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91화 (191/366)

191화

[안으로 쭉 들어오면 엘리베이터 있어!]

[그거 타고 2층으로 와~]

[(윙크) ― 하미준 헌터]

“…세빈이 집보다 더 화려하네.”

하미준 헌터가 보낸 이모티콘에 나도 엄지손가락 이모티콘 하나로 대꾸한 후 핸드폰을 다시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하미준 헌터가 살고 있는 펜트하우스는 역시 세계 10대 부자의 명성에 걸맞은 집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눈에 들어온 넓은 차고엔 슈퍼 카 대여섯 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이미 정원 수준을 넘은 것 같은 넓은 야외 공간엔 예쁜 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이런 집이라면 누군가 길을 잃어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규모였다.

어제 레일리와 통화를 마친 후, 해가 뜨자마자 나는 곧바로 하미준 헌터에게 연락했다. 내 계획을 전부 이야기할 수 있고, 해외 헌터들과도 인맥이 있는 인물은 하미준 헌터가 유일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는 흔쾌히 나의 약속 신청을 받아들였다. 아니, 오히려 설렌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우우웅.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바로 문이 열렸다. 버튼이 4층까지 있어 순간 당황했지만 일단 ‘2’를 누르고 2층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띵.

“나의 스윗 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깜짝아……!”

“아하하~ 집으로 바로 연결돼 있을 줄은 몰랐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타난 하미준 헌터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늘 왁스 바른 머리만 보다가 내린 모습 보니까 좀 신기하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세팅된 모습만 눈에 익은 터라, 실내복에 실크 가운을 걸친 하미준 헌터의 모습은 조금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라. 신지의 헌터, 나의 새로운 매력에 눈뜬 거야?”

“어휴, 뭐 얼굴도 함부로 못 보겠네.”

“데이트는 언제든 환영이야~ 신지의 헌터가 원한다면 이 차림으로도 가능하다고?”

“됐어요!”

그는 내 반응이 재미있는지 낮게 웃더니 이내 내 어깨를 감싼 채로 나를 현관 쪽으로 이끌었다.

신발을 벗고 그의 집 안으로 들어오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긴 복도와 중앙을 따라 줄지어 선 유리 쇼케이스들과 벽에 걸린 그림들이었다.

“이게 다 뭐예요?”

“이 세상에 이제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최상급 아이템과 미술품들이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 새로운 무기에 대한 영감이 막 떠올라.”

하미준 헌터가 그것들을 눈에 담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동안 나도 그 아이템들을 슬쩍 살폈다.

검, 장갑, 망토, 귀걸이, 방패… 온갖 종류의 아이템들이 쇼케이스 안의 불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집보다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까운 곳이다.

‘응?’

순간 알싸한 파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개를 들어 그를 흘긋 보니 어깨 근처에 붕대가 감겨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직… 아파요?”

“응? 아~”

그가 머쓱하게 웃으며 제 어깨를 손으로 슥 쓸었다.

“컨디션이 100% 돌아온 건 아니지. 아까 마사지 받고 와서 좀 나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좀 쑤시네~”

“…….”

“너무 걱정 마~ 3일 정도만 관리하면 금방 돌아올 거야.”

그가 내 쪽으로 더 기대는 것을 힘을 주어 버티며 계속해서 걸어 들어갔다.

“전투가 좀 격렬했어야지. 강세빈 헌터도 아마 지금쯤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을걸? 한 번에 다섯을 상대했으니.”

“아, 그러게요… 밤에 봤을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원래 근육통은 시간 지난 다음에 더 심해져.”

하미준 헌터가 근육통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것을 한 귀로 흘리며 겨우 거실에 도착했을 때.

“어?”

예상치 못한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최민 헌터!”

“좋은 오후입니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더니 보고 있던 신문을 접어 소파 앞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곧바로 하미준 헌터 쪽으로 고개를 들자, 그가 최민 헌터 옆으로 성큼 자리를 옮겨 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스페셜 게스트! 내가 불렀는데, 괜찮지?”

“네, 네… 근데 왜 부르신 거예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민’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약한 충격]

그저 놀라서 느리게 대답했을 뿐인데 최민 헌터가 내 말을 뭔가 오해해도 제대로 오해했나 보다. 미묘하게 떨리는 검붉은 눈동자를 향해 양손을 저었다.

“아니, 놀라서 그런 거예요, 놀라서!”

“…그런 거라면 다행입니다.”

최민 헌터의 어깨에서 손을 내린 하미준 헌터가 생글생글 웃으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내가 최민 헌터를 부른 첫 번째 이유는 신지의 헌터의 이야기를 같이 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야. 오늘도 회장님에 대해 얘기하려고 온 거 아니야?”

“그것도 있고 따로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어서요.”

“응,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꿀꺽.

‘아.’

왠지 모르게 긴장이 돼 침을 삼켰더니 민망하게도 너무나 적나라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미준 헌터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아하하! 내가 뭐 이상한 거 부탁할까 봐?”

“가, 갑자기 무게 잡아서 그렇죠.”

“하, 그렇게 반응하니까 진짜로 이상한 거 부탁하고 싶어지네.”

그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한 후 말을 덧붙였다.

“신지의 헌터의 회귀, 그리고 종말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 줄래?”

* * *

“하아아…….”

하미준 헌터가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방금 것까지 합치면 내 이야기를 듣는 내내 스무 번은 쉬었을 것이다. 고개를 살짝 돌려 최민 헌터를 보니 이쪽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창조자의 존재, 그리고 김강희의 정체를 알고 있던 그도, 내가 그 정보를 얻어 내기까지의 과정을 전부 들은 건 처음이라서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98번째 회귀에 있었던 일들을 빼고 이야기했는데도 이런 반응일 줄이야.’

그 사건까지 말했으면 아무리 하미준 헌터여도 크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최민 헌터야 말할 것도 없고.

“생각보다 규모가 좀 크네?”

잠깐의 침묵 후, 하미준 헌터가 입을 열었다.

“미친 신 하나가 세상을 망하게 하려고 하고, 그걸 돕는 게 회장님과 그의 사도인 S급들…….”

“레일리랑 조슈아도 그중 하나였고요.”

“응. 그렇다고 했지.”

미간을 잔뜩 구기고 있던 하미준 헌터가 이번엔 최민 헌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민 헌터도 조율자라는 신이랑 같은 편이었다고 했지? 그쪽은 신경 안 써도 돼?”

“일단 아직까지는 조용합니다. 신지의 헌터가 계약을 깬 후로 저에게 접촉한 일도 없었고요.”

최민 헌터가 말을 마치자마자 내가 입을 열었다.

“조율자는 기본적으로 인간들에게 무관심해요. 세상이 망하는지 아닌지만 신경 쓰는 존재니까요.”

“전에도 똑같았습니까?”

“네. 세상이 망할 때까지도 크게 나서지 않았죠.”

“하, 세상의 흥망성쇠에만 관심이 있으면서 정작 세상을 구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니. 모순적이네.”

하미준 헌터가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이만하면 궁금증은 다 풀렸어. 정신이 좀 혼미하긴 하지만.”

하미준 헌터가 1인용 소파에 완전히 등을 기댄 후 어깨 관절을 푸는 동안, 나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하미준 헌터와 거리를 좁혔다.

“그래서 지금 제가 해야 되는 건…….”

“우리.”

그때 최민 헌터의 목소리가 왼편에서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음성에 그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죄송합니다. 무심코 말이 나와버려서…….”

최민 헌터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놀란 모습을 보이다 곧 말을 덧붙였다.

“지금까지는 신지의 헌터의 일이었겠지만 앞으로는 저희 모두의 일이 될 겁니다.”

“최민 헌터…….”

“신지의 헌터가 저희에게 조금 더 의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쿵.

따뜻한 말이 내게 내려앉아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최민 헌터의 입가에 걸린 자연스러운 미소도 어느새 눈에 익기 시작했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저런 말 하는 최민 헌터도 보고.”

“…….”

“아무튼, 신지의 헌터가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할 일은 뭐야?”

하미준 헌터가 주의를 환기시켰다.

“남은 사도들의 파편 파괴, 그리고 업 제거예요.”

“아직 두 사람 남았다고 했지? 사도가 누군지는 알아냈어?”

“네. 한 명은 일본의 센이고, 다른 하나는 네팔에 있는 비스예요.”

내 말을 들은 하미준 헌터가 입을 쩍 벌렸다.

“회장님이랑 센, 둘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것까지 닮았네.”

“이미 해결한 조슈아랑 레일리도 그렇고 다 꽤 유명한 사람들인데 비스만 제대로 된 정체를 몰라요.”

“이름이 비스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전에 신분증을 봤거든요.”

‘죽였을 때 그의 지갑을 뒤져서 본 거지만.’

성이라도 제대로 봤으면 좋았을 텐데, 현장을 떠나는 데 급급해서 이름만 겨우 확인했다.

“이름만 보고 사람을 찾는다… 뭐 구체적인 방법은 있어?”

“나름 생각해 둔 건 있어요.”

나는 핸드폰을 꺼내 레일리가 보내 주었던 ‘칼리의 창’ 기사 링크를 다시 열었다. 최민 헌터와 하미준 헌터를 향해 화면을 보여 주자 그들이 그것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아~ 칼리의 창. 들어본 적 있어. 국내에선 크게 조명하지 않았지만 철학 학술지 같은 데서 네팔판 홍길동이라고 글이 몇 번 실린 적이 있었거든.”

“저는 이 칼리의 창이 비스의 짓이라고 보고 있거든요.”

핸드폰을 다시 넣어 두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직접 이곳에 가서 칼리의 창에 대한 정보를 모을 거예요. 게이트 오픈이나 폭발 현장에도 들어가 볼 예정이고요.”

“응. 그럼 나한테 부탁하고 싶은 건 뭐야?”

“네팔이나 인도 쪽에 아는 헌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하미준 헌터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정말 그거면 돼?”

“네. 던전 관리국 사람이면 더 좋아요. 네팔 관리국 쪽에서도 칼리의 창을 찾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거든요.”

“쓰읍, 하나 아는 사람이 있긴 한데…….”

하미준 헌터가 핸드폰 화면을 두드리며 누군가를 찾는 동안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눈동자만 굴려 나를 응시했다.

“정보 교환이 목적인 거지?”

“네. 현지의 빠른 정보와 소문을 원해요.”

“오케이. 아무래도 이 양반이 신지의 헌터의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네.”

하미준 헌터가 내민 핸드폰을 들어 최민 헌터와 함께 살폈다.

[라울 아디카리]

메신저 앱 프로필이었다. 화려한 망토를 걸친 중년의 남자가 양팔에 어린아이들을 안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화면 정중앙에 떠 있었다.

“라울 아디카리, 42세, 기혼, 자식은 딸 둘, 배우자는 여섯 살 연상의 비각성자 여자. 부산물 가공 회사의 엔지니어래.”

“그런 정보는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예요?”

“무기 만들어 줄 때 몇 번 말 걸었더니 가족 자랑하느라 전부 늘어놓더라고.”

“헌터였군요.”

“그럼~ S급 방어계 헌터지.”

하미준 헌터는 내게 핸드폰을 받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작년부터 네팔의 던전 관리국장직을 맡고 있지.”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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