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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77화 (177/366)
  • 177화

    조슈아의 업을 파괴하자 파편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면이 덕지덕지 붙어 있던 게이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게이트 밖으로 나오니 우릴 기다리고 있던 건 불릿 길드의 치료팀이었다.

    S급 한 명과 A급 셋으로 구성된 상급 치유계 헌터들은 우리가 헬기에 타 본부로 돌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치유 스킬을 걸었다. 스틱스 강 스킬 덕분에 자잘하게 긁힌 상처밖에 없는 내 몸은 치료 10분 만에 말끔하게 원상태로 돌아왔다.

    ‘일주일이나 지났군.’

    우리가 파편을 소멸시키는 데 든 시간은 던전 밖 시간으로 일주일. 일반적인 S급 게이트 클리어 시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엄청나게 시간이 많이 걸린 건 아니라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찔한 순간은 많이 있었지만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니 어느새 불릿 길드 본부의 옥상이 보였다. 조슈아가 벤자민에게 진실을 고백할 때가 머지않은 것이다.

    * * *

    “나까지 있어야 돼?”

    벤자민과 스스로 잘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조슈아는 굳이 나를 콕 집어서 자신의 집무실로 초대했다. 내 물음에 조슈아는 대꾸하지 않고 복도를 성큼 성큼 지나 집무실 문을 열었다.

    “혹시 몰라서 말이야.”

    그는 벤자민이 있을 책장 앞에 선 채 대답하곤 내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내가 죄책감을 못 이기고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질 것 같거든.”

    그는 아무렇지 않게 살벌한 말을 한 후 책장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왼쪽으로 책들을 밀었다.

    드르르륵―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책장이 옆으로 열렸다. 책장 안은 전에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빠!”

    잘 정돈된 방 안에 벤자민이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조슈아의 등장에 아이는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천천히 한 발씩 내디뎌 조슈아를 향해 다가왔다.

    “벤.”

    조슈아는 무릎을 꿇은 채로 아이를 안았다. 벤자민이 조슈아의 목을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봤다면 이 광경이 애틋한 부자의 한때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저 아슬아슬한 평화가 곧 깨질 거라는 걸 알아서인지 내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벤, 오늘 아빠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잠깐 들어줄 수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이요?”

    조슈아가 벤자민을 살짝 떨어트려 놓고 자리에 앉혔다. 벤자민은 빛이 바랜 눈으로 조슈아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고, 조슈아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였다.

    “조쉬 삼촌 기억나?”

    “당연히 기억나죠. 왜요?”

    “사실, 조쉬 삼촌이, 어…….”

    조슈아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극도로 긴장한 건지 그의 숨이 거칠어져 몸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기까지 했다.

    ‘조슈아…….’

    보는 내가 다 안쓰러워서 입이 썼다. 그의 말대로 그는 지금 당장 창문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큼, 상당히 위태로워 보였다.

    “아빠?”

    “어?”

    “조쉬 삼촌이 왜요? 다시 온대요?”

    벤자민의 질문에 조슈아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로 아이의 무릎에 이마를 살짝 기댈 뿐이었다.

    “미안하다, 벤자민.”

    침묵 끝에, 조슈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빠?”

    “미안해, 정말 내가 다 미안해. 내가 숨겼으면 안 됐는데.”

    한 번 터져 나온 감정은 결국 홍수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죄책감은 헐떡이는 숨과 물기를 잔뜩 머금은 음성이 되어 아이의 방을 가득 채웠다.

    “조는 던전에서 죽었어. 사, 삼촌이 스킬을 잘못 쓰는 바람에 같이 휘말렸어.”

    “네?”

    “정말 미안해, 너한텐, 적어도 너한텐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조슈아가 말을 쏟아낼수록 벤자민의 얼굴은 천천히 굳어 갔다. 반가움에 웃고 있던 입술은 서서히 내려갔고 잿빛의 눈동자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고요한 방 안은 조슈아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그럼, 지금까지…….”

    “널 속였어. 내가 조인 척 연기했어. 너한테 조가 죽었다는 걸 말할 수가 없어서.”

    조슈아는 고개를 들곤 벤자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벤자민과 마주하긴 힘든지 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너무 늦게 말했지. 평생 날 원망해도 돼. 네가 만약 내가 죽기를 원한다면, 기꺼이 그럴게.”

    “조슈아.”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도저히 아이한테 할 소리가 아닌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몸을 움찔 떨더니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발언 결과 : 수치]

    어른스럽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조슈아는 바닥에 머리를 한 번 박곤 그 상태로 한참을 있었다.

    “그 정도로 너한테 미안해하고 있어. 날 용서하지 않아도 좋아.”

    “…….”

    “날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것도, 오롯이 네 권리니까.”

    벤자민은 천천히 고개를 내려 조슈아의 붉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보았다. 조슈아의 모습이 아이에게 보일 리가 없는데도 아이는 정확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꾹 다문 아이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사실 알고 있었어요.”

    ‘뭐?’

    하지만 벤자민의 입에선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덜덜 떨리던 조슈아의 몸이 순간 멈췄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벤자민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부터?”

    조슈아가 묻자 아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조쉬 삼촌이 있었으면 좋겠냐고 물어봤을 때부터요.”

    벤자민이 대답하자마자 조슈아가 갑자기 상체를 일으켰다. 생각보다 벤자민이 진실을 빨리 알아챈 모양이었다.

    “아빠는 그런 질문을 한 번도 안 했거든요.”

    “…왜?”

    “너무 당연한 질문이었으니까요.”

    아이는 또박또박 말하며 조슈아 쪽으로 몸을 당겨 앉았다.

    “아빠는 조쉬 삼촌을 많이 좋아했어요. 저도 삼촌을 좋아해요.”

    “…….”

    “그래서 기다렸어요. 조쉬 삼촌이 저한테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걸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벤자민의 목소리가 강하게 떨렸다.

    “많이 슬퍼요. 아빠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서 너무 슬퍼요.”

    “미안해. 내가 미안해…….”

    “그래도 조쉬 삼촌이 있어줘서 외롭지 않았어요.”

    툭―

    벤자민이 조슈아의 품에 파고들었다. 조슈아는 아이를 안을 생각도 하지 못한 듯 그대로 얼어붙었다.

    스윽―

    벤자민의 작은 팔이 조슈아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삼촌이 아빠 연기를 할 때마다 진짜로 아빠가 돌아온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도 아빠한테 말하는 것처럼 굴었어요.”

    “…….”

    “우리는 서로를 속인 거네요.”

    벤자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슈아가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방 안에는 두 사람의 우는 소리가 하염없이 울렸다. 그 울음엔 수많은 감정들이 섞여 있었다. 슬픔, 죄책감.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강렬한 그리움 같은 것 말이다.

    ‘지유야.’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지유의 얼굴을 떠올렸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죽는 것보다 더 괴롭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눈물이 내겐 너무나 무거웠다. 저들이 흘린 눈물은 내가 수도 없이 흘린, 어쩌면 지금도 흘리고 있을 눈물과 비슷할 테니까.

    파아앗―

    그때 갑자기 조슈아의 주변으로 붉은 빛 무리가 날아들었다. 조슈아가 눈을 크게 뜨며 몸을 흠칫 떨자 붉은 빛은 그의 손을 파고들었다.

    “어……?”

    조슈아가 상태창을 보는 것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설마……!’

    나는 구원자의 눈동자로 조슈아의 사명을 빠르게 훑었다.

    [진실을 고백하는 자 (달성 완료) : 진실을 마주한 자의 눈동자 획득.]

    [*진실을 마주한 자의 눈동자 : 진실된 것만 볼 수 있는 눈동자. 타인에게 귀속 가능.]

    사명이 달성되자 베일에 싸였던 보상이 나타났다. 타인에게 귀속 가능한 눈동자, 지금의 조슈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조슈아는 손을 조심스럽게 폈다. 붉게 빛나는 구슬 두 개가 그의 손 안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벤자민.”

    “네?”

    “만약 눈이 보이게 된다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어?”

    벤자민이 코를 훌쩍거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강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요.”

    조슈아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키이잉―

    그가 구슬을 부술 듯이 꽉 쥐자 붉은 빛이 손 틈새로 빠져나와 벤자민을 감쌌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회색빛의 눈동자가 옅은 갈색을 띠기 시작했다.

    “어, 어……!”

    벤자민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주위를 살피며 이리저리 방황하던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조슈아의 얼굴이었다. 아이의 입꼬리가 포물선을 그렸다.

    “삼촌 머리색은 무슨 색이라고 불러요?”

    벤자민이 조슈아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배시시 웃었다. 아이의 웃음에 조슈아도 같이 웃음이 터졌다.

    그는 벤자민을 꼭 끌어안은 채로 눈을 감았다. 아이의 등 뒤로 그의 눈물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 * *

    위잉―

    “아, 이제 왔네. 둘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했어?”

    조슈아의 집무실과 이어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하미준 헌터가 내게 다가왔다. 로비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뭐, 이런저런 얘기 좀 했죠.”

    “어머, 신지의 헌터 웃어? 이거 원, 질투 나는걸.”

    아까 봤던 조슈아와 벤자민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샜나 보다.

    나는 하미준 헌터의 팔을 툭 치고 건물 출구 쪽으로 발을 돌렸다.

    조슈아의 사명 달성 보상으로 받은 눈동자는 벤자민에게 완전히 귀속되었다. 아이는 처음 보는 세상에 눈을 빛내며 사무실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만져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사이에 조슈아에게 그동안 미국에서 소멸한 모든 던전을 조사해 달라고 했다.

    ‘지옥도는 소멸한 게이트들을 이어 붙인 것이니까.’

    불릿 길드가 미국 최고의 전투 중심 길드인 만큼 던전 공략에 대한 수천 가지 데이터가 쌓여 있다고 했다. 그중 소멸한 던전들의 공략법만 추려내서 지옥도에 대비한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상황도 정리됐겠다. 이제 나한테도 전부 얘기해 줄 거야?”

    불릿 길드 건물 밖으로 나오자 하미준 헌터가 입을 열었다.

    ‘조슈아도 진실을 말했으니, 이제 내 차례구나.’

    나는 몸을 돌려 하미준 헌터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도 믿겠다는 그의 말이 사실인지, 나를 보는 그의 눈에서 강한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미준 헌터, 최민 헌터, 한진우 헌터와 차도윤 헌터까지. 나의 동료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나도 그들을 믿고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을…….

    쿵―

    ‘어?’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머릿속으로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얼굴만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게 누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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