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학회 가기로 했다고?”

콰과광!

하미준 헌터가 도끼로 다문천왕의 머리를 내리친 후 내 옆으로 돌아와 말을 걸었다.

“네. 미나랑 무하도 저랑 같이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요.”

“신지의 헌터, 연하한테 인기가 많네.”

“그런 거 아니거든요.”

우우우웅―

하미준 헌터의 말에 적당히 대꾸해 주며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커다란 창으로 불국사 내부를 쪼개던 경주 A급 던전 보스 몬스터 다문천왕의 움직임이 소리 물결을 맞자 순간 움직임이 멎었다.

“아자!!”

콰과광!!

녀석이 멈춘 틈을 타 지호 언니가 수룡과 함께 녀석을 향해 튀어나갔다. 수룡이 다문천왕의 턱을 쳐 올리는 동시에 지호 언니는 수룡의 위에서 내려와 땅 위로 착지했다.

“녹두야!”

“아우―!”

수룡이 다문천왕의 몸을 꽉 묶어버리자 공중에서 대기하고 있던 녹두가 입을 쩍 벌렸다.

콰아앙!!

녹두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새하얀 빛의 기둥이 다문천왕의 이마를 정확히 꿰뚫었다. 이마에 생긴 구멍은 점점 더 크기를 키우더니 이내 녀석의 몸 전체에 커다란 금이 생겼다.

쿠르릉―

결국 다문천왕의 몸이 깨진 석고상 마냥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으~! 힘들었다!”

“언니, 수고했어.”

“지의도~”

지호 언니가 내 옆으로 다가와 짧게 하이 파이브를 했다.

철그럭―

바닥에 떨어진 다문천왕의 창이 던전의 클리어를 알려주었다.

‘언니! 나 잘 싸웠어?’

“그럼. 세상에서 제일 멋있게 싸웠어.”

‘야호!’

한 건 한 녹두가 어리광을 부리며 내 주위를 마구 뛰어다녔다. 이제 A급 몬스터를 공략할 줄 아는 지성과 공격력을 갖춘 것 같다.

‘아직도 아성체인 게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성체가 되면 완전히 S급 수준의 소환수가 될 텐데. 생각보다 녹두의 성장이 더뎠다. 나머지 스킬 하나가 열리지 않은 것도 신경이 쓰이고.

나는 녹두의 새하얀 털을 손가락으로 정리해 주며 상태창을 열었다.

[S급 소환수 태양을 삼킨 늑대]

[아성체]

[미개방 소환수 스킬]

[S급 공격계 스킬 언니는 내 거!]

[S급 이동계 스킬 공중 도약]

[S급 방어계 스킬 ■■■]

<사명>

[늑대의 동반자]

[동반자를 성장시켜라.]

[달성도 : 70%]

스킬도, 사명도 그대로였다.

‘요즘 녹두한테 좀 소홀하긴 했지.’

레일리랑 함께하는 동안 내 정체가 노출될까 봐 녹두를 소환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조슈아를 만날 때도 비슷한 상황일 텐데……. 벌써부터 속이 좀 쓰리다.

“근데 아까 뭐? 지의 어디 간다고?”

“아, 텍사스. 국제 부산물 학회였던 것 같은데…….”

“대박. 이제 학계에도 진출하는 거야?”

“그냥 따라가는 거지, 뭐.”

지호 언니가 키득거리며 나와 팔짱을 끼며, 녹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민지호 헌터! 아까 팔 다치셨죠?”

“아 맞다. 정신이 없어서 까먹고 있었네.”

“또 다치신 분 계신가요?”

지호 언니가 진주현 헌터에게로 달려가는 동안 나와 하미준 헌터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영국에서 있던 일은 강세빈 헌터한테 대충 들었어.”

“아, 네. 하하…….”

그의 말에 머쓱해져 적당히 소리 내어 웃자 가늘게 뜬 눈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납치를 당한 와중에도 길드장과 거래해서 정보를 얻고, 갑자기 터진 게이트도 같이 클리어하고…….”

“…….”

“신지의 헌터, 가끔 보면 되게 무서운 거 알아?”

하미준 헌터가 고개를 들곤 허공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걸 보는 것 같단 말이야.”

“…그래요?”

“응. 근데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뭔 줄 알아?”

텁―

그가 덥석,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그의 손에서 그의 눈 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그곳엔 진중한 검은 눈동자가 있었다.

“신지의 헌터의 모든 행동엔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확신이 있다는 점이야.”

바스락―

그가 손을 내리자 아이테르의 로브가 서로 맞닿아 소리를 냈다.

“신지의 헌터가 어떤 뜻을 갖고 그렇게 행동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게 나쁜 일이 아니라는 건 알겠어.”

“…고마워요.”

“고마워할 것까지야.”

어딘가 모르게 서늘한 인상을 주던 눈매도 평소의 웃는 눈으로 돌아왔다.

그는 나보다 먼저 게이트 쪽으로 발을 돌린 채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얘기해 줘. 신지의 헌터가 왜 그렇게 행동한 건지.”

하미준 헌터가 고개만 살짝 돌린 채로 곁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신지의 헌터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지의 헌터를 신경 쓰고 있으니까.”

“아…….”

그는 그렇게 말하곤 다문천왕의 창을 주워 지호 언니와 진주현 헌터에게 다가갔다.

‘내가 너무 많이 숨겼나.’

회귀에 대한 것. 그리고 그들에게 심은 스킬 ‘말의 힘’도 전부 감췄다. 나 스스로가 거짓말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걸 알면서도 숨겼다.

회귀는 말해도 안 믿어줄 것 같았다. 혹시라도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까 봐,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말의 힘은…….

‘두려워서.’

말하는 게 두렵다. 나에 대한 신뢰가 스킬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사람들이 나를 더 이상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쿵, 쿵, 쿵―

상상한 것만으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커다란 방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숨 막히는 고독이 목을 졸랐다.

“언젠가 신지의 헌터의 마음이 편해졌을 때 말씀해 주세요.”

“신지의 헌터가 절 동료로 생각한다는 말, 이제는 믿을게요.”

“어떤 이유를 들어도 다 믿을 테니까."

“난 너와 함께 길드전에서 승리한 그 순간부터, 널 의심할 생각이 없었거든.”

그때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나를 짓누르던 고독은 눈 녹듯 사라지고 입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빠르게 뛰던 심장도 점점 제 속도를 찾기 시작했다.

“…역시 말해야겠어.”

오히려 숨기는 건 그들의 믿음을 배신하는 것이다. 그들이 믿었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난 후에도 나를 계속해서 믿을 것인지, 그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지의야! 나가자!”

“응, 갈게!”

나를 향해 손짓하는 지호 언니를 향해 달렸다.

‘텍사스에서 조슈아부터 해결한 후에, 전부 말해야지.’

* * *

“방은 전부 13층이며 같은 층에 있는 라운지까지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룸서비스와 기타 부대시설 이용의 경우 룸 넘버로 걸어놓으시면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아, 네, 네…….”

“불편하신 점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

부산물 학회 직원이 한참 말을 쏟아내다 미래 씨와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미래 씨는 부담스럽다는 듯 그에게서 방 키만 받아 내 쪽으로 슬금슬금 몸을 틀었다.

학회 쪽에서 비행기와 호텔 예약은 물론, 전용 리무진까지 보내줘 호텔까지 정말 편하게 왔다. 미래 씨가 초청한 사람이 나라는 걸 알자마자 학회는 우리의 비행기 좌석을 비즈니스에서 퍼스트로 올려주기까지 했다.

‘이런 환대는 몇 번을 받아도 적응이 안 돼.’

미래 씨가 건네주는 키를 받으며 직원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자기 가슴에 손까지 얹으며 과할 정도로 깍듯하게 나를 대했다.

“알아서들 아침 처먹고 내일 열 시까지 로비로 나와라. 발표는 내일 오후 두 시쯤 할 것 같으니까 오늘부터 입 좀 풀어두고.”

“하아아… 막상 호텔 오니까 긴장 되네요.”

“발표 시작할 때도 그 상태면 진짜 가만 안 둘 테니까 알아서 해라.”

쿵―

미래 씨는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방으로 쏙 들어갔다.

복도에 덩그러니 남은 아자디바르 남매를 보며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그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과장 좀 보태서 발표 자료 천 번은 더 읽었는데 왜 이렇게 긴장되는 걸까요.”

“긴장되는 게 당연하죠. 학회에서 발표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잖아요.”

“처음이죠……. 애초에 학회 온 거 자체가 이번이 두 번째니까요.”

“첫 번째는 신지의 헌터님 아니었으면 오지도 못했을 거고요.”

무하가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신지의 헌터님도 저희를 응원하러 와주셨으니까 적어도 우스운 모습은 보이지 않을게요.”

“맞아요. 그러니까 헌터님도 꼭 맨 앞자리에서 저희 봐주셔야 해요. 알았죠?”

“알겠어요.”

남매의 순수한 열정에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남매가 방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후 나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쿵―

깨끗하게 잘 정리된 스위트룸이었다. 맡겨 놨던 캐리어는 받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창가 옆 테이블 위의 웰컴 드링크와 과일이 나를 반기는 것이 보였다.

우우웅―

방 구경도 잠시. 잠잠했던 개인 핸드폰이 울렸다.

세빈

나는 발신자를 확인하자마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도착했어?

“응. 지금 막 방에 들어왔어.”

―다행이네.

전화기 너머로 편안한 음성이 들려왔다.

―학회 끝나자마자 올 거야?

“…….”

―…그렇구나.

내 침묵의 의미를 알아챈 세빈이가 아까보다 한껏 차분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학회가 끝난 다음에 불릿 길드장을 만나려고.”

―그 사람을 왜?

“알아봐야 할 게 있어서.”

세빈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분명 전화이건만, 불만스레 입술을 달싹이는 세빈이가 눈에 선했다.

“…이번엔 솔직하게 말했어.”

―응. 나도 알아. 고마워. 말해준 건 고마운데…….

세빈이의 마음이 영 복잡했나 보다.

탁, 탁, 탁―

핸드폰 너머로 초조한 듯한 발소리가 들려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무리 안 할게. 멀쩡히 돌아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알겠어.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것 같은 목소리다.

“세빈아.”

―응.

“돌아가면 할 말이 있는데, 시간 내 줄 거지?”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강세빈’이 동요한다.]

고요한 수화기 너머로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하지. 시간 다 비워놓을게.

[발언 결과 : 강한 기대]

눈앞에 뜬 상태창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마워. 그때 다시 연락할게.”

―응. 몸조심해.

한결 편안해진 세빈이의 목소리를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나는 개인 핸드폰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은 후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다 만나 보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자아의 말에 대답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새카맣게 물든 시야에 동료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여기서 조슈아가 갖고 있는 창조자의 파편을 무사히 파괴한 뒤, 한국으로 귀국하면 S급들을 한 명씩 만나볼 생각이다. 회귀를 통해 알게 된 정보들을 공유해 ‘지옥도’에 대한 본격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하니까.

“하암…….”

침대가 푹신해서 그런가, 한 번 감은 눈이 쉽게 떠지지 않았다.

그렇게 눈을 감은 채로 몸에 힘을 풀자 천천히 정신이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