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70화 (170/366)

170화

【The Last Scene】

첫 번째 공간에선 하미준 헌터와 에이든 헌터가 일사분란하게 흩어져 단서를 모았고, ‘나’를 연기하는 가짜와 조슈아도 내가 심어놓은 단서를 찾았다. 미니어처 속 상황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첫 번째 TRUTH or DARE에서 조슈아에게 그런 끔찍한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약점이나 다름없는 벤자민의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정신이 무너졌는지 조슈아는 결국 거짓말을 했고, 엄청난 파괴력의 몬스터와 싸우게 되었다.

‘언니,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우리 녹두 스킬 덕분에 거의 다 나았어.”

‘다행이다.’

녹두는 계속해서 배리어를 유지한 채 내 다리 옆에 누웠다. 따뜻한 기운이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해졌다.

‘그래도 하미준 헌터가 슬슬 눈치를 챈 것 같아서 다행이네.’

피노키오와의 전투 이후 하미준 헌터가 ‘가짜’인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녀석의 어떤 행동 때문에 의심을 하기 시작한 건진 모르겠지만, 하미준 헌터의 시선과 주의는 오롯이 ‘가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TRUTH or DARE 질문지를 작성해서 세 번째 장소에 올려주세요!]

그때 상태창이 미니어처 위에 떴다. 상황을 좀 보느라 작성을 미뤘는데 이젠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스윽―

상태창이 준비해 준 펜을 꺼내 질문지 위에 둔 채로 미니어처 쪽으로 고개를 돌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본인이 가짜라는 사실을 모르는 걸 수도 있어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에이든 헌터?”

“TRUTH or DARE에서 거짓 반응이 나오긴 했지만, 결국 그 전투로 다친 것도 길드장님이니까요…….”

역시 의심의 대상은 조슈아였다. 나와 녹두가 목숨 걸고 싸워서 얻어낸 포스터가 오히려 독이 된 모양이다. 그리고 저 속에 들어 있는 ‘가짜’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상황을 교묘하게 조종하고 있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믿어 볼 건 역시…….’

스윽, 슥―

[하미준]

게임 도전자라고 적힌 칸 옆에 하미준 헌터의 이름을 적었다. 그가 나를 의심하고 있다면 가짜와 진짜 나 사이의 어떤 괴리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 만한 질문이 필요하다.

“가짜를 찾아서 무대 위로 올리라고 했잖아. 아마 저기가 단서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겠지.”

하미준 헌터의 말을 들으며 질문을 빠르게 써 내려갔다.

사락―

공연장처럼 보이는 세 번째 공간에 종이를 얹자 다시 한번 상태창이 떴다.

[게임 도전자 : 하미준]

[질문 : 당신이 신지의를 동료로 받아들인 순간은 언제입니까?]

[위 질문으로 TRUTH or DARE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응.”

촤라락―

종이가 트럼프 카드처럼 여러 장으로 나뉘더니 이내 TRUTH와 DARE가 쓰인 카드 두 장이 되어 세 번째 공간에 둥둥 떴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미준 헌터를 믿는 것뿐이다.

* * *

“그럼 그 포스터는 어떻게 설명하실 거예요? 사실 그게 조슈아를 의심하는 결정적 계기였거든요.”

“아, 그거. 그건 정말로 조슈아 군이라고밖엔 설명이 안 되더라.”

“하.”

“근데 그 안에 있는 문장은 신지의 헌터를 말하는 게 맞던데?”

‘하미준 헌터, 나이스!

내 바람대로 하미준 헌터는 단서를 제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조슈아가 가짜로 몰렸을 때 그의 본성이 계속해서 폭주한 탓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갈 뻔했지만, 어느새 하미준 헌터의 주장이 판도를 서서히 뒤집기 시작했다.

“신지의 헌터는 누군가를 구할 때 절대로 망설이지 않아. 구할 수 있을지 아닐지 재지 않는다고.”

나에 대한 그의 평가를 직접 듣는 건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말이다.

조슈아와 에이든도 하미준 헌터의 말에 완전히 설득이 된 건지 지금 당장이라도 ‘가짜’를 무대에 세울 것처럼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하미준 헌터는 ‘가짜’의 어깨를 두드리며 무대로 이끌었다. 놈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는지 순순히 무대를 향해 발을 올렸다.

[신지의의 가짜 판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가짜 판별을 받은 진짜는 영원히 사라집니다.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미니어처 쪽으로 고개를 푹 숙여 사람들의 눈앞에 뜬 상태창을 보았다. 붉은색으로 쓰인 탓에 더욱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하지만 다들 ‘예’ 쪽으로 손을 옮기고 있었다.

[투표가 종료되었습니다]

[신지의의 가짜 판별을 집행합니다]

삐이이이―

미니어처 속 무대 위로 붉은 커튼이 내려왔다. 커튼이 완전히 내려와 가짜와 다른 사람들을 분리하자 가짜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헉……!”

그러곤 나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파바박―

하지만 그 소름끼치는 미소도 얼마 가지 않았다. 녀석의 몸에 수십 개의 나이프가 꽂혔다. 그와 동시에 녀석은 난도질당한 케이크로 바뀌었다. 케이크 한가운데 그려진 광대 그림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흥겨운 팡파르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감사합니다, 연출가님!]

[당신의 노력 덕분에 극이 완전히 망했습니다!]

[관객들은 연기자를 향해 침을 뱉고 욕을 할 것입니다!]

[전부 당신 덕분입니다!]

이쯤 되니 이 모든 말들이 나를 향한 비난으로 느껴졌다. 썩 좋지만은 아닌 기분으로 그 상태창을 바라보기만 했다.

쿵―

그러자 미니어처 테이블 뒤쪽으로 붉은 문이 떨어졌다. 극장 문처럼 두껍고 커다란 모양새였다.

[이제 사랑하는 진짜들을 만나러 가실 수 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상태창은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두근, 두근―

너무나도 길고 막막했던 전투의 끝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계속 배리어를 만들어 주고 있던 녹두에게 고개를 돌리자 녀석도 혀를 내민 채로 활짝 웃고 있었다.

“녹두야, 조금 이따 다시 부를게.”

‘응!’

“수고 많았어.”

녹두의 커다란 이마에 입을 맞추자 녹두가 낮게 으르릉거리며 기분 좋은 티를 냈다. 그러곤 곧 팔찌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녹두의 배리어와 아이테르의 로브 덕에 몸은 거의 회복이 된 상태였다.

타닥―

나는 서둘러 문 앞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쥐었다.

끼이이익―

제법 무거운 무게에 양팔에 힘을 가득 실어 다시 밀자 그것이 바깥으로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쿵―

“어……!”

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자 그곳엔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 등장이 얼떨떨한 듯 누구 하나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채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신, 신지의 헌터!”

“하하, 이거 원. 바로 나타나 주니 눈물이 나올 것 같네.”

에이든 헌터가 가장 먼저 소리치자 뒤이어 하미준 헌터가 반응했다. 그들에게로 달려가자 그들 역시 내 쪽으로 다가오며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아니, 일단 진짜 신지의 헌터 맞지?”

“저 맞아요.”

하미준 헌터가 내 어깨를 잡은 채 내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바쁘게 움직이는 넓은 어깨 너머로 푸른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놀랐나?’

조슈아는 약간 넋이 나간 얼굴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유형의 던전이니 그럴 만한 반응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얼빠진 얼굴을 할 줄이야.

“왜요?”

“…아니요. 그냥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요.”

조슈아에게 슬쩍 말을 건네자 그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타다다닥―

재회의 기쁨도 잠시. 타자기 소리와 함께 난도질당한 케이크 위로 커다란 글씨가 나타났다.

[“뭐야? 들켜버린 거야?”]

[“시시하네.”]

[“연기를 왜 이렇게 못 해?”]

[“난 사실 처음부터 가짜가 누군지 알고 있었어.”]

우우우우―

관객의 혹평과 함께 야유 소리가 극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보이지 않는 관객들이 온 힘을 다 해 이미 엉망진창이 된 광대 케이크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앞으로 저 녀석이 나오는 연극은 안 봐야겠어.”]

[“전작은 좋았는데 이번엔 왜 그런대?”]

[“어휴, 대본을 잘못 골라도 제대로 잘못 골랐군.”]

[사람들의 비난이 표리부동한 연기자의 위로 쏟아집니다.]

쿠구궁―

공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해 우리 자세를 낮춘 채로 중심을 잡았다.

“다들 전투 준비하세요. 아까 상태창에서 나온 대로 곧 표리부동한 연기자와 싸우게 될 거예요.”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들었다.

“우릴 초대한 건 조슈아 군인데 오히려 신지의 헌터가 더 잘 아는 눈치네.”

그때 내 옆에 있던 하미준 헌터가 목소리를 낮춘 채 내게 말을 건넸다. 난 그의 말에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영국에서 이미 한 번 겪었잖아요. 경력직이니까 그렇죠.”

“푸핫!”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하미준’이 동요한다.]

그가 재미있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래. 나는 우리 선배님만 믿을게.”

[발언 결과 : 신뢰]

나도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여기서 나가 조슈아의 업까지 무사히 청산시키고 나면 회귀에 대한 것도, 그리고 말의 힘도 이야기할 것이다.

‘무작정 숨기는 것이 오히려 상대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걸 녹두를 통해서 알았으니까.’

다시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팔찌에 달린 구슬 장식을 쓰다듬었다.

타다닥―

그때, 내 주의를 환기하듯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들고 있던 대본을 갈기갈기 찢었습니다.]

[오롯이 자신의 선택으로 고른 역할은 그의 연기 인생에 있어 가장 최악의 역할이었습니다.]

[“웃기지 마. 내 연기가 틀렸을 리 없어!”]

쿵!!

공간이 크게 울리는 동시에 우릴 둘러싼 극장의 풍경이 종이처럼 구겨졌다.

찌익―

구겨진 풍경이 찢어지자 그 너머로 새로운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객석에 남아 있던 관객들을 데려옵니다.]

타닥―

“어?”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바닥에 착지하고 나서야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무대였다. 아까 ‘가짜’가 최후를 맞이한 무대보다 세 배 정도는 더 클 것 같은, 엄청난 크기의 무대 위.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한가운데, 여전히 난도질당한 광대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콰드득―

케이크가 꾸물거리며 점점 위로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사람의 형체가 되었다. 달콤한 크림 냄새가 진동해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제대로 된 연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자신의 연기를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파아앗!

케이크가 빛을 뿜어내다 곧바로 무언가로 변했다. 겉모습을 바꾼 그것의 모습을 보자마자 우리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 케이크 덩어리였던 것이 순식간에 조슈아의 모습으로 감쪽같이 바뀌어 버렸으니 말이다.

타다다닥―

[표리부동한 연기자]

[자기 자신조차 속여버리는 연기의 대가…라고 믿고 싶은 존재]

[현재 체력 : 50,000]

조슈아의 거죽을 뒤집어 쓴 표리부동한 연기자가 마침내 우리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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