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72화 (172/366)

172화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다른 배역을 찾으려 합니다.]

[현재 체력 : 35,156]

“신지의 헌터!”

새로운 상태창이 뜨자 조슈아가 입을 열었다.

“아까 진짜 하미준 헌터를 어떻게 밝혀낸 건지 알려주시죠!”

하나, 나는 조슈아의 물음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녀석이 모습을 바꿀 때마다 바로 알아채기 위해 물어본 걸 테지만……. 내가 방법을 알려준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따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아마, 저밖에 못할 거예요.”

“스킬이에요?”

“대충 비슷한 거.”

나는 에이든의 말에 짧게 대답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바뀌면 제가 바로 알려드릴게요!”

팟―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을 깜박이고 바로 뜬 것처럼 시야가 잠시 검게 물들었다 다시 돌아왔다.

“큿……!”

나는 본능적으로 오른쪽 눈을 감고 사람들을 훑었다.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에 에이든 헌터의 모습을 한 녀석의 뒤로 연기자의 상태창이 떠있는 것이 보였다.

탕!!

그것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커다란 돌덩이 서너 개가 동시에 튀어 올라 탄환을 막았다. 소리 탄환은 돌덩이 두 개쯤을 관통했을 때 속도를 잃고 그대로 사라졌다.

“저거예요!”

“신지의 헌터,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연기자는 뻔뻔스럽게 이야기하며 돌덩이 뒤에서 고개를 쭉 뺐다.

쾅!

이번엔 에이든 헌터의 검이 연기자를 향했다. 연기자도 그의 검과 똑같은 검으로 공격을 받아낸 후 뒤로 굴러 방어 스킬을 썼다. 그 때문에 에이든의 칼이 돌덩이에 부딪혀 공격이 막혔다.

“에이든 왕자님! 혹시 공격 스킬 있어?”

“없습니다! 이 진입 금지가 나타나는 것만 조심하세요!”

쾅, 쾅, 쾅―

에이든의 경고와 함께 돌덩이, 아니 ‘진입 금지’가 비석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일단 녀석부터 찾자.’

후웅―

낮말을 듣는 새로 높이 도약해 자신의 스킬 뒤로 숨은 연기자의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녀석은 자신이 설치한 진입 금지들 뒤로 빠르게 움직이며 조슈아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조슈아! 조심해요!”

쿵!

연기자가 진입 금지를 뛰어 넘어 장검으로 조슈아의 목을 베려던 순간, 에이든 헌터가 만들어 낸 두꺼운 바리케이드가 그것을 막았다.

“흡.”

챙!!

이번엔 조슈아가 진입 금지를 뛰어넘곤 양손에 든 광대의 칼로 연기자에게 달려들었다. 연기자는 황급히 그것을 튕겨낸 후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조슈아가 던진 칼을 미처 피하지 못해 팔이 찢어졌다.

녀석이 얼굴을 찌푸리며 칼을 뽑아 바닥으로 던졌다. 그것은 금방 조슈아의 손 안으로 들어와 그의 두 번째 공격 찬스를 만들었다.

“윽!”

“길드장님!”

그때였다. 도약을 하려던 조슈아가 순간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연기자의 검이 그의 머리를 노렸다.

탕!!

탄환이 정확히 녀석의 검날을 맞혔다. 장검이 힘없이 날아가는 동시에 자아를 작살총 형태로 바꾸어 녀석의 가슴팍에 꽂았다. 연기자는 눈을 크게 뜬 채 제 몸에 박힌 작살을 빼내려 했다.

콰그작!

방아쇠를 당겨 연기자와 단번에 거리를 좁힌 후 반동을 이용해 무릎으로 녀석의 얼굴을 찍었다.

“커헉……!”

“조슈아! 괜찮아요?”

“네……! 일단 물러나시죠!”

조슈아의 요청대로 녀석에게서 떨어지자 시뻘건 용암 폭포가 그 위로 쏟아졌다.

“크아악!!”

에이든 헌터의 목소리로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얼마 안 있어 진입 금지가 녀석을 사방으로 가두어 그를 용암 속에 잠기게 만들었다.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자신이 죽음을 연기했을 때를 떠올립니다.]

[온몸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지배하지만 자신의 연기에 매료됐을 관객을 떠올리며 희열을 느낍니다.]

[현재 체력 : 29,917]

아직까진 큰 어려움 없이 잘 흘러가고 있다. 체력도 빠르게 깎이고 있었고, 다들 침착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제 목소리가 저렇게 이상한가요…….”

“아하, 원래 내가 듣는 목소리랑 남이 듣는 거랑은 차이가 있다고 하잖아.”

자신의 비명소리를 들은 에이든 헌터가 떨떠름한 얼굴로 녹아가는 연기자를 바라보았다. 하미준 헌터가 생긋 웃으며 그에게 대답하곤 또다시 끈적한 윙크를 보냈다.

“내 귀엔 파리의 아침 새 소리 같으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어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숨이 샜다.

에이든 헌터도 얼굴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며 그에게서 슬금슬금 떨어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용암에 천천히 잠겨가는 연기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녀석의 손끝이 진입 금지 밖으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탁―

눈앞이 또다시 점멸하곤 곧바로 돌아왔다. 반사적으로 오른쪽 눈을 감고 주위를 살폈다.

‘모습을 숨겼나?’

그 어디에도 연기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 시야에 들어온 헌터들은 전부 진짜였다.

“신지의 헌터!”

콰과광!

조슈아의 외침이 귀에 꽂히자 곧바로 뜨거운 기운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허억, 헉……!”

간발의 차였다. 자아로 실드를 뽑아내 머리 위로 든 덕분에 뜨거운 용암에 삼켜지는 걸 겨우 피했다.

쿵―

손바닥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에 실드를 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옆으로 몸을 피했다.

치이익―

“크윽!”

기어코 얇은 용암 줄기 하나가 내 다리 위로 떨어졌다. 그 뜨거운 액체는 내 바지를 뚫고 들어가더니 종아리 부근을 무자비하게 태워버렸다.

‘아픈 것보다 연기자를 골라내는 것이 더 먼저야.’

이를 악문 채 주위를 둘러보자 서로 대치 상태를 유지 중인 조슈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끼기기긱!

누가 연기자인지 구별을 하기도 전에 두 사람이 부딪쳤다. 날카로운 잭나이프의 날이 마찰해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고 여기저기서 용암 기둥이 터져 에이든 헌터와 하미준 헌터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신지의 헌터, 볼 수 있겠어?”

“잠시만요!”

오른쪽 눈을 감은 채 용암 기둥 사이를 뛰어다녔다. 흔들리는 풍경 사이로 이질적인 상태창 하나가 겨우 눈에 들어왔다.

“하미준 헌터 기준으로 오른쪽, 아, 아니 왼쪽!”

“뭐?”

‘위치가 계속 바뀌어서 설명할 수가 없잖아……!’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계속해서 충돌하며 빠른 호흡으로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우웅―

일단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겨 공기를 울렸다. 연기자의 다리가 주춤하자 곧바로 조슈아가 광대의 칼을 높이 들었다.

퍼버버벙!

“큭……!”

하지만 용암 폭포가 그의 주위를 감싸 조슈아의 공격을 막았다.

파밧―

그때 연기자가 하미준 헌터의 옆으로 몸을 굴리더니 이내 금방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 조슈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조심하세요. 아까보다 공격력이 더 상승한 것 같아요.”

그러곤 뻔뻔하게 하미준 헌터에게 충고했다.

“저게……!”

‘야.’

그때 갑자기 자아가 말을 걸었다. 갑작스럽게 몸 전체가 울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지금 여기서 쟤를 바로 공격하면 어떻게 되겠냐?’

‘…도망가겠지.’

‘그렇지.’

자아가 내 행동을 말려준 덕분에 머리가 빠르게 식었다.

아마 내가 곧장 연기자를 공격했다면 녀석은 다시 조슈아에게 달려들어 우리에게 혼란을 줬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연기자를 구별할 표식이다.’

내가 위치를 설명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공격할 수 있는, 그런 표식.

난 진짜 조슈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꽉 깨문 아랫입술이 그가 연기자의 태도에 분노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되레 의심받을까 망설이는 듯해 보이기도 했다. 이내 내 시선을 느낀 조슈아가 고개를 틀었다.

내가 말없이 턱짓으로 연기자를 가리키자 내 뜻을 이해한 조슈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하미준 헌터와 연기자를 향해 천천히 발을 옮겼다.

“조슈아, 발목은 좀 괜찮아요?”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닌데, 전투는 여전히 힘들군요.”

고개를 내리니 녀석이 왼쪽 발을 살짝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법이네.’

녀석의 연기가 점점 발전하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겉모습과 목소리를 따라하는 정도였는데, 이젠 직접 말까지 걸며 진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구원자의 무기 창고를 열어 녀석에게 표식을 남길 수 있는 무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푹―

그리고 곧바로 짧은 단도로 녀석의 팔뚝을 찔렀다. 새하얀 점프 수트 상의에 새빨간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윽! 시, 신지의 헌…….”

연기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내려다보았지만, 나는 오히려 단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더욱 확실하게 상처를 냈다.

“이런.”

콰지직!

그러자 하미준 헌터가 내 어깨를 감싸며 뒤로 물러나더니 수십 개의 나무줄기로 연기자의 몸을 휘감았다.

“땡큐~ 덕분에 쉽게 찾겠어.”

짝―

나는 하미준 헌터와 가볍게 하이 파이브를 한 후 연기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피 흘리고 있는 쪽이 가짜예요!”

“칫……!”

연기자는 정체를 들킨 게 분한지 혀를 차며 나무줄기를 용암으로 녹여버렸다. 녀석이 시커먼 재와 함께 바닥에 착지하기 무섭게, 양손에 든 광대의 칼을 휘두르며 에이든 헌터 쪽으로 발을 돌렸다.

쾅!

“에이든 헌터!”

“크읏……!”

진입 금지에 공격이 한 번 막히자 연기자가 바로 에이든 헌터가 서있던 곳에 용암 지대를 생성했다.

탕, 탕, 탕―

연계 공격이 이어지기 전에 방아쇠를 당겨 그가 도망칠 시간을 벌었다. 연기자가 내 탄환을 피해 뒤로 물러나는 동안, 용암에 발이 잠깐 묶였던 에이든 헌터가 빠르게 그곳에서 발을 빼 자신의 스킬 뒤로 숨었다.

“조슈아! 하미준 헌터! 쟤 움직이는 것 좀 막아주세요!”

“오케이~”

“네.”

콰드드득―

나무줄기가 맹렬하게 연기자를 쫓자 녀석은 조슈아의 패시브 스킬을 흉내 내어 자신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불꽃을 피워냈다. 불꽃에 닿은 나무줄기는 너무나 쉽게 으스러졌다.

퍼버벙!!

하지만 그것을 피해 움직이던 연기자의 앞에 용암 기둥들이 치솟았다. 처음 생겨난 두 개는 빠르게 몸을 틀어 피하나 싶더니, 곧 마지막에 터트린 용암에 스스로 몸을 던진 꼴이 돼 녀석이 소리를 질렀다.

철컥―

무기 창고에서 바주카를 꺼내 용암을 뒤집어쓴 연기자를 향해 들었다.

“후웁……!”

콰과과광!!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소리 포탄이 녀석의 몸을 관통했다.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생각합니다.]

[다음 역할이야말로, 제 연기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현재 체력 : 18,942]

‘불길하네.’

체력을 단번에 깎은 건 좋았지만 마지막에 한 말이 영 마음에 걸린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연기자를 눈앞에 둔 채 약간의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탁―

그리고 그런 내 불안의 원인인 연기자가 또다시 무대 위의 조명을 껐다 켜며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선보였다.

“…어?”

목 위에서 끊어지는 짧은 흑발, 은은한 빛을 내는 새하얀 점퍼와 손에 들린 새하얀 확성기.

연기자의 다음 역할은 다름 아닌 나였다.

녀석이 나를 향해 손가락을 드는 모습이 슬로모션 비디오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자 갑작스러운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딱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저쪽이에요!”

지금부터 가장 처절한 진실 공방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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