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71화 (171/366)
  • 171화

    [표리부동한 연기자]

    [자기 자신조차 속여버리는 연기의 대가…라고 믿고 싶은 존재]

    [현재 체력 : 50,000]

    ‘의외네.’

    미식가와 소설가처럼 큰 녀석이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평범한 인간 크기다. 크기는 물론이고 겉모습까지 조슈아를 완전히 빼닮은 존재였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조슈아가 입을 열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차분한 얼굴로 연기자를 바라보는 그의 옆모습이 보였다.

    “신지의 헌터를 흉내 냈을 때도 스킬엔 큰 차이가 없었거든요.”

    “맞아. 무기만 못 바꿨을 뿐이지 파괴력도 꽤 비슷했고 말이야.”

    하미준 헌터도 그의 말을 거들곤 손목을 풀기 시작했다.

    체력이 낮긴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나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시민 1도 체력은 3만밖에 되지 않았으나 말도 안 되는 속도와 전투 능력을 갖췄었으니까.

    조슈아의 모습을 뒤집어 쓴 연기자는 제 주변의 사람들을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아하.”

    짧은 감탄사였지만 조슈아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투쾅!!

    “큿!”

    그것에 소름이 돋기도 전에 연기자는 우리가 서있던 곳에 용암을 치솟게 했다. 간발의 차로 용암은 피했지만 폐부에 훅 들어찬 열기 때문에 기침이 계속 터져 나왔다.

    우우웅―

    시야가 돌아옴과 동시에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새하얀 소리 파도가 무대 전체를 삼키자 공기가 진동했다.

    “윽!”

    연기자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넘어가자 무대에서 굵은 나무줄기가 튀어나와 몸을 옭아맸다.

    치이익―

    이어 조슈아의 용암이 그 위로 쏟아져 나무줄기와 함께 녹아내렸다. 녀석이 들고 있던 잭나이프도 끈적한 용암에 덮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무엇이든 연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아닌 것까지도 말이죠.]

    [현재 체력 : 49,286]

    타다다닥―

    “아이 씨……!”

    용암 속에서 검은 바퀴벌레가 한 마리 기어 나오더니 이내 다시 조슈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녀석이 용암을 쏟아낼 자세를 취하자 에이든과 하미준 헌터가 동시에 튀어나와 그를 덮쳤다.

    까앙!!

    연기자의 잭나이프와 하미준 헌터의 도끼가 맞닿았다. 녀석이 재빨리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로 하미준 헌터의 목을 노렸지만 에이든 헌터의 장검이 그것을 쳐냈다.

    “둘 다 물러나세요!”

    그때 조슈아가 갑자기 소리쳤다. 하미준 헌터와 에이든 헌터가 그 목소리를 듣고 뒤로 물러나자 연기자의 주변으로 용암 기둥이 치솟기 시작했다.

    “와우. 우리 왕자님 어떻게 알았어?”

    “…만약 저였다면 그렇게 행동했을 테니까요.”

    하미준 헌터의 물음에 조슈아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철컥―

    나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입을 열었다.

    “일단 전투 대형으로 서죠! 제가 공격을 맡을게요!”

    “오케이, 좋아~ 에이든 헌터와 내가 앞쪽에서 시간을 좀 벌지.”

    “저도……!”

    “우리 조슈아 왕자님은 일단 후방으로 가있어.”

    하미준 헌터의 단호한 말에 조슈아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아직 발 다 안 나았잖아. 지금 상태로 근접전 가면 분명 큰일 나.”

    “…….”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니라는 건 알지?”

    깡!

    그때였다. 하미준 헌터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슈아의 나이프가 하미준 헌터를 향했다. 내가 먼저 그 사이에 배트를 밀어 넣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대로 하미준 헌터의 어깨가 찢어질 뻔했다.

    “조슈아!”

    탱그랑―

    그쪽으로 돌아보며 소리치자 그도 자신의 행동에 놀란 듯 나이프를 떨어트리곤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흐응.”

    하미준 헌터가 눈을 가늘게 뜨곤 배트 너머의 조슈아를 바라보았다.

    “역시, 본 성격 나오네.”

    “…….”

    “그게 매력 있어~ 난 앙칼진 사람도 좋아하거든~”

    하미준 헌터가 연기자를 향해 발을 돌려 걷다 갑자기 뚝 멈추곤 고개만 살짝 틀어 조슈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황 봐가면서 해.”

    제법 묵직한 경고였다. 조슈아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아랫입술만 꽉 문 채 그의 뒷모습을 노려볼 뿐이었다.

    “…에이든 헌터, 하미준 헌터의 보좌를 부탁합니다.”

    “네, 네! 일단 방어벽 몇 개 세워두고 가겠습니다.”

    쿵, 쿵, 쿵―

    에이든 헌터가 커다란 돌덩이 서너 개를 꺼내 무대의 중간 중간에 세워두곤 하미준 헌터의 옆으로 달려갔다.

    “야, SS급.”

    “왜.”

    “너도 감정이라는 게 있는 건 맞지?”

    “허.”

    뜬금없는 질문에 헛웃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당연히 있지.”

    “그런데 왜 그렇게 차분해?”

    조슈아가 눈을 크게 뜨곤 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 올 때까지 얼마나 많이 본모습이 드러난 건지 모르겠어. 내 힘으로 어떻게 주체가 안 된다고.”

    “조슈아.”

    “차라리 아예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

    그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시선을 쭉 내리니 그가 왼쪽 발을 살짝 들고 있었다. 하미준 헌터의 말대로 아직 낫지 않은 모양이었다.

    ‘파편에 대한 부작용이 더 심해지고 있어.’

    조슈아의 본성이 폭주하는 주기가 더욱 짧아지고 있다. 누군가가 다가가기만 해도 흔들리는 촛불처럼 그의 상태는 너무나도 불안했다.

    텁―

    조슈아의 어깨를 잡자 떨림이 느껴졌다.

    “감정이 없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야.”

    “없어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네?”

    “맞아. 있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그는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빤히 쳐다보았다. 98번째의 내가 죽인, 조슈아의 얼굴과 겹쳐 보여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감정 없이 합리성만 따지는 건, 절대자만으로 충분해.’

    “아.”

    탁―

    나도 모르게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자 조슈아가 내 팔을 쳐냈다. 어색한 침묵이 몇 초간 이어졌다.

    “뭐,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발언 결과 : 긍정]

    조슈아는 짧게 말을 덧붙였다.

    “나도 벤자민한테는 매정하게 굴고 싶지 않으니까.”

    그의 눈에 따뜻한 빛이 서리다 이내 곧 사라졌다.

    “너무 오래 붙잡았네요. 신지의 헌터.”

    “너 이럴 때마다 진짜 소름 돋는 거 알아?”

    “우선 전투에 집중하죠. 저도 후방에서 돕겠습니다.”

    조슈아는 생긋 웃으며 손을 뻗었고 연기자가 움직이는 경로를 따라 용암 기둥을 연달아서 뽑아냈다.

    후웅―

    나도 낮말을 듣는 새로 날아올라 위쪽에서 전투 상황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조슈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연기자가 굉장히 재빠른 몸놀림으로 하미준 헌터와 에이든 헌터를 따돌렸다. 연계 패시브 스킬이 활성화되어 있는지 그가 움직일 때마다 불꽃이 일었다.

    철컥―

    자아를 든 채로 눈으론 녀석의 움직임을 쫓았다. 뒤는 하미준 헌터와 에이든 헌터, 앞은 조슈아의 용암 기둥. 양쪽을 전부 다 피한다고 했을 때 연기자의 다음 방향은…….

    ‘공중이지.’

    연기자가 공중으로 도약해 용암 기둥과 두 헌터들을 따돌렸다. 두 사람은 달리던 반동 때문에 하마터면 용암 기둥을 향해 그대로 들이받을 뻔했다.

    탕!

    연기자의 몸이 땅을 딛기 직전 내 탄환이 먼저 녀석의 목을 꿰뚫었다.

    “커헉……!”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자신의 연기에 한계가 있음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내 방법을 찾습니다.]

    [현재 체력 : 43,872]

    ‘방법이라.’

    찝찝한 상태창이었지만 일단은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녀석이 목을 움켜쥔 채 바닥으로 추락하자 곧바로 하미준 헌터의 나무줄기가 녀석의 몸을 옭아맸다.

    탕, 탕, 탕!

    또 바퀴벌레로 변해버리기 전에 방아쇠부터 당겼다. 연기자는 나무줄기에 몸이 속박된 탓에 내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연극에서 연출이 빠질 순 없으니까.”]

    [현재 체력 : 39,991]

    탁―

    ‘암전……!’

    순식간에 주위가 검게 물들었다 금방 다시 밝아졌다. 길을 비추는 자의 효과가 채 발동되기도 전에 암전이 풀린 터라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다들 괜찮으세요?”

    “어, 멀쩡해.”

    “어, 멀쩡해.”

    똑같은 음성이 두 번 들렸다.

    불길한 예감에 하미준 헌터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붉은 셔츠를 입은 두 명의 하미준 헌터가 있었다.

    그 순간 이 공간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던 이유를 깨달았다.

    ‘누구로 변장한 건지 숨기려 한 거야……!’

    조슈아와 에이든 헌터도 당황한 듯 그 누구도 선뜻 공격을 하지 못했다.

    “하하…….”

    콰드득!

    그때 하미준 헌터 중 한 명이 낮게 웃곤 빠르게 나무줄기들을 뽑아냈다. 또 다른 하미준 헌터를 향해 뻗어간 나무줄기는 도끼질 한 번에 반 토막이 났다.

    까앙!!

    두 개의 은도끼의 날이 부딪쳤다. 무대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로 큰 마찰음이 들렸다.

    “신지의 헌터! 그걸로 쏴! 그럼 누가 진짜인지 알 거 아냐!”

    “괜히 저 말에 현혹되지 마. 신지의 헌터가 아군으로 인식한 사람한테만 공격이 안 통하는 거잖아. 그게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어.”

    “하하, 쫄리나 봐?”

    하미준 헌터들이 도끼 날로 서로의 무기를 튕겨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탄환을 발사하라는 쪽은 당당하고 여유가 있어 보였지만,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대꾸하며 내 손에 들린 자아와 상대의 공격을 번갈아 보았다.

    ‘분명 구별할 방법은 있어.’

    키잉―

    서로를 향한 가짜 하미준 헌터와 진짜 하미준 헌터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촉수 같은 나무줄기와 도끼가 계속해서 부딪쳐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는 와중. 순간 어떤 글자가 머릿속을 스쳤다.

    ‘구원자의 눈동자!’

    나는 즉시 오른쪽 눈을 감고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 그 전투를 눈에 담았다.

    [창조자의 파편―연기자]

    [속성 없음]

    [거듭된 연기에 자아를 잃어버린 텅 빈 존재]

    [필모그래피 : 믿음직한 동료, 모두가 따르는 권력자, 순수한 예술가, 기품 있는 미식가]

    [극적인 연출과 함께 등장할 때마다 모습을 바꾼다.]

    자신을 쏘라고 했던 하미준 헌터의 당당한 얼굴 옆으로 연기자를 나타내는 글자가 둥둥 떠있었다.

    탕!

    나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새하얀 궤적을 남기며 진짜 하미준 헌터의 등을 그대로 관통하고 그를 연기 중인 표리부동한 연기자의 목에 정확히 박혔다.

    “커헉……!”

    연기자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후… 나답지 않게 당황했네.”

    진짜 하미준 헌터가 나무줄기로 녀석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킨 후 뒤로 물러나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내 탄환이 관통한 그의 등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고마워, 신지의 헌터. 아까는 좀 놀랐지 뭐야.”

    “그래도 정확하게 얘기해 줬어요.”

    하미준 헌터의 말대로 내 스킬은 내가 누구를 아군으로 ‘인식’하냐의 문제다. 내 판단이 틀리면 동료에게도 공격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하미준 헌터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 예리해.’

    계산적이고 치밀한 그의 성격이 거짓말로 가득한 이 파편 속에서 여러 번 빛을 발했다.

    콰드득!

    그때 나무줄기를 뜯고 연기자가 다시 튀어나왔다. 녀석은 여전히 하미준 헌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다른 배역을 찾으려 합니다.]

    [현재 체력 : 35,156]

    표리부동한 연기자의 세 번째 연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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