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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37화 (137/366)
  • 137화

    “하아, 하아, 허억…….”

    간발의 차였다.

    내가 노블레스 영지로 돌아왔을 때, 레일리는 너덜너덜한 상태로 자신의 패배가 예견된 대치를 하고 있었다.

    로미나의 주먹이 아더의 방패를 깨트린 그 순간, 난 구원자의 무기 창고부터 열었다.

    자아를 꺼내 기습을 하면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겠지만, 그건 내 정체를 광고하는 꼴이다.

    레일리를 향해 달려가는 그 몇 초 동안, 나는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의 전투 방식을 떠올렸다.

    일대일 상황에 강하고, 내가 가장 잘 흉내 낼 수 있는 사람의 전투. 그리고 그 전투에 특화된 무기.

    캉―

    그게 바로 지금 내 손에 있는 야구 배트였다.

    난 야구 배트를 한 손으로 든 채 그것의 끝을 바닥을 향하게 두었다.

    “아야야…….”

    로미나가 엎드린 채로 고개만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야구 배트를 검처럼 든다고 해서 그게 검이 되는 건 아닙니다! 으으… 머리 아파.”

    비웃음 따위 아무래도 좋다.

    나는 지금부터 강세빈을 흉내 낼 거고, 이 배트는 영(影)이 될 거니까.

    고개를 돌려 레일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메이스에 몸을 의지한 채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에게 상황을 공유해 봤자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치직―

    그때, 레일리의 옆에 검은 균열이 생기더니 그 안에서 알렌과 라파엘라가 튀어나왔다.

    탕, 탕, 탕!

    알렌이 로미나를 향해 탄환을 쏘자 라파엘라가 레일리를 들쳐 업고 그와 거리를 벌렸다. 지금 보니 라파엘라의 몸도 성한 곳이 없었다.

    라파엘라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레일리를 치유하는 동안 난 로미나와 대치했다.

    그때 로미나의 옆으로 작은 체구의 남자가 다가왔다.

    ‘이 남자가 피에트로…….’

    “노블레스에 프레데릭 외에 베네데티를 공격할 만한 헌터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

    “은신계인가? 아니면 공격계?”

    대답을 피하자 붉은 눈동자가 데구루루 굴러 나를 응시했다. 겨우 유지되고 있는 은신 스킬 덕분에 내 정체까지를 완전히 인식하긴 어려웠지만, 적어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보이는 듯했다.

    ‘근접 전투계인 레일리가 저렇게 된 걸 보니 로미나도 보통 실력은 아닐 거야.’

    나는 침을 꿀꺽 삼킨 후 배트를 꽉 쥐었다.

    로미나와의 전투는 시간 벌기. 본 목적은 어딘가에 있을 왕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콰앙!!

    “큿……!”

    그때 갑자기 로미나의 주먹이 나를 향했다.

    황급히 배트의 윗부분과 손잡이를 동시에 잡아 주먹을 막아냈지만 내 몸은 이미 저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공격이 엄청 묵직해.’

    속도는 조금 느릴지 몰라도, 공격 하나의 파괴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직접 맞은 게 아닌데도 몸이 징징 울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알렌이 내 뒤에서 나타나 조용히 말을 걸었다.

    “영지에 있는 건 함정이었어요. 다른 곳에 왕을 숨겨놨어요.”

    “함정이었다고요?!”

    그가 자신의 이마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쿵―

    더 대화할 틈도 없이 로미나가 다시 도약해 내게 달려들었다.

    카앙!!

    야구 배트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니 단단한 주먹이 그 공격을 막았다.

    ‘세빈이라면…….’

    팔을 내려 한 발 물러난 후 곧바로 로미나의 갈비뼈를 향해 배트를 횡으로 휘둘렀다.

    쿵―

    보통 사람이라면 충분히 뼈가 부러지고도 남았을 공격이었다. 하지만 로미나는 잠깐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나는 게 전부였다.

    ‘제법인데?’

    ‘고마워.’

    나는 자아의 칭찬에 대충 대답한 후 손목을 풀었다.

    세빈이는 한 번 막힌 공격을 다시 시도하지 않는다. 빠르게 경로를 바꿔 상대의 허를 찌르지.

    파바바박!!

    그때 위쪽에서 로미나를 향해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떨어졌다. 고개를 드니 노블레스 길드원들이 창문을 통해 스킬을 쏟아붓고 있는 게 보였다.

    ‘지금이다.’

    로미나가 위쪽에 시선이 뺏긴 지금이 피에트로의 스킬을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나는 오른쪽 눈을 감고 뒤쪽에서 전투를 관찰하는 피에트로를 바라보았다.

    [각성자 피에트로 리나]

    [어둠 속성]

    [고유 스킬 S등급]

    [S급 정신계 스킬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 : 상대의 발언에서 거짓을 완벽하게 가려낼 수 있다.]

    [귀속 무기 : -]

    [무기 비문 : -]

    [업 해당 사항 없음]

    [사명 해당 사항 없음]

    [*구원 해당 사항 없음*]

    “……어?”

    레일리의 예상대로 피에트로의 고유 스킬은 S급 정신계 스킬이었다. 상대의 발언에서 거짓을 파악하는 스킬이니, 그와 대화를 나눈 길드가 전부 패했다는 사실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

    “아아~! 여럿이서 공격하는 건 비매너죠!”

    깊은 생각에 잠기기 직전, 로미나의 목소리가 내 생각을 방해했다.

    그는 노블레스 길드원들의 공격을 전부 피한 후 자세를 잡더니 하늘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정신 좀 차리세요!”

    “이런 젠장……!”

    로미나의 손짓에 성 전체를 삼킬 만큼 거대한 물웅덩이가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꾸물거렸다.

    콰과과광!!

    그러나 살인적인 물줄기는 성에 닿자마자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새끼 폭포 몇 개가 건물 위로 떨어지긴 했지만 옥상에 있던 벽돌 몇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을 뿐 큰 피해는 없었다.

    저 공격을 튕겨낼 수 있는 방패를 가진 사람은 여기서 단 한 사람밖에 없다.

    “정신은 너나 차려라, 근육 돼지 새끼.”

    레일리가 라파엘라의 십자가에 기댄 채로 성을 향해 아더의 방패를 시전하고 있었다. 얼굴과 몸은 여기저기 멍들고 부어 멀쩡한 곳이 없었지만, 그래도 의식은 명확하게 있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신경 써야 할 건 피에트로의 스킬이다.

    S급 정신계 스킬, 뭐 여기까진 예상했다 치자.

    그의 상태창은 고유 스킬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귀속 무기조차 없었다. 순수하게 전투력만 놓고 보면 일반인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수준이었다.

    “…일반인?”

    나는 고개를 들어 현재 랭킹을 살폈다.

    [Current Ranking]

    1. NOBLESS(172) : 241(-)

    2. Aurèola(7) : 109(-)

    아우레올라의 왕관은 7개. 레일리는 D급 이하의 헌터를 왕으로 세웠을 거라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피에트로의 스킬을 모르는 상황에서 추측한 것이다. S급에, 길드장직까지 맡고 있는 그에게 전투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스킬이 단 하나도 없을 줄 누가 알았을까.

    나는 조용히 라파엘라에게 시선을 보냈다. 내 시선을 느낀 그가 눈을 크게 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난 피에트로 쪽으로 턱짓했다. 그러자 라파엘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손가락으로 왕관 모양을 그렸다. 그 행동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만약 피에트로가 왕이 아니더라도 길드장을 행동 불능 상태로 만들어 놓는 건 괜찮은 작전이다. 그것만으로 사기가 확 꺾일 테니.

    쾅!!

    로미나가 다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발 앞에 꽂힌 거대한 주먹을 피해 옆으로 물러나자 이번엔 쇠기둥 같은 다리가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치지직―

    “하아… 나이스 타이밍.”

    “고마워요.”

    다행히 알렌이 웜홀로 나를 성 입구 쪽으로 끌어당긴 덕분에 얼굴뼈가 부서지는 사고는 피했다.

    “피에트로가 왕일 거예요. 일단 라파엘라한텐 알렸으니, 알렌이 레일리한테도 말해줘요.”

    알렌에게 빠르게 말을 전한 후, 방향을 바꿔 내게 달려오는 로미나에게 배트를 던졌다.

    깡!

    경쾌한 소리와 함께 로미나가 주먹으로 배트를 쳐낸 순간, 난 자세를 낮춰 방어가 빈 그의 턱을 향해 주먹을 들었다.

    우득!

    “으극?!”

    턱이 제대로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로미나의 팔 밑을 통과해 거리를 벌린 후, 나는 저 멀리 날아간 배트를 구원자의 무기 창고에서 다시 꺼냈다.

    “애송이!”

    그때 레일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움직일 정도로 회복된 건지, 그는 한 손에 메이스를 든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가 나를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하나씩 접히기 시작하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5초 후, 레일리가 승부를 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엇나간 턱을 맞추느라 정신없는 로미나의 움직임을 막는 것.

    레일리의 새끼손가락이 접힌 그 순간.

    투쾅!!

    이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방패가 신생 길드의 우두머리를 향해 포탄처럼 달려 나갔다.

    “로, 로미나!”

    “허억……!”

    피에트로의 다급한 목소리에 로미나가 곧바로 몸을 돌려 그를 향해 달렸다.

    쿵!

    “예수님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자매님~”

    그리고 그 앞에 라파엘라의 거대한 십자가가 꽂혔다.

    “비켜 이 사이비 놈아!!!”

    로미나의 말투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성난 짐승처럼 십자가를 뽑아 던진 후 다시 피에트로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 라파엘라의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고, 라파엘라는 로미나를 향해 역성호를 그었다.

    “윽?!”

    저주가 제대로 걸렸는지 그의 움직임이 느려지자 난 그의 척추를 배트로 내리찍었다. 예상치 못한 합동 공격에 로미나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쾅!

    배트로 로미나의 뒷목을 힘주어 누른 후 움직이지 못하게 꽉 고정했다. 전신이 파들파들 떨려 당장이라도 뒤로 넘어갈 것만 같았다.

    “커흑……!”

    그때 피에트로 또한 레일리의 손에 머리통을 잡혀 바닥에 꽂혔다. 레일리는 그의 온몸을 살피며 왕관이 있을 만한 곳을 빠르게 훑었다.

    콰과과광!!

    “윽!”

    그때, 엄청난 물줄기가 나와 라파엘라의 위로 쏟아졌다. 온몸이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로미나를 누르는 손엔 힘을 풀지 않았다.

    “끝내버려 레일리!!”

    “알았다, 애송이이이!!”

    쨍그랑―

    물소리 틈으로 얄팍한 유리가 산산이 조각나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 고개를 들어 레일리 쪽을 바라보자 그의 손안에서 황금색 가루가 힘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피에트로의 셔츠 위로 끊어진 목걸이 줄이 초라하게 떨어졌다. 피에트로는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레일리와 자신의 배 위에 놓인 목걸이 줄을 번갈아 보았다.

    펑, 퍼엉, 펑―

    노이즈 대신 이번엔 폭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보자 현재 랭킹 주위로 형형색색의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Result]

    1. NOBLESS(172) : 248(-)

    2. Aurèola(7) : 109(-) [END]

    3. Le jardin de Monet(117) : 76(-) [END]

    절대자의 힘이 필요 없단 걸 증명해 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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