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TRUTH or DARE】
―한국의 하미준입니다.
집무실에 리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나도 모르게 숨을 훅 들이켰다.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닌지 조슈아도 눈을 크게 뜬 채 날 바라보았다. 날 의심하는 듯한 눈빛에 내가 고개와 손을 젓자 그는 입술을 비틀곤 짧은 생각에 잠겼다.
“5분 후에 들여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드르륵―
통신이 끊기자마자 조슈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방구석에 있던 쓰레기통을 가져와 테이블 위의 다과를 전부 쓸어 담고, 좀 전의 전투 때문에 깨진 컵들과 엎질러진 커피도 깔끔하게 치웠다.
“후…….”
그 모든 청소 과정이 체감상 1분 만에 끝났다.
아수라장이었던 집무실은 언제 전투가 있었냐는 듯 내가 처음 왔을 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지의 헌터.”
“뭐, 뭐야.”
“그래도 우리가 말을 맞춰야 하지 않겠어요?”
분명 이 가식적인 목소리를 더 많이 들었는데 그새 낯설어져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조슈아는 생긋 웃으며 소파에 앉았고 핸드폰을 꺼내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신지의 헌터는 제 초대 때문에 이곳에 온 거예요. 제가 당신을 부른 이유는 이상한 게이트를 발견해서 공동 공략을 요청하기 위함이고요.”
“그래.”
“공략비는 오십만 달러. 아이템 및 부산물 습득 시 텍사스 헌터 마켓 시세로 판매 후 수익을 7 대 3으로 배분. 아, 물론 신지의 헌터가 7이에요.”
“그런 건 알아서 해.”
“그리고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죠.”
웃고 있던 조슈아의 눈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그 던전만 공략되면 정말로 끝이야?”
“…….”
“네가 말한 그 창조자의 파편이 부서지면 정말 이 계약 관계는 완전히 끝나냐고.”
레일리와 같은 반응이었다.
그는 듣는 사람도 없는데 목소리를 낮춘 채로 이야기했다. 아마 그도 불안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이 사람도 온전히 내가 하는 말을 믿고 절대자를 배신하는 거니까.
적대감이 느껴지는 눈동자와 올곧게 눈을 맞췄다.
“던전을 공략하고 파편이 부서진 것만으로 계약 관계가 끝나지 않아. 창조자가 너한테 업을 뒤집어 씌웠으니까.”
“그럼 난……!”
“그 업을 내가 제거할 수 있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조슈아 쪽으로 상체를 살짝 숙였다. 푸른 눈동자에 비친 내가 보일 정도로 나와 조슈아가 가까워졌다.
“그러려면 네가 날 믿어줘야 해.”
“…….”
“나도 네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까.”
[발언 결과 : 의문]
조슈아가 고개를 뒤로 뺐다. 여전히 나를 경계하는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카르마의 탄환의 사용 조건은 말의 씨앗의 개화. 즉, 나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난 그 신뢰를 위해 창조자 대신 사도들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 사명을 반드시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
우웅―
그때 집무실 문이 열렸다.
“이야~ 조슈아 군, 잘 지냈어?”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하미준 헌터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새빨간 재킷 주머니에 꽂은 후 조슈아 쪽으로 성큼 걸어왔다.
“반갑습니다, 하미준 헌터. 시카고에서 뵙고 처음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아, 신지의 헌터도 이런 데서 보니까 더 반갑네?”
“어쩌다 온 거예요?”
내 물음에 하미준 헌터가 윙크를 한 번 하곤 다시 조슈아를 바라보았다.
“출장 AS랄까?”
“AS요……?”
“조슈아 군이 나한테 무기를 받아간 지 벌써 2년이 지났잖아. 몸도 1년에 한 번씩 검진을 받는데, 무기도 그래야 하지 않겠어?”
조슈아가 눈썹을 치켜든 채 하미준 헌터를 바라보기만 했다.
‘딱 봐도 핑곈데.’
아까 나를 향해 느끼한 윙크를 날린 것과 목적 없이 행동하지 않는 하미준 헌터의 성격. 그 두 가지 상황만 가지고 생각해도 무기 AS라는 말은 100 퍼센트 핑계였다.
“하미준 헌터가 직접 와서 무기를 봐주다니, 영광도 이런 영광이 없네요.”
“조금 더 영광으로 생각해도 돼. 조슈아 군이 처음이니까 말이야.”
“아하하~ 그럼 부탁드릴게요.”
철그럭―
조슈아가 자신의 무기인 ‘광대의 칼’을 하미준 헌터에게 내밀었다. 그는 양손으로 그것을 받은 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어디 보자…….”
후우웅―
하미준 헌터가 팔을 위로 뻗자 초록색 연기와 함께 그의 손에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방망이가 쥐였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고유 스킬, ‘도깨비 방망이’였다.
그는 방망이에 붙은 부적을 떼 광대의 칼에 하나씩 붙이기 시작했다.
“아, 미래랑 그 남매는 뭐하고 있어?”
“연구 지원이랑 생산 계약 건 때문에 기업들 만난다고 했어요.”
“그렇구나. 거기도 고생하겠네.”
정말로 수리를 하고 있는 건지 조슈아의 무기에 붙은 부적을 뗄 때마다 초록색 연기가 같이 새어나왔다.
“그럼 신지의 헌터는 여기 왜 있는 거야? 시카고에서 만난 이후로 둘이 연락이라도 주고받았어?”
그의 말을 듣자마자 눈만 빠르게 조슈아에게로 옮겼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신호를 주었다.
“던전 공동 공략 제안을 받았거든요.”
“공동 공략?”
“네. 아무래도 제가 처음 보는 형태의 던전인 것 같아서요.”
조슈아가 대화에 꼈다. 하미준 헌터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불릿 길드의 수장도 모르는 형태이면 꽤 위험할 것 같은데 말이지.”
“그래서 SS급인 신지의 헌터의 도움을 요청드렸죠.”
“흐음……. 신지의 헌터, 할 거야?”
그가 곧바로 타깃을 나로 바꿨다. 입으론 내 의사를 물었지만 그의 눈은 우려나 의문보다는 확신이 가득했다.
내가 그 던전에 기꺼이 들어가리라는 확신.
“네.”
“그럴 줄 알았어.”
“공짜로 가는 건 아니에요. 저도 조슈아한테 보수를 약속받았거든요.”
“소속 길드원의 세 배에 달하는 보수를 약속드렸습니다. 신지의 헌터께서 원하시면 더 얹어드릴 수도 있고요.”
“그렇구나.”
조슈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하미준 헌터가 광대의 칼에 붙여뒀던 마지막 부적을 뗐다. 그러곤 그 잭나이프들을 한 손에 잡아 조슈아에게 건넸다.
“혹시 나도 따라가도 될까?”
‘뭐?’
예상치 못한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러나 그런 나와 달리 하미준 헌터는 여유로운 얼굴로 조슈아와 나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아, 설마 보수 때문에 그런 거야? 돈은 필요 없어. 내가 어떻게 조슈아 군한테 돈을 받겠어.”
“으음… 그럼 왜 오시려는 거죠?”
“글쎄, 동료가 한눈파나 안 파나 감시하려고?”
하미준 헌터가 이번엔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요즘 따라 신지의 헌터가 자~꾸 겉돌아서 말이야.”
“거, 겉돌다뇨.”
툭―
하미준 헌터가 옆에 앉더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대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같이 좀 가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 조슈아 군?”
‘완전 막무가내네.’
하지만 이렇게까지 행동해서 하미준 헌터가 나를 따라오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나를 조사하려는 의도거나, 아니면 세빈이의 부탁 때문이겠지.
어차피 여기서 돌아가면 김강희를 제외한 S급들에겐 모든 사실을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지금 하미준 헌터가 따라온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조슈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내 사인을 알아챈 그가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더니 하미준 헌터를 향해 입을 뗐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그럼 기쁜 마음으로 하미준 헌터의 호의를 받겠습니다.”
“고마워~ 공략일은 언제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저희도 빨리 귀국하는 게 좋으니까.”
“응, 응.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하미준 헌터는 애교스러운 말투로 대답하며 어깨에 더욱 집요하게 기댔다.
‘아오, 뻐근해…….’
어깨를 밑으로 슥 빼자 그의 머리가 밑으로 훅 꺼졌다. 하마터면 내 허벅지에 그의 머리를 박을 뻔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세팅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조슈아가 그 모습을 보며 낮게 웃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말을 덧붙였다.
“그럼 자세한 파견 계획은 출발할 때 전달드리죠. 내일 오전에 뵙겠습니다.”
* * *
다음 날 오후, 텍사스 마파(Marfa).
나와 하미준 헌터를 태운 헬기는 우리를 ‘마파’라고 하는 사막 마을에 내려주곤 다시 떠났다.
공기는 적당히 시원하나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로 내리쬐어 두피가 따가울 정도였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야.’
조슈아의 시나리오는 이러했다.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문 이 지역에서 수수께끼의 게이트를 발견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와 하미준 헌터, 그리고 자신의 길드에 소속된 S급 방어계 헌터 하나를 공략팀으로 구성한다.
조슈아가 게이트 위치를 찾는 것을 핑계로 무리에서 잠시 이탈하여 창조자의 파편을 부수면 우리 모두가 그 안으로 들어가 클리어를 하는 것이다.
“겨울이어도 텍사스는 텍사스네. 땀이 줄줄 흘러.”
“하미준 헌터.”
“응?"
“세빈이가 보내서 온 거죠.”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하미준’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당황]
조슈아와 길드원들이 탄 헬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미준 헌터를 향해 물었다. 그는 이 사막 마을을 눈으로 훑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십년지기 맞네.”
“안 봐도 뻔하죠…….”
하미준 헌터가 이곳에 온 목적은 역시 세빈이 때문이었다.
하미준 헌터가 못 이기겠다는 듯 픽 웃곤 입을 열었다.
“다 죽어가는 얼굴로 얘기하더라. 신지의 헌터가 자기한테 뭘 숨기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면서.”
“…….”
“이제 슬슬 알려줘도 될 것 같아. 신지의 헌터가 꽁꽁 숨기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으니까.”
그는 가볍게 말했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에 대해 실망할까 봐.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까 봐 꽁꽁 숨겼던 것이 오히려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준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고 돌아가야 해.’
톡.
“아.”
하미준 헌터의 손가락이 내 미간을 짚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나 보다.
“뭘 그렇게 심각해져 있어. 그냥 끝나고 가서 말하면 되는데.”
“…….”
“무슨 말을 하더라도 강세빈 헌터는 신지의 헌터의 말을 믿을 거야. 아, 물론 나도.”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니까 여기서 확실하게 수습하고, 돌아가서 이야기 하자.”
“네…….”
하는 행동이 가끔 가벼워서 그렇지, 하미준 헌터가 좋은 어른임에는 틀림없었다.
그의 말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마음을 다잡을 때쯤 조슈아가 탄 헬기도 도착했다.
쿵―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니야~ 우리도 방금 도착했어.”
조슈아가 헬기에서 내린 후 주위를 살폈다.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작은 마을이 있는 걸 제외하곤 이곳을 오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즉, 지금 당장 던전을 열어도 휘말릴 민간인이 없는 상태였다.
“아, 이쪽은 저희 길드 소속인 에이든이에요.”
“안녕하세요. 신지의 헌터, 그리고 하미준 헌터.”
에이든이라고 소개된 젊은 남성은 우리와 차례로 악수를 했다. S급 방어계 스킬을 가진 물 속성 헌터였고 성격도 딱히 모난 곳 없이 친절했다.
‘이제 남은 건 조슈아가 파편을 부수는 것뿐이야.’
에이든과 대화를 나누며 그의 주의를 조슈아로부터 떨어트려 놓았다. 마침 하미준 헌터와 막 대화를 시작한 터라 조슈아가 혼자 있기 딱 좋은 순간이 만들어졌다.
파지직―
곁눈질로 조슈아를 흘긋 보자 그는 자신의 가슴 속에서 창조자의 파편을 꺼내고 있었다. 그는 우리 눈치를 보며 검푸른 돌덩이를 멀리 던졌고, 그와 동시에 시뻘건 용암이 그것을 삼켰다.
쾅!!
“윽……!”
천지를 뒤흔드는 강한 폭발이 일었다. 폭발 소리를 따라 조슈아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뻘건 용암 위로 가면이 주렁주렁 달린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