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63화 (163/366)
  • 163화

    [거짓말이 싫은 피노키오가 거짓을 벌하기 위해 자신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체력 : 49,628]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피노키오의 체력은 반으로 줄었다. 그러나 양손에 쥔 날카롭고 거대한 철근 때문에 오히려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녀석은 양손에 철골을 든 채 천천히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조심하세요!”

    쾅!!

    “큿……!”

    에이든이 크게 소리치며 진입 금지를 두 개 더 뽑아냈다.

    간발의 차로 모두가 댐 뒤에 숨어 부상은 피했다. 하지만 피해가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피노키오의 일격에 단단했던 진입 금지에 금이 쩍 갔기 때문이다.

    “허억, 헉…….”

    털그럭―

    에이든이 고개만 돌려 자신의 소환물을 살폈다. 웬만한 S급 보스 몬스터의 공격도 버티는 돌덩어리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모두가 긴장으로 살짝 몸이 굳은 그때.

    파앗―

    지의가 높이 도약해 공중을 딛은 후 피노키오의 시선을 끌었다.

    지의의 움직임에 돌덩이에 닿아 있던 철근이 경로를 바꿔 그대로 지의를 향했다.

    우우웅―

    하지만 공기가 크게 진동해 피노키오의 움직임이 갑자기 느려졌다.

    지의는 자아의 방아쇠를 당긴 채로 한껏 느려진 철근을 피했고, 밑에 있던 헌터들에게 신호를 주었다.

    콰드득―

    미준이 나무줄기를 뽑아 피노키오의 몸을 묶었다.

    “조슈아 군?”

    “알겠어요.”

    치이이익!

    피노키오의 머리 위에 거대한 용암 폭포가 생겨 녀석의 머리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거짓말이 싫은 피노키오가 분노합니다.]

    [체력 : 42,588]

    콰앙!!

    피노키오의 머리는 계속해서 끈적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의 사지는 아까보다 더 민첩해졌다.

    피노키오가 들고 있던 철근 중 하나를 조슈아가 있던 댐 쪽으로 던졌다.

    “큿……!”

    부서진 진입 금지의 잔해가 조슈아의 위로 쏟아졌지만 몸을 굴러 피한 덕에 큰 피해 없이 긁히는 상처로 끝났다.

    타닥!

    그가 불꽃 궤적을 남기며 피노키오와 거리를 좁혔다. 지의도 기세를 몰아 탄환을 더욱 가까이 쏠 생각으로 조슈아가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하강했다.

    우웅―

    지의는 이동하며 공기를 한 번 더 진동시켜 피노키오의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었다. 피노키오의 움직임이 느려진 순간, 조슈아가 녀석의 손목을 잭나이프로 찍은 채 머리를 향해 달려 나갔다. 녀석의 팔에 생긴 자상의 틈으로 용암이 파고들어 몸을 천천히 녹였다.

    “길드장님!”

    그때 피노키오가 조슈아를 쳐내곤 다른 한 손을 높이 들었다. 조슈아는 자신의 위로 그림자가 생기는 것을 느끼며 바닥으로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끼긱―

    “윽……!”

    그러나 뛰어내리기 직전, 잭나이프가 철근 틈에 걸렸다. 조슈아 쪽으로 달려가려던 지의는 그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순간 멈칫하곤 뒤로 물러났다.

    콰앙!!

    피노키오의 손이 조슈아가 서있었던 자신의 팔 위로 떨어졌다. 땅이 뒤흔들릴 정도로 강한 충격에 모두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허억, 컥, 윽……!”

    조슈아가 박혔던 나이프를 포기한 뒤 간발의 차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착지가 불안정했던 터라 발목이 뒤틀려 있었다.

    키잉―

    피노키오의 팔에 박혀 있던 잭나이프는 금세 반지 형태로 돌아와 조슈아의 엄지손가락에 끼워졌다.

    “쯧.”

    미준이 혀를 찼다. 그 소리에 그의 옆에 있던 에이든이 화들짝 놀라 그를 흘긋 쳐다보았다.

    미준의 서늘한 검은 눈동자가 조슈아를 담고 있었다.

    “조슈아 군, 공격할 수 있으면 지원 좀 해줘. 용암만 열심히 부으면 돼!”

    “알겠어요!”

    “신지의 헌터도 큰 거 한 방 준비하고.”

    “네!”

    미준이 익숙하게 지시를 한 후 피노키오의 목을 향해 자신의 손도끼를 던졌다.

    까앙―

    하지만 피노키오는 가볍게 손도끼를 쳐내며 공중에 있던 지의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콰드득―

    [거짓말이 싫은 피노키오가 당황합니다.]

    [체력 : 25,677]

    손도끼에 잠깐 정신이 팔린 피노키오는 자신의 몸이 나무줄기에 포박당해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후두둑―

    또다시 쏟아진 용암 폭포에 이번엔 피노키오의 전신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 조슈아가 후벼 판 팔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였다.

    [거짓말이 싫은 피노키오가 고통에 울부짖습니다.]

    [체력 : 23,677]

    철컥―

    그런 녀석의 바로 앞에 자아가 겨누어졌다. 지의는 피노키오의 몸에 자아를 딱 붙인 채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콰과광!!

    새하얗고 커다란 탄환이 녀석의 가슴 한가운데를 뚫었다. 한 번 생긴 구멍은 점점 더 크기를 넓히더니 이내 철근을 완전히 끊어 놓았다.

    쿵, 쿵, 쿵―

    부서진 철근들이 바닥 위로 떨어지고 용암과 함께 굳어 딱딱하게 눌어붙었다.

    [거짓말이 싫은 피노키오는 거짓을 벌하지 못한 것에 통탄스러워합니다.]

    [체력 : 0]

    [첫 번째 TRUTH or DARE 종료]

    [두 번째 공간이 개방됩니다.]

    “하아, 하아…….”

    “쉬운 놈은 아니었네. 에이든 군의 스킬이 아니었으면 아까 그 공격으로 누구 하난 죽었을 거야.”

    미준이 숨을 고르며 조슈아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자신의 발목을 불로 감싸며 뼈를 붙이고 있었다. 불꽃이 튈 때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괜찮아?”

    “걸을 순 있습니다. 스킬 쓰는 것도 괜찮고요. 근접 전투만 어려울 것 같아요.”

    타닥―

    공중에 있던 지의도 조슈아의 앞에 착지했다. 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슈아의 상처를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여전히 무대 뒤네요. 아, 저쪽에 분장실도 있고요.”

    “전 여기서 조금 더 치료를 하다 갈 테니 단서를 먼저 모아주세요.”

    “알겠어요.”

    조슈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지의가 먼저 자리를 떴다.

    터벅―

    지의는 방금 전의 전투를 떠올리며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위험한 상황이야 늘 있었지만 이 정도로 파괴적인 몬스터는 처음이었다. 녀석의 체력이 반으로 줄은 상태에서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했기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것이지, 만약 장기전으로 갔다면 부상을 입은 사람이 조슈아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DARE는 아예 없는 선택지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어.’

    스륵―

    지의는 무대 뒤 분장실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화장품과 의상처럼 보이는 천들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지의는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채 모든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가짜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천천히 수집했다.

    “아.”

    그때 드레스 안쪽에서 찢어진 쪽지가 손에 잡혔다. 지의가 그것을 꺼내 곧바로 눈앞으로 가져왔다.

    [Princess and Prince]

    [#1]

    찢어진 대본 표지였다. 오래됐는지 Princess의 ss가 바래 있어 얼핏 보면 ‘Prince and Prince’처럼 보였다.

    “왕자…….”

    지의가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 이 공간에 들어온 사람 중 왕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조슈아와 에이든. 그 두 사람뿐이다.

    첫 번째 공간에서 발견한 단서도 조슈아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조슈아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바스락―

    지의는 그 쪽지를 주머니에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우리 공주님, 뭘 보고 있어?”

    “깜짝이야!”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난 미준으로 인해 지의가 소리를 꽥 질렀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움켜쥔 채 미준을 돌아보자 그가 즐겁다는 듯 키득거리고 있었다.

    “하아… 진짜 놀랬네. 왜 그렇게 조용히 들어와요?”

    “너무 집중했나 보네. 나 아까부터 와있었는데.”

    미준은 그 말을 하며 분장실 안에 있던 옷들을 전부 흔들어 보았다.

    “아까 뭐 열심히 읽고 있던 거 같던데. 뭐였어?”

    “아, 별건 아니었어요.”

    “별거 아니긴.”

    갑자기 미준이 얼굴이 싸늘해졌다. 분명 방금 전까지 웃으며 저를 놀리던, 평소의 미준이었다. 그런데 지금 지의의 눈앞에 있는 그는 지의가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범행을 들킨 범인 같은 얼굴을.

    “신지의 헌터가 본 걸 나도 보고 싶은데.”

    “…이거예요.”

    지의가 바지 주머니에 넣어뒀던 찢어진 대본 표지를 천천히 꺼냈다. 그러자 미준은 그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돌렸다. 그러곤 손수 지의의 손가락을 펴 그 쪽지를 가져갔다.

    “흐음… 공주와 왕자라.”

    “글자가 좀 바래서 왕자와 왕자 같기도 해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

    미준이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물론 억지웃음이었다. 아마 그를 처음 본 사람도 그것이 일부러 짓는 표정이라는 걸 알아챌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지의는 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진 미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분장실 밖으로 발을 돌렸다.

    “더 찾은 건 없어?”

    “네. 여기엔 없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지의가 몸을 돌려 분장실의 천막을 손으로 쥐었다.

    바스락―

    그런 그의 뒤로 미준의 손이 불쑥 나타나더니 지의가 잡은 천막의 바로 위를 잡았다.

    커다란 그림자가 지의의 몸 위로 걸리고 시원한 향수 냄새가 피부 위로 훅 끼쳤다.

    “신지의 헌터는 지금 누구를 의심하고 있어?”

    쿵, 쿵, 쿵―

    싸늘한 목소리에 지의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었나?’

    자신의 손 바로 위, 그 커다란 손이 금방이라도 자신의 손목을 비틀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미준이 두렵게 느껴졌다.

    지의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뗐다.

    “조슈아요.”

    “왜?”

    “아까 첫 번째 공간에서 얻은 단서인 2가 아무래도 DF 랭킹을 말하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하미준 헌터가 조슈아를 왕자라고 부르기도 하니까요.”

    “아하하.”

    바스락―

    미준이 천막을 잡았던 손에 힘을 풀었다. 제 몸에 걸렸던 미준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서야 지의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서늘한 미소를 입가에 띤 채 말을 덧붙였다.

    “그를 왕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의심을 안 해본 거야?”

    지의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자기를 의심하란 건가?’

    그의 언동에 지의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조슈아를 향했던 단서들이 갑자기 방향을 돌려 미준의 주위를 맴돌았다.

    지의는 분장실을 천천히 빠져나가면서 입을 열었다.

    “하미준 헌터, 혹시 생일이 언제예요?”

    “나?”

    미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살풋 웃으며 대답했다.

    “5월 2…….”

    “다들 이쪽으로 와보세요!”

    그의 대답이 채 끝나기 전에 갑자기 에이든이 소리쳤다. 그에 지의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가 난 쪽으로 몸을 틀었다. 고개를 쭉 빼자 에이든이 종이 포스터를 흔들고 있었다.

    “일단 갈까? 우리 왕자님이 좋은 정보를 찾은 것 같은데.”

    “…네.”

    미준이 지의의 어깨에 팔을 감싼 채 에이든이 있는 비품실 천막 쪽으로 그를 이끌었다.

    비품실 천막은 거짓말이 싫은 피노키오의 잔해 바로 옆이었다. 어느 정도 치료를 끝낸 조슈아도 에이든이 있는 곳으로 합류한 상태였다.

    “이거, 이거 좀 보세요.”

    에이든이 말까지 더듬으며 지의에게 포스터를 내밀었다. 칼을 든 광대가 그려진 흑백의 포스터였다.

    “섬뜩하군.”

    “더 섬뜩한 점은 칼에 적힌 글자예요.”

    에이든의 말에 지의와 미준이 광대의 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the lier imitates hero’s gi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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