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65화 (165/366)

165화

“나는 우리 신지의 헌터가 가장 의심스럽거든.”

예상치 못한 미준의 발언에 무대 앞에 있던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세게 물었던 조슈아도 눈을 깜박이며 미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까지 줄곧 지의에 대해 따뜻하게 이야기했었던 그인데, 지금은 그 모습을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지의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미준은 그 반응에도 흔들림 없는 태도로 말을 덧붙였다.

“나도 처음엔 조슈아 군을 의심했어. DF 랭킹 2위에 무기 이름까지 광대의 칼이니까. 얼추 맞아떨어지잖아?”

조슈아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하지만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왕자님이기도 하잖아?”

미준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조슈아를 슬쩍 바라보다 이내 무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증거들, 신지의 헌터한테도 딱 맞는 거 알아?”

미준이 손가락을 한 개 펼쳤다.

“첫 번째 공간에 있던 차 번호판이 DFS 1112였지. DF는 우리가 아는 그 DF로 생각하면 될 것 같고, 남은 알파벳 S와 뒤에 있는 숫자들을 다 더해서 붙이면 공교롭게도 S5야.”

“…신지의 헌터의 DF군요.”

조슈아가 미준을 향해 이야기하자 원했던 답이라는 듯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조슈아의 시선이 지의 쪽으로 넘어갔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미준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똑같은 게 두 번씩 반복되는 등급을 가진 것도 전 세계에서 우리 신지의 헌터 한 사람뿐이네.”

“아까 보여주신 쪽지도 ss가 지워져 있었죠?”

“응.”

이야기를 할수록 지의의 얼굴은 구겨졌다.

‘갑자기 뭐라고 하는 거야…….’

그는 한숨을 길게 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 포스터는 어떻게 설명하실 거예요? 사실 그게 조슈아를 의심하는 결정적 계기였거든요.”

“아, 그거. 그건 정말로 조슈아 군이라고밖엔 설명이 안 되더라.”

“하.”

“근데 포스터의 문장은 신지의 헌터를 말하는 게 맞던데?”

미준의 말에 지의가 눈이 커졌다.

콰드득―

미준이 땅을 차 올려 나무줄기를 뽑아내더니 자신의 도끼날로 글씨를 썼다.

[the lier imitates hero's gift]

나무껍질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자 투박하게 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미준은 도끼를 고쳐 잡더니 이번엔 각 단어의 앞 글자의 주변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끼기긱―

싸늘한 침묵 속, 나무가 깎이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t l i h g]

미준이 글씨가 쓰인 나무줄기를 모두를 향해 들어 보였다. 세 사람의 시선이 정체불명의 단어에 꽂혔다.

“아직도 모르겠어?”

미준은 낮게 웃으며 그 단어 밑에 무언가를 새기기 시작했다.

“…아!”

“뭐……?”

도끼날이 나무에서 떠나자 조슈아와 에이든의 입에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l i g h t]

광대의 칼에 적힌 문장의 첫 알파벳. 그것을 재조합하니 숨겨져 있던 단어 ‘빛’이 드러났다.

조슈아가 고개를 홱 들곤 지의를 바라보았다. 지의는 입을 쩍 벌린 채 자신의 감정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우연일 거예요. 저 진짜로 가짜 아니라고요!”

“신지의 헌터가 말하지 않았어? 가짜가 자신이 가짜가 아니란 걸 모를 수도 있다고.”

지의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자기가 한 말에 결국 곤란해진 것도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지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미준은 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뭐 이런 증거들은 결국 꿈보다 해몽이긴 해. 끼워 맞추기 나름이니까.”

또각―

미준이 지의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잘 닦인 검은 구두코와 낡은 캔버스화의 앞코가 닿을 정도로 두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졌다.

“그런데 아까 피노키오랑 싸울 때 이상한 점을 발견했거든.”

쿵, 쿵―

지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눈동자만 올려 미준의 말려 올라간 입술을 바라보았다.

“조슈아 군 구하러 가다가 왜 포기한 거야?”

지의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곤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제가 가도 해결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콰드득―

“윽?!”

“하미준 헌터!”

나무줄기가 지의의 다리를 꽉 묶었다. 지의는 순식간에 움직임을 봉쇄당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됐다.

미준의 돌발 행동에 조슈아와 에이든이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미준은 통쾌하다는 표정이었다.

“검거 완료~”

“스킬까지 쓰는 건 좀 심하잖아요……! 만약 신지의 헌터가 아니면 어떻게 하실 셈이에요?!”

조슈아의 말에 미준이 고개를 천천히 꺾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저건 가짜가 맞아.”

미준의 눈은 확신으로 가득 찼다.

“해결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안 갔다? 참나 원… 흉내를 낼 거면 제대로 내야지.”

미준은 어이없다는 듯 웃은 후 곧바로 정색했다.

“신지의 헌터는 누군가를 구할 때 절대로 망설이지 않아.”

“…….”

“구할 수 있을지 아닐지 재지 않는다고.”

미준의 머릿속에 몇 개의 장면이 지나갔다.

파이트 클럽에서 재윤의 폭주를 막기 위해 필드로 뛰어들던 뒷모습, 경계에서 자신 대신 공격을 맞았던 순간, 그리고 지의 덕분에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동료들의 얼굴까지.

그가 알고 있는 지의는 포스터에 쓰인 대로 ‘영웅’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 눈앞에 있는 이놈은 영웅을 흉내 내는 거짓말쟁이일 테고.’

쿠구궁―

미준이 지의의 발목을 묶었던 나무줄기를 풀어주었다. 지의가 뒤로 물러나며 미준을 쏘아보았지만 그는 미안한 기색도 없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라 귀엽긴 한데, 그래도 안 봐줄 거야.”

“제가 의심받은 이유가 터무니없어서 그래요. 앞뒤 안 재고 달려드는 습관을 고쳤을 뿐인데……!”

“그 행동은 습관이 아니야. 본능이지.”

미준이 지의의 말을 단칼에 쳐냈다.

“그리고 박격포도 안 쓰더라? 그 무기도 가짜라서 못 바꾸는 건가?”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바닥에 던져서 잘만 쓰던 사람이 왜 이렇게 간이 작아졌어?”

미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얼굴에 띠우며 자신의 손도끼를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저렇게 확신할 수 있는 거지.’

그 상황을 지켜보던 조슈아는 이 공간 어딘가에 있을 지의의 존재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슈아는 누군가의 신뢰를 얻고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창조자와 거래했다. 창조자에게 받은 능력으로 누가 들어도 호감을 얻을 만한 성격과 누구나 부러워할 배경을 가진 사람을 연기했다. 가끔은 자신조차도 자신이 누구인지 까먹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조슈아 체스터’라는 캐릭터에 몰입했다.

하지만 지의는 달랐다. 대가 없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미준을 이 던전 안으로 끌어들일 만큼 그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진실을 고백하는 자]

[진실을 고백하라. 잠깐의 고통은 너희들을 더욱 단단하게 할 테니.]

[달성도 : 50%]

[*달성도를 더 올리려면 자신의 업을 파괴해야 합니다.]

그는 상태창을 열어 자신의 사명을 보았다.

‘정말로 진실을 말해야 할 때가 온 걸까, 조?’

우습게도, 조슈아는 지의에게서 자신의 친구를 보고 있었다.

“왕자님들, 나 한 번만 믿어줄래?”

조슈아가 잠깐 생각에 잠기자마자 미준이 뒤를 돌아 그와 에이든을 향해 말을 건넸다.

“만약 신지의 헌터가 진짜였다면 날 죽여도 좋아.”

“그 정도로 자신 있는 거예요?”

“응. 여기서 신지의 헌터가 잘못되면 어차피 누구한테 죽을 목숨이기도 하거든.”

미준이 키득거리며 지의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은 두 사람도 동시에 지의를 바라보았다.

지의는 새하얗게 질린 채로 무대 위의 소파와 그들을 번갈아 보며 자신이 가짜가 아니라는 걸 밝히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머릿속이 새하얘질 뿐이었다.

[02:34]

텁―

그때 미준이 지의의 팔을 잡았다.

“이만하면 애썼어.”

“…….”

“순순히 올라가 주겠어? 아무리 가짜여도 신지의 헌터의 모습이라 공격하기엔 마음이 아프거든.”

미준은 울상을 지으며 그를 데리고 천천히 무대 쪽으로 이끌었다. 지의도 큰 저항 없이 무대의 계단 위로 걸어 올라갔다.

틱―

지의가 소파에 앉자 허공에 떠 있던 카운트다운이 멈췄다.

그 순간부터 단 네 명뿐인 극장 안은 어느새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신지의의 가짜 판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가짜 판별을 받은 진짜는 영원히 사라집니다.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모두의 눈앞에 붉은 글씨로 쓰인 상태창이 떴다. 다소 위협적인 경고에 미준까지 어깨를 흠칫 떨었다.

툭―

하지만 그의 손은 망설임 없이 ‘예’에 닿았다. 뒤이어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예’ 위로 손을 올리자 남은 건 소파에 앉아 있는 지의뿐이었다.

“하하…….”

그는 허탈한 듯 바닥을 보며 웃다 결국 자포자기한 듯 ‘예’를 눌렀다.

[투표가 종료되었습니다]

[신지의의 가짜 판별을 집행합니다.]

삐이이이―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는 동시에 천장에서부터 붉은 커튼이 매우 느리게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인가요.”

“뭐?”

그때 조슈아가 미준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소파에 앉은 지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덧붙였다.

“신지의 헌터가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저 대신 공격을 맞았을 거라고 확신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조슈아의 질문에 미준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이내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싱긋 웃었다.

“신지의 헌터랑 고작 8개월 정도밖에 안 봤는데 내가 뭘 알겠어.”

“…….”

“하지만 같이 싸워보니까 딱 하나는 잘 알겠더라.”

미준이 고개를 숙인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선한 행동을 할 거라는 걸.”

탁―

커튼이 전부 내려와 지의의 모습을 완전히 가리자 관객석의 조명이 꺼졌다. 무대를 향한 핀 조명이 커튼 위로 밝은 원을 만들었고, 커튼 뒤는 누군가 움직임으로 계속해서 펄럭거렸다.

삐이이이―

다시 커튼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관객석에 있던 세 사람은 숨을 죽인 채 자신들의 선택이 만들어 낸 결과를 기다렸다.

덜컹―

“어……!”

커튼이 전부 올라가자마자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칼로 잔뜩 헤집어 놓은 광대 모양 케이크였다.

케이크가 놓인 소파 위로 시럽처럼 보이는 끈적하고 붉은 액체로 뒤덮여 있었고, 바닥엔 스프레이로 쓴 ‘FAKE’라는 글자가 한 가득이었다.

“서, 성공이에요!”

“하아, 괜히 쫄았네.”

쾅―

미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무섭게 관객석 뒤쪽의 문이 열렸다. 갑작스레 들어찬 밝은 빛에 모두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하…….”

네모난 빛의 한가운데, 그곳엔 그들이 기다리던 ‘진짜’의 실루엣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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