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76화 (176/366)

176화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의 ‘연기는 그만두고, 진실을 고백해’의 씨앗 개화]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는 각성자 ‘신지의’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고유 스킬 ‘호령여산(號令如山)’의 파괴력 증가]

누가 내 사지를 짓이기는 것처럼 온몸이 아팠다. 하지만 눈앞에 뜬 상태창과 용암을 뒤집어 쓴 채 비명을 지르는 연기자의 모습을 보니 묘한 안도감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쾅!

‘언니!!’

“헉……!”

그때 녹두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귀에 꽂혔다.

새하얀 털이 시야에 들어옴과 동시에 내 주위로 반구체의 배리어가 관처럼 덮였다.

‘스틱스 강.’

[재사용 대기 시간 : 5분]

아직 24시간이 지나지 않았나 보다. 하는 수 없이 정신을 최대한 또렷하게 유지한 채로 녹두의 배리어와 아이테르의 로브가 상처를 치유해 주길 기다렸다.

숨을 몰아쉬며 배리어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배리어 밖엔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조슈아가 손을 뻗어 용암으로 연기자를 제압하고 있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괜찮아, 언니. 다른 사람들도 살아 있어.’

내가 묻기도 전에 녹두가 대답했다. 덕분에 고개를 돌려 그들을 살피는 수고는 줄었지만 그들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다.

‘녹두야, 배리어 사이즈 좀 키워줄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도 여기로 데려오려고?’

‘응. 부탁할게.’

부탁이라는 단어에 녹두는 오히려 신이 난 기색이었다.

아우우우―

녀석이 고개를 높이 쳐들고 울음소리를 길게 빼자 배리어의 크기가 한층 더 커졌다. 덕분에 하미준 헌터와 에이든 헌터도 그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으윽…….”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아 조심스럽게 팔에 힘을 줘 상체를 일으켰다. 몸을 내려다보니 검붉은 핏자국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생명의 은인 효과 없었으면 즉사였겠어.’

다시 고개를 들어 주변 사람들을 살폈다. 배리어 덕에 외상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쾅!!

그때 누군가 배리어에 강하게 부딪혔다.

“조슈아!”

연기자와 전투를 하던 조슈아였다. 그의 몸이 배리어를 따라 힘없이 밑으로 떨어지자 시뻘건 피가 배리어를 물들였다.

“녹두야!”

‘알겠어!’

쾅!

녹두가 배리어를 넓혀 조슈아를 안으로 들이기 무섭게 새하얀 소리 작살이 방금까지 그가 있던 곳에 꽂혔다. 다행히 작살은 배리어에 가느다란 금을 만들 뿐 완전히 깨트리진 못했다.

“조슈아! 괜찮아?”

절뚝거리며 그에게 다가가자 반쯤 감긴 푸른 눈과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며 픽 웃더니 이내 스르륵 눈을 감았다.

짝―

“아!”

“아, 미안. 순간 나도 모르게…….”

그대로 평생 눈을 안 뜰 것 같아서 무심코 뺨을 살짝 치자 조슈아의 인상이 단번에 구겼다. 더 험한 말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말의 씨앗이 개화한 탓일까 그는 그저 입술만 비죽거릴 뿐이었다.

“…벤자민에게 진실을 말하려고 마음먹었나 보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녀석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발언 결과 : 수긍]

“어.”

조슈아에게 어떤 심리적 변화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자기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한 사실이다. ‘진실을 고백하는 자’라는 자신의 사명에 맞게 말이다.

“물론 LA 출신의 잘난 길드장인 척은 계속 해야겠지. 적어도 미국 길드 사회 내에서 내 입지가 더욱 확실해질 때까지는.”

조슈아가 다짐하듯 차분하게 말을 쏟아냈다.

“실망했어? 내가 바로 연기를 관두지 않아서?”

“말했잖아. 네 행동은 저기 있는 연기자 놈의 연기랑은 다르다고.”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신뢰]

“…고마워.”

조슈아한테 그런 말을 들을 줄 몰라서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쩌적!

집요하게 배리어를 공격하던 연기자가 기어코 그것에 구멍을 냈다. 녀석은 간신히 만든 그 구멍을 향해 자아를 겨누었다.

[표리부동한 연기자가 자신의 마지막 연기를 준비합니다.]

[체력 : 9.175]

상태창을 보자마자 아이테르의 로브를 꽉 쥔 채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스틱스 강.”

똑―

치유의 물방울이 온몸에 퍼진 덕분에 피투성이의 몸과 이리저리 꺾이고 부러진 뼈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조슈아를 그대로 바닥에 눕힌 채 자리에서 일어난 뒤, 나는 바로 배리어 너머의 연기자와 정면으로 대치하게 됐다.

“아~ 대충 녹두가 소환수 같은 걸 말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이었네.”

“되도 않는 연기, 잘 봤어.”

“그 되도 않는 연기에 다들 속았잖아?”

내 얼굴을 하고 있는 연기자는 가소롭다는 듯 눈을 접어 웃다 이내 표정을 굳혔다.

“같은 배우가 두 명이나 있을 필요는 없어.”

콰과광!!

녀석이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나도 동시에 탄환을 뽑아 녀석의 것을 쳐냈다.

“녹두야 배리어 잘 지켜줘!”

‘알았어!’

나는 낮말을 듣는 새로 뛰어 올라 배리어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우웅―

“윽……!”

연기자가 자아를 길게 당겨 내 움직임을 잠깐 마비시켰다. 그러곤 곧바로 작살을 뽑아 내 가슴을 노렸다.

끼기긱!

간발의 차로 그것을 배트로 쳐낸 나는 자아를 다시 확성기로 바꾸어 녀석을 향해 장전했다

탕, 탕, 탕!

탄환을 쏘자마자 바닥 쪽으로 빠르게 하강했다. 거리를 좁힐수록 여유를 잃어가는 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쾅!!

“아아악!!”

탄환을 피하느라 녀석의 중심이 살짝 흔들린 틈을 타 배트로 팔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귀에 파고들었고, 동시에 녀석의 팔이 안쪽으로 꺾였다.

철컥―

하나, 방심할 틈은 없었다. 연기자가 든 확성기의 끝이 내 심장에 향한 것이 느껴졌다.

등골이 서늘해진 그 순간.

퍼버버벙!!

피부 위로 쏟아지는 열기와 함께 부글거리는 용암이 녀석의 몸을 집어삼켰다.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소리를 지르는 법조차 잊어버렸습니다.]

[현재 체력 : 5,126]

“조슈아!”

배리어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조슈아가 보였다. 그는 얼마 안 있어 손목을 돌려 엄지의 끝이 바닥을 향하게 바꾸었다.

끝을 내라는 뜻이었다.

철컥―

온몸을 불태우는 파괴적인 공격으로 인해 연기자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자아를 겨누었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탕!!

새하얀 탄환이 용암을 파고들어 녀석의 가슴에 정확히 박혔다. 이후 조슈아가 스킬을 거뒀는지 부글거리는 용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 하하…….”

반쯤 녹아내린 내 모습과 마주했다. 녀석의 손에 들린 자아는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자신의 연기 인생을 되돌아봅니다.]

[“제법 나쁘지 않은 삶이었지.”]

[연기자의 은퇴에 모든 관객들이 일어나 박수를 칩니다.]

[현재 체력 : 0]

우릴 벼랑 끝까지 내몰았던 연기자의 최후였다.

“하아, 하아…….”

짝짝짝짝―

나의 거친 숨소리는 관객들의 박수 소리에 묻혔다. 그 소리가 꼭 파도 소리처럼 들릴 때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풍경들 위로 새빨간 커튼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신지의 헌터!”

“아, 다들 괜찮아요?”

배리어 안에 있던 하미준 헌터가 배를 부여잡은 채로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대로 몸을 돌려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부상을 입은 헌터들 주위로 새하얀 빛이 날아왔다.

“하아,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네.”

“하미준 헌터는 괜찮아요?”

그의 몸도 엉망진창이었다. 배리어 효과 덕에 피는 멎었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상처들이 팔과 다리에 한가득이었다.

“이걸로 끝이겠지?”

“네. 끝일 거예요.”

“하하… 나 원 참.”

하미준 헌터가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동안 내가 공략했던 던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네.”

“…이게 끝이 아닐 거예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하미준’이 동요한다.]

그는 나를 흘긋 본 후 갑자기 손을 뻗었다.

툭―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발언 결과 : 신뢰]

“그래도 지금처럼 이겨낼 거잖아, 그치?”

“하미준 헌터…….”

“봐. 여기서도 신지의 헌터는 누군가를 동료로 만들었어.”

‘동료…….’

고개를 돌려 조슈아를 바라보았다. 그는 쓰러져 있는 에이든 헌터를 자신의 스킬로 치료하고 있었다.

“모두 신지의 헌터를 믿기 때문에 동료가 된 거야. 그러니까 신지의 헌터도 우리를 좀 더 믿고 의지해 줬으면 해.”

치지직―

하미준 헌터의 다정한 말이 내 가슴 속에 차곡히 내려앉을 무렵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거짓된 시간선이 영원히 소멸합니다.]

드디어 이 끔찍한 파편에서 나올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의 모습이 차츰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녹두야, 정말 고마워.”

‘언제든지 말만 해.’

녹두가 내 팔찌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를 보호하던 배리어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파아앗―

눈앞의 하미준 헌터까지 파편에서 나가자 이 파편에 남은 건 나와 조슈아뿐이었다.

“이제 이건 쓸모가 없어지겠네요.”

그는 가슴 속에서 창조자의 파편을 꺼냈다. 검푸른 돌덩이는 불길한 검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부숴도 되죠?”

“응.”

콰그작!

조슈아가 그것을 꽉 쥐자 붉은 용암과 함께 창조자의 파편이 바닥을 향해 우수수 떨어졌다.

[연기자의 파편이 파괴되었습니다.]

미식가, 소설가 그리고 연기자까지. 이로써 세 개의 창조자의 파편이 소멸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지.’

“조슈아.”

“왜 그러시…….”

철컥―

그를 향해 자아를 겨눴다.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해치려는 거 아니야. 네 업을 없애려 하는 거지.”

“아이 씨, 연기자 놈인 줄 알았네.”

조슈아는 다시 정제되지 않은 문장과 낯선 억양으로 내 말에 대꾸했다. 그는 머쓱한지 자아와 나를 번갈아 보다 아예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럼 이제 나도 창조자 놈한테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가?”

“응.”

“그럼 얼른 끝내. 아프진 않…….”

“그 전에 너한테 해야 할 말이 있어.”

조슈아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너를 죽인 적이 있어.”

“뭐?”

“이 세상의 종말을 본 적도 있고.”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예상한 반응이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말을 천천히 곱씹는 듯했다. 그러다 저 스스로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그의 미간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창조자 놈이 널 보면서 여러 세상을 산 것 같다고 했는데, 설마…….”

“여러 세상을 살았다고 하기보단, 여러 번 살았지. 전부 실패했으니까 지금 너랑 내가 만난 것이고.”

[발언 결과 : 충격]

입까지 벌리며 놀란 그를 향해 다시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이번엔 내 지난날의 과오를 바로잡으려 해. 그 누구도 죽이지 않을 것이고, 죽게 두지도 않을 거야.”

“…….”

“나와 함께 싸워줘, 조슈아.”

조슈아는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얼마 안 있어 그가 픽 웃었다. 그러곤 자아의 몸체를 잡아 제 머리 쪽으로 끌어당겼다.

“너는 조 다음으로 웃긴 놈이야, 알아?”

그의 눈이 나를 향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너랑 어깨 맞대고 싸우는 상상을 하게 만들잖아.”

“고마워.”

“…빨리 업이나 없애줘. 벤자민 만나러 가야 하니까.”

그를 향해 한 번 웃곤 숨을 한번 크게 들이켰다.

‘카르마의 탄환.’

[카르마의 탄환]

[각성자에게 씌워진 업을 파괴할 수 있다]

[파괴 시 업으로 인한 모든 효과가 사라진다]

[*말의 씨앗이 개화한 상대에게만 사용 가능]

[파괴할 수 있는 업이 감지되었습니다]

[‘카르마 : 표리부동한 연기자’]

[절대자 ‘창조자’가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에게 씌운 표리부동한 연기자의 업. 단, 연기에 의존할수록 억눌린 본성이 빠르게 폭주한다.]

탕―

방아쇠를 당기자 조슈아의 몸 안으로 하얀 탄환이 빨려 들어갔다.

[카르마 : 표리부동한 연기자가 파괴되었습니다]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절대자 ‘창조자’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마침내, 그가 짊어졌던 업이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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