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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78화 (178/366)
  • 178화

    【‘강세빈’】

    기억이 도려내진 것 같은 기분이다. 정확히는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뭐야. 신지의 헌터 왜 그래?”

    하미준 헌터가 내게 성큼 다가오며 내 얼굴을 살폈다. 내가 고개를 홱 들자 그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하미준 헌터, 여기 왜 왔다고 했죠?”

    “왜 왔긴. 신지의 헌터가 무모한 짓 할까 봐 걱정돼서 왔지.”

    “처음엔 미래 씨 따라서 학회 가려고 온 거였잖아요. 왜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했어요?”

    “어? 그거야 신지의 헌터가 조슈아 군을…….”

    하미준 헌터도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당혹스러워하던 그의 표정이 점점 굳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신지의 헌터가 조슈아 군을 만난다는 걸 누가 알려줬더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온몸의 피가 도는 게 느껴질 정도로 감각이 예민하게 살아나자, 기억의 한 부분이 도려내진 느낌도 선명해졌다.

    ‘난 도대체 뭘 잊은 거지?’

    우우웅―

    혼란스러운 와중에 업무용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차도윤 헌터

    나는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차도윤 헌터…….”

    ―하, 이제야 연락이 되는군요.

    전화를 받자마자 그의 긴 한숨이 귀에 꽂혔다.

    ―지금 빨리 귀국해 주세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으아아악!

    ―빨리 치료팀으로 이송해!

    전화기 너머로 사람들의 비명과 말소리가 섞여 들렸다.

    “게이트 폭발이에요?!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나중에 설명할게요. 일단 빨리 돌아와요!

    전화는 차도윤 헌터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끝났다.

    * * *

    ???시간 전, 세빈.

    ‘젠장할.’

    얼마나 오랜 시간 이곳을 헤맸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걸어도 이 황무지의 끝은 없었고 게이트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나를 집어삼킨 게이트는 몬스터 대신 독으로 가득 찬 공간에 나를 떨어트렸다. 잠깐 숨을 들이켠 것만으로 폐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아 ‘무아’를 쓴 채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져 버려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난 그저 바닥에 누운 채로 몽롱해지는 정신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 * *

    “엥? 강세빈 진짜 못 와?”

    “미안. 오늘은 진짜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넌 중요한 약속이 왜 이렇게 많냐.”

    “수진이 생일인데 시간 좀 내주지.”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학생이 세빈에게 불만스레 말하자 어색한 기류가 맴돌았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말이 한 마디 더 오가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따라갔겠지만, 오늘은 정말로 그럴 수 없었다.

    누군가의 생일인 오늘은 부모의 기일이었다.

    세빈은 지의 외의 또래에겐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저를 보는 시선에 안타까움과 동정이 서리는 것이 역겨웠기 때문이다.

    세빈의 앞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좋아해 주고 착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들의 시선도 변할까 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대신 내가 오늘 훈련 째고 왔잖아.”

    “아이 씨, 짼 거였어?”

    “신지의 간도 크다, 진짜.”

    잠깐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지의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바뀌었다. 지의는 세빈을 흘긋 보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 사줄 거야?”

    “선물도 안 줘놓고 얻어먹을 생각만 하냐?”

    “어! 나는 떡볶이!”

    “이가은 넌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세빈은 밝게 웃으며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는 지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의의 말과 행동이 저를 배려하고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세빈아, 나중에 연락해~”

    “응.”

    세빈은 버스 정거장 앞에서 지의에게 손을 흔든 후 부지런히 버스에 올라탔다. 제 부모가 있는 봉안당은 버스의 종착역이었기에 그는 귀에 이어폰을 꽂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지의는 어떻게 저렇게 다정할 수 있는 거지.’

    초등학교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의는 세빈에게 있어 늘 고맙기보단 신기한 존재였다.

    소중한 사람과 이별했다는 점에서 자신과 지의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의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그와 정반대였다.

    사람에게 정 주는 것을 꺼리는 자신과 처음 본 사람도 망설임 없이 도와주는 지의. 세빈은 자신이 지의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

    무심코 포털 사이트 아이콘을 누르자 세빈이 짧게 소리를 뱉었다.

    [03.20 강세빈 님 생일 축하합니다!]

    세빈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화면을 껐다.

    자신의 생일이 부모의 기일이 된 그날부터, 세빈은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자신이 세상에 나온 날은 결국 자신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준 사람들이 떠나간 날이 됐기 때문이다. 기뻐할 수 없는 날이었다.

    삑―

    세빈은 버스에서 내려 봉안당으로 발을 옮겼다. 반년 만에 오는 것인데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 세빈 학생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어엉, 그럼. 학생은 날이 갈수록 인물이 훤칠해지네.”

    “감사합니다.”

    세빈은 입구의 관리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툭―

    “나 왔어.”

    세빈이 파란 조화로 장식된 유리 장에 머리를 기댔다. 봉안당 안에는 어린 자신과 찍은 가족사진과 부모의 유해가 담긴 도자기가 놓여 있었다.

    세빈은 다시 머리를 떼고 유리 벽면에 붙어 있던 파란 조화를 뜯었다. 먼지가 쌓인 조화 장식을 쓰레기통에 버린 후 가방 속에서 새 조화 리스를 꺼내 유리 장에 붙였다.

    “이모는 오늘 못 온대. 편집장으로 승진하고 나서 엄청 바빠졌어.”

    고요한 봉안당 안에선 세빈의 목소리만 조용히 울릴 뿐이었다.

    “나도 잘 지내고 있어. 이번에 처음으로 지의랑 같은 반이 됐거든.”

    세빈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새로 사귄 친구 중엔 수진이라는 애가 있는데, 걔는 나랑 생일이 똑같아.”

    세빈은 그 말을 하곤 다시 유리 장에 머리를 기댔다. 이마는 시원해졌지만 뜨거워지는 눈가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지금 다들 축하해 주러 갔어. 난 핑계 김에 빠져나왔고.”

    세빈이 고개를 들고 교복 재킷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았다. 눈물이 흐르기 전에 미리 손을 써둔 것이다. 덕분에 시야를 흐리게 하던 눈물은 쏙 들어가고 쓰라림만 남았다.

    ‘난 진짜 생일이 싫어.’

    부모의 기일이라서 싫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몰에 갔다 희생당했기 때문에 세빈에게 있어 생일은 죄책감의 다른 이름이었다.

    세빈에게 오늘은 축하할 날이 아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생일을 말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지의에게조차 말이다.

    세빈은 마른세수를 한 후 다시 유리 장 안의 가족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느껴져 입이 썼다.

    덜그럭―

    세빈은 내려놓았던 가방을 다시 멘 후 유리 장 앞에 똑바로 섰다.

    “다음에 또 올게.”

    우우웅―

    세빈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가 어깨를 파드득 떨며 핸드폰을 꺼냈다.

    지의

    “응……?”

    한창 놀고 있을 친구에게서 온 전화였다.

    세빈은 고개를 갸웃거린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

    ―너, 허억, 지금, 부모님, 헉, 뵈러 갔지?

    “어? 어… 봉안당인데, 왜?”

    ―거허기, 꼼짝 말고 기다려!

    “잠깐, 지의야!”

    세빈은 통화 종료 화면을 바라보며 눈만 깜박거렸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전한 말은 지의가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예상할 수 없었다.

    탁, 탁―

    세빈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다시 건물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강세빈!”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꽂히자 세빈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검은색의 체육복 차림의 지의였다. 전력 질주를 한 건지 앞머리는 땀에 젖어 있었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어깨가 위아래로 크게 흔들렸다.

    바스락―

    지의가 세빈에게 다가올 때마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편의점 봉투가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냈다. 세빈은 귀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지의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의가 세빈의 바로 앞에 섰다.

    “어으, 힘들어…….”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너희 이모한테 여쭤봤지.”

    지의는 양 무릎을 짚은 채로 한참 호흡을 고르다 이내 허리를 폈다. 세빈은 붉게 충혈되어 있을 자신의 눈을 들킬까 봐 고개를 홱 돌렸다.

    “세빈아.”

    “응?”

    “왜 오늘 생일인 거 말 안 했어?”

    쿵―

    세빈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끼며 지의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왠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한 제 소꿉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아, 그, 내가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닌데…….”

    툭―

    지의가 체육복 주머니에서 갈색 지갑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아.”

    세빈의 지갑이었다.

    지의는 곧바로 입을 열어 말을 덧붙였다.

    “네가 나한테 체육복 빌려갔을 때 주머니에 넣어둔 거 까먹고 그냥 준 것 같더라고.”

    “고마워……. 근데 내 생일은 어떻게 안 거야?”

    “아무 생각 없이 열었다가 안에 있는 헌혈증을 봤거든.”

    지의의 말을 듣고 세빈이 지갑을 열자 카드 꽂이에 헌혈증 두 장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세빈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지갑을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지갑 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어? 아니. 사실은…….”

    바스락―

    지의가 들고 있던 편의점 비닐 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카스테라?”

    “원래 빵집에서 조각 케이크라도 사주고 싶었는데. 내가 오늘 3천원밖에 안 들고 왔더라고.”

    지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빈은 그의 손에 들린 카스테라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유행하는 게임 캐릭터가 그려진 손바닥만 한 크림 카스테라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생일을 비밀로 할 수가 있어?”

    “…나한텐 딱히 좋은 날이 아니잖아.”

    세빈의 날 선 말에 지의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말의 뜻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기껏 챙겨준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세빈은 입 밖으로 말이 새자마자 후회했다. 학교에서 40분 넘게 떨어진 곳까지 와준 친구에게 해줄 만한 말이 아니었다.

    세빈은 죄인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지의가 그대로 몸을 돌려 건물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렸다.

    “좋은 날은 아닐지 몰라도 네가 태어난 날이잖아.”

    “…….”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해.”

    찌익―

    지의는 로비에 있던 의자에 앉아 카스테라 봉지를 뜯었다. 푹신해 보이는 카스테라를 꺼내 봉지 위에 턱 얹더니 체육복 주머니에서 초 한 개와 성냥을 꺼냈다.

    “어디서 났어?”

    “수진이 생일 케이크에서 몇 개 가져왔어. 와, 붙었다!”

    지의는 몇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성냥에 불을 켰고 카스테라 중앙에 꽂았던 초에 불을 붙였다.

    “나도 지유를 떠나보내고 나서 평생 우울하게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지의가 타오르는 촛불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런데 조금 무뎌지니까 머리가 돌아가더라.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지. 지유도 내가 평생 우울 속에서 사는 걸 원치 않을 거라는 걸.”

    “지의야…….”

    “그러니까 내 말은……. 다른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너 자신도 널 조금만 더 사랑했으면 좋겠어.”

    꾹 참았던 세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볼을 타고 내린 눈물이 교복을 적시는 동안 세빈은 말없이 지의와 카스테라를 번갈아 보기만 했다.

    지의는 카스테라 봉지를 양손으로 들어 세빈에게 내밀었다. 달콤한 향기가 코에 훅 끼쳤다.

    “생일 축하해, 세빈아.”

    “…….”

    “자, 얼른 소원 빌고 불어. 촛농 떨어지겠다.”

    세빈의 검은 눈동자에 지의의 웃는 얼굴이 담겼다. 저를 향해 건넨 축하의 말도, 빈약하기 짝이 없는 생일 케이크도, 세빈이 부모를 잃은 그날 이후 전부 다 처음이었다.

    두근, 두근―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격렬하게 뛰던 심장은 어느새 일정한 속도로 몸을 울렸다. 가라앉았던 기분은 이유 모를 설렘으로 바뀌어 몸이 붕 뜬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세빈은 뭐에 홀린 양 가만히 지의를 바라보았다. 촛불의 빛을 담고 있는 갈색 눈동자가 저를 향하고 나서야, 빌고 싶은 소원이 생겨 눈을 천천히 감았다.

    ‘내 모든 생일을 지의와 함께 맞이할 수 있기를.’

    세빈이 눈을 뜨자 숨을 죽인 채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지의가 있었다. 세빈의 괴로움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결국 눈물이 옮아버린 것이다.

    촛불 너머로 일렁이는 지의의 우는 얼굴을 보며 세빈은 생각했다.

    부모의 시신과 함께 태웠던 자신의 생일을 다시 제 손에 쥐어준 지의를, 자신은 평생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지의가 하는 일, 행동, 생각, 그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따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일은 이렇게 행복한 날이구나.’

    “후.”

    세빈이 초를 불자 세상이 순식간에 암흑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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