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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61화 (161/366)
  • 161화

    조슈아가 갖고 있던 창조자의 파편이 게이트가 되어 나타났다. 연기자의 파편, 그리고 ‘가면’이라는 그의 이명에 맞게 그의 게이트 역시 가면으로 뒤덮여 있었다.

    쾅!

    “조슈아!”

    “길드장님!”

    게이트가 갑자기 열리더니 그 속에서 장갑을 낀 손이 튀어나왔다. 그 손은 조슈아의 허리를 움켜쥐곤 그대로 게이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투쾅!

    이동 스킬이 있었는지, 에이든이 가장 먼저 조슈아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하미준 헌터 저 꽉 잡고, 제가 셋 하면 뛰어요.”

    “알겠어.”

    콰직!

    작살총 형태로 바꾼 자아를 커다란 손목 쪽으로 겨눈 채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손목에 제대로 박힌 작살을 확인한 후 하미준 헌터의 허리를 감싸자 그도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곤 자아를 잡은 내 손까지 같이 받쳐주었다.

    “하나, 둘, 셋!”

    후웅―

    방아쇠를 당기는 동시에 도약하자 하미준 헌터와 내 몸이 단숨에 게이트와 가까워졌다.

    게이트는 조슈아를 완전히 삼킨 후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지만 게이트가 완전히 닫히기 전, 먼저 도착한 에이든이 문을 잡고 버텼다.

    “조심하세요!”

    “들어가겠습니다!”

    내 경고와 함께 에이든이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고 나와 하미준 헌터도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시커먼 공간 속으로 몸이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치지직―

    [표리부동한 연기자가 관객들을 향해 인사합니다.]

    [관객들은 그에게 장미와 키스를 날립니다.]

    [모두가 그의 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창조자의 파편 안에 들어온 걸 알려주듯, 표리부동한 연기자에 대한 문장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글자 너머로 정신을 반쯤 잃은 채 부유하는 조슈아와 그런 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는 에이든이 보였다.

    [표리부동한 연기자가 허리를 숙이자 새빨간 커튼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옵니다.]

    [“이젠 이 역할도 질리네.”]

    [표리부동한 연기자는 무대 뒤로 내려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그가 몇 년간 연기해 온 역할에 완전히 질려버린 모습입니다.]

    [“조금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걸.”]

    [표리부동한 연기자가 대본을 뒤적거립니다.]

    “이 글자들은 원래 나타나는 거야? 경계보다도 더 이상한데.”

    “네. 가평에 있던 건 미식가, 그리고 영국에 있던 건 소설가였어요.”

    “미식가, 소설가, 연기자……. 아주 예술가가 따로 없군.”

    하미준 헌터는 눈앞에 뜬 글자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대본은 뭐지?”]

    [그는 앞에 놓인 수많은 대본 중 가장 낡은 것을 들어 봅니다.]

    [대본엔 ‘가짜 광대의 말로’라고 쓰여 있습니다.]

    [권태로 가득 찼던 그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립니다.]

    [“다음 역할은 이게 좋겠어.”]

    쿠구궁―

    우릴 둘러싼 시커먼 공간이 갑자기 붉게 물들었다. 자세히 보니 벨벳 소재의 천이었다. 그것들이 점점 우리 쪽으로 다가옴을 느낀 그 순간.

    [입장한 진짜 4명]

    [입장한 가짜 1개]

    [거짓된 시간선에 입장합니다.]

    [*가짜를 찾아내면 표리부동한 연기자와 만날 수 있습니다*]

    의식이 멀어졌다.

    * * *

    또각―

    “어이쿠.”

    미준은 자신의 발이 땅에 닿자마자 정신을 차렸다. 다리에 힘을 주어 넘어질 뻔한 것을 이겨낸 그는 제 옆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지의를 내려다보았다.

    “신지의 헌터, 괜찮아?”

    “꼬리뼈가 욱신거리긴 하는데 괜찮… 윽!”

    지의가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다 짧은 비명을 지르며 다시 주저앉았다. 그에 미준이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숙여 지의의 몸을 살폈다. 지의의 손목이 살짝 부어 있었다.

    “아까 착지하다가 손목을 좀 다쳤나 봐요.”

    “괜찮겠어?”

    “그래도 왼손이니까 무기 쓰는 덴 지장 없을 거예요.”

    미준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의를 일으켜 주었다.

    ‘몸이 어떻든 전투 생각뿐이구나.’

    미준의 시선을 무시한 채 지의는 곧바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사방을 둘러싼 고층 빌딩엔 연극과 뮤지컬 포스터가 한가득 붙어 있었다.

    주변을 살피며 지의는 운전자가 없는 차들이 멈춰 선 4차선 도로로 걸어 나왔다.

    “브로드…웨이?”

    신호등 옆에 붙어 있는 표지판을 읽은 지의가 미준을 돌아보았다.

    “뉴욕이네.”

    미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지의 쪽으로 걸어왔다.

    “신지의 헌터는 처음 와보지?”

    “네. 지금 건물에 붙어 있는 것들 전부 뮤지컬 포스터죠?”

    “응. 오페라랑 연극도 몇 개 있네.”

    거리를 한참 살피던 지의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폈다.

    “조슈아! 에이든 헌터! 어디 계세요?”

    “이쪽입니다!”

    지의의 외침에 도로 건너편 인도에 서있던 에이든이 손을 흔들었다. 잠깐 정신을 잃었던 조슈아도 어느새 깨어나 주변을 탐색하며 지의를 향해 발을 돌렸다.

    “조슈아 군, 아까 보니까 게이트가 폭발하듯이 생긴 것 같던데. 전에 봤던 그 게이트 맞아?”

    “맞아요. 제가 이걸 처음 발견했을 때도 그렇게 나타났거든요. 평소에는 모습을 숨겼다 갑자기 나타나는 형태인가 봐요.”

    “하, 진짜 말도 안 되는 게이트군.”

    조슈아는 능숙하게 거짓말로 대답한 후 지의를 바라보았다. 지의는 만족한 듯 입꼬리를 올려 씩 웃어 보였다.

    탁, 탁, 탁―

    그때, 어디선가 타자기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지의를 포함한 모든 헌터들이 소리의 방향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좁은 하늘에 글자가 입력되는 광경이 보였다.

    [시놉시스]

    [정체불명의 예술가가 4명의 ‘진짜’들을 초대한다. 하지만 그중 하나가 초대에 응하지 않자, 예술가는 자신의 광대인 ‘가짜’를 초대한다.]

    [“네가 진짜인 것처럼 연기를 해야겠구나.”]

    [‘진짜’들을 골릴 생각에 신이 난 ‘가짜’는 초대를 거절한 ‘진짜’를 흉내 내기 위해 그의 모든 것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진짜’가 말하는 방식, ‘진짜’의 걸음걸이, ‘진짜’의 생각까지 말이다.]

    [기회는 단 한 번. 단서들을 모아 ‘진짜’를 연기하는 ‘가짜’를 찾아서 무대 위로 올려라.]

    [*가짜를 가려내면 표리부동한 연기자와 만날 수 있습니다*]

    “가짜……?”

    하늘에 뜬 글자를 한참 노려보던 조슈아가 입을 열었다. 자신이 보고 있는 문장을 하나 씩 뜯어보며 그 의미를 이해하려 했다.

    “지금 우리 중에 가짜가 있는 것 같네요.”

    지의가 힘겹게 입을 뗀 후 눈동자만 굴려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에이든, 문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조슈아. 그리고 입술을 잘근거리며 생각에 잠긴 미준. 일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모습이지만 모든 것이 전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타타탁―

    그때 또 다른 문장이 하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음 장소로 넘어가기 전 TRUTH or DARE에 도전해야 합니다.]

    지의가 눈을 가늘게 뜨고 ‘TRUTH or DARE’라 적힌 글자를 바라보다 미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저를 보는 지의의 시선의 뜻을 알아챈 미준이 싱긋 웃곤 말을 덧붙였다.

    “진실 게임 같은 거야. TRUTH를 고르면 묻는 말에 무조건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고, DARE를 고르면 상대방이 시키는 일을 무조건 해야 하지.”

    지의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글자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을 하면 들키는 건가?’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방법이 의문점이었다. 하지만 미식가의 파편에서도 다른 사람의 트라우마를 완벽하게 구현시킨 걸 보면, 사람들이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거짓을 이야기하는지 구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순 없었다.

    딱―

    지의가 마른세수를 하는 동안 조슈아가 손가락을 튕겨 주의를 환기시켰다.

    “일단 흩어져서 단서를 모으죠.”

    “좋아. 내가 사거리 쪽을 한번 찾아볼게.”

    “그럼 전 극장 건물들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에이든과 미준이 먼저 움직이자 도로 한복판에는 조슈아와 지의만 남았다.

    “후우…….”

    조슈아가 한숨을 길게 쉰 후 낮게 욕을 중얼거렸다. 지의의 말에 설득돼 파편을 부순 것까지는 좋았으나, 자신의 예상을 너무나 벗어난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인상을 구긴 채로 지의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머릿속이 복잡한 눈치였다.

    “창조자 놈의 파편이란 건 다 이 모양이야? 싸구려 추리게임도 아니고 뭔 단서를 모으래?”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

    지의는 그의 투덜거림을 단칼에 끊은 후 도로에 있는 차들을 살폈다.

    각기 다른 기종의 차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있었다. 차 번호판과 백미러에 달린 인형 장식을 보며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슥 훑었다.

    “야, SS급. 저기 봐.”

    그때 조슈아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의 말에 지의가 고개를 들어 그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트럭?”

    조슈아의 손끝이 향한 곳엔 트럭 한 대가 있었다. 도로에 있는 차 중 유일하게 헤드라이트가 켜진 것이었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것을 향해 다가가자 갑자기 헤드라이트가 두 번 깜박거렸다.

    “수상하긴 한데…….”

    지의가 중얼거리며 운전석 문을 열었다. 그러곤 매캐한 먼지에도 아랑곳 않고 트럭 내부를 살폈다.

    장화 한 켤레와 먹다 남은 테이크아웃 커피 잔 두 개. 그리고 낡은 신문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사락―

    지의는 곧장 신문을 끄집어 내 눈에 띄는 글자 몇 개를 읽었다.

    [May 2nd]

    ‘여기도 2가 있네.’

    지금까지 이 트럭에서 발견한 것들은 전부 두 개씩이었다. 마치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단서가 2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지의가 눈동자만 슬쩍 굴려 조슈아를 바라보았다. 그와 2를 연결해 보려는 듯 머릿속으로 빠르게 가정 몇 개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뭐 좀 발견했어?”

    “그냥 신문이랑 쓰레기 몇 개 정도.”

    조슈아의 물음에 지의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며 대답했다. 그는 다시 신문을 차 안에 넣으며 트럭에서 빠져나왔다.

    “잠깐 이쪽으로 좀 와주겠어~?”

    미준이 큰 소리로 조슈아와 지의를 불렀다. 두 사람이 사거리로 걸어 나오자 미준은 리무진 보닛에서 내려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대충 이 사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차들의 번호판을 봤거든? 근데 공교롭게도 두 대가 똑같은 번호판을 달고 있더라고.”

    “방금 하미준 헌터가 앉아 있던 저 차가 그중 하난가요?”

    “역시 조슈아 군은 눈치가 빨라.”

    미준이 조슈아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며 말을 덧붙였다.

    조슈아는 허리를 살짝 숙여 리무진의 번호판을 살폈다.

    [DFS1112]

    ‘같은 번호판을 가진 차가 두 대…….’

    조슈아의 뒤에서 번호판을 바라보던 지의가 눈썹을 움찔거렸다. 그러곤 미준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아까 저희가 본 트럭도 헤드라이트가 두 번 깜빡였어요.”

    “오, 그래?”

    “좌석에도 먹다 남은 음료수 같은 게 두 개씩 있었고요.”

    “역시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단서는 숫자 ‘2’인 것 같네.”

    지의의 말에 미준이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극장도 똑같은 포스터가 두 장씩 걸려 있습니다!”

    멀리서 조사하던 에이든도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단서들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조슈아 DF 랭킹이 2위였지.’

    지의는 곁눈으로 조슈아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거리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끼이익―

    그때 사거리 앞에 있던 극장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 너머는 새카만 어둠으로 물들어 있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 극장이 다음 장소 같죠?”

    “그렇네.”

    조슈아와 미준이 극장 쪽으로 성큼 발을 돌렸다. 에이든도 높이 도약하더니 그쪽으로 단숨에 착지했다.

    “잠깐만요.”

    지의가 갑자기 그들을 불러 세우자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지의는 입을 다문 채 생각을 잠깐 정리하다 그들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저희 딱 하나만 약속하고 갑시다.”

    평소보다 서늘해진 지의의 태도에 모두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TRUTH or DARE에서 절대 거짓말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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