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58화 (158/366)

158화

드르륵―

조슈아가 아이를 재워 침대에 눕힌 후 다시 집무실 쪽으로 나왔다. 그러곤 책장이 다시 움직여 아이의 방을 감쪽같이 숨겼다.

“하…….”

조슈아는 허리를 앞으로 숙이며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붉은색의 머리카락이 긴 손가락 안에서 마구잡이로 헝클어졌다.

“애가 있을 줄은 몰랐네.”

‘이렇게 방 안에서 가둬놓고 키울 줄은 더더욱 몰랐고.’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아이가 조슈아에 의지하는 것처럼 보였고, 학대로 의심되는 상처도 없다는 점이다. 입고 있는 옷이나 방 내부도 새것처럼 깨끗했지.

조슈아가 천천히 허리를 폈다. 고작 몇 분 사이에 수척해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 애 아니야.”

“그럼 왜 쟤가 너한테 아빠라고 하는데?”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불쾌]

조슈아가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비밀을 들킨 어린 아이 같은 얼굴이었다.

터벅―

그에게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맞췄다.

“네가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너를 만나러 온 이유를 말해줄게.”

“…….”

“창조자가 네게 준 힘과 부적이랍시고 준 그 돌덩이의 정체까지 전부.”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휘둥그레진 푸른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내 말이 그를 회유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뱉은 말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잘 판단해. 너한테도 나쁜 제안은 아닐 테니까.”

망설이고 있는 조슈아를 향해 단호하게 말하자 그가 눈을 질끈 감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친구 아들이야.”

[발언 결과 : 고백]

조슈아는 자신의 본모습에 대해 말하는 것부터 괴로운 듯 이를 악문 채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까 말한 네 이야기도 전부 거짓말이지?”

내 말에 조슈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LA 출신? 할리우드에서 사업하는 부모? 전부 개나 주라 그래.”

“…….”

“베세머라고 들어 봤어?”

그가 눈만 돌려 내 반응을 살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젓자 예상했다는 듯 그가 픽 비웃곤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앨라배마주에 있는 빈민가야. 수십 년 전만 해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곤 했지만, 이젠 빈집과 마약 중독자들만 널린 미친 동네지.”

“거기서 살았나 보네.”

“그래. 이젠 얼굴도 기억 안 나는 부모가 그곳에 날 버린 바람에 각성하기 전까지 쓰레기처럼 살았지.”

조슈아가 그렇게 말하곤 낮게 웃었다. 자조적인 웃음처럼 느껴져 보는 내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학교는 다녀본 적도 없어. 친구를 사귄 적도,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지도 몰랐지.”

“…….”

“내가 그 동네에서 배운 거라곤 던전 때문에 베세머에 들른 헌터의 차를 부숴 지갑을 훔치거나, 주유소에 들른 대형 마트의 운송 차량을 터는 방법뿐이었지.”

탁―

조슈아가 책장을 손등으로 치곤 입을 열었다.

“그런데 거기서 조를 만났어.”

“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슈아 크리머. 앨라배마의 소형 길드에 소속된 E급 헌터지.”

“네가 말했던 그 친구가…….”

“맞아.”

조슈아가 책장을 향해 턱짓을 했다.

“네가 아까 봤던 그 아이의 진짜 아빠야.”

그는 책장에 기댔던 몸을 떼고 난장판이 된 다과 테이블 쪽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말하다 보니 얘기가 길어질 것 같네. 좀 앉아서 얘기할까?”

말투가 조금 바뀐 것을 제외한,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젠 어디까지가 연기인지 구분도 안 되겠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지만 그의 권유대로 다시 소파에 앉았다. 조슈아는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마들렌을 하나 집어 먹으며 때아닌 여유를 즐겼다.

“조는 말이 좋아 헌터지, 그냥 부산물과 몬스터 잔해를 줍는 심부름꾼이었어. 아무래도 E급이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었으니까.”

“그 사람이랑은 어쩌다 만난 거야?”

“내가 조의 차를 털다 딱 걸렸거든.”

“…….”

늘 먹은 점심 메뉴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조슈아는 자신의 만행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조는 내가 자기랑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날 쉽게 용서해 줬어. 대신 자신의 친구가 되어 달라고 했지. 내가 자기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데.”

달그락―

조슈아가 다 식은 커피 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왔다. 그러곤 물을 마시는 것처럼 벌컥 들이켜고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알면 알수록 좋은 녀석이었어. 벤자민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기 싫다면서 반듯하게 살아가려고 했지. 걔 덕분에 나도 길드 일을 조금씩 받았어.”

“저 애 이름이 벤자민이구나.”

“죽은 엄마가 지어준 거래. 아, 시력은 날 때부터 없었고.”

그는 자신의 친구를 떠올렸는지 낮은 목소리로 웃곤 고개를 숙였다.

“조는 지금 어디 있어?”

무의미한 질문이란 걸 알지만 한번 물어보았다. 조슈아도 내 질문에 아무런 기대가 없는 걸 알았는지 검지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킬 뿐이었다.

“역시 죽었구나.”

“아니, 죽였어.”

“…뭐?”

“내가 죽였다고.”

생기를 잃은 눈동자가 책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벤자민 생일 일주일 전쯤, 조가 속한 길드가 우리한테 C급 던전 클리어 팀에 들어가라고 했어.”

“…비각성자랑 E급 헌터를?”

“B급 헌터 하나랑 C급 헌터 둘이 몬스터를 해치우는 동안 우리는 부산물을 캐라는 거지.”

너무나 위험한 구성이었다. 던전의 수준이 더 낮거나 같이 가는 헌터의 등급이 S급처럼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E급 헌터와 비각성자를 같이 들여보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의 당혹감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조슈아가 날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보수를 꽤 세게 부르더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이 들어가는 놈들 수준이 아주 바닥이 아니기도 했고, 벤자민 생일에 괜찮은 레스토랑이라도 갈까 싶어서 수락했어.”

까득―

내게 들릴 정도로 세게 이를 간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고가 터진 거지.”

조슈아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입술을 뗐다.

“헌터 놈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 시비가 붙었어. 보스 몬스터를 앞에 둔 채로 말이야.”

“…….”

“C급 녀석들이 교묘하게 B급 녀석의 전투를 방해했고, 결국 그놈은 몬스터한테 당했어. 사고사를 위장한 명백한 타살이었지.”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조슈아도 괴로운 듯 입술을 꽉 물었지만 바로 말을 덧붙였다.

“셋이 달려들어야 겨우 공략되는 구성이었는데 제일 큰 전력이 죽어버렸으니, 뭐가 되겠어? 나머지 C급들도 순식간에 목이 잘렸지.”

“하아…….”

“결국 나랑 조만 남은 거야.”

그때 조슈아가 느낀 감정은, 아마 내가 처음으로 던전에 떨어졌을 때와 비슷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은데 도저히 살 길이 보이지 않는 그 끔찍한 절망감 말이다.

“조는 비각성자인 나보다 그나마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한 건지 무기를 꺼내더라. 혹시라도 잘못되면 벤자민을 부탁한다는 말을 하면서.”

이마에 있던 조슈아의 손이 머리 쪽으로 올라가더니 자신의 머리카락을 콱 쥐었다.

“조가 공격을 받고 쓰러지자마자 내가 각성했어.”

“…….”

“온몸에 힘이 넘쳤지. 마약보다 더 중독적이고 후련한 느낌이었어.”

붉은 머리카락이 커다란 손에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불꽃이 튀고 몬스터는 거기에 스친 것만으로 활활 타더라.”

조슈아의 상체가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지더니 이내 소파에 완전히 엎어진 채 어깨를 떨었다. 소리 없이 몸만 떨고 있어, 그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문제는 조까지 그 공격에 휘말렸다는 거지.”

“…….”

“등X같이 나 혼자 신나서 날뛰다 친구까지 죽였다고.”

그 말을 하고 나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호흡 때문에 작게 오르내리는 그의 몸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기절해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벤자민을 네 아들로 삼은 거야?”

“아니.”

조슈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물 자국은 없었지만 그의 눈시울은 금방이라도 울 것 마냥 붉었다.

“내가 그 애 앞에서 조슈아 크리머로 살고 있는 거지.”

“그 애를… 속였어?”

“말이 심하네, SS급. 하얀 거짓말이라고 해줄래?”

투둑―

말투는 뻔뻔했지만 조슈아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둘은 이름만 똑같은 게 아니라 공교롭게 목소리까지 비슷했거든. 벤자민도 가끔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말 다 했지.”

“…하.”

“부산물과 아이템을 싸그리 훔쳐 던전 밖으로 나왔어. 그 길로 다른 길드한테 가서 전부 팔아치웠지.”

조슈아가 평온하게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눈물을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을 속여 자기 자신의 감정마저 고장 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아파트에 방 하나 살 돈이 나오더라.”

“…….”

“옆집 어르신에게 맡겼던 벤자민을 데리러 오니까 그 인간이 조슈아는 어디 갔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는 그제야 눈물을 닦곤 말을 덧붙였다.

“자기 살 길 찾아 갔다고 했지.”

만약 벤자민이 그 말을 들었다면 ‘조슈아 체스터’가 떠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진짜 아빠인 ‘조슈아 크리머’가 자신의 곁을 영영 떠나갔다는 사실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로.

‘잠깐, 그럼 98번째 회귀에서 내가 조슈아를 죽였을 때 이 애는…….’

쿵―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벤자민은 저 방에서 더 이상 오지 않을 조슈아를 기다렸을 것이다. 아마, 저 애는 아버지를 두 번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젠장할…….’

합리적인 판단이라 생각하며 가차 없이 조슈아의 목숨을 뺏은 나의 오만함을 저주했다.

나는 가슴이 저릿해지는 감각을 겨우 이겨낸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창조자는 그 이후에 만난 거야?”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긍]

조슈아가 눈썹을 움찔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슈아는 창조자에게 모두를 속일 수 있는 연기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자신의 과거와 정체를 완전히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말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아마 벤자민을 끔찍한 진실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일 것이고.’

난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실을 고백하는 자 : 진실을 고백하라. 잠깐의 고통은 너희들을 더욱 단단하게 할 테니.(미달성)]

하지만 그는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얄팍한 연기 따위가 아니라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다.

“네가 벤자민을 지키려고 창조자와 거래한 건 대충 알겠어.”

“…….”

“하지만 그건 틀린 판단이야. 창조자에게 받은 힘으로는 절대로 벤자민을 지킬 수 없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절망]

조슈아가 이를 악물었다. 푸른 눈동자가 조금의 빛도 허락하지 않은 채 절망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텁―

나는 몸을 앞으로 숙여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다부진 근육이 옷을 사이에 두고 느껴졌다.

“하지만 너는 지킬 수 있어.”

“내가……?”

“네가 갖고 있는 사명을 봐.”

조슈아가 눈을 크게 떴다. 창조자도 알 수 없던 사명에 관한 걸 이야기 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연기는 그만두고, 진실을 고백해. 그게 네가 벤자민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

[연계 패시브 스킬 발동]

[‘말이 씨가 된다’]

[‘연기는 그만두고, 진실을 고백해’의 씨앗을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에게 심겠습니까?]

‘네.’

소리 없이 상태창을 향해 대답하자 글씨가 파도에 쓸려나가듯 스르륵 사라졌다. 그리고 곧 새로운 문장을 띄웠다.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에게 ‘연기는 그만두고, 진실을 고백해’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가면을 벗은 사도에게 말의 씨앗이 심어진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