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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55화 (155/366)
  • 155화

    학회가 열리는 컨벤션 홀의 입구로 우리를 태운 차가 들어서자 기자들이 펜스의 바로 앞까지 와 공격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하~ X발……. 많이도 왔네.”

    “워, 원래 기자들이 이렇게 많아요?”

    “많겠냐? 나랑 신지의가 온다니까 저렇게 몰려온 거지.”

    미나의 말에 미래 씨가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목 끝까지 셔츠 단추를 채웠다. 덕분에 온몸을 뒤덮은 타투가 완전히 가려졌다.

    미래 씨의 학회 참가 및 연구 발표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외 언론사들이 발칵 뒤집혔다.

    미래 씨가 학회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슈가 될 만한데, 이번엔 처음으로 공동 연구를 진행했으니……. 관심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는 상황이긴 했다.

    “아무튼 내려라. 차 안에서 발표할 거 아니면.”

    “네, 네……!”

    무하가 경직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챠챠챠챠챠―

    문이 열리기 무섭게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받는 플래시 세례라 눈을 뜨기 영 힘들었지만, 나는 최대한 눈에 힘을 주고 컨벤션 홀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오우, 저 애들이 공동 연구자인가?”

    “에이 설마. 그냥 보조 연구원이겠지.”

    “너무 어린데?”

    “그래도 안미래 박사가 데려온 애들인데 설마 형편없는 녀석들이겠어?”

    아자디바르 남매를 두고 기자들 틈에서 여러 가지 말이 나왔다. 듣기에 썩 좋은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말들이 남매의 귀에도 들렸을까 싶어 눈만 살짝 굴려 남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차분하네?’

    차에서 내리기 전만 해도 엄청 긴장한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카메라를 앞에 둔 아자디바르 남매의 모습은 평온했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에도 그들은 침착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웅―

    자동문이 열리고 로비 안으로 들어서자 어제 호텔까지 안내해 줬던 학회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 네……. 좋은 아침입니다.”

    직원의 따뜻한 인사에 미래 씨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내가 그를 향해 살짝 웃어주자 직원도 밝은 미소로 대답하며 우리를 컨퍼런스 룸으로 데려다 주었다.

    “우와아…….”

    “와…….”

    컨퍼런스 룸에 들어오자마자 미나와 무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시카고의 컨퍼런스 룸보다 못해도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커 보이는 장소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이름표 목걸이를 찬 사람들이 룸을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중 일부는 이미 자리에 앉아 발표 세션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꽤 많죠? 미래 박사님이 참가하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많은 회원분들이 갑자기 신청을 하시더라고요.”

    “허, 참…….”

    “제가 이 학회에서 일한 지 올해로 딱 7년째인데,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온 건 처음이랍니다.”

    학회 직원이 눈을 빛내며 미래 씨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머리만 긁적거리며 심드렁하게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그나저나 아자디바르 씨 맞죠? 윈디 길드 소속의…….”

    “아, 네! 미나 아자디바르입니다!”

    “무, 무하 아자디바르예요!”

    미나와 무하가 경직된 팔로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직원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크게 웃었다.

    남매의 악수에 마친 직원은 말을 덧붙였다.

    “미래 박사님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했다고 하셔서 회원분들 관심이 장난이 아니에요.”

    “다 신지의 헌터님 덕분이에요.”

    “맞아요. 신지의 헌터님께서 저희의 연구를 미래 소장님께 전달해 주셨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직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미래 씨한테 전달할 수밖에 없는 연구였어요. 아이디어랑 연구 목적이 정말 좋았거든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미나 아자디바르’가 동요한다.]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무하 아자디바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깊은 감동]

    내가 보란 듯이 남매를 더 띄워주자 직원의 눈도, 그리고 아자디바르 남매의 눈도 반짝거렸다. 직원은 다시 시선을 남매에게로 옮겼다.

    “발표 세션이 정말 기다려지네요. 아자디바르 씨의 발표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직원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하아아아…….”

    그제야 미나의 입에서 긴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가 무릎에 손을 짚은 채 허리를 숙이자 아래로 길게 땋은 머리카락도 밑으로 툭 떨어졌다.

    “이렇게 긴장한 거 정말로 오랜만이에요.”

    “윈디 길드 면접 보러 갔을 때보다 떨려.”

    “나도.”

    짝―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곤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쳤다. 아까까지만 해도 차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한 번 생긴 긴장을 몰아내는 건 어려웠나 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사출 가능 탄환]

    <긍정> 표적이 긍정하게 만든다.

    약간의 힘이 실린 응원뿐이다.

    [귀속 무기 ‘자아’를 통해 사출하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됩니다. 그래도 사출하시겠습니까?]

    ‘네.’

    투웅―

    공기가 떨리는 동시에 미나와 무하의 몸에 새하얀 표식이 생겼다.

    “두 사람이 몇 년 동안 연구한 거잖아요. 분명 그 배리어는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거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거예요.”

    “헌터님…….”

    “그러니까, 자신을 믿어봐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미나 아자디바르’가 동요한다.]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무하 아자디바르’가 동요한다.]

    [긍정의 탄환 사출]

    [표적 : 각성자 ‘미나 아자디바르’]

    [표적 : 각성자 ‘무하 아자디바르’]

    남매가 동요한 틈을 타 긍정의 탄환을 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작은 탄환이 그들의 몸에 흡수되자 불안하게 흔들리던 그들의 눈동자가 서서히 평온해졌다.

    [발언 결과 : 긍정]

    “맞아요. 미래 소장님도 인정한 아이디어인데, 사람 좀 많다고 떨 일은 아니죠.”

    무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미나도 허리를 쭉 펴 무대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연구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이니까, 조금 더 자신을 가져볼게요.”

    아자디바르 남매의 눈이 의지로 불타는 듯했다. 연구를 성공시키겠다는 의지와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

    “안 앉냐?”

    그때 어느새 자기 자리를 찾아간 미래 씨가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나와 아자디바르 남매는 서로를 보며 피식 웃곤 미래 씨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 * *

    남매의 발표는 성공. 아니, 성공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냈다.

    발표 자료가 한 장 씩 공개될 때마다 주위에선 감탄사가 터져 나왔고, 대기업 로고가 박힌 명찰을 걸고 있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태블릿 PC를 두드렸다.

    남매의 발표가 끝나고 애프터 파티가 시작된 지금.

    “연구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아~ 아자디바르 씨, 안미래 박사님. 발표 인상적이었습니다. 아, 저는 에너지 홀딩스 대표…….”

    “오랜만입니다, 박사님. 혹시 아직도 L그룹이 박사님의 연구를 지원해 주시고 계신가요?”

    “저희가 이번에 사우디 쪽에 부산물 가공 공장을 하나 만들었거든요~”

    아자디바르 남매와 미래 씨는 온갖 기업과 연구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나는 발표가 끝나자마자 긴장이 풀려서 배고프다고 했는데, 불쌍하게도 그가 가져온 음식들은 접시 위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난 그 무리로부터 한 발짝 멀리 떨어진 채, 이야기하느라 정신없어 보이는 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네.’

    잔뜩 긴장했던 미나와 무하도 자신들의 연구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아까보다 훨씬 당당한 태도로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고 있었다. 이런 일에 익숙한 미래 씨는 평소와 다름없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받은 서류를 읽었다.

    이렇게 척척 진행되어, 지옥도가 터지기 전에 액체 배리어가 안정적으로 생산된다면 인명 피해를 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나도 슬슬 조슈아한테 연락을…….’

    쾅!!

    “으아악!”

    “꺄악!”

    갑자기 커다란 굉음과 함께 바닥이 흔들렸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강한 진동이 연회장을 덮쳤고 테이블 위에 있던 접시가 깨져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끼기기긱―

    “큿……!”

    소름끼치는 마찰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연회장 한가운데 커다란 균열이 생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점점 커져가는 그 균열 속에선 잔뜩 녹이 슨 철문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철문이 모습을 전부 드러내기도 전에 그것이 게이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다들 대피하세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범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긍]

    자아에 대고 소리치자 회장에 있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나, 그러는 동안에도 게이트는 서서히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신지의 헌터님……!”

    “미나랑 무하도 빨리 여기서 나가요! 지원 올 때까지 제가 막고 있을 테니까!”

    나는 아자디바르 남매에게 소리친 후 출구를 바라보았다.

    “으악!”

    “거기 밀지 마세요!”

    “비, 비켜……!”

    ‘젠장, 엉망진창이야……!’

    출구가 단 하나뿐이라 게이트가 완전히 생성되기 전에 연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쿠당탕!

    “으아악……!”

    “잠깐! 잠깐, 사람 넘어졌어요!”

    출구 주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행렬 중 하나가 무너져 사람들이 반쯤 쓰러져 버렸다.

    끼이익―

    설상가상으로 생성이 끝난 게이트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녹두야!”

    “아우―!”

    이름을 부르자마자 팔찌에서 빛줄기가 뿜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녹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녹두는 소환되자마자 초록색 눈으로 나와 게이트, 그리고 출구를 훑어보았다.

    “내가 사람들 대피시키는 동안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 좀 처리해 줘. 녹두야, 할 수 있지?”

    ‘나한테 맡겨!’

    녹두는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게이트 앞으로 뛰어갔다. 그 후, 난 바로 몸을 돌려 아수라장이 된 출구 쪽으로 달렸다.

    “괜찮으세요? 일어나실 수 있겠어요?!”

    “으, 으으…….”

    넘어진 사람들부터 빠르게 일으켰다. 가벼운 타박상으로 끝난 사람도 있었지만 가장 밑에 깔린 사람들은 뼈가 부러진 건지 몸을 일으킬 수조차 없어 보였다.

    “자기 주변에 부상자가 있으면 꼭 같이 데려가 주세요! 그리고 치료계 헌터 계신가요?!”

    “저, 저 D급인데……!”

    “등급은 상관없습니다! 부상자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범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긍]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자 내 목소리에 반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가 말한 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다리가 부러져 제대로 못 걷는 사람을 부축해 함께 연회장을 빠져나갔고, 하급 치유계 스킬을 가진 헌터 두 명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콰과광!!

    “꺄아악!”

    “와악……!”

    ‘결국 튀어나왔구나……!’

    게이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노릇노릇하게 익은 커다란 통닭 무리가 연회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연회장에 남은 사람은 못해도 40명 정도, 그중 행동 불능인 사람이 4명이다. 치유계 헌터들이 그들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스킬을 썼지만, 하급 스킬이다 보니 아무래도 회복 속도가 많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퍼버벙!

    녹두의 스킬이 통닭 몬스터들을 관통했다. 통닭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지만 녀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녹두와 사람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탕, 탕, 탕!

    소리 탄환이 몸에 박히자 그제야 녀석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곧 그 자리에서 바로 터져나갔다.

    ‘녹두의 공격으로 한 번에 안 죽는 걸 보니 A급일 거야.’

    상급 게이트일 확률이 높아지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 혼자 A급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몬스터 중 하나가 저 대피 행렬을 덮치기라도 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투쾅!!

    좋지 않은 상황에 심장이 빠르게 뛰던 순간, 갑자기 시뻘건 액체가 게이트 위로 쏟아졌다.

    치이이익―

    “…용암?”

    부글거리는 용암이 게이트를 완전히 뒤덮었다. 덕분에 게이트 밖으로 나오려던 통닭들이 그대로 녹아 게이트 앞에 끈적하게 눌어붙었다.

    “다들 비켜주세요~”

    깔끔한 미성과 함께 사람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렸다.

    발소리에 따라 출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와인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불릿 길드의 길드장이자 사도 ‘가면’, 조슈아 체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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