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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87화 (187/366)
  • 187화

    두근, 두근.

    시야가 돌아오는 것보다 심장이 뛰고 있는 감각이 더 먼저 느껴졌다. 온몸에 피가 흐르고 있는 걸 느끼며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질서 오류 발생]

    [■■■의 범주 적합 조건 재판단]

    내가 그 얼굴을 열심히 머릿속으로 그릴수록 세상의 질서가 바뀌고 있었다. 마치 내가 떠올려선 안 되는 존재를 떠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툭.

    그때 내 얼굴 위로 무언가가 떨어져 그대로 흘러내렸다. 본능적으로 그것이 누군가의 눈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힘겹게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해. 내가… 제발.”

    중간중간 끊기는 목소리와 위아래로 흔들리는 등이 보였다.

    바스락

    나를 꽉 끌어안은 탓에 오른쪽 눈이 녀석의 가슴팍에 눌렸다. 왼쪽 눈꺼풀에 겨우 힘을 주어 나를 끌어안은 이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각성자 강세빈]

    [어둠 속성]

    [고유 스킬 S등급]

    [S급 공격계 스킬 ‘달그림자’ : 그림자와 어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한다.]

    [연계 패시브 스킬 ‘흡암(吸暗)’ : 암전 상태로부터 완전 면역을 유지한다.]

    [S급 정신계 스킬 ‘공포’ : 생명체를 압도하는 공포를 느끼게 한다. 모든 공포 피해에 면역이 생긴다.]

    [연계 패시브 스킬 ‘무의식’ : 모든 종류의 정신계 스킬에 강한 면역이 생긴다.]

    [S급 은신계 스킬 ‘무아(無我)’ :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운다. 오래 사용할 시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잊힌다.]

    [연계 패시브 스킬 ‘밤말을 듣는 쥐’ : ‘무아(無我)’ 상태 유지 시 비행이 가능하다.]

    [귀속 무기 : S급 장검 ‘영(影)’, 사용자의 능력을 증폭시킨다. 어두울수록 파괴력이 증가한다.]

    [무기 비문 : 고독 속에서 건져 올린 것들 중 가장 파괴적인 존재구나.]

    [‘카르마 : 학살자’ :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료도 무자비하게 벴던, 잔인한 학살자의 업]

    [인어공주 :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네 것으로 만들어라. 할 수 있다면. (미달성)]

    [*학살자의 업 청산*]

    “…세빈아.”

    이름을 부르자 녀석의 흐느낌이 멈췄다. 연갈색의 머리카락에 가려진 얼굴이 나를 향하고 우주를 담은 듯한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자마자, 나는 온전히 내 눈앞의 ‘강세빈’과 나를 믿어 준 세빈이의 존재를 하나로 합칠 수 있었다.

    [돌발 지령이 수행되었습니다.]

    [보상: 평생 네 곁에 있을 최강의 검]

    내가 세빈이를 기억하자 돌발 지령이 수행되었다는 상태창이 눈앞에 떴다. 지난 시간선의 ‘나’들이 내 무기까지 제어해 가며 나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되살리려 한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세빈이를 살리기 위해서였어.’

    [고■워]

    [■빈이의 존■가 잊힐까■ 그 애한■ 업■ 씌■어.]

    [그래■ 세빈■는 지금 몬■터야.]

    [네■ 업을 청■하면 다시 인■으로 돌■■ 수 있어.]

    글자 일부가 깨져 있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쩌다 세빈이의 존재가 잊힌 건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나’들이 손을 써서 세빈이를 몬스터로라도 남겼고, 내 힘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 있게 했다. 그것만으로 ‘나’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부■할게.]

    [세■이를 살려 줘.]

    ‘나’들의 마지막 부탁과 함께 상태창이 완전히 사라졌다.

    [구원자가 ‘강세빈’을 인지]

    [존재가 잊힌 자의 범주에서 ‘강세빈’을 삭제]

    사라진 기억의 풍경에 세빈이가 퍼즐 조각처럼 끼워 맞춰졌다. 미완성이었던 그림이 세빈의 존재로 완전해지기 시작했다.

    “윽!”

    “지의야!”

    그때 복부에서부터 아찔한 고통이 퍼져 나갔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를 찢어놓는 것 같아 세빈이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그러고 보니 여전히 세빈이의 검에 찔린 상처가 남아 있을 것이다.

    ‘스틱스 강……!’

    똑.

    “허어, 헉……”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고통이 가셨다. 하지만 몸이 잔뜩 긴장했던 터라 여전히 여기저기 욱신거렸다.

    탁.

    몸을 일으키자마자 주변부터 살폈다. 아까 내가 세빈이의 검에 찔렸을 때 보았던 풍경과 똑같았다. 정신을 잃었던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나 보다.

    “세빈아.”

    고개를 내려 세빈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고, 말하는 법을 까먹은 사람처럼 입술만 달싹거릴 뿐이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동료였던 이들이 내게 무기를 드는 것, 잠깐 떠올린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헉.”

    그때 세빈이가 뭔가 떠올랐는지 숨을 들이켰다.

    그러곤 그림자로 자신의 검을 휘감아 팔찌로 되돌려 놓았다. 내가 또다시 돌발 행동을 할까 봐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듯했다.

    “걱정 마. 이제 안 그럴 테니까.”

    “…진짜로 돌아온 거야?”

    세빈이는 잔뜩 경계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순간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겨우 진정시키곤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내 말에 세빈이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새카만 눈동자에 물기가 어려 반짝거리더니 이내 투명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늘 차분하고 어른스럽던 세빈이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로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바스락.

    나도 세빈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크게 떨고 있는 어깨를 끌어안았다.

    “영영 이렇게 살까 봐, 무, 무서웠어.”

    “미안해.”

    “하미준 헌터랑 한진우 헌터, 차도윤 헌터, 최민 헌터한테도 해선 안 될 짓을 했어.”

    울음이 섞여 말이 뚝뚝 끊겼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런 세빈이의 몸을 더욱 꽉 끌어안는 것밖에 없었다.

    “네가 날 떠올려줄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려 했는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될 것 같았어.”

    “내가 미안해.”

    “나한테 남은 건 진짜로 너밖에 없었는데, 이젠 너마저 날 잊어버리니까 난…….”

    세빈이를 잊었을 때 내가 보였던 행동 하나하나가 그의 가슴을 후벼팠을 것을 알기에, 나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너무 쉽게 포기해 버렸어.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100번이나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너와는 다르게 말이야.”

    “…뭐?”

    그때 예상치 못한 말이 귀에 꽂혔다. 세빈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몬스터가 되기 전에 과거의 나를 만났어. 네가 종말을 막기 위해 시간을 돌렸다고 했어.”

    “…….”

    “사실 네가 각성하기 전부터 자꾸 네가 죽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그게 전부 사실이래. 정말로 있던 일들이래.”

    세빈이는 힘겹게 말을 마치고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나한테만 인과율이 생기면 됐지, 왜 내 죽음을 본 사람한테도 쌓인 걸까.’

    희생할 준비가 된 사람에게 ‘구원자’라는 번지르르한 족쇄를 채우고 이 미친 삶을 반복하게 하질 않나, 그런 구원자의 죽음을 본 사람들까지 괴롭게 만들지를 않나. 이 세상은 인간에게 너무나 잔인했다.

    “그 말을 들으니까 그동안 했던 네 행동들이 전부 이해되더라.”

    울음을 겨우 멈춘 세빈이가 눈가를 벅벅 닦은 후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젠 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

    “…….”

    “난 네 말이라면 전부 믿으니까, 직접 말해줘.”

    알고 있었다. 내가 아는 강세빈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세빈이를 믿는 것처럼 세빈이도 나를 굳게 믿었다. 그런 세빈이에게 무언가를 숨긴다는 선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대답했다.

    “맞아. 전부 사실이야.”

    “…역시 그랬구나.”

    세빈이는 후련한 듯 씩 웃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회귀했다는 걸 말했다 외톨이가 된 적이 있었어. 그래서 함부로 말할 수 없던 거야.”

    “…….”

    “널 못 믿어서가 아니야.”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 ‘강세빈’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출력 불가]

    아직 세빈이의 존재가 불안정한 탓에 상태창도 크게 흔들렸지만, 세빈이가 내 말에 반응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다행이다.”

    세빈이가 그 말을 하곤 입술을 꾹 다물었다. 울음을 참는 듯한 그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노블레스 길드도, 조슈아를 만난 것도 전부 종말을 막기 위해서였어. 그리고…….”

    치지직.

    그때였다. 말의 힘 이야기를 꺼내려 한 순간, 내 행동을 방해하듯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강세빈’의 업 감지]

    [치명적인 질서 오류 발생]

    [‘강세빈’의 존재 여부 판단 중]

    ‘젠장, 일단 업부터 파괴해야겠어.’

    말을 마치지 못한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빈이의 시선도 나를 따라 올라왔다.

    “세빈아.”

    “응?”

    “내가 지금부터 네 업을 없앨 거야.”

    내 말에 세빈이가 눈썹을 움찔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철컥.

    자아를 들고 세빈이를 향해 겨누자 세빈이는 놀라지도 않고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맞다, 그러고 보니 아까 지의도 만났어.”

    “응?”

    “손밖에 안 보이긴 했는데.”

    세빈이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붉어진 눈가가 반으로 접혀 예쁜 호선을 그렸다.

    ‘내가 미식가의 파편 내부에서 본 거랑 비슷한 걸 만난 건가.’

    98번째의 내가 막고 있던 문틈으로 엄청나게 많은 팔들이 튀어나왔었지. 소름이 끼쳤을 수도 있는데 세빈이는 그게 무슨 추억이라도 되는 양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미안. 긴장이 풀려서 말이 막 나오네.”

    “…빨리 끝낼게.”

    세빈이를 향해 웃어 보인 후 자아를 고쳐 쥐었다.

    ‘카르마의 탄환.’

    [카르마의 탄환]

    [각성자에게 씌워진 업을 파괴할 수 있다]

    [파괴 시 업으로 인한 모든 효과가 사라진다]

    [*말의 씨앗이 개화한 상대에게만 사용 가능]

    [파괴할 수 있는 업이 감지되었습니다]

    [‘카르마 : 학살자’]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료도 무자비하게 벴던, 잔인한 학살자의 업.]

    세빈이가 만난 과거의 세빈, 그것은 아마 98번째의 세빈일 것이다. 그가 아니라면 이 업을 갖고 있는 존재가 없을 테니까.

    방법은 위험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98번째의 세빈이와 과거의 ‘나’들이 지금의 나를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탕.

    그들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쨍그랑!

    흰 탄환이 세빈이의 가슴을 관통하자 가벼운 파열음과 함께 유리 파편 같은 것들이 세빈이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쩌적.

    그리고 이 던전에도 커다란 금이 갔다. 오직 몬스터 ‘강세빈’만을 위해 만들어진 이 공간이 존재 가치를 잃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학살자의 업’ 삭제 확인]

    [세상이 질서를 재정리한다.]

    [미범주 각성자 확인]

    [각성자 ‘강세빈’이 ‘각성자’ 범주에 편입]

    [치명적인 설정 오류 발생]

    [오류 발생 장소 : 생명체의 기억]

    [수정 방향 : 각성자 ‘강세빈’의 존재 모든 생명체의 기억에 삽입]

    [설정 오류 수정 시작]

    쿠구구궁.

    모두의 기억에 세빈이를 다시 집어넣기 위해 세상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했다.

    [설정 오류 수정 완료]

    [각성자 ‘강세빈’ 존재 복구 완료]

    마침내 모두의 기억 속에 잠시 가려졌던 세빈이의 이름이 다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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