망설임]

    칼리의 말을 받아치자 비스가 동요했다. 자신이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는 걸 들으면 누구나 멈칫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스도 칼리를 저지한 것이겠지.

    레일리와 조슈아를 공략할 땐 대놓고 창조자와 사도에 관한 걸 언급했지만, 이번엔 조금 우회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인간적인 정을 쌓아서 경계심을 허무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일 오전 8시, 더르바르 광장 의상실과 환전소 사이 골목.”

    그때 비스가 입을 열었다. 잠깐 바닥에 두었던 시선을 그에게로 옮기자 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궁금하면 거기로 와.”

    ―펄럭.

    그러고는 뒤를 돌아 던전 안쪽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약속 통보에 어안이 벙벙해져 가만히 서서 그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상황을 지켜보던 자아도 말을 덧붙였다.

    ‘나를 죽일 기회를 또다시 만들었거나, 아니면 정말로 누군가 자기 얘기를 들어주길 바란 것 같은데.’

    ‘후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야. 내일 만나러 갈 때 조심해.’

    ‘알았어.’

    자아의 말대로 그가 정말로 이야기 상대가 필요해서 나를 불렀을 리는 없다. 아마 머릿속으로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겠지. 뭐가 됐든 간에 나는 그와의 친밀도를 쌓아서 그가 창조자에게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나는 왼쪽 눈동자로 점점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그의 카르마가 눈에 들어왔다.

    [‘카르마 : 비탄의 음악가’ : 절대자 ‘창조자’가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에게 씌운 비탄의 음악가의 업. 비나를 연주해 생명체의 꿈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비탄의 음악가의 업 청산*]

    “음악가…….”

    비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글자도 먼지처럼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