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TRUTH or DARE에서 절대 거짓말하지 않기로.”
어쩌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무엇보다 필요한 말이었다.
“아하하! 신지의 헌터,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할 말이야?”
“네? 아… 제가 너무 심각하게 얘기했나요?”
“TV에서 보던 모습과 약간 달라서 놀랐네요!”
미준과 에이든이 웃음을 터트리며 순식간에 분위기를 풀었다. 지의도 그들의 반응에 멋쩍은 듯 괜히 머리를 정리하며 적당히 웃어 넘겼다.
하지만 조슈아는 웃을 수 없었다.
거짓과 연기가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에게 있어 지의의 요구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는 극장의 문 앞에 선 채로 멍하니 지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설마 나를 압박하는 건가?’
조슈아의 시선을 느낀 지의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조슈아는 바로 극장 쪽으로 몸을 틀어 그 시선을 피했다.
“여기서 모을 수 있는 단서는 다 모은 것 같으니, 빨리 갈까요?”
“그래, 어서 가자고.”
조슈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작게 얘기한 덕분에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쿵―
모든 사람이 어두운 극장에 들어가자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
그러자 곧바로 게임에서나 들릴 법한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그들의 앞에 카드 두 장이 나타났다. 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때문에 가장 먼저 극장에 들어선 조슈아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TRUTH : 이 카드를 고르면 당신은 무조건 진실만 이야기해야 합니다. 거짓을 이야기할 시 DARE 카드가 강제로 오픈됩니다.]
[DARE : 이 카드를 고르면 당신은 무조건 몬스터와 싸워야 합니다. 몬스터는 당신의 파괴력과 동일한 수준으로 등장합니다.]
그가 천천히 눈을 뜨자 그의 눈앞에서 카드가 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조슈아 군이 골라야 하는 건가?”
타타탁―
[첫 번째 도전자 : 조슈아 체스터]
미준의 말을 듣고 반응이라도 한 듯 허공에 또 다른 글자가 떴다.
‘아주 쐐기를 박는군.’
조슈아는 속으로 이 공간을 저주하며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TRUTH는 대충 예상했는데 DARE가 생각보다 엄청나네요…….”
에이든은 제 길드장을 슬쩍 보며 입을 열었다. 조슈아가 적당히 대꾸하며 카드를 빤히 바라보자 미준과 지의도 그의 주변으로 다가왔다.
“조슈아 군, 현재 DF가 어떻게 돼?”
“S2 A99요.”
“흐음. DF 1, 2위가 전부 있으니까 해볼 만한 거지 그게 아니면 자멸 행위군. 여기선 무조건 TRUTH야.”
“게다가 몇 마리가 나올 지도 모르니까요.”
지의가 말을 덧붙이자 미준이 혀를 차며 고개를 꺾었다.
툭―
그러더니 조슈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싱긋 웃었다.
“걱정 마! 여기서 내가 조슈아 군의 비밀을 듣게 되어도 절대로 얘기하지 않을 테니까!”
“네가 뭘 듣게 될 줄 알고 나한테 그런…….”
“어머?”
“아.”
가면으로 겨우 눌러놓았던 조슈아의 감정이 결국 새어나왔다.
낯선 억양과 처음 듣는 조슈아의 날선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새카만 공간을 더욱 적막하게 만들었다.
“…우리 왕자님, 걱정이 많으신가 보네.”
“하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아무것도 아니야~ 자, 빨리 TRUTH 잡아.”
조슈아가 다시 웃는 얼굴로 미준을 올려다보자 미준은 흥미롭다는 듯 픽 웃곤 카드를 향해 턱짓을 했다.
탁―
조슈아가 TRUTH 카드를 잡자 DARE 카드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파아앗―
TRUTH 카드가 높이 날아오르는 동시에 앞뒤가 뒤집혔다. 모두의 시선이 카드를 향했다.
[당신의 집무실에 살고 있는 그 아이는 누구입니까?]
[제한 시간 : 60초]
쿵―
조슈아는 누군가 자신의 몸을 꽉 쥐고 있는 것처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극도의 긴장 때문에 그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이 던전이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내가 이 파편을 갖고 있어서? 아니면 창조자가 내가 배신한 걸 알았나?’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의문들이 조슈아의 목을 강하게 조를 뿐이었다.
“조슈아 군.”
“길드장님……!”
“네? 아, 그…….”
48, 47, 46.
시간은 점점 줄고 있었다. 재촉하지 않으려던 에이든마저 조슈아를 부르며 대답을 부추겼고, 결국 조슈아는 억지로 웃으며 카드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갔다.
“제, 제 집무실에는…….”
쿵, 쿵, 쿵―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벤자민의 웃는 얼굴과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크리머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지의는 조슈아의 뒷모습을 아무런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하하…….”
그때 갑자기 조슈아가 웃기 시작했다. 창백해졌던 얼굴도 순식간에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고 갈 곳을 잃은 푸른 눈동자는 너무나도 안정적으로 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마저 속일 수 있는, ‘가면’의 재림이었다.
그는 카드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느새 그의 입가엔 여유로운 미소까지 걸려 있었다.
“살고 있는 아이라뇨. 그런 거 없습니다.”
30, 29, 28.
시간이 줄어들기만 할 뿐 카드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조슈아는 아까보다 더 능청스러운 태도로 말을 덧붙였다.
“아, 식물은 몇 개 키우고 있죠. 아레카 야자랑 안수리움.”
23.
그가 싱긋 웃으며 말을 마치자 카운트다운이 멈췄다.
TRUTH 카드는 조슈아의 눈앞으로 스르륵 내려와 그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파지직!
“큿……!”
“조슈아!”
TRUTH 카드가 그의 앞에서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로 인해 조슈아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가자 지의가 곧바로 달려가 그의 몸을 받쳐주었다.
“대체 뭔……!”
조슈아가 눈을 뜨고 카드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DARE]
[※규칙 위반※]
[당신은 거짓을 말했습니다.]
[DARE 카드가 강제로 오픈됩니다.]
어느새 TRUTH 카드가 DARE 카드로 바뀌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라빛 연기와 함께 카드가 사라지고 이 공간 전체를 둘러쌌던 어둠이 순식간에 걷혔다.
타닥―
우주처럼 넓었던 공간이 무대의 백스테이지로 바뀌었다.
바뀐 공간엔 소품처럼 보이는 나무판자와 천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철골 구조물은 아슬아슬하게 그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길드장님, 집무실에 대체…….”
“네? 아니, 저, 그게…….”
“일단 전투 준비부터 하세요!”
혼란스러워 하는 에이든과 조슈아를 향해 지의가 소리쳤다.
철컥―
지의는 곧바로 자아를 손에 쥔 후 어디에 있을지 모를 몬스터를 향해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래, 궁금한 게 있으면 나중에 물어. 지금은 S급 세 마리 정도의 힘을 가진 놈을 때려 눕혀야 하니까.”
“…에이든 헌터, ‘진입 금지’ 미리 설치해 주시고 방어 및 공격 보조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조슈아는 에이든에게 빠르게 지시한 후 자신의 무기인 ‘광대의 칼’을 양손에 쥐었다.
쾅, 쾅, 쾅―
댐처럼 생긴 거대한 돌덩이 세 개가 공중에서 뚝 떨어졌다. 에이든의 고유 스킬인 ‘진입 금지’였다.
“무슨 일 있으면 저 뒤로 도망치세요. 웬만한 S급 공격은 거의 버텨줍니다.”
“든든한 스킬이네. 고마워, 왕자님.”
“저, 저 애인 있어요.”
“하하, 왕자한테 왕자라고 하는 것도 안 되나?”
“하미준 헌터.”
“알겠어, 신지의 헌터.”
지의는 에이든을 향한 미준의 추파를 단번에 끊은 후 에이든의 진입 금지를 슬쩍 살폈다. 얼핏 보기에도 단단해 보였다.
쿠구궁―
생각에 잠기기 무섭게 벽 쪽에 있던 철골 구조물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철골들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위로 튀어 올랐고 곧바로 어떤 형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철그럭, 철그럭―
모두 철골에 시선을 고정한 채 숨을 죽일 때쯤, 철골이 드디어 완전한 형태를 갖췄다.
거대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치지직―
[거짓말이 싫은 피노키오]
[거짓을 벌하기 위해 태어난 피조물]
[체력: 100,000]
그리고 녀석의 옆에 실로 수놓은 듯한 삐뚤빼뚤한 문장이 나타났다.
“바로 공격할게요!”
투쾅!
지의의 외침과 동시에 미준이 구두 앞코로 땅을 차 올렸다. 그러자 굵은 나무줄기들이 뱀처럼 피노키오를 향해 뻗어갔다.
우드득―
하지만 피노키오가 그것들을 잡아 너무나 쉽게 끊어버렸다.
“쳇, 역시 보통 녀석은 아니구나.”
미준이 혀를 차며 도끼를 들었고 피노키오와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쩌엉!
은색 도끼날이 피노키오의 발목을 찍어 내리자 미준의 몸 전체가 징하고 울렸다. 둔중한 진동에 그가 이를 아득 갈며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조슈아가 피노키오의 눈앞으로 뛰어 올랐다.
“흡……!”
치이이익―
조슈아의 잭나이프가 허공을 가르자 시뻘건 용암이 피노키오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거짓말이 싫은 피노키오가 거짓을 벌하지 못해 괴로워 합니다.]
[체력 : 97,241]
‘일반 S급 몬스터보다는 확실히 강해.’
공격의 타이밍을 재던 지의가 체력 상태창을 한 번 본 후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새하얀 탄환이 일직선의 궤적을 그리며 용암으로 뒤덮인 피노키오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콰직!
탄환은 정확히 녀석의 미간을 꿰뚫었다.
[체력 : 92,142]
지의의 공격을 처음 본 에이든이 잔뜩 놀란 눈으로 지의를 바라보았다. 작은 소리 탄환은 모든 것을 녹이는 용암보다도 강했다. 그토록 강력한 공격을 시전한 지의였으나, 조슈아의 눈에 비친 그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신지의 헌터! 제가 앞에서 주의를 끌 테니까 계속해서 공격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조슈아가 자신의 연계 패시브 스킬인 화염 돌격을 활성화시킨 후 피노키오의 다리 주위를 빠르게 휘저었다. 그가 지나간 곳을 따라 불길이 타올랐다. 그로 인해 피노키오의 발이 묶였다.
탕, 탕, 탕―
탄환이 피노키오의 두 눈을 노렸지만 녀석이 빠르게 허리를 접은 탓에 탄환은 녀석의 몸을 스치지도 못했다.
“잠깐, 저 녀석 좀 이상한데?”
미준의 경고에 모두 뒤로 한발 물러났다.
그때, 피노키오가 자신의 팔을 감싸 안으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콰직!!
피노키오가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이내 자신의 양팔을 이루고 있는 철근을 하나씩 뽑아 검처럼 쥐었다.
[거짓말이 싫은 피노키오가 거짓을 벌하기 위해 자신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체력 : 49,628]
거짓말쟁이를 심판하기 위한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