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아.”
잠깐 정신을 잃은 건지 눈이 한 번 더 떠졌다. 희뿌연 독안개가 여전히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 꿈이라면 평생 깨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치직―
실없는 생각을 할 때쯤, 갑자기 눈앞에 노이즈가 꼈다.
[※경고※]
[무아(無我)의 지속 시간 한계 임박]
[지금 해제 시 재사용 대기 시간 1시간]
[계속 지속할 시 세상으로부터 완전 삭제]
[존재 삭제까지 1분]
“망할.”
이젠 정말로 물러날 곳이 없었다.
난 눈동자를 굴려 이 공간을 둘러싼 독을 눈에 담았다. 검은 뱀의 허물이 독을 어느 정도 막아준다고 해도 1시간 동안 버티진 못할 것이다. 죽는 것이 두려워 무아를 계속해서 유지한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아예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없는 사람이 되느냐,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고 죽느냐다.
―돌아가면 할 말이 있는데, 시간 내 줄 거지?
후두둑―
지의가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터졌다.
내 존재가 이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잊히는 것, 그것은 내가 아예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분명 ‘나’는 이곳에 있는데 사람들은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지의에게 있어 내가 아예 없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존재 삭제까지 30초]
지의의 기억 속에 남고 그를 영영 보지 못하는 것, 지의를 평생 볼 수 있지만 그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것.
지금 내게 남은 건 두 가지 선택지뿐이다.
[존재 삭제까지 20초]
“싫어…….”
어느 쪽도 선택하기 싫었다. 이기적인 나는 지의의 옆에 서고 싶었고, 지의가 힘들어 할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었다.
남은 삶의 모든 생일을 지의와 함께 맞이하고 싶었다.
[존재 삭제까지 10초]
점점 모든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영영 사라지면 나는 무엇이 되는 걸까.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존재 삭제까지 5초]
사라지고 싶지 않다.
[각성자 ‘강세빈’ 존재 삭제]
쨍그랑―
나를 둘러싼 황무지의 풍경에 커다란 금이 갔다. 깨진 유리가 떨어지듯 풍경들이 여러 파편으로 쪼개져 내 세상을 무너트렸다.
[세상이 당신을 바라본다.]
[세상이 당신의 존재를 ■▲▣■§■■?????]
[오●※류 발생]
[강#제%개입▣발생]
‘뭐지……?’
그때 상태창이 크게 흔들렸다. 흔들릴 때마다 글자들이 알 수 없는 문자로 마구 바뀌더니 이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졌다.
콰득―
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킬 때쯤 상태창의 가장자리에서 수십 개의 손이 튀어나왔다. 손들은 일그러진 글자들을 잡아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글씨 쓰는 법을 처음 배운 사람이 쓴 문장처럼 삐뚤빼뚤한 생김새였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없다.]
[당신은 죗값을 치를 때까지 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
“죄……?”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최대한 이해해 보려 했지만 사고가 마비되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군가 나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도록 세상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두두둑―
글자를 만들던 손의 수가 갑자기 늘어나더니 직사각형의 커다란 문이 되었다. 그 손들이 내가 잘 아는 누군가의 손과 닮았다는 생각을 할 때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누군가 걸어 나왔다.
“…뭐야.”
“오랜만이네.”
‘나’였다. 미식가가 만들어 낸 악몽에서 만났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놈은 문이 된 손에 자신의 머리를 한 번 톡 대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나를 바라볼 땐 곧바로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다.
‘저건 뭐지?’
녀석은 검은 뱀의 허물로 덮인 무언가를 양손으로 안아 든 상태였다.
스르륵―
녀석이 내 쪽으로 성큼 다가온 순간 검은 뱀의 허물이 밑으로 흘러내렸다.
“너…….”
‘나’의 팔에 들린 지의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검으로 녀석의 머리를 베고 지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를 죽일 듯이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후웅―
하지만 내 검은 녀석의 머리를 그대로 통과할 뿐 아무런 상처를 줄 수 없었고, 내 손은 지의의 팔에 닿지 않았다.
지의는 ‘나’의 팔에 온전히 몸을 맡긴 채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복부엔 시커먼 피까지 고여 있어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지금의 지의가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
“무슨 소린지 알아듣게 설명해.”
“…너 지의가 죽는 꿈 계속 꾸지?”
‘나’의 물음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내가 입을 꾹 다물자 녀석은 예상했다는 듯 한 번 픽 웃곤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그게 꿈이 아니라 진짜로 있었던 일이면 어떻게 할래?”
“뭐?”
“아니 어떻게 할래, 가 아니지.”
녀석의 두 눈에서 검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짜로 있었던 일이니까 받아들여.”
“…헛소리하지 마.”
“우리가 지의가 죽는 걸로 농담을 할 것 같아?”
녀석은 ‘우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녀석의 말이 맞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것도 ‘나’다. 그렇기 때문에 녀석도 지의의 죽음을 가볍게 입에 올릴 리가 없다.
‘그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의는 도대체 뭐지?’
나는 시선을 내려 녀석의 팔에 안긴 지의를 바라보았다.
“얘는 98번째 지의, 그리고 나도 98번째 강세빈.”
“98번째라니, 무슨 소리야?”
“이번이 98번째 인생이라고, 100번째.”
녀석이 나를 100번째라고 불렀다. 녀석의 말대로라면 난 이번이 100번째 인생인 것이다. 그리고 그건 지의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왜?’
근본적인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전생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렇기에 나에게 이번 생이 두 번째도 아니고 100번째라는 말을 덜컥 믿기는 어려웠다.
“네가 왜 100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건지 궁금하지?”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나’가 말을 걸었다.
녀석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그는 픽 웃으며 제 품 안의 지의를 내려다보았다.
“누가 이 세상이 망하는 꼴을 도저히 못 봐서 말이야.”
“…잠깐.”
“포기할 만도 한데 계속 도전하더라고.”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여러 명의 지의와 나, 실제로 있었다는 지의의 죽음들, 던전의 이상 현상. 그리고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지의의 말과 행동들.
머릿속을 부유하던 퍼즐 조각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자 어떤 단어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회귀라는 게 진짜로 있는 일이었구나.”
지의가 감추고 싶어 하던 진실을 마주해 버렸다. 지의의 입으로 듣고 싶었던 진실은 결국 가장 외롭고 쓸쓸한 방법으로 알게 되었다.
지의가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줬다면, 난 믿었을 것이다. 아니, 만약 지의가 이 세상을 망하게 만든 악의 원흉이라고 해도 나는 지의의 편에 섰겠지.
‘그 정도로 나를 신뢰하진 않는 건가.’
아주 절망적이고 그럴싸한 가설이 목을 졸랐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밑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넌 죽기 전에 알았네. 난 이 세상의 일부가 되면서 알아버렸는데.”
녀석은 조롱하듯 내게 말을 뱉었다.
치지직―
98번째의 내가 말을 마치자 손으로 된 문에 노이즈가 생겼다.
“무리했군. 시간이 없으니 필요한 것만 빨리 얘기하지.”
푹―
그때 녀석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손이 내 목을 관통했다.
“커헉……!”
“널 이대로 두면 무아의 부작용 때문에 네 존재가 사라질 거야.”
분명 목을 꿰뚫었는데 손으로 만져도 피가 묻어 나오지 않았다.
98번째의 나는 다시 평온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이 세상과 너를 묶어 놓을 연결 고리를 하나 만들어 놓았어.”
“그게 뭔데.”
“업.”
치직―
[학살자의 업]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료도 무자비하게 벴던, 잔인한 학살자의 업]
마지막 문장을 다 읽자 상태창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건 내가 쌓은 업보야.”
“동료들을 죽였어?”
“너도 그 상황이었으면 나와 같은 선택을 했을걸.”
녀석은 비릿하게 웃었다. 하지만 눈에서 떨어지는 검은 눈물은 멈출 기미가 없어 보였다.
“아무튼 이 업을 너와 나눴어. 세상은 업을 가진 놈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업을 청산할 때까지는 어떻게든 네 존재를 지우지 않을 거야.”
“업을 청산하게 된다면 결국은 지워진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건 내가 해결할게.”
그때 여러 개로 겹친 지의의 목소리가 문에서 들렸다.
“지의야……?”
내 말에 문을 이루고 있는 손들이 일제히 나를 가리켰다.
“인간 강세빈은 이미 이 세상에서 잊혔어. 대신 지금부턴 몬스터 ‘강세빈’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겠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 업을 청산하면 다시 인간 강세빈으로 돌아오고, 세상 사람들도 너를 기억하게 될 거야.”
지의의 목소리들이 쉴 새 없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부탁하는 건 딱 한 가지야.”
“지의가 널 떠올리게 해줘.”
“지의가 널 떠올리고 네 업을 청산할 수 있게 해줘.”
“지의가 업을 청산할 수 있어?”
내 질문에 똑같은 대답이 들어왔다.
“그럼, 그 아이는 이 세상의 구원자니까.”
지의의 목소리가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치지지직―
98번째의 나와 문이 크게 흔들렸다. 세상이 이들의 개입을 눈치챈 것 같았다.
98번째의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
“하나만 물어 보자.”
“뭔데.”
“혹시, 그동안의 회귀 중에 내가 지의를 죽인 적이 있어?”
녀석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지의가 내 검에 찔린 채 죽은 모습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꾼 지의의 죽음들 중 가장 끔찍했던 장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네 손으로 죽이진 않았지.”
“…….”
“하지만 네가 지의를 죽게 만든 건 맞아.”
98번째의 나는 의뭉스러운 말만 남긴 채 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러니까 이번엔 지의를 죽게 두지 마.”
치지직―
그 말을 끝으로 녀석과 문은 완전히 사라졌다.
[세상이 당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다.]
그와 동시에 세상이 나를 인식했는지 상태창이 빠르게 떴다.
[세상이 당신을 ‘존재가 잊힌 자’ 범주에ㅔㅔㅔㅔㅔㅔ]
[―편집 중―]
[세상이 당신을 ‘몬스터’ 범주에 편입시킨다.]
[세부 항목 : S급 보스 몬스터]
[세상이 당신의 특성을 분석하여 ‘던전’과 ‘게이트’를 출력한다.]
[출력 완료]
지의들의 말처럼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S급 보스 몬스터가 되었고, 곧 어딘가의 던전에 놓이게 될 처지였다.
‘나는 늘 지의의 도움을 받는구나.’
지의에게 의지가 되기는커녕 늘 발목만 잡는 사람이 되었다.
“…정신 차려야 해.”
좌절할 순 없다. 또다시 지의의 걸림돌이 됐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끈질기게 버텨서 지의가 더 나은 미래로 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
100번이나 포기하지 않은 지의처럼.
[던전 구현까지 5초]
‘지의야, 기다리고 있을게.’
[던전 구현까지 3초]
‘나도 노력할게.’
[던전 구현까지 1초]
‘네가 날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리고 네가 날 더 믿을 수 있도록.’
[던전 구현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