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48화 (148/366)
  • 148화

    【Show Must Go On】

    [오만한 소설가]

    [자신의 글만이 세상을 오롯이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존재]

    녀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소설가도 괴식가처럼 거대한 인간형 몬스터였다. 녀석의 머리를 대신한 잉크병에 담긴 잉크는 당장이라도 넘칠 것처럼 병 입구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이런 몬스터는 난생처음 보는군.”

    쿵―

    레일리가 아더의 방패를 들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무기를 꺼내 전투를 준비했다.

    [현재 체력 : 700,000]

    괴식가보다는 적은 체력의 녀석을 상대할 헌터는 6명. 난 눈을 굴려 주위의 헌터를 바라보았다.

    녀석과의 거리를 좁혀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세빈이와 레일리.

    공중 이동이 자유롭고 원거리에서 지원이 가능한 나, 최민 헌터, 알렌.

    그리고 치유계 스킬을 가진 라파엘라까지.

    ‘충분히 승산은 있어.’

    소설가의 공격 패턴만 익힌다면 아무리 파편 속의 보스 몬스터라고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조합이다.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여섯 영웅들이 모였다.]

    [그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마왕과 마주했다.]

    [“엄벌을 내리겠다!”]

    끼기긱―

    녀석의 머리 위에 뜨던 문장이 갑자기 수십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형제, 자매님들 조심하세요~”

    파바박―

    라파엘라의 경고가 귀를 파고든 동시에 글자가 바닥을 향해 내리 꽂히기 시작했다. 나는 실드를 펼쳐 그것들을 피한 후 녀석의 몸통을 향해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펑―!

    “쳇……!”

    갑작스레 책장에서 떨어진 책이 소리 탄환을 대신 맞곤 그대로 터졌다.

    콰앙!!

    그러곤 곧바로 소설가의 손이 내가 있는 곳을 내리 찍었다. 나는 발 없는 말로 재빨리 뒤로 뛰어 피했지만 제법 묵직한 바람 때문에 뒤로 한 번 구를 수밖에 없었다.

    [마왕의 공격에 여섯 영웅들은 당황했지만 곧 평정심을 찾았다.]

    [그들은 마왕을 쓰러트릴 방법을 머릿속으로 천천히 그렸다.]

    “쫑알쫑알 시끄럽다!”

    콰앙―!!

    레일리가 성을 내며 높이 도약하더니 메이스로 녀석의 머리를 강타했다.

    잉크병에 커다란 금이 가 그 틈새로 잉크가 방울방울 맺혔다. 이어 소설가의 그림자에서 커다란 손들이 튀어나와 잉크병을 움켜쥐었다.

    쿵! 쿵! 쿵!

    그림자 손은 녀석의 머리를 깨부술 것처럼 테이블 위로 머리를 박게 만들었다. 안에 들어 있던 잉크가 흘러나와 테이블을 가로질렀다.

    ‘구원자의 무기 창고.’

    눈으로 빠르게 무기를 훑은 나는 가장 밑에 있던 박격포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곤 곧바로 세빈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빈아!”

    “알겠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의도를 알아챈 세빈이가 그림자에서 수십 개의 손을 뽑아냈다. 세빈이의 조종하에 그림자 손은 소설가의 상체를 끌어내려 완전히 테이블에 몰아붙였다.

    콰앙!!

    박격포에서 솟구쳐 나온 새하얀 포탄이 녀석의 머리를 꿰뚫었다.

    잉크 머리가 산산이 부서져 테이블 위로 유리 파편이 떨어졌다. 일반 몬스터였으면 이미 목숨이 날아갔을 만한 공격이었지만, 녀석은 머리만 날아갔을 뿐 여전히 자신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체력은 많이 줄어들었겠……’

    [현재 체력 : 700,000]

    “멀쩡하잖아……!”

    “지이 씨!”

    알렌의 외침과 함께 커다란 그림자가 내 위로 걸렸다. 나를 덮쳐오는 그림자를 느낀 직후, 나는 고개를 들어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는 대신 옆으로 몸을 날려 그림자를 피했다.

    쾅!!

    그림자가 걸렸던 곳에 거대한 책이 떨어지더니 그대로 테이블을 반 토막 냈다.

    “큭……!”

    중심을 채 잡기도 전에 몸이 밑으로 떨어지자 따스한 기운과 함께 최민 헌터가 내 몸을 끌어당겼다.

    “괜찮으십니까?”

    “네. 고마워요.”

    그는 소설가보다 높이 날아오른 후 나를 허공에 내려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라파엘라와 레일리는 알렌의 도움을 받았는지 서재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먼지바람으로 뒤덮인 테이블 주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왕은 여섯 영웅들을 바라보며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영웅들이라고 들었건만, 전부 착각이었군.”]

    먼지바람이 걷히고 날렵한 펜촉으로 쓴 듯한 글자와 함께 목이 없는 소설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끼리릭―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녀석의 머리에 다시 잉크병이 얹혔다.

    “X발.”

    레일리의 욕이 선명하게 귀에 꽂혔다. 소설가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태연하게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워 다시 읽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공격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녀석의 체력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즉, 녀석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특정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창조자의 파편―소설가]

    [속성 없음]

    [영웅 소설을 좋아하는 순수한 존재]

    [좋아하는 전개 : 엄청난 위기를 겪지만 끝내 영웅이 이기는 해피엔딩]

    [이야기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일반적인 몬스터의 정보창과는 달랐다. 녀석의 정보창엔 스킬 목록 대신 애매모호한 정보만 줄줄이 쓰여 있었다.

    ‘이야기대로 행동이라…….’

    그중에서도 단연 신경 쓰이는 건 마지막 줄. 이 문장이 녀석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단서일 것이다.

    스스슥―

    [“내가 녀석의 머리를 맡겠다.”]

    [대지의 기사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앞으로 나왔다.]

    [“…….”]

    [불의 무도가는 말없이 마왕의 왼편에 섰다.]

    [“제가 마왕의 오른팔을 공격하겠습니다.”]

    [밤의 암살자가 말했다.]

    소설가의 주변으로 글씨가 둥실둥실 떠 다녔다. 불현듯 생겨난 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처럼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었다.

    지금 소설가가 읽고 있는 소설은 마왕과 대적하는 여섯 영웅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나온 등장인물은 밤의 암살자, 대지의 기사. 그리고 불의 무도가였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를 빼다 박은 것 같은데…….’

    “어이, 지의!”

    그때 레일리가 나를 불렀다.

    “나와 네 친구가 시선을 끌 테니 후방 공격을 부탁한다! 머리는 급소가 아니니까 웬만하면 다른 곳으로!”

    그는 아더의 방패를 더욱 단단히 만든 후 메이스를 든 손을 바닥을 향하게 했다.

    쿠구구궁―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이 서서히 솟아오르더니 무너졌던 테이블과 비슷한 형태로 변했다. 레일리는 그 위로 가볍게 착지해 소설가와 다시 마주했다. 잠깐 모습을 감췄던 세빈이도 어느새 그의 옆에 섰다.

    ‘대지의 기사와 어둠의 암살자……!’

    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그 기시감의 원인을 알아차렸다.

    “아니야, 둘 다 기다려 봐!”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강세빈’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용]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용]

    소설가 쪽으로 튀어나가려던 두 사람이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책장에 있던 라파엘라와 알렌 그리고 내 옆의 최민 헌터까지 나를 주목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소설 내용대로 행동하자.”

    “어… 저 마왕인지 뭔지 하는 저거요?”

    알렌이 의심스러운 눈치로 나와 소설가의 주변에 뜬 글자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레일리를 바라보았다. 올곧은 황금색 눈동자가 나의 말을 기다리는 듯했다.

    “저 녀석이 읽고 있는 소설, 아무래도 우리 얘기 같아.”

    “여섯 영웅… 마침 우리도 여섯 명이군.”

    “지금까지 나온 영웅의 특성도 비슷해.”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대지의 기사, 어둠의 암살자. 그리고 불의 무도가.”

    “아.”

    레일리, 세빈이, 최민 헌터를 차례로 가리키자 최민 헌터가 뭔가를 눈치챈 듯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오만과 편견 속으로 들어갔을 때도 우리가 원작의 엔딩을 보게 만들었잖아.”

    “이상한 개입이 있긴 했지만요~”

    “소설가는 우리가 계속 역할극을 해주길 바라는 거야.”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범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나를 보는 헌터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의 추측이 시험해 볼 만한 가설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발언 결과 : 수용]

    그리고 내 예상대로 모두가 내게 수긍했다.

    우리가 한창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소설가는 책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쿵―

    라파엘라가 십자가를 꺼내 들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지의 자매님 말도 일리가 있네요.”

    “아까 소설 내용 기억하세요?”

    그의 옆에 있던 알렌이 묻자 라파엘라가 생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보였다.

    “그 내용대로라면 길드장님이 소설가의 머리, 세빈 자매님이 오른쪽 팔 그리고 민 자매님이 왼쪽 팔을 공격해 주셔야 해요.”

    “네 기억력 하나는 알아줘야겠군. 신학교 우등생 출신은 역시 달라.”

    “제적당했는데 제가 뭔 우등생인가요.”

    레일리의 말에 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처음 만났을 때도 과거 얘기를 꺼렸지.’

    라파엘라에 대한 생각은 일단 접어두었다. 지금 중요한 건 소설가를 해치우는 거니까.

    레일리가 전투태세로 소설가의 정면에 서는 동안 세빈이가 녀석의 오른쪽, 그리고 최민 헌터는 왼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알렌, 내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곧바로 책장으로 워프시켜라.”

    “네!”

    [슬슬 좀이 쑤신 마왕은 영웅들에게 일격을 날릴 준비를 했다.]

    [“여기가 너희들의 무덤이다!”]

    콰과광!!

    이번에도 글자들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날카로운 칼이 되었다.

    챙!

    아더의 방패가 공격을 튕겨내는 동시에 레일리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그에 저를 향하던 칼들이 일제히 방향을 바꿔 레일리와 함께 소설가를 향해 날아갔고, 메이스의 끝은 정확히 녀석의 머리를 노렸다.

    쾅―!!

    잉크병이 또다시 산산조각 났다.

    끈적한 액체가 녀석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자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소설가의 거대한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손들이 오른쪽 어깨를 짓누르는 바람에 녀석은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흡……!”

    녀석의 어깨에 홀연히 나타난 세빈이가 오른쪽 팔에 영(影)을 꽂은 채 그대로 밑으로 몸을 날렸다.

    촤아악―

    세빈이의 공격에 녀석의 몸에서 새빨간 피 대신 검은 잉크가 뿜어져 나왔다.

    잉크가 세빈이를 채 덮치기 전에 세빈이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곤 책장에서 다시 나타났다.

    퍼버벙!!

    이어 숨이 막힐 정도의 열기가 느껴졌다.

    [“크아아악!!”]

    [비명 소리는 영웅의 것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의기양양하던 마왕의 것이었다.]

    푸른빛이 도는 불꽃이 소설가의 오른팔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

    녀석은 의자에 앉은 채로 고통에 몸을 파들파들 떨기만 할 뿐 우리를 향해 반격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 듯했다.

    엉망진창이 된 녀석의 몸을 숨을 죽인 채 바라보고 있을 때쯤.

    [현재 체력 : 533,145]

    박격포로도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던 녀석의 체력이 드디어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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