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
[불 속성 개방]
[고유 스킬 ‘분노의 용암(Magma Fury)’ 개방]
[S급 공격계 스킬 ‘분노의 용암(Magma Fury)’]
[‘분노의 용암(Magma Fury)’ : 정해진 공간에 용암을 생성한다.]
[연계 패시브 스킬 ‘화염 돌격(Flare Rush)’ 개방]
[‘화염 돌격(Flare Rush)’ : 활성화 시 움직임을 따라 불길이 솟는다.]
각성이었다. 그저 그런 스킬이 아닌 공격계 S급 스킬의 각성. 갑작스레 나타난 푸른 글자들을 보자마자 몬스터에 대한 공포도 죽음에 대한 불안도 전부 연기처럼 사라졌다.
쾅!!
시험 삼아 곡괭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용암을 들이붓는 감각으로 손목을 살짝 틀자 그것의 위로 시뻘건 용암이 쏟아졌다. 위협적이었던 곡괭이는 내 공격 한 번에 바닥에 처박혀 버둥거릴 뿐이었다.
쾅! 쾅! 쾅!
살 수 있다는 안도감과 과한 자신감이 나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용암으로 폭포도 만들어 보고, 화산처럼 폭발도 시켜보았다. 열기에 땀이 줄줄 흘렀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내 뜻대로 움직이는 이 파괴적인 용암으로 곡괭이를 완전히 제압하는 데 몰두할 뿐이었다.
탱그랑―
결국 ‘채광용 곡괭이’는 부산물을 남기고 완전히 소멸했다. 부글부글 끓던 용암도 서서히 식어 바닥에 검게 눌어붙었다.
“하하, 하하하…….”
지켜냈다. 나의 따분하고 평화로운 일상. 그리고 벤자민의 행복을 지켜냈다.
아직도 전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온몸이 오싹하고 저릿했지만 그마저 엄청난 쾌감으로 다가왔다.
“푸흐, 흐흡……. 어이, 조! 괜찮아?”
겨우 웃음을 참고 조가 쓰러져 있던 방향을 향해 소리쳤다. 무언가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긴 한데 멀어서 제대로 들리진 않았다.
타닥―
조가 있는 쪽으로 발을 옮겼다. 내가 S급으로 각성했다는 걸 알면 녀석은 어떤 얼굴을 할까. S급 헌터는 내로라하는 길드에서 왕처럼 모셔간다고 하던데. 그럼 돈방석에 앉는 것도 시간문제다.
부자가 되면 일단 LA에 저택을 하나 살 것이다. 벤자민이 뛰어놀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정도로 큰 마당이 딸린 것으로. 그런 다음엔 조에겐 근처 레스토랑을 하나 선물하는 게 좋겠다. 먹고 살기 위해 길드에서 일하고 있지만, 걘 여전히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싶어 하니까.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심장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야! 무슨 소리라도 좀…….”
한데. 분명 조가 있었던 곳으로 왔음에도 그곳엔 조가 없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거라곤 새까맣게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녹아내린, 젊은 남자의 시체뿐이었다.
* * *
“이봐, 진짜 그 값에 팔 거야?”
“…….”
“뭐, 나야 고맙지. 자, 여기.”
돈이 든 봉투를 들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조의 시체 앞에서 얼마나 소리를 지른 건지, 더 이상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바스락―
봉투 안에는 얼핏 보아도 30만 달러는 훌쩍 넘을 만한 수표 다발이 들어 있었다. 난 그걸 인벤토리라 부르는 이상한 창고에 넣어두고 정처 없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항상 종착지는 조의 집이었다.
나는 이제 눈을 감고도 네 집을 찾아올 수 있게 됐는데. 정작 그 집에 너는 없다. 당연히 네가 올 일도 없다.
똑똑똑―
그레이스 부부의 집을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레이스 부인의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머, 자네 머리가…….”
그는 붉게 물든 내 머리카락을 보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이내 밝게 웃으며 내 어깨를 쓸어내렸다.
“평소보다 오래 걸려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조쉬.”
“…….”
“응? 그나저나 조슈아는 어딜 갔어? 장이라도 보러 갔나?”
나는 그레이스 씨의 말을 무시하고 거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거실에 가니 벤자민이 소파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녀석을 안아들었다.
“아빠……?”
“조슈아는?”
벤자민의 웅얼거림과 그레이스 씨의 목소리가 동시에 귀에 꽂혔다. 그레이스 씨를 내려다보자 다정한 갈색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제 살길 찾아 갔습니다.”
“자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동안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봐, 조슈아!”
그렇게 도망치듯 그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무작정 남쪽으로 향했다. 조금만 더 고민해 보면 더 좋은 선택지를 떠올릴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뭐에 홀린 사람 마냥 텍사스로 향했다.
그곳이 벤자민이 태어난 곳이니까.
* * *
“아빠, 조쉬 삼촌은 어디로 간 거야?”
모텔 옆에 있던 식당에서 얌전히 밥을 먹던 벤자민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그, 글쎄에. 아빠도 잘 모르겠네.”
나는 최대한 조의 어투를 흉내 내며 대답했다. 하지만 벤자민은 그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볶은 콩을 숟가락으로 열심히 퍼먹었다.
“벤은 조쉬 삼촌이 있었으면 좋겠어?”
“응.”
쿵―
벤자민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가슴이 순간 내려앉았다.
“왜냐면 아빠가 웃잖아.”
“…아빠가?”
“응. 조쉬 삼촌이랑 있을 때 아빠 엄청 웃어.”
녀석은 또박또박 말하곤 포크를 내려놓았다. 이 씩씩한 꼬맹이는 편식도 하지 않고 키즈 햄버거를 다 해치웠다.
딸랑―
계산을 하고 나와 우린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벤자민이 소리 나는 그림책을 읽고 있을 때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 물을 크게 틀었다.
“흑, 읍…….”
팔로 입을 꾹 틀어막은 채 한참을 울었다. 어떻게든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숨까지 참으니 머리가 핑 돌았다. 결국 나는 욕실에 주저앉았다.
나는 벤자민에게 평생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했다. 그의 아빠를 죽인 것도 모자라서, 그의 연기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벤자민이 크면 언젠가 들통날 텐데. 그땐 어쩌면 좋지?’
치지직―
눈물 때문에 부옇게 흐려진 시야의 한가운데, 낯선 문장이 떴다.
<사명 해금>
[진실을 고백하는 자]
[진실을 고백하라. 잠깐의 고통은 너희들을 더욱 단단하게 할 테니.]
[보상 : ???]
“사명……?”
성경에서나 볼 법한 문장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 내 눈앞에 뜬 문장은 뭔지 모를 보상이 걸려 있다는 것.
‘진실을 고백하라니, 설마 벤자민에게 전부 말하라는 건가……?’
이 정체불명의 사명은 진실을 말하길 두려워하는 나를 훤히 꿰뚫어 보는 듯했다.
언젠가 벤자민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 때가, 아니 벤자민이 진실을 알게 될 때가 올 것이다.
“흐읍…….”
무섭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두렵다. 벤자민이 내게 쏟아낼 원망이 죽는 것보다 무섭게 느껴졌다.
“아아아~ 울고 있네엥?”
“허억……!”
갑자기 어린아이의 음성이 귀에 꽂혔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텔의 낡은 욕실 대신 광활한 바닷가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보라빛 도마뱀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도마뱀의 눈동자가 가로로 길게 찢어졌다.
“있잖아아앙, 나랑 거래하지 않을래?”
그것의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리라고.
* * *
“나나 얘나 겉과 속 다른 더러운 위선자잖아. 이 세상에 있어 봤자 도움이 되겠어?”
목이 졸린 와중에도 위선자라는 단어는 정확히 귀에 꽂혔다.
그것만큼 나를 잘 표현하는 단어가 없어서일까. 내 앞의 SS급은 당장이라도 이 몬스터를 찢어죽일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이미 부상을 입은 상태라 전투를 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나는 이미 내 최고의 연기를 마쳤거든. 남은 연기 인생에 큰 미련이 없어.”
빠드득―
잠깐 느슨해졌던 끈이 다시 거세게 목을 조여 왔다.
“그런데 이 녀석이 살아 움직이면서 연기하는 꼴은 내가 도저히 못 보겠어서 말이야.”
녀석은 너무나도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어때? 괜찮은 조건이지?”
‘그래, 이게 옳은 결말이다.’
거짓말쟁이의 말로는 모두 이런 법이다. 아끼는 양들을 모두 잃은 양치기 소년, 제우스를 속인 프로메테우스, 벤자민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나.
어설픈 내 연기는 결국 그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결말을 만들었다.
내 처지가 우스워 눈동자를 굴려 SS급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왜지?’
분명 아까까지 괴로워 보였던 그가, 지금은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동색 눈이 불꽃이 담긴 양 조용히, 그리고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날 구하려고 마음먹은 것처럼 말이다.
탕!!
“윽?!”
그때였다. 갑작스러운 파열음이 귀에 파고들더니 내 몸이 앞쪽으로 고꾸라졌다.
‘SS급……?!’
그는 내 팔을 잡아 자신의 뒤로 던진 후 거대한 실드와 함께 연기자의 앞에 섰다.
“그래, 이 인간이… 윽! 겉과 속은 다르지.”
“…당장 그 실드 안 치워?”
“하지만 너랑은 달라.”
실드에 박힌 총알들이 보였다. 실드는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하나, 그럼에도 SS급은 피하지 않고 내 앞에 섰다.
“신지의 헌터는 누군가를 구할 때 절대로 망설이지 않아.”
하미준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 말을 들었을 땐 완전히 믿지 않았는데 지금 SS급의 등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등이 조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쩌적―
SS급이 두른 실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슈아한텐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려 하는 마음이 있어.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할 수 없는 마음이.”
“…….”
“자아 없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흉내 내려 했던 네 더러운 연기하고는 다르다고!”
쨍그랑!
결국 실드가 깨지고 SS급의 몸에 모든 탄환이 꽂혔다.
녀석의 몸이 피범벅이 된 채 천천히 뒤로 넘어가는 장면이 아주 천천히 재생되고 있었다.
‘내가 왜 연기를 했었지?’
사람들을 속여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내가 원하는 게 뭐였지?’
돈, 명예, 인기. 그리고 힘.
아니, 그것보다 더 간절히 원하던 것이 있었다.
‘벤자민의 행복.’
쿵―
SS급이 완전히 쓰러졌다. 흐릿해진 그의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자, 그가 했던 말이 다시금 뇌리를 스쳤다.
“연기는 그만두고, 진실을 고백해.”
바스락―
“…뭐야?”
내가 몸을 일으키자 연기자 놈의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조. 네 아들한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줘서.’
벤자민에게 진실을 말했어야 했다. 진실을 들은 벤자민이 나를 미워할 건지, 그럼에도 내 곁에 남아줄 것인지 녀석이 선택할 수 있게끔 해야 했다.
퍼버버벙!!
“아아악!!”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몹시 당황합니다.]
[현재 체력 : 10,052]
이젠 정말, SS급의 말대로 연기를 그만두고, 진실을 고백할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