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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73화 (173/366)
  • 173화

    “저쪽이에요!”

    연기자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녀석은 오른쪽 눈까지 감은 채 소리쳤고 그 말에 여섯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향했다.

    순간적으로 온몸이 굳었다. 해명해 봐야 독이라는 걸 아는데, 자꾸 입 밖으로 ‘저 아니에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탕!

    “큿!”

    그때 새하얀 탄환이 내 볼 바로 옆을 스쳤다. 뜨거운 액체가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잠깐! 제 얘기를 좀……!”

    투쾅!

    이번엔 내가 서있던 곳에서 커다란 돌덩이가 튀어나왔다.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지자마자 곧바로 열기가 훅 끼쳤다.

    “잠깐, 다들 멈춰 봐!”

    하미준 헌터의 목소리와 함께 뜨거운 기운이 사라졌다.

    후두둑―

    나를 덮치기 직전이었던 용암의 흔적이 내 머리 바로 옆에 떨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시뻘건 액체가 바닥에 눌어붙어 새카맣게 변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이 상황을 막은 하미준 헌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항상 웃음을 띠고 있던 그의 눈이 한껏 매서워져 있었다.

    “신지의 헌터가 연기자를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연기자도 신지의 헌터 연기를 하는 거겠지.”

    “그럼 지금은 저 신지의 헌터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겠네요.”

    손가락으로 연기자를 가리킨 조슈아의 말에 하미준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반박할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 달리 연기자도 차분하게 그 대화를 듣기만 했다.

    “제, 제가 너무 섣불리 공격했네요.”

    “에이든 헌터 잘못 아니에요. 제가 너무 빨리 지시를 내린 탓이니까요.”

    녀석의 연기가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그는 에이든 헌터를 짧게 위로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하미준 헌터, 아까 가짜는 무기를 바꾸지 못한다고 말했었죠?”

    “그렇긴 했… 뭐야, 그걸 신지의 헌터가 어떻게 알아?”

    하미준 헌터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시간이 없어서 말 못했네요.”

    “그걸 네가 어떻게……!”

    “저, 관객석에서 전부 보고 있었거든요.”

    녀석은 거짓말로 나의 말을 끊었다. 연기자의 말에 모두가 크게 뜬 눈으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철컥―

    녀석은 자아를 단검으로 바꾸는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까 내가 연기자를 찔렀던 바로 그 단검이었다.

    ‘언제 저것까지 따라할 수 있게 된 거지?’

    순간적으로 피가 식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도 자아를 작살총으로 바꾸었다. 우리를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무기를 바꾸는 것까지 따라할 수 있는 이 상황에서 오직 나만 증명할 수 있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호흡을 한 번 가다듬은 후 입술을 뗐다.

    “녹두는 지금 어디 있…….”

    탕!!

    파열음과 동시에 어깨에서 강렬한 통증이 퍼져나갔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 어깨를 보자 아이테르의 로브 밖으로 검붉은 액체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으윽!”

    “…더러운 연기자 새끼.”

    어깨를 부여잡으며 연기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온몸을 떨며 경멸을 한가득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팅!

    녀석이 또다시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난 실드를 뽑아 그것을 겨우 막았다. 하지만 실드도 금방 산산조각 나 반짝거리는 빛무리와 함께 흩어졌다.

    “신지의 헌터, 녹두가 어떻게 됐는데?”

    그때 하미준 헌터가 연기자를 향해 물었다. 그에 녀석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 이내 두 눈에서 눈물을 떨어트렸다.

    “사라졌어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무런 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이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채 눈물을 쏟아내는 걸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첫 번째 TRUTH or DARE에서 실패하고 몬스터 등장했었죠.”

    “…설마.”

    “그게, 제가 있는 곳에서도, 소환됐어요.”

    울음 때문에 뚝뚝 끊기는 녀석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까지 연기 패턴으로 봤을 때 연기자는 자신이 본 것만 연기할 수 있었다. TRUTH or DARE 때 흉내 내지 못했던 내 무기를 지금에서야 만들 수 있는 것도 그렇고.

    ‘그런데, 녹두에 대한 건 어떻게 아는 거지?’

    녀석은 녹두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놈이다. 그것이 사람인지 몬스터인지 알 길이 없단 뜻이다.

    그러나 연기자는 녹두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나와 하미준 헌터의 짧은 대화 하나로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파악하고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 냈다.

    생각의 끝에 녀석의 지능이 인간 이상의 수준으로 상승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혼자서 도저히 상대하기 어려워서 같이 싸웠는데, 녹두가 저를 지키다…….”

    “거짓말이에요.”

    결국 가장 하고 싶던 말이 입 밖으로 샜다. 변명처럼 들릴지라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저 연기에 속고 있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

    “전부 다 거짓말이라고요. 녹두는 멀쩡히…….”

    퍼버벙!!

    이번엔 훨씬 묵직한 것이 날아왔다. 낮말을 듣는 새로 빠르게 뛰어올라 피하긴 했지만, 녀석이 뽑아낸 탄환 자체가 큰 탓에 발목이 강하게 쓸렸다.

    나는 화끈거리는 통증을 무시한 채 바로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절대로 가만 안 둘 거야…….”

    연기자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양손으로 바주카를 들고 있었다. 난 재빨리 눈을 돌려 다른 헌터들의 표정을 살폈다.

    에이든은 완전히 연기자 쪽으로 몸을 튼 상태였다. 아무래도 녀석의 눈물 연기가 제대로 통한 모양이었다.

    ‘조슈아랑 하미준 헌터는 혼란스러워 보이네.’

    반면 나와 대화를 조금이라도 나눠 본 두 사람은 연기자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않았다.

    이 두 사람만 잘 공략한다면, 녀석이 가짜라는 걸 증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탕, 탕, 탕―

    그때 연기자의 자아에서 새하얀 탄환이 뽑혔다. 나를 향해 날아오는 그것들을 빠르게 피하며 실드로 머리를 보호했다.

    ‘다른 사람들한텐 좀 미안하지만……!’

    우우웅―

    방아쇠를 길게 당겨 소리 파도로 무대를 집어 삼키게 했다. 모두의 움직임이 잠시 멎은 틈을 타 바주카를 들어 녀석을 향해 쐈다.

    퍼엉!!

    하지만 녀석도 동시에 쏜 터라 소리 포탄들은 서로 맞부딪혀 동시에 터졌다.

    “큿……!”

    폭발의 반동 때문에 중심을 잃고 몸이 한참 뒤로 날아갔다.

    콰직―

    곧바로 무언가 내 발목을 휘감더니 땅으로 끌어당겼다.

    “…으극!”

    몸이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혀를 씹었는지 비릿한 피 냄새가 입에서 진동했다.

    퍼버버벙!

    ‘어라?’

    그때 소리 포탄이 허공을 갈랐다. 아마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었다면 내 몸은 저걸 맞고 터졌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미준 헌터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 시선을 무시한 채 나무줄기를 거두고 있었다.

    탕!

    연기자가 잠시 다른 곳을 보는 틈을 타, 이번엔 내가 녀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치이이익―

    그러자 시뻘건 용암이 탄환을 녹이고 연기자를 보호했다. 나를 향한 반격은 없었다.

    하미준 헌터와 조슈아. 이 두 사람의 행동에 나는 눈치챘다.

    ‘연기자와 나. 그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거야.’

    누가 진짜인지 모르는 상황이니 전투를 통해 단서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쿠구궁―

    “컥……!”

    문제는 에이든 헌터가 연기자를 완전히 믿었다는 점이지만.

    진입 금지가 내 배를 쳐 올린 바람에 잠깐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연기자는 가장 후방으로 빠진 채 공격의 타이밍만 보고 있었다.

    콰그작!

    “신지의 헌터!”

    그런 녀석의 가슴을 향해 작살을 쏘았다. 정확히 녀석의 쇄골 밑에 박힌 걸 확인한 후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티잉!

    조슈아가 광대의 칼을 던져 작살 끝에 연결된 끈을 끊어보려 했지만 작은 흠집만 낼 뿐 완전히 잘라내진 못했다.

    녀석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좁혀졌을 때, 나는 자아를 원 상태로 돌려놓으며 빠르게 녀석의 앞에 착지했다.

    탕, 탕―

    첫 발은 머리, 그리고 두 번째는 가슴이었다. 녀석은 오른쪽으로 한 번, 실드로 한 번 공격을 막은 후 뒤로 굴러 자세를 바로 했다.

    ‘이 녀석이 지금 나를 연기하는 거라면, 다음에 내가 할 행동은…….’

    탕!!

    녀석이 곧바로 자아를 내 머리에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그와 동시에 자아의 손잡이로 녀석의 손목을 올려쳤다. 연기자가 들고 있던 가짜 자아는 멀리 날아갔고 녀석이 쏜 탄환은 내 이마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허공에서 흩어졌다.

    탁―

    자신의 행동이 읽힌 연기자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런 녀석을 가만두고 볼 순 없었다. 나는 녀석의 손목을 잡아당겨 내 쪽으로 끌었다. 그리고 곧장 옆구리에 자아를 그대로 붙여 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후웅―

    “윽!”

    그때, 하미준 헌터가 우악스럽게 내 옷깃을 잡아당겨 그대로 멀리 던졌다. 나무줄기로 내 몸을 뚫거나 도끼로 나를 찍는 대신 짐짝처럼 던지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의 공격에 나는 서운하긴커녕 오히려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나보다 연기자를 조금 더 의심하고 있어.’

    내가 녀석을 향해 공격을 쏟아낼 땐 크게 나서지 않다가 녀석이 완전히 코너에 몰린 지금이 돼서야 소극적으로 공격하고 있으니 말이다.

    약간의 희망을 품으며 몸을 빠르게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연기자를 향해 자아를 들었다.

    콰득―

    “어……?”

    하지만 내가 바닥을 구른 고작 몇 초 사이에 상황은 절망적인 방향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에이든 헌터의 진입 금지는 산산조각 난 채 스킬 주인과 함께 쓰러져 있었다. 그의 머리는 시뻘건 피 웅덩이에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으로 배를 움켜쥔 채 몸을 떨고 있는 하미준 헌터가 눈에 들어왔다. 조슈아의 발목에 찍힌 하미준 헌터의 도끼가 그의 움직임을 완전히 제어하고 있었다.

    “쿨럭.”

    그 모든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오고 나서야 내 배에도 작살이 꽂힌 걸 알아차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엎어졌다.

    ‘다들 죽은 건 아니겠지? 아직 살아 있겠지? 지금 여기서 누가 죽어버리면 난…….’

    [표리부동한 연기자가 자신의 연기에 완전히 도취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연기의 쾌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현재 체력 : 14,482]

    차곡히 내려앉는 절망감 위로 녀석의 감정이 나타났다.

    “하아아… 그러게 왜 절 의심하려 한 거예요.”

    “너……!”

    연기자는 자아를 확성기 상태로 돌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녀석은 하미준 헌터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려 했을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순간 상황은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도 있을 테니까.

    까득―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보려 했다. 하나, 전투로 엉망이 된 몸이 제대로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녀석을 향해 천천히 기어갔다. 무대의 나무 바닥이 쓸려 팔에서 피가 나도, 진입 금지 때문에 생긴 돌가루에 얼굴이 긁혀도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신지의.”

    그때 녀석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를 따라 겨우 고개를 들자 그곳엔 내 얼굴과 예상치 못한 인물이 있었다.

    “조슈아…….”

    “커흑!”

    연기자는 작살총에 달린 끈으로 조슈아의 목을 졸랐다. 조슈아의 초점은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흐려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시선을 옮겨 다시 연기자를 쳐다보자 녀석이 히죽 웃었다.

    “나랑 거래하자.”

    “뭐를.”

    녀석은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을 죽이게 해주면 나머지 인간들은 살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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