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38화 (138/366)

138화

【일촉즉발】

[Result]

1. NOBLESS(172) : 248(-)

2. Aurèola(7) : 109(-) [END]

3. Le jardin de Monet(117) : 76(-) [END]

펑, 퍼엉, 펑―

폭죽 소리가 던전에 울려 퍼졌다. 우리의 승리를 알리는 축포가 하늘을 요란하게 수놓고 있었다.

“와아아아악!!”

“이겼다!!”

“노블레스! 노블레스!”

성 안이 길드원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워졌다. 이리저리 뒤섞여 있던 반응들은 어느새 ‘노블레스’를 연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로미나의 몸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와 레일리를 바라보았다.

“아.”

그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흥분으로 커다래진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해냈다. 창조자의 시나리오 없이, 오직 나와 노블레스 길드. 그리고 레일리의 힘으로 진정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기분 진짜 좋다.’

엄밀히 따지면 난 이 길드 소속도 아니었고, 그저 레일리에게서 창조자의 파편을 받기 위해 길드전에 참가한 것뿐이다. 하지만 어느새 노블레스에 녹아든 건지 길드원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노블레스’에 가슴이 쿵쿵대며 뛰었다.

“으으으… 아까워!”

레일리는 엉망이 된 셔츠를 툭툭 턴 후 로미나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뭐, 재미있는 작전이었다. 사실 반쯤 성공했지.”

레일리는 특유의 거만한 태도로 로미나와 피에트로를 향해 말을 건넸다. 피에트로는 분한지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레일리를 노려보았다.

하나 레일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다는 듯 키득대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전투력이 아예 없는 스킬인가 보군. 연계 패시브 스킬이나 나중에 개방된 일반 스킬이 있더라도 완전한 비 전투계일 것이고.”

“…너희의 왕은 누구지?”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나?”

피에트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 그의 말에서 거짓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피에트로의 스킬은 전략적으로 사용하면 매우 유용한 스킬이지만, 레일리처럼 빙빙 돌려서 말하는 상대일 경우엔 다르다. 그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간파하기 힘들 테니까.

레일리가 피에트로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몬스터도 잡아본 적 없는 새끼한테 알려주기엔 고급 정보라서 말이지.”

이내 그는 싸늘하게 정색하더니 피에트로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밀었다. 그가 갖고 있는 A급 정신계 스킬 때문일까 그의 주변 공기만 무겁게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피에트로 역시 그의 기에 눌렸는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넌 헌터가 아니라 그저 장사꾼이다. 어쭙잖은 길드장 놀이는 그만두고 니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보…….”

“보고 배운 게 이것뿐인데, 뭘 어떻게 하라고!”

갑자기 피에트로가 소리를 질렀다. 처음 듣는 날카로운 음성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신비롭고 어딘가 오싹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풍기던 그는 어느새 처절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걸 보았다. 어제까지 멀쩡히 살아 있던 놈이 다음 날 카포한테 살해당하는 일이 일상이었다고.”

“카포? 너 혹시, 마피아 출신이냐?”

피에트로는 작은 주먹으로 땅을 한번 내려치더니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각성하고 나서 패밀리에게서 벗어났지만 막상 길거리에 나앉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길드에 들어갔으면 입에 풀칠은 했을 텐데.”

“길드? 아무리 S급이어도 파괴력 하나 없는 놈을 데려갈 길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의 스킬은 성능만큼은 확실하겠지만, 살상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끽해야 다른 사람의 진심을 읽어내는 게 전부이니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 사람을 모아 길드를 만들었다.”

“거기까진 그렇다 치자. 그럼 왜 길드전만 참여하는 거지?”

“몬스터를 죽이는 것보다 사람을 죽이는 게 더 익숙하니까.”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기운이 올라왔다.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은 피에트로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말을 이어갔다.

“나는 내가 살 수 있는 선택을 해 행동할 뿐이야.”

“…….”

“그게 뭐가 잘못됐지?”

피에트로가 손을 내리고 레일리를 노려보았다. 레일리는 팔짱을 낀 채로 그를 빤히 바라보다 이내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

“패배자의 변명, 잘 들었다.”

“너……!”

“진짜로 길드장 놀이를 하고 있는 애새끼에 불과했군.”

레일리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확 구기곤 인벤토리에서 생수 하나를 꺼내 마셨다.

“길드전은 길드의 순위와 던전 배분을 결정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다른 길드들과 교류하는 장이기도 하다.”

“설교할 거면 그만둬.”

“너희 길드, 계속 그렇게 행동한다면 3개월 안에 망한다에 내 남은 눈을 걸지.”

그의 말에 피에트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베네데티.”

“네엡! 그럼 노블레스 길드 여러분,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로미나가 피에트로를 한 팔로 안아든 채 노블레스의 영지를 벗어났다. 커다란 어깨 너머로 보이는 피에트로의 얼굴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그들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폭죽이 터지고 있는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해냈군.”

“그러게.”

레일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그를 흘긋 보자 그는 여전히 현재 랭킹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넌 헌터가 뭐라고 생각하지?”

뜬금없는 질문이네.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후 숨을 들이마셨다.

“세상을 보호할 힘이 있는 사람들?”

“단순하군.”

“그럼 넌 뭐라고 생각하는데.”

레일리가 고개를 내려 나를 쳐다보았다.

“세상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괴물들.”

나도 모르게 눈이 커다래졌다. 레일리는 그런 내 얼굴을 보고 한 번 픽 웃곤 말을 이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해서 의외라고 생각하나?”

“약간.”

“망설이는 척이라도 해라.”

그의 입에서 의무라는 말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자존심 세고 오만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는 스스로에게 세상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성에서 나온 그날, 나는 동생을 그리고 이 나라를 지킬 방패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

“길드장이든 뭐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건 어디까지나 그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었다.”

치지직―

레일리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댄 후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검은 스파크가 그의 손을 감쌌다. 그리고 곧 검푸른 보석이 빠져나와 그의 손에 들어왔다.

“이 새끼랑 거래하고 나선 그 수단이 목표가 되어버렸지만 말이지.”

창조자의 파편이 꾸물거리며 살짝 녹아내리다 이내 책 모양이 되었다.

창조자의 시나리오. 녀석이 레일리에게 주었던 자신의 힘의 일부다. 그리고 레일리는 이 시나리오에 집착했다.

그는 시나리오대로 행동했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가장 먼저 나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 눈앞에 있는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란 여자는 자신의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절대자의 힘이 필요 없단 걸 증명한 사람이다.

“고맙다.”

“…어?”

“네가 그 이상한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난 평생 길드전에서 1등 탈환만을 노리는 멍청이가 되어 있었을 거다.”

레일리는 시나리오를 다시 자신의 몸에 밀어 넣으며 말을 덧붙였다.

“왕실의 핏줄을 타고났으면서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절대자의 개로 살았겠지.”

그가 내게 손을 뻗었다. 상처로 뒤덮인 단단한 손으로 내게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그의 모든 행동이 놀라워 숨죽인 채 그를 바라만 보자, 의지로 가득 찬 황금색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너의 동료가 되겠다.”

“레일리……!”

“너의 동료가 되어 절대자가 아닌 인간들을, 내 나라와 동생을 수호하겠다.”

절대자의 방패가 인류의 방패로 돌아섰다.

수없이 쌓여버린 업과 인과율은 나를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확실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레일리의 손을 꽉 잡았다.

“끝까지 같이 싸우자, 레일리.”

“알았다, 지의.”

치지직―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의 ‘망할 절대자한테 한 방 먹이자고’의 씨앗 개화]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은 각성자 ‘신지의’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고유 스킬 ‘호령여산(號令如山)’의 파괴력 증가]

<사명>

[사령탑]

[‘말의 씨앗’을 개화시켜 동료로 만들어라]

[달성도 상승]

[달성도 : 76%]

[세상을 구원하는 자]

[세상을 종말로부터 지켜내라]

[*달성도를 더 올리려면 각성자의 업을 파괴해야 합니다.]

그가 처음으로 날 이름으로 부른 동시에 말의 씨앗이 개화했다. 상태창 너머로 보이는 그의 얼굴과 단단하게 붙잡은 손이 우리가 완전히 동료가 되었다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사도 ‘탕자’라는 이명은 이제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수호자.’

만약 지금의 그에게 이명을 붙인다면 그 이름이 잘 어울릴 것 같다.

* * *

치지직―

“도착이요~”

“하아아…….”

알렌의 웜홀로 노블레스의 S급들만 먼저 길드 본부로 돌아왔다. 다른 길드원들은 캠프에 뒀던 짐과 함께 다음 날 전용기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다.

‘나오자마자 정말 정신없었지.’

알스 섬 던전 입구는 기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혹시라도 내 정체가 들킬까 봐 던전을 나서기 전 수잔이 한 번 더 은신 스킬을 걸어주었고, 던전 밖으로 나오자마자 난 헌터들 틈에 섞여 가장 먼저 캠프로 돌아갔다.

레일리가 기자 회견 날짜를 정해주겠다고 통보한 후, 지금에서야 본부로 돌아온 것이다.

“지의, 내게 할 말이 또 있을 텐데.”

“내가?”

레일리가 본부의 정원을 가로지르다 말고 갑자기 말을 걸었다.

“창조자의 파편을 부수려고 한 이유 말이다.”

“아.”

제일 중요한 이야기다.

레일리가 내 동료가 된 이상 창조자의 정체와 종말을 막을 방법을 공유해야 한다.

난 슬쩍 뒤를 보았다. 알렌과 라파엘라가 우리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다시 레일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창조자가 ‘지옥도’라는 걸 만들고 있어. 그리고 그게 종말의 원인이고.”

“진심인가?”

“그리고 네가 갖고 있는 그 창조자의 파편은 지옥도의 핵심 재료 중 하나야.”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레일리의 미간이 구겨졌다.

[발언 결과 : 수용]

“넌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너무 깊게 묻진 말아줘. 그래도 믿을 만한 정보니까 의심하지도 마.”

“하, 말하는 것 참 당돌하군.”

레일리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동안 난 말을 덧붙였다.

“그 파편을 부수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던전이 튀어나올 거야. 그 던전을 클리어 하면 파편은 소멸해.”

“그럼 시나리오도 사라지게 되겠군.”

“응.”

그 후 카르마의 탄환으로 레일리의 업을 청산시키면, 그와 창조자 사이에 있던 모든 관계는 끊어진다. 창조자의 마음대로 그를 자신의 공간으로 소환시키는 일도 없을 것이다.

끼이익―

본부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노블레스의 길드원들이 중앙 계단을 따라 쭉 선 채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레일리 님!”

각기 다른 목소리가 하나로 모여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 냈다. 그 후엔 건물 전체가 떠나갈 정도로 큰 박수 소리가 레일리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었다.

그 광경이,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이라 나는 몰래 팔 안쪽을 꼬집어 보았다. 선명한 통증을 보니 꿈은 아니었다.

“우리 노블레스는 승리하여 돌아왔다!”

레일리가 큰 소리로 말하자 박수 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영국의 긍지, 영국의 방패로서! 우리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알았나!”

“네! 레일리 님!”

레일리는 말을 마친 후 계단을 올라갔다. 나도 그의 옆에 붙어 그의 집무실 쪽으로 발을 옮겼다. 레일리가 복도 쪽으로 들어갈 때까지도 박수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길드원들은 레일리의 이름과 노블레스를 외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야~ 역시 축하는 언제 받아도 좋네요~”

“이 시간까지 퇴근도 안 하시고 기다리시다니…….”

뒤이어 들어온 알렌과 라파엘라가 복도 쪽으로 들어서며 중얼거렸다.

‘다들 들떠서 그런가. 괜히 나까지 웃음이 나오네.’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그대로 둔 채 레일리를 따라 집무실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쿵―

“악!”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선 레일리 때문에 그의 어깨에 코를 부딪혔다.

나는 얼얼한 통증에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레일리를 올려다보았다.

‘뭐야……?’

레일리는 싸늘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말 그대로 무표정이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달빛을 등진 두 개의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어……?”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나자 익숙한 트렌치코트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가 일어나자 창가에 기대어 서있던 붉은 머리카락의 인영도 우리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다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들과 우리가 대치했다. 숨 막히는 정적이 집무실을 공기를 짓누르는 듯했다.

“이제야 왔네.”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확신했다.

세빈이와 최민 헌터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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