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66화 (166/366)
  • 166화

    【빛의 늑대】

    표리부동한 연기자의 파편 입장 직전

    [입장한 진짜 4명]

    [입장한 가짜 1개]

    [거짓된 시간선에 입장합니다.]

    [*가짜를 찾아내면 표리부동한 연기자와 만날 수 있습니다*]

    파아앗―

    “큿……!”

    눈앞이 새하얗게 물드는 동시에 의식이 잠깐 날아갔다.

    쿵―

    “악!”

    하필 그 상태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꼬리뼈에서부터 척추까지, 등줄기를 타고 날카로운 고통이 타고 올랐다. 나는 아찔해진 정신을 다잡고 일단 주위를 살폈다.

    “다들 괜찮아…요?”

    없다.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사방이 새하얀 공간이었다.

    스륵―

    천천히 일어나 조심스럽게 걸어보았다. 어디까지가 바닥이고 어디까지가 천장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새하얀 공간이라 허공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분명 이곳에 들어올 때 ‘가짜’를 찾으라고 했는데 말이지.’

    한데, 가짜는커녕 먼지 한 톨 없었다.

    치지직―

    그때 눈앞에 노이즈가 나타났다.

    [불쌍해라! 당신은 연극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대신할 가짜가 들어갔거든요.]

    “뭐, 뭐?”

    나는 상태창에서 눈을 떼고 일단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 이상한 곳엔 나 혼자만 끌려왔고, 조슈아 쪽엔 나를 연기하는 가짜가 들어갔다. 그리고 그 가짜를 찾아내는 게 연기자를 만나기 위한 조건인 것이고.

    다시 고개를 들어 상태창을 바라보니 어느새 다른 문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연극에 참여하지 못해 아쉽지 않습니까?]

    [저 연극을 망치고 싶지 않습니까?]

    [아쉬운 당신을 위해 역할을 드리겠습니다.]

    쿵―

    내 옆에 커다란 나무 테이블이 떨어졌다.

    “…미니어처?”

    자세히 보니 그냥 테이블이 아니었다. 테이블 위엔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은 세 개의 공간이 있었다. 하나는 높은 건물들이 있는 도시, 그 옆은 천막과 비품들이 나뒹구는 공터, 그리고 그 옆엔 극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실제로 있는 공간을 그대로 구현해 놓은 것처럼 정교하고 섬세했다.

    치직―

    내 주의를 끌 듯 상태창이 소리를 내며 새로운 문장을 띄웠다.

    [당신은 이 연극의 연출가입니다!]

    [당신이 오르지 못한 이 연극을 망쳐주세요.]

    [망치는 방법은 쉽습니다.]

    [우선 이 대본을 받으세요!]

    툭―

    이번엔 내 손 위로 종이 뭉치가 떨어졌다.

    [가짜 광대의 말로]

    제목이 쓰인 표지를 넘기자 직접 쓴 듯한 글이 나타났다.

    [시놉시스]

    정체불명의 예술가가 4명의 ‘진짜’들을 초대한다. 하지만 그중 하나가 초대에 응하지 않자, 예술가는 자신의 광대인 ‘가짜’를 초대한다.

    “네가 진짜인 것처럼 연기를 해야겠구나.”

    ‘진짜’들을 골릴 생각에 신이 난 ‘가짜’는 초대를 거절한 ‘진짜’를 흉내 내기 위해 그의 모든 것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진짜’가 말하는 방식, ‘진짜’의 걸음걸이, ‘진짜’의 생각까지 말이다.

    기회는 단 한 번, 단서들을 모아 ‘진짜’를 연기하는 ‘가짜’를 찾아서 무대 위로 올려라.

    ‘나를 어디까지 똑같이 따라할 수 있으려나.’

    가짜가 내 생각까지 따라한다고 하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회귀의 기억까지 갖고 있다면 좀 곤란할 것 같은데.

    [극에 오른 사람들은 가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할 것입니다.]

    [관객들은 그 모습을 보며 가짜가 들키지 않기를 바라죠.]

    “그럼 내 동료들이 가짜를 밝혀내면 그 극을 망칠 수 있는 거야?”

    상태창을 향해 말을 걸자 곧바로 새 문장이 떴다.

    [물론입니다!]

    [연출가인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딱 한 가지!]

    쿵, 쿵, 쿵―

    이번에도 하늘에서 거대한 상자들이 떨어졌다.

    [이 상자에 들어 있는 몬스터를 해치우고 힌트를 얻어서 당신의 동료들에게 전달하세요!]

    상자로 눈을 돌렸다.

    다섯 개의 상자 위에는 서로 다른 개수의 별이 붙어 있었다. 느낌상 몬스터의 레벨임에 틀림없다.

    “하아아…….”

    복잡해진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상영까지 남은 시간 120분]

    두 시간 안에 상자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처리하고 힌트를 얻어서 저 공간에 배치해야 한다. 한시라도 더 빨리 그들 옆에 있는 내가 가짜라는 걸 알려줘야만 한다.

    “녹두야!”

    키이잉―

    이름을 부르자 녹두가 팔찌에서 튀어나와 내 옆에 앉았다. 앉은키가 어느새 내 허리에 올 정도로 성장한 모습이었다.

    제법 늠름해진 연두빛 눈동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 상자 보이지? 지금부터 저기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처리할 거야.”

    ‘응!’

    “나 도와줄 수 있지?”

    ‘당연하지!’

    녹두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지금 들으니 목소리도 약간 성숙해진 듯했다.

    나는 녹두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상자 앞으로 발을 옮겼다.

    ‘일단 가볍게 별 한 개부터 열어볼까.’

    철컥―

    별 한 개짜리 상자를 향해 자아를 겨누었다. 그런 뒤 녹두를 향해 눈짓을 한 번 하고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퍼엉!

    작은 폭발음과 함께 상자가 부서졌다. 그와 동시에 부서진 상자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나왔고 이내 길쭉한 형체로 바뀌기 시작했다.

    [★]

    [낡은 조명]

    [체력 : 20,000/20,000]

    발로 차면 부서질 것 같은 조명이었다.

    ‘확실히 별 한 개 몬스터다 보니 약한 녀석이 나왔군.’

    “녹두야, 가자!”

    ‘응!’

    녀석이 스파크를 뿜을 것처럼 움찔거리는 걸 보자마자 녹두를 향해 소리쳤다.

    힌트를 얻기 위한 첫 번째 전투의 시작이었다.

    * * *

    콰광―

    공중으로 뛰어오르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새하얀 궤적을 그리던 탄환이 마침내 폭주 기관차 같던 카트를 관통했다.

    [★★★]

    [비품 카트]

    [체력 : 0/60,000]

    [상영까지 남은 시간 93분]

    “후우, 후, 허억…….”

    멈춰 서 숨을 가다듬을 때, 녀석의 끝을 알리는 상태창이 떴다. 이내 새하얀 공간을 정신없이 굴러다니던 비품 카트가 완전히 산산조각 난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타닥―

    나는 바닥에 착지해 잔해를 발로 치운 후 그 속에 있던 세 번째 힌트 조각을 주웠다.

    [똑같은 번호판 2개]

    글자가 쓰인 돌조각을 들어 도시 미니어처 안에 던져 넣었다.

    덜그럭―

    그러자 그것들은 곧바로 검은 리무진이 되어 도시 모형의 일부가 되었다.

    [DFS1112]

    그 리무진 모형들엔 똑같은 번호판이 붙어 있었다.

    ‘확실히 별 세 개부터는 쓸 만한 단서가 나오네.’

    첫 번째와 두 번째 몬스터를 쓰러트렸을 땐 ‘똑같이 생긴 쓰레기 2개’와 ‘똑같이 생긴 포스터 2장’이 나와서 조슈아를 의심하기 딱 좋은 단서들이었는데, 다행히 이번 건 나쁘지 않았다.

    ‘남은 두 박스에 더 괜찮은 단서가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어.’

    별 네 개짜리 상자 앞에 서서 뚜껑에 붙은 라벨을 살폈다.

    [★★★★]

    [반짇고리]

    [체력 : 120,000/120,000]

    체력이 두 배로 늘었다. 아까 때려눕힌 비품 카트도 보통 녀석은 아니었는데 그것보다 더 강한 놈이라니.

    달칵―

    하나 남은 기력 회복제를 열어 입에 털어 넣었다. 헛구역질이 나올 뻔한 것을 참고 자아의 충전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한 번의 전투 정도는 버틸 수 있을 만큼 남아 있었다.

    “녹두야, 바로 시작할게.”

    ‘응!’

    밝은 녹두의 목소리가 귀에 꽂히자마자 난 발끝으로 상자의 뚜껑을 쳐 올렸다.

    스슥, 스슥―

    아까와 마찬가지로 상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천끼리 맞닿는 듯한 소리만이 이 공간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나무로 만든 듯한 바구니가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쿵―

    다가오던 바구니는 나와 약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기묘한 대치 상태가 이어지길 몇 초.

    콰광!!

    바구니가 열리더니 그 속에서 형형색색의 실들이 튀어나왔다.

    “흡……!”

    퍼버벙!!

    위쪽으로 도약해 몸을 피하자 실들은 무의미하게 바닥만 부쉈다.

    “아우―!”

    녹두의 울음소리와 함께 새하얀 레이저가 반짇고리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지푸라기 몇 올이 바닥으로 하늘거리며 떨어졌다.

    탕!

    방어력을 살피려 가볍게 방아쇠를 당겼다. 흰 탄환이 거대한 바구니를 관통했다.

    [체력 : 118,483/120,000]

    역시 체력만 많은 게 아니라 방어력도 높은 편이었다.

    ‘긴장해야겠어.’

    피잉―!

    “헉……!”

    콰과광!

    활시위를 놓는 듯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바늘이 화살처럼 일제히 나를 노렸다. 그를 파악하자마자 나는 재빨리 실드를 뽑아 그것들을 막았다.

    끼기기긱―

    ‘설마 날 추격하는 건가?!’

    그동안 웬만한 공격들은 실드에 한 번 가로막히면 그대로 추진력을 잃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의 이 바늘 비들은 실드를 뚫고 어떻게든 내 몸을 찢어놓으려 하고 있었다.

    쿵―

    내가 실드를 밀어낸 후 빠르게 바닥으로 착지하자 바늘들이 방향을 바꿔 하강했다.

    [반짇고리는 약이 올랐습니다.]

    [체력 : 118,312/120,000]

    두두두두―

    상태창이 뜨자마자 실타래가 바구니에서 빠져나와 내 쪽으로 굴러오기 시작했다. 물고기 떼처럼 몰려다니며 내 목을 노리는 바늘들도 나를 맹렬하게 쫓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그것들을 향해 나는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공간 자체가 크게 진동하자 수십 개의 바늘과 실타래의 속도가 급격히 줄였다. 실타래의 방향이 바뀌어 엉뚱한 곳으로 굴러가기까지 했다.

    파바박―

    “아악!”

    하지만 그중 몇 개는 기어코 내 팔과 다리를 찢었다. 굵은 바늘 끝이 지나간 자리엔 새빨간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구원자의 무기 창고……!’

    새하얀 배트를 손에 쥐자마자 속도가 느려진 바늘을 향해 휘둘렀다.

    찰그랑, 찰그랑―

    그제야 바늘들이 완전히 힘을 잃고 바닥 위로 떨어졌다.

    [체력 : 112,524/120,000]

    “하아, 하, 윽…….”

    단순히 쓰라림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아이테르의 로브 덕에 다행히 피는 금방 멎었지만 살이 파일 정도로 깊은 공격이었다. 팔과 다리에 생긴 상처 주위가 저릿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반짇고리는 새로운 옷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합니다.]

    [체력 : 112,124/120,000]

    저 녀석은 계속해서 나를 쫓을 것이다. 아까처럼 어설프게 공격 타이밍을 재다간 순식간에 당한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녹두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열심히 공격을 넣고 있었다. 적은 대미지일지는 몰라도, 확실한 공격이었다.

    “녹두야!”

    ‘응?’

    공격을 넣기 위해 울음을 길게 빼던 녹두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미끼가 될게. 그러니까 될 수 있는 대로 공격을 넣어줘!”

    ‘응!’

    녹두는 이번에도 군말 없이 내 말에 수긍하며 혀를 내보이고 웃었다. 역시 나의 동반자다운 모습…….

    ‘…또 이런 식이네.’

    “……어?”

    그때였다. 평소보다 가라앉은 듯한 녹두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나도 모르게 녹두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녀석은 에메랄드 같은 눈을 빛내며 반짇고리를 향해 빛을 뿜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잘못 들은 건가?’

    [반짇고리가 당신의 치수를 잽니다.]

    [체력 : 111,423/120,000]

    찰나의 생각에 빠질 틈도 없이 반짇고리는 다음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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