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81화 (181/366)
  • 181화

    “무사해서 다행이야, 지의야.”

    쿵―

    녀석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자 누군가 내 머리를 친 것처럼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섞여 사고가 정지했다. 이 몬스터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건지. 그리고 왜 그렇게 다정하게 말을 거는 건지. 지금의 나로선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후두둑―

    “어?”

    “신지의 헌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아이테르의 로브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아 눈물을 금방 추스를 수 있었다. 하지만 흙길에 선명히 남은 눈물 자국은 감출 수 없었다.

    ‘정신계 스킬이라도 있는 건가?’

    난생처음 겪는 일에 긴장해서인지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지는 느낌이었다. 내 얼굴을 본 하미준 헌터와 차도윤 헌터도 잠시 당황한 듯했다. 하나 이내 무기를 고쳐들며 시체 위에 앉아 있는 몬스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며칠 전에도 너랑 비슷한 거랑 싸우긴 했지만…….”

    하미준 헌터가 정적을 뚫고 먼저 입을 열었다.

    “지성이 있는 몬스터는 언제나 놀라워.”

    “…….”

    “대화라도 좀 할까?”

    하미준 헌터의 말에 몬스터가 다리를 꼬더니 상체를 앞으로 숙여 팔을 제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반으로 묶은 연갈색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네가 몬스터라는 자각은 있는 거지?”

    “네.”

    “어머, 존댓말까지 하네. 그런데 왜 신지의 헌터한테는 친하게 굴었어?”

    “말해도 지금의 하미준 헌터는 모를걸요.”

    “…오.”

    녀석은 나뿐만이 아니라 하미준 헌터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하미준 헌터가 짧게 감탄사를 내뱉는 동시에 몬스터는 고개를 살짝 꺾어 내 오른편에 선 차도윤 헌터를 눈에 담았다.

    “차도윤 헌터, 부상자들은 한진우 헌터가 잘 치료하고 있죠?”

    “…….”

    “정당방위긴 했지만 미안하다고 전해줘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녀석이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뱉을 때마다 몸이 굳는 듯했다. 나는 빠르게 뛰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며 일단 오른쪽 눈을 감아 구원자의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 강세빈]

    [어■ 속성]

    [고유 ■킬 S등급]

    [S급 공■계 스킬 ‘달■■자’ : ■림자와 어■을 자유자■■ 다■ 수 ■다.]

    [■급 정■■ ■킬 ‘■포’ : 생■■■ 압도■■ 공■를 느■■ 한■. 모■ ■■ ■■에 면■이 생긴다.]

    [■급 은■계 ■■ ‘■■(■我)’ : 이 세■■서 자■의 존■■ ■■■■. 오■ 사용할 시 ■■으로부터 완전히 ■■■.]

    [‘카르마 : 학살자’ :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료도 무자비하게 벴던, 잔인한 학살자의 업]

    [*학살자의 업 청산*]

    파지직―

    [개체 정보 확인 불가]

    [정보 삭제]

    “큿……!”

    눈이 타들어 가는 고통과 함께 녀석의 주위에 떴던 글자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을 감았다 뜨자 흐릿했던 왼쪽 눈이 서서히 원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구원자의 눈동자로 본 녀석의 정보는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창조자의 파편 안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던 눈동자가 처음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한 건…….’

    나는 아까 보았던 글자들을 떠올리며 입을 뗐다.

    “너…….”

    “응?”

    ‘강세빈’은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내 말에 대답했다.

    “진짜로 몬스터 맞아?”

    [발언력 상승]

    [■■■■■■■■■■]

    [출력 실패]

    녀석의 눈썹이 움찔거리자 나의 상태창에 기묘한 오류가 생겨났다. 오류는 찰나의 순간 떠오르고 먼지처럼 사라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저 ‘강세빈’은 분명히 몬스터인데, 업과 구원 조건이 있었다. 게다가 오류가 발생하긴 했지만 발언력에도 반응했다.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절대로 나오지 않았을 상태창이다.

    “응. 지금은 몬스터야.”

    “지금은……?”

    ‘강세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숙였던 상체를 바로 펴곤 우리들을 내려다보았다. 녀석의 인상이 아까보다 서늘해져 있었다.

    ‘지금이 몬스터라면, 나중엔 아닐 수도 있다는 건가?’

    또각―

    그때, 녀석이 시체 위에서 내려와 바닥에 착지했다. 녀석의 돌발 행동에 우리는 모두 무기를 들고 경계했지만, 녀석은 태연했다. 오히려 여유롭게 어깨에 걸쳤던 트렌치코트에 팔을 끼워 넣으며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러곤 항복하듯 양손을 들었다.

    “전 여러분을 해칠 생각이 없어요. 당연히 죽일 생각도 없고요.”

    “그럼 네 목적은 뭐지?”

    “지의랑 얘기하게 해주세요.”

    녀석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지의랑 단둘이 이야기 하고 싶어요. 아니, 할 거예요.”

    잘 닦은 보석 같은 검은 눈동자가 나를 집어삼킬 듯이 집요하게 응시했다. 분명 섬뜩한 상황인데, 이상하게 그 눈빛이 처절하게 느껴졌다.

    마치 나와의 대화에 자신의 전부를 건 사람의 눈처럼 보였다.

    “왜 하필 신지의 헌터죠?”

    “지의만이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유일한 방법이거든요.”

    “어떤 상황? 미안한데, 우리는 다른 것보다도 네가 사라지는 상황을 바라고 있어서 말이야.”

    하미준 헌터의 말에 ‘강세빈’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네가 몬스터라면 여기서 한 번 클리어되는 편이 낫지 않겠어? 그럼 게이트도 닫을 수 있고, 이곳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데.”

    “…하아.”

    ‘강세빈’이 마른세수를 했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눈에 살짝 물기가 서려 있었다.

    텁―

    더 이상 녀석을 자극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미준 헌터의 팔을 잡자 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강세빈’을 향해 한 발짝 내디뎠다. 녀석이 숨을 훅 들이키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알겠어. 그 제안 고민해 볼게.”

    “지의…….”

    “대신 조건이 있어.”

    반짝거리는 검은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네 정체를 전부 얘기해야 해. 내가 묻는 말에도 전부 대답하고.”

    “응. 그렇게 할게.”

    “이 던전이 생긴 이유, 네가 우리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당연하지. 전부 다 이야기할게.”

    ‘뭐지……?’

    녀석은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부터 내 요구를 너무나 기쁘게 반겼다. 꺼리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아 오히려 내가 녀석의 뜻대로 행동하고 있는 건가 싶어 찝찝할 정도였다.

    “…돌아가죠.”

    “그래.”

    나는 ‘강세빈’을 그대로 둔 채 몸을 돌려 다시 게이트 입구로 발을 옮겼다.

    “지의야!”

    녀석이 또 내 이름을 불렀다. 무시하려 했지만 내 고개는 이미 녀석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장 눈물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눈동자와, 끝이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

    ‘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거지.’

    일부러 동정심을 유발하는 건지 모른다. 하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녀석의 말에 착실히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녀석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고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다릴게.”

    “…….”

    “내 시간은 항상 비어 있으니까.”

    쿵―

    ‘망할.’

    또 심장이 말썽이었다.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말을 할 때마다 누군가 내 마음을 할퀴는 것처럼 쓰라렸다.

    “돌아가면 할 말이 있는데, 시간 내 줄 거지?”

    갑자기 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너무나도 선명한 내 음성이었기에, 순간 내가 혼잣말을 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여전히 녀석을 경계하고 있는 하미준 헌터와 차도윤 헌터를 보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

    턱―

    “신지의 헌터, 얼른 나가자.”

    “네? 아, 네…….”

    생각에 빠질 틈도 없이 하미준 헌터가 내 어깨에 팔을 얹으며 게이트의 출구로 나를 이끌었다.

    내 기억에 생긴 구멍 너머로 무언가가 흘러들어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 *

    게이트 밖으로 나오니 최민 헌터와 한진우 헌터가 우릴 맞이하고 있었다. 다행히 ‘강세빈’에게 당했던 헌터들은 치료가 끝난 후 안정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상처의 깊이가 엄청 깊었어요. 급소에 맞았다면 분명 즉사였을 텐데……. 으음.”

    “왜,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

    한진우 헌터가 잠시 고민하는 듯 말을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일부러 빗겨서 찌른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의 말에 차도윤 헌터와 하미준 헌터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녀석이 정말로 헌터들을 죽일 생각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 말이다.

    “아무튼 지금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해야 할 게 있어요.”

    내가 말을 시작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저 안에 있는 몬스터가 저희한테 제안을 했어요.”

    “제안?”

    “저랑 단둘이 이야기하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최민 헌터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게 신지의 헌터뿐이라는 말도 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함정 같은데요…….”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한진우 헌터의 말에 대답한 하미준 헌터가 어깨를 으쓱였다.

    “놈이 이미 우리에 대한 정보를 모두 파악한 상태라면 당연히 신지의 헌터가 가장 강하다는 걸 알 거야. 그렇다면 신지의 헌터를 부르는 이유는 뻔하지 않아?”

    “먼저 제거할 속셈이라는 겁니까?”

    “뭐, 내 생각은 그렇다는 거지.”

    하미준 헌터는 최민 헌터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곤 이번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지의 헌터는 어떻게 생각해?”

    “…전 대화해 봐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요.”

    “괜찮겠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 아까랑 같은 상황인 거잖아요. 뭐든 해봐야죠.”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범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긍]

    지금 상황에서 정보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강세빈’이다. 녀석이 우리를 잘 알고 있는 만큼 우리도 녀석에 대한 걸 최대한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미끼가 되어 녀석의 정체와 스킬이라도 알게 된다면, 만에 하나 벌어질 수 있는 전투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을 것이다.

    “제가 함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때 최민 헌터가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발언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사람들과 하나씩 시선을 나누던 검붉은 눈동자는 마지막으로 나를 향했다.

    “만약, 갑작스레 전투가 벌어지거나 녀석이 신지의 헌터를 위협하면 바로 방공호를 열겠습니다.”

    “그렇다면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들어가는 게 관건이겠네.”

    “지금 저희 쪽에 은신계 스킬 쓸 수 있는 헌터가 있나요?”

    내 물음에 차도윤 헌터가 잠시 고개를 꺾으며 고민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머리를 바로 했다.

    “있어요. 스킬 등급은 C급이긴 하지만, 적당히 눈속임하기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에요. 마침 지원도 나온 상태고요.”

    “오케이. 그러면 최민 헌터와 신지의 헌터. 이렇게 들어가는 걸로 하자.”

    “좋아요.”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차도윤 헌터는 자신이 말한 그 헌터를 찾으러 치료 캠프 주위로 발을 돌렸고, 나와 최민 헌터는 말없이 게이트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번엔 신지의 헌터도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까?”

    최민 헌터가 내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벌어졌던 일들은 이미 내가 예상했었다고 가정하는 듯했다.

    “네. 정말로 처음이에요.”

    “…….”

    “원래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저에 대한 걸 솔직하게 얘기하려 했는데, 타이밍 한번 진짜 안 좋네요.”

    그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최민 헌터는 내 말에 적당한 대꾸를 하지 못한 듯 그냥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네?”

    “신지의 헌터 본인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로 저를 믿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입니다.”

    그제야 최민 헌터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이젠 제법 웃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가슴 한편이 간지러웠다.

    쿵―

    하지만 그럴수록 머리 한 곳이 빈 듯한 감각이 더욱 선명해졌다.

    ‘난 도대체 뭘 잊은 거지?’

    또각―

    답답하다 못해 불쾌함까지 느껴질 때쯤, 하미준 헌터와 차도윤 헌터가 낯익은 얼굴의 남자 헌터와 함께 나타났다.

    “어……!”

    어린 티를 벗지 못한 하얀 얼굴과 마른 몸. 그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가 샜다.

    함께 첫 파견 임무를 수행했던 민아섭 헌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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