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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36화 (136/366)

136화

쾅―!!

로미나가 레일리가 있던 곳으로 양손을 내리찍었다. 레일리는 그 공격을 방패로 막는 대신 옆으로 몸을 돌려 피했다. 그러자 로미나의 주먹 때문에 땅이 움푹 파였다.

콰앙!

그는 곧바로 굽혔던 허리를 펴 주먹을 아래에서 위로 들었다. 아더의 방패에 육중한 공격이 들어왔지만 그중 일부는 튕겨져 로미나의 턱을 쳐 올렸다.

“아야야……. 그 방패 엄청 거슬리네요!”

로미나가 돌아간 턱을 끼워 맞추는 동안 레일리는 욱신거리는 왼쪽 팔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괴물이군.’

아더의 방패가 모든 공격을 절대 반사하는 스킬은 맞지만, S급들의 공격은 일부분 레일리에게 전달될 때도 있었다.

레일리는 저릿한 왼쪽 팔에 다시 힘을 준 후 로미나와 거리를 좁혔다.

로미나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메이스를 피한 후 레일리의 오른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래도, 뭐~”

쾅!

“컥……!”

“해볼 만합니다!”

로미나의 주먹이 레일리의 옆구리에 꽂히자마자 그의 손목 주위를 맴돌던 물이 엄청난 힘으로 레일리의 갈비뼈를 한 번 더 공격했다.

콰과광―

꿈틀대던 흙이 로미나와 레일리 사이로 뿜어져 나와 거대한 벽을 만들었다. 레일리는 아더의 방패를 앞에 세운 채 인벤토리에서 진통제를 꺼내 마셨다.

투쾅!

로미나가 흙벽을 뚫고 다시 레일리에게 달려들었다. 속도는 레일리에 비해 느렸지만 몸 자체가 인간 이상의 수준으로 튼튼해 웬만한 공격으로는 그에게 치명타를 줄 수 없었다.

“흐음…….”

성곽에 걸터앉은 채 이 모든 난투극을 지켜보던 피에트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격 스킬이 생긴 건 아니네.’

그는 현재 랭킹을 향해 눈을 돌렸다.

노블레스의 왕관 수는 길드전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숫자였다.

‘프레데릭이 S급이긴 하지만 공격계 S급인 뮐러보다 높게 계산되긴 힘들 텐데.’

피에트로는 다시 레일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길드 안팎으로 괴물이라 불리는 로미나를 상대로 제법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피에트로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바라보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베네데티.”

“예? 우왁!?”

쾅!!

로미나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레일리가 그의 명치를 후벼 팠다. 그 일격에 육중한 몸이 뒤로 나동그라져 한참을 굴렀다. 그의 몸은 나무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췄다.

“쿨럭.”

후두둑―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침이 터지자 검붉은 피가 흙 위로 떨어졌다.

로미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제 피로 젖어가는 땅과 레일리를 번갈아 보았다. 그는 손등으로 입가를 슥 닦은 후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픈데…….”

로미나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는 아까보다 차분해진 태도로 몸을 일으키더니 허공을 꽉 쥐었다.

촤아아악―

그러자 영지 곳곳에서 거대한 폭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손목을 주위를 떠다니던 물의 고리가 더욱 거세게 요동치며 크기를 키웠다.

“하아…….”

피에트로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정예가 그에게 피를 낸 사람을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로미나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콰과과광!!

사방팔방에서 폭포가 쏟아져 레일리의 시야가 크게 좁아졌다. 그는 맞기만 해도 몸에 구멍이 뚫릴 것 같은 거센 폭포를 요리조리 피한 후 폭포의 틈으로 메이스를 던졌다.

쿵―

메이스는 정확히 로미나의 어깨에 명중했다. 하나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만 돋운 듯 그는 황소처럼 달려와 레일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윽!”

주먹을 피하기 위해 레일리가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순간 묵직한 폭포가 그의 위로 쏟아졌다. 그가 휘청거리며 아더의 방패를 높게 든 그 순간.

콰그작!!

빠르게 자세를 낮춘 로미나의 주먹이 레일리의 명치에 정확히 꽂혔다.

레일리의 몸이 몇 미터 정도 붕 뜨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 위로 떨어졌다. 그를 단단히 보호하던 아더의 방패도 사라졌다.

“저기요? 저~기요?”

“…….”

“에궁, 죽은 건 아니겠죠?”

“왕관이 있는지부터 살펴.”

“네에~”

로미나는 피에트로의 명령에 레일리의 몸과 그의 옷에 달린 모든 주머니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레일리는 죽은 듯이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 * *

“나간…다고?”

“어. 안 돌아올 거야.”

“…레일리. 너 지금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어.”

마지막으로 위스키 한 병을 가방에 쑤셔 넣은 후 지퍼를 잠갔다. 가방을 들자 리아가 완전히 질렸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뿐인 언니인데, 입구까지 배웅 좀 해줄래?”

“지금 농담이 나와?!”

쿵―

리아가 제 옆에 있던 소파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국왕이 될 애가 저렇게 과격한 모습을 보이다니. 국민들이 보면 놀라 뒤집어질 거다.

잔뜩 화가 난 녀석을 뒤로 한 채 방 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라서 그래? 그냥 여기서 너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잖아!”

“여기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못 사니까 그렇지.”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

그 말에 문고리를 향하던 손이 멈췄다.

사실 성을 나가는 이유도, 큰 뜻도, 대의도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나가서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아직 모른다.

고개를 돌려 다시 리아를 바라보았다. 아래로 내려간 눈매와 짧은 머리카락. 눈동자와 머리 색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반대인 내 동생. 중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후계자 교육을 받기 시작한, 국왕으로서의 완벽한 인재.

하지만 내가 S급으로 각성하자마자 왕위를 위협받은 비운의 후계자.

나와 리아의 사이가 급속도로 멀어진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나랏일 하는 놈들과 왕실 늙은이들의 말도 안 되는 고민이 리아와 나 사이를 갈라놓았다.

‘하고 싶은 건 없지만, 리아가 미쳐가는 꼴만큼은 보기 싫으니까.’

내가 성을 나가는 이유는 그게 전부였다.

동생이 제 베개를 전부 다 뜯어 놓는 것도, 홧김에 제 머리를 엉망으로 잘라버리는 모습도, 더는 보기 싫어서.

나는 오만상을 쓴 리아를 향해 입꼬리를 씩 올렸다.

“길드나 만들려고.”

“너 미쳤어?”

“안 미쳤으면 성을 나가겠냐.”

대충 아무런 말이나 뱉자 예상한 대로 험한 말이 돌아왔다.

끼익―

문고리를 돌려 복도로 나왔다. 불이 꺼져 어둑어둑해진 복도엔 달빛만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을 뿐이었다.

“꼭 나가야겠어?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야만 속이 시원하겠냐고!”

결국 리아의 감정이 끓어 넘쳤다.

녀석은 문고리를 꽉 잡은 채 나를 노려보았다. 솔직하면서도 마주하기 창피한 감정이었는지, 리아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글로리아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어깨를 흠칫 떨었다.

“넌 몇 년 후면 이 나라의 국왕이 돼. 그러니까 괜히 이상한 데서 성질 부리…….”

“…그러면 넌.”

“응?”

리아가 아랫입술을 꽉 물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넌 몇 년 후에 뭐가 돼있을 건데.”

“푸흡…….”

난데없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리아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글쎄.”

“…….”

“영국 제1 길드의 길드장?”

리아는 내 말을 듣고 뭐가 그리 분한지 기어코 눈물을 떨어트렸다.

“아무튼, 간다.”

“진짜 싫어…….”

“잘 있어.”

“그깟 스킬이 뭐라고……!”

리아의 중얼거림을 마지막으로 나는 몸을 돌렸다.

이 성을 나서면 난 왕실에서 사실상 퇴출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왕실을 둘러싼 여러 소문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그리고 불어난 의혹과 루머는 결국 후계자인 리아를 향할 것이다.

‘상태창.’

치직―

[S급 방어계 스킬 ‘아더의 방패(Shield of King Arthur)’ : 적의 공격을 전부 반사시키는 방패를 소환한다. 방패의 형태는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하다.]

방어계. 내가 가진 힘은 누군가를 보호하는 동시에, 공격한 사람에게 똑같은 힘을 돌려줄 수 있다.

‘기꺼이 총알받이가 되어주지.’

왕실에서 내쫓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 리아와 왕실을 향할 총알을 내가 다 맞을 것이다. 소문에 걸맞은 쓰레기가 되어 반년 정도는 미디어의 구경거리가 되지, 뭐.

그 후엔 정말로 영국 제1 길드의 장이 될 테니까.

리아가 즉위해서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의 군주가 되는 날, 난 녀석을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이다.

끼익―

문을 열었다. 얼굴에 닿는 눅눅한 공기가 내 가시밭길을 응원해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상에서 보자, 리아.’

* * *

“아.”

레일리가 눈을 떴을 땐 이미 몸이 땅에 처박힌 후였다. 메이스는 이미 반지가 되어 제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별 이상한 꿈을 다 꾸는군.’

그는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폈다.

로미나와 피에트로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내 피에트로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맞췄다.

“프레데릭, 네가 왕인가?”

“…….”

“대답해라.”

피에트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레일리의 잇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글로리아.”

“…뭐?”

“걔가 왕이지, 누구긴 누구야.”

레일리는 저 혼자 키득대며 웃었다.

피에트로는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속이 슬슬 꼬이기 시작했다.

‘애송이가 영지에서 아우레올라의 왕을 찾으면 우리가 이긴다.’

레일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온몸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눈꺼풀이 스르륵 감겼다.

“말을 안 한다니, 할 수 없군.”

피에트로가 한숨을 푹 쉬더니 몸을 일으켰다.

“너희 길드원을 전부 반쯤 죽여놓으면 누군가 하나쯤은 왕을 실토하겠지.”

‘동요할 거 없어. 여기 있는 모두가 빈사 상태가 돼도 언젠가는 우리가 이긴다.’

레일리는 피에트로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대로 엎어져 있었다.

“베네데티, 들어가.”

“네~ 그럼 프레데릭 길드장님과의 전투는 여기서 끝! 수고하셨습니다~”

로미나는 레일리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접어 인사한 후 성 내부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레일리는 안쪽으로 들어가는 로미나의 뒷모습을 눈동자만 굴려 바라보았다.

‘이기기만 하면 돼. 이겨서 우리가 유럽의 제1 길드라는 걸 보여주면…….’

쿵, 쿵, 쿵―

심장이 크게 뛰었다. 머리는 차가운데, 내장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끓어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 생긴 힘인데 세상은 이걸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말이죠.”

‘난 녀석을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이다.’

여러 가지 문장들이 뒤죽박죽 섞여 레일리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쿵!

“우왁?!”

진흙 벽이 갑자기 로미나의 길을 막았다. 그가 한발 뒤로 물러난 후 고개를 돌리자, 레일리가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저를 보며 서있는 것이 보였다.

“와… 뼈가 거의 다 으스러졌을 텐데도 일어나시다니.”

로미나가 입을 쩍 벌린 채 감탄했다. 그러더니 씩 웃으며 그를 향해 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참 바보 같은 짓을 하는군.’

정상이 되는 것에 눈이 멀어 자신이 성을 나오게 된 이유조차 잊었다. 최고가 되는 것은 자신의 동생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는데. 창조자를 만나면서 그것이 목적으로 변해버렸다.

까득―

레일리는 이를 갈았다. 자신의 길드원을 아무렇지 않게 총알받이로 쓰려 했던 자신의 생각이 역겨웠기 때문이다.

쿵―

그는 아더의 방패를 꺼내 땅에 박았다. 그의 몸이 엉망진창이라 아더의 방패도 견고하지 못했으나 그의 방패는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그럼 갑니다아~!”

레일리의 바로 앞까지 온 로미나가 팔을 뒤로 빼 주먹으로 그를 칠 준비를 했다. 레일리는 아더의 방패를 잡곤 로미나를 노려보았다.

‘난 모두를 지킬 방패다.’

쨍그랑!

그의 예상대로 로미나의 주먹에 아더의 방패가 부서졌다.

그렇게 그의 주먹이 레일리의 얼굴에 닿기 직전.

까앙―!!

엄청난 크기의 파열음과 함께 누군가가 운석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아아악!”

로미나는 머리를 감싸 쥔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레일리는 쓰러진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앞을 보았다.

“애송, 이…….”

새하얀 배트를 든 은둔의 구원자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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