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69화 (169/366)
  • 169화

    [빛의 늑대]

    [성체]

    [소환수와의 교감도가 대폭 상승]

    [소환수 스킬 개방]

    [S급 방어계 스킬 ‘신뢰’]

    [모든 공격을 방어하는 배리어를 소환한다. 배리어는 소환수의 등급보다 낮은 공격으로부터 완전 면역 상태를 유지하며, 배리어 내에 동반자가 있을 시 배리어 내 생물들의 자연 치유 능력이 대폭 상승한다.]

    <사명>

    [늑대의 동반자]

    [동반자를 성장시켜라.]

    [달성도 대폭 상승]

    [달성도 : 100%]

    [달성 완료]

    [업적 ‘늑대의 영원한 동반자’ 개방]

    [빛의 늑대 소환 시 소환수와 동반자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동시에 상승한다.]

    고통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진 와중에도 지금 내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진화라니.’

    녹두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성체가 되고 스킬이 전부 개방되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진화하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배리어를 만드는 방어계 스킬에 치유 능력이 추가된 것도 지금 처음 보았다.

    나는 녹두를 향해 눈동자를 굴렸다. 숨을 쉴 때마다 성인 세 명은 족히 올라탈 만큼 넓은 등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녹두의 주변을 맴돌던 빛무리는 어느새 안개처럼 넓게 퍼지더니 튼튼한 배리어가 되어 지붕처럼 나와 녀석을 덮었다.

    쾅, 쾅, 쾅―

    시민 1이 메스로 배리어를 그었으나, 약간 긁히는 것이 전부였다.

    “녹두, 맞지……?”

    힘겹게 말을 뱉자 새하얀 늑대의 고개가 천천히 내게 향했다. 완전한 맹수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빛이 깃든 연두색의 눈동자는 내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눈동자였다.

    퉁―

    녹두는 아예 몸을 돌려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내 몸 위에 자신의 머리를 조심스레 올렸다.

    ‘언니는 바보야.’

    ‘맞아.’

    배리어와 아이테르의 로브의 자연 치유 능력 효과 덕분일까. 엉망진창이었던 몸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나는 피가 말라붙은 팔을 뻗어 녹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녹두는 이번엔 피하지 않고 묵묵히 그 자세 그대로 내 손길을 받아냈다.

    스륵―

    녹두가 머리를 들었다. 그러더니 내 등 밑으로 코끝을 밀어 넣어 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덕분에 앉은 채로 녹두의 모습을 더욱 확실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지옥도가 열렸을 때 언니가 나 대신 크게 다친 거 기억나?’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어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눈을 크게 뜬 채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녹두가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난 아직도 그 일이 너무 선명한데… 언니한테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기억 중 하난가 보네.’

    ‘…미안.’

    ‘사과 듣고 싶어서 말한 거 아니야.’

    그 말을 듣고 또다시 사과가 튀어나올 뻔해 겨우 삼켰다.

    ‘그게 사소한 기억이 될 정도로 언니는 힘들게 살아왔는데, 내가 그걸 이해 못 했다는 게 분해서 그래.’

    ‘녹두야…….’

    녹두는 다시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힘들진 않았어?’

    투둑―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녹두의 작은 위로 한 번에 나도 모르게 눌러 놓았던 감정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힘들었어.’

    지금 이곳에 올 때까지 너무 많은 죽음을 맞았고, 또 너무 많은 죽음을 보았다. 동료를 잃어도 보고, 동료가 동료를 살해하는 걸 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올바르게 흘러가고 있는 지금도 수많은 불확실성과 싸우느라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녹두가 내 눈물을 핥았다. 까끌거리는 혀가 얼굴을 쓸자 오히려 코가 더 찡해졌다.

    ‘이제 언니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마. 나도 있고, 또 언니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많잖아.’

    ‘…우리 녹두, 다 컸네.’

    ‘당연하지!’

    녹두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나를 바라보았지만 그럴수록 어렸을 때의 모습이 더욱 겹쳐 보여 웃음이 샜다.

    쩌엉!

    그때였다. 집요하게 배리어를 긋던 시민 1이 기어코 배리어에 틈을 만들었다. 녀석은 벌어진 틈 사이로 메스를 다시 집어넣어 그것을 서서히 넓히고 있었다.

    ‘언니 뛸 수 있겠어?’

    ‘아직은 어려울 것 같아.’

    자연 치유 덕에 부러진 발목뼈가 돌아오긴 했지만, 전력으로 달리는 건 힘들 것이다.

    녹두는 내 몸을 슬쩍 살핀 후 자세를 낮춰 내게 등을 보였다.

    ‘타.’

    ‘괜찮겠어?’

    ‘응! 아, 대신 내 목 꼭 끌어안고 있어야 돼. 떨어지면 안 되니까!’

    철그럭, 철그럭―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시민 1이 자신이 들어갈 만큼의 공간을 거의 다 만들어 배리어 안으로 몸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럼 이번에만 탈게.’

    ‘평생 타도 돼!’

    내가 등 위에 올라타자마자 녹두가 다리를 쭉 펴 순식간에 시야가 높아졌다.

    ‘셋 하면 배리어 해제할게.’

    ‘알겠어.’

    한 팔로 녹두의 목을 안은 채 자아로 시민 1을 조준했다.

    ‘하나, 둘.’

    쨍그랑!

    ‘셋!’

    녹두가 외치자마자 새하얀 배리어가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동시에 공중으로 뛰어 올라갔다. 시민 1도 메스를 쥔 채 우리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타앙!!

    소리 탄환이 아슬아슬하게 시민 1의 목을 스쳤다. 새카만 몸에서 붉은 핏방울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피부를 줘어어어!!”

    입이 생긴 시민 1이 끔찍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쾅!!

    하지만 곧바로 다시 도약해 녹두의 다리를 향해 손을 뻗어 왔다.

    “아우우―”

    콰과광!!

    녹두의 울음소리가 고리 모양으로 바뀌어 녀석의 몸 주위를 위성처럼 날아다녔다. 시민 1의 메스는 그 고리에 닿자 힘없이 튕겨나갔다.

    ‘지금이다!’

    탕!!

    녀석의 움직임이 잠깐 멎은 틈을 타 방아쇠를 당겼다. 새하얀 탄환이 시민 1의 손목을 관통하더니, 곧 손 전체가 터져나갔다.

    [시민 1은 대사를 말할 수 있는 입이 생겼지만 앞으로 상대 배우의 손을 잡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체력 : 10,196/30,000]

    시민 1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동안 소리 탄환 서너 개를 더 뽑아냈다. 공중임에도 녀석은 몸을 돌려 대부분의 탄환을 잘 피해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탄환 하나가 녀석의 옆구리에 명중했다.

    ‘녀석의 움직임을 딱 한 번만이라도 묶어놓을 수 있다면…….’

    시민 1이 바닥에서 숨을 가다듬는 동안 난 녹두의 몸 주위를 맴도는 새하얀 고리를 바라보았다.

    “녹두야.”

    ‘응?’

    “이 고리들은 다른 사람한테는 못 써?”

    녹두는 자신의 스킬을 슬쩍 살피더니 바로 대답했다.

    ‘아니. 쓸 수 있어. 왜? 언니도 보호막 필요해?’

    “아니.”

    난 손가락으로 시민 1을 가리켰다.

    “그 고리, 쟤 주변으로 최대한 많이 만들어 줘.”

    그 말에 녹두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금방 내 의도를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고리는 아군이 쓰면 다른 사람의 공격을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하지만, 적에게 쓰면 움직임을 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다.

    녀석의 고리 때문에 움직임이 멈춘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을 노릴 것이다.

    키이잉!!

    녹두의 입에서 새하얀 기둥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수십 개의 고리들로 분리됐다. 그에 녀석이 재빠르게 반대편으로 달렸지만 고리를 따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녹두가 만들어 낸 고리들은 시민 1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기 시작했다.

    서걱―

    고리를 피해 한 걸음 내디디려던 시민 1의 발목은 또 다른 고리에 베여 결국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팟―

    나는 재빨리 녹두의 등에서 뛰어내려 낮말을 듣는 새를 바로 시전했다.

    ‘구원자의 무기 창고!’

    철컥―

    구원자의 무기 창고에서 꺼낸 바주카를 단단히 쥔 후 녀석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시민 1이 사람의 모습을 갖기 위해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 이미 다른 지원자들이 오디션장에 가득 찼습니다.]

    [시민 1이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체력 : 9,712/30,000]

    탁―

    나는 녀석의 바로 앞에 착지한 후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럴 순 없어!!”

    시민 1이 악에 바쳐 나를 향해 메스를 휘둘렀다. 하지만.

    서걱―

    그것 역시 녹두의 고리에 잘려나갔다.

    나는 입을 벌린 채 그대로 몸이 굳은 녀석 쪽으로 포구를 들이밀었다.

    콰과과광!!

    “읏!”

    몸 상태가 완전히 돌아온 건 아닌지 바주카의 반동에 내 몸이 뒤로 밀려났다.

    탁―

    ‘언니 괜찮아?’

    “응. 멀쩡해.”

    녹두가 아이테르의 로브를 이빨로 물어 나를 잡더니 이내 자신의 등에 다시 태웠다.

    ‘이걸로 끝나야 할 텐데.’

    나는 약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자아의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투웅―

    먼지바람에 동그란 구멍이 생겼다. 그러곤 얼마 안 있어 자욱하게 깔렸던 흙먼지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덜그럭―

    [★★★★★]

    [시민 1]

    [체력 : 0/30,000]

    [상영까지 남은 시간 2분]

    “하아, 하……. 하하하…….”

    해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모든 단서를 전부 얻었다.

    후련함과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컥거렸다.

    ‘고생했어.’

    녹두가 말을 걸었다. 어느새 앉은키가 내 키보다 높아진 녹두는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을 보고 나서야 내 가슴이 울렁거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마워, 녹두야.”

    내 고통, 괴로움. 그리고 고독함. 그 모든 것들은 녹두로부터 이해받았다. 녹두는 이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용기를 주었다.

    ‘이젠 정말로 숨기지 않을 거야.’

    녹두를 한 번 꽉 끌어안은 후 가짜를 가려낼 마지막 단서 쪽으로 발을 돌렸다.

    [light를 숨긴 문장이 들어있는 포스터]

    내 속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유용한 단서가 될 수 있긴 하겠지만, 문제는 이걸 눈치챌 수 있느냐다.

    [상영까지 남은 시간 1분]

    [※상영 이후에는 연출을 하실 수 없습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단서를 챙겨 미니어처 테이블 쪽으로 빠르게 달렸고 그것을 두 번째 공간에 던졌다.

    덜그럭―

    단서는 광대가 그려진 포스터가 되어 천막 안에 붙었다.

    ‘조슈아랑 헷갈리면 안 될 텐데.’

    [축하드립니다, 연출가님!]

    “깜짝이야……!”

    그때 갑자기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나에게 연출가 역할을 줬던 상태창과 동일한 생김새였다.

    [연출가님은 연극을 망칠 모든 단서들을 획득하셨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연출가 특전을 드립니다!]

    사라락―

    상태창에서 종이 한 장과 펜이 튀어나와 내 손 위에 떨어졌다.

    [TRUTH or DARE 질문권]

    [마지막 공간으로 넘어가기 전 TRUTH or DARE에서 직접 질문할 수 있습니다.]

    “진짜로?!”

    예상치 못한 특전에 깜짝 놀라 상태창을 향해 외치자 금방 새로운 문장으로 바뀌었다.

    [물론입니다!]

    [질문받을 사람의 이름과 질문 내용을 적어 마지막 공간에 넣어두시면 됩니다!]

    삐이이이―

    그때 뱃고동 소리 같은 신호음이 들렸다.

    [이크! 이제 연극이 시작하겠군요.]

    덜그럭―

    얼마 안 있어 미니어처 테이블이 살짝 흔들렸다. 고개를 바로 내리자 도시 미니어처 안에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미준 헌터, 조슈아, 에이든 헌터. 그리고 내 거죽을 뒤집어 쓴 ‘가짜’까지.

    검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사람들이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드르륵―

    갑자기 테이블 옆에 편해 보이는 소파가 생겨났다.

    [관객들에게 최악의 연극이 되기를 바랍니다!]

    [연출가님은 편안한 관람 되시길.]

    상태창은 발랄한 어투로 저주를 퍼붓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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