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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83화 (183/366)
  • 183화

    투쾅!!

    녀석의 그림자에서 시커먼 손이 뿜어져 나왔다. 촉수처럼 튀어나온 그 손들은 최민 헌터를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타앙!

    자아의 방아쇠를 당겨 일단 그 손부터 끊었다. 추진력을 잃은 손이 힘없이 바닥 위로 떨어지자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강세빈’이 있는 곳으로 자아를 겨눴다.

    “쳇……!”

    하지만 녀석은 이미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아무런 수확 없이 최민 헌터를 바라보자 그는 공중을 둥둥 떠다니며 이 던전 어딘가에 있을 ‘강세빈’의 흔적을 눈으로 찾아다녔다.

    콰과광!!

    그림자가 땅을 찢고 나와 또다시 최민 헌터를 향했다. 그가 자신의 몸을 방공호로 빠르게 감싸자 그림자 손은 불의 장벽에 막혀 순식간에 불탔다. 그와 동시에 최민 헌터가 다시 방공호 밖으로 빠져나왔고 ‘강세빈’이 서있던 곳에 폭발을 일으켰다.

    ‘분명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난 인벤토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하미준 헌터한테 전화를 걸었다.

    쾅!

    그러는 동안에도 최민 헌터와 ‘강세빈’은 몇 번이고 부딪혔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신지의 헌터, 무슨 일이야!

    “전투 상황이에요. 빨리 와주세요!”

    뚝―

    나는 통화를 짧게 끝내고 다시 인벤토리 안으로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우우웅―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겨 공간 전체를 울렸다. 그러자 검을 들고 최민 헌터에게 달려들던 녀석의 움직임이 순간 멎더니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민 헌터, 괜찮아요?”

    “네. 크게 다친 건 아닙니다.”

    최민 헌터는 대답을 한 후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나도 방아쇠를 쥔 채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려 감각을 곤두세웠다.

    ‘근데 왜 최민 헌터만 공격하는 거지?’

    지금까지 ‘강세빈’이 먼저 공격한 적은 없다고 했다. 심지어 최민 헌터가 혼자 들어갔을 때도 공격하지 않았었다.

    “지의의 옆에 가장 오래 있던 건 난데. 왜 매번 지의를 구하는 건 저 사람인 거냐고…….”

    녀석이 아까 했던 말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왜인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이 가슴에 내려앉았다.

    인간을 질투하는 몬스터.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유형이었다. 녀석은 정말로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강세빈, 일단 진정해! 우릴 죽일 생각은 없다고 하지 않았어?”

    사락―

    내가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천 자락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실력 좋은 조각가가 만든 듯한 얼굴이 눈앞에 훅 들이밀어졌다.

    텁―

    황급히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녀석이 내 양팔을 붙드는 바람에 그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다.

    “내 이름, 기억난 거야?”

    녀석이 눈을 빛냈다. 기대감으로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니 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네 이름은 그냥 알게 된 거야.”

    “…그렇구나.”

    내 팔을 잡은 손에 힘이 풀렸다. 녀석은 약간 실망한 듯 쓰게 웃곤 뒤로 물러났다.

    쿠구궁!!

    “윽……!”

    그때 거대한 나무줄기가 파도처럼 밀려와 ‘강세빈’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다들 잠깐……!”

    콰광!

    연둣빛의 번개가 곧바로 내리꽂혀 내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사라졌다. 얼마 안 있어 모든 걸 다 찢을 듯한 폭풍이 ‘강세빈’을 삼킨 나무줄기를 통째로 뜯어내 그것을 공중으로 띄웠다.

    피잉―

    그 직후, 수십 개의 바람 화살이 허공을 가로 질러 나무줄기에 동시에 꽂혔다.

    순식간에 휘몰아친 공격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둘 다 괜찮아?”

    하미준 헌터의 목소리가 귀에 꽂히고 나서야 상황 파악이 됐다. 하미준 헌터와 차도윤 헌터는 물론, 한진우 헌터까지 ‘행운의 토끼발’에 올라탄 채로 던전에 들어와 있었다.

    김강희를 제외한 국내 S급이 ‘강세빈’을 쓰러트리기 위해 전부 모인 것이다.

    “빨리 왔네요.”

    “당연하지. 저 녀석이 보통 놈이 아닐 것 같아서 걱정됐는데, 차라리 전투 상황이 되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신지의 헌터, 아까 무슨 말 하지 않았어요?”

    차도윤 헌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그러고 보니 모두가 ‘강세빈’을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행동을 멈추게 하려고 했다. 생각을 거치고 나온 게 아닌,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마치 녀석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또각―

    혼란스러움에 머릿속이 뒤죽박죽해진 것도 잠시. 땅에 떨어졌던 나무줄기의 더미 사이에서 ‘강세빈’이 걸어 나왔다.

    녀석은 옷소매로 제 입가를 슥 닦았다. 그러나 입술에서 터진 피 때문에 오히려 얼굴이 엉망이 되었다.

    “안 죽은 게 용하네.”

    “…….”

    “신지의 헌터랑 대화하다가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어? 몇 시간 전만 해도 공격할 생각 없어 보였는데.”

    하미준 헌터의 질문에도 ‘강세빈’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저 몬스터는 자신이 신지의 헌터 옆에 가장 오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물음의 대한 대답은 자연스레 최민 헌터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저희와 마찬가지로 자신 역시 S급 헌터였다고 이야기하더군요.”

    “헌터?”

    하미준 헌터의 미간이 구겨졌다.

    “인간을 동경하기라도 하는 건가?”

    그도 나와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인간을 흉내 내고, 인간을 질투하며, 본인이 인간이었다고 주장하는 몬스터를 이해하려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치직―

    [돌발 지령]

    [제발 ■■해 내]

    [그 아이■ 기■해 줘]

    [보상 : 평■ 네 ■■ 있을 최■의 ■]

    ‘이 돌발 지령만 아니었어도 그리 생각하는 게 편했을 텐데.’

    내게 경고하듯 또다시 상태창이 요란스럽게 시야를 가렸다. 엉망진창이 된 글자 너머로 ‘강세빈’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더 해야 할까, 지의야.”

    녀석은 모든 걸 다 포기한 듯이 내게 말을 던지곤 새카만 검을 고쳐 쥐었다.

    끼기긱!

    녀석의 말에 뭐라 대답을 해주기도 전에 날카로운 검날과 하미준 헌터의 은 도끼가 맞부딪쳤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전투의 신호탄이었다.

    아득―

    죽이는 건 보류하더라도, 일단 녀석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긴 해야 한다.

    나는 입술을 잘근 씹다 곧바로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 녀석은 은신 스킬이 있어요! 인기척도 전혀 안 느껴지는 상급 스킬이니까 기습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네!”

    나는 빠르게 정보를 전달한 후 팔찌의 나무 구슬 위에 손을 올렸다.

    키잉―

    동시에 녹두가 튀어나와 내 옆에 우뚝 섰다. ‘강세빈’은 곁눈으로 녹두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왜 사람들끼리 싸우고 있어? 저 갈색 머리는 몬스터야. 인간이랑 엄청 닮았네…….’

    녹두는 의문을 표하다 이내 자신의 몸 주변으로 새하얀 구체를 둘렀다.

    ‘일단 저 녀석을 쓰러트려 줘. 죽이지는 말고.’

    ‘알겠어!’

    ‘그리고 공격보다는 사람들의 보호를 우선으로 해줘. 무슨 말인지 알지?’

    툭―

    녹두는 대답 대신 내 손에 자신의 머리를 부딪치며 어리광을 잠깐 부리곤 곧바로 ‘강세빈’을 향해 달려 나갔다.

    쿵!

    녹두의 주위를 위성처럼 맴돌던 새하얀 구체를 자신의 검으로 튕겨낸 ‘강세빈’이 오히려 녀석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하미준 헌터가 나무줄기를 뽑아 내 녀석의 사지를 옭아맸다.

    퍼버벙!!

    이어 새파란 불꽃이 나무를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재가 되어 폭삭 주저앉은 나무 잔해 위로 ‘강세빈’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녀석의 은신계 스킬은 단순히 몸을 숨기는 정도가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우는 수준이야.’

    그러지 않고서야 연달아 쏟아지는 공격을 저렇게 깔끔하게 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철컥―

    나는 자아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강세빈’은 가벼운 몸짓으로 저를 쫓는 나무줄기들을 전부 피했다. 그러곤 그에 맞춰 녀석의 그림자가 그것들을 땅으로 끌어당겼다. 차도윤 헌터의 화살이 ‘강세빈’의 머리를 노린 순간, 녀석이 몸을 숙였다.

    ‘지금이다.’

    탕!

    예리한 소리 탄환 하나가 자아에서 빠져나와 녀석의 손목을 정확히 관통했다.

    “윽!”

    챙!

    ‘강세빈’이 인상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검을 바로 반대쪽 손으로 던졌다. 녀석은 제 앞에 있던 하미준 헌터를 향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하미준 헌터가 재빨리 들고 있던 도끼로 녀석의 날을 흘렸지만, 무기의 길이 차이 때문인지 결국 날카로운 검 끝이 하미준 헌터의 팔뚝을 깊게 파고들었다.

    “쳇.”

    하미준 헌터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뒤로 물러났다.

    “괜찮으세요?!”

    “저 미친 반사 신경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네. 공격당한 와중에도 바로 반격을 하고 말이야.”

    한진우 헌터의 ‘약손’이 하미준 헌터의 상처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나뭇잎이 하미준 헌터의 상처 위에 닿아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는 동안, 줄줄 흐르던 피가 서서히 멎기 시작했다.

    반면 ‘강세빈’의 오른손은 여전히 피로 흥건했다. 꿰뚫린 상처는 치유되긴커녕 오히려 균열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지금 한 번 더 공격을 퍼부어서 찬스를 만들면……!’

    나는 재빨리 녀석에게 자아를 조준해 방아쇠를 당겼다.

    틱―

    “어……?”

    하나, 자아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퍼버벙!!

    그사이, 이미 녹두의 공격과 최민 헌터의 불꽃이 녀석을 향해 쏟아졌다. ‘강세빈’은 다치지 않은 손으로 능숙하게 공격을 튕겨내며 그림자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있었다.

    ‘야, 왜 그래! 아까 목소리 충전되어 있는 것도 확인 했는데……!’

    ‘지의야.’

    자아에게 급하게 말을 걸자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몸 안을 울렸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자아를 들어 눈앞으로 가져오자 몸체에서 새하얀 빛이 불규칙적으로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원래 돌발 지령이라는 거… 나한테도 보이는 거였나?’

    ‘뭐?’

    쾅!!

    그때 그림자에 발이 잡힌 최민 헌터가 바닥에 메다 꽂혔다.

    “젠장, 녹두야!”

    “아우우―!”

    쿠웅―

    당장 실드를 뽑아낼 수가 없어 녹두의 이름을 외치니 곧바로 배리어를 만들어 최민 헌터를 보호했다.

    ‘강세빈’은 최민 헌터를 향해 달려들려다 이내 녹두를 보자마자 뒤로 굴러 거리를 두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한테 돌발 지령이 나타났어?’

    ‘응.’

    ‘무슨 내용이야? 보상은 뭐고?’

    ‘…….’

    자아가 대답을 망설였다. 녀석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내 심장은 더욱 빠른 속도로 뛰었다.

    ‘이 돌발 지령을 수행하기 전까지는 나를 쓸 수 없대.’

    ‘뭐라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리고 지의 네가 나를 쓰려면…….’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세워둔 채, 자아는 한참 동안 대답을 망설였다. 잠시간의 정적 끝에 숨을 깊게 들이마신 자아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강세빈’의 검에 찔려야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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