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35화 (135/366)

135화

20분 전, 노블레스의 영지.

“후우, 후, 하아…….”

레일리는 쓰러진 토마스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그의 손은 토마스의 귀를 향하고 있었다.

쨍그랑!

그의 귀에 달린 왕관을 지그시 누르자 유리처럼 깨졌다. 그 파편들은 자잘한 가루가 되어 바닥을 굴러다녔다.

토마스의 텅 빈 눈이 왕관의 파편을 보더니 픽 웃었다.

[Current Ranking]

1. NOBLESS(172) : 241(-)

2. Aurèola(7) : 109(-)

3. Le jardin de Monet(117) : 76(-) [END]

4. Eintracht(98) : 70(-)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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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Funke(124) : 21(-) [END]

‘이제 남은 건 아우레올라 놈들뿐인가.’

현재 랭킹에서 시선을 뗀 레일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라파엘라의 스킬 덕분에 주요 전력들의 큰 부상은 치료가 됐으나, 정작 치료를 한 라파엘라의 체력은 크게 떨어져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왼 탓이었다.

툭―

“야.”

“…왜요.”

“오늘은 평소의 너답지 않더군.”

레일리가 발로 토마스의 몸을 툭툭 건드리자 그가 속절없이 흔들렸다. 몸을 일으킬 기력조차 없는 듯 그저 고개만 겨우 들어 레일리를 볼 뿐이었다.

“그동안 너희 길드는 중위권 길드들을 야금야금 잡아먹는 식으로 임해 왔다. 그러다 6, 7위권에 접어들면 방어전에 들어가는 형태로 싸웠지.”

“잘 아시네요.”

“우두머리의 기본 덕목이지.”

레일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데 왜 무모한 짓을 한 거지? 아무리 네가 불 속성이라고 해도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하다는 걸 알 텐데.”

“지고 싶지 않아서요.”

“이미 졌잖아.”

“아니, 그게 아니고…….”

그제야 일어날 기력이 생긴 토마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엉망이 된 코트를 손으로 툭툭 털며 스스로를 정돈하더니 레일리 쪽으로 시선을 건넸다.

“아우레올라한테 지고 싶지 않아서요.”

“차라리 나한테 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건가?”

“네, 뭐…….”

레일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왜 그렇게 생각한 거지?”

“헌터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하, 네가 철학 박사 학위가 있다는 사실을 까먹었다. 뜬구름 잡는 소리할 거면 빨리 짐 챙겨서 던전 밖으로 나가라.”

토마스는 머쓱해져서 머리를 벅벅 긁은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헌터의 본질은 게이트 속 몬스터들을 잡는 힘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

“만약 던전 부산물이 S급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면 그 부산물과 헌터가 다른 점은 뭘까요.”

“머리를 공격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이제 돌덩이랑 인간도 구별하지 못하는 건가?”

“정답입니다. 돌덩이와 인간이라는 차이가 있죠.”

치익―

토마스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동안 레일리는 보급팀이 건네준 기력회복제를 들이켰다.

“어떻게 보면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 생긴 힘인데 세상은 이걸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말이죠.”

그의 말에 레일리가 눈썹을 움찔거렸다.

“그깟 스킬이 뭐라고……!”

“꼭 나가야겠어? 날 비참하게 만들어야만 속이 시원하겠냐고!”

국왕인 자신의 동생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다.

악에 바쳐 자신을 원망하는 그 얼굴은 지금도 레일리의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게 니가 아우레올라에게 지고 싶지 않은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그들은 던전에 단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녀석들이에요.”

“뭐라고?”

레일리는 제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신생 길드라고 해도 던전에 단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정부에서 길드에게 주기적으로 던전 공략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럼, 한 달 전 베니스 A급 게이트 폭발에도 놈들은 불참했나?”

“네. 피앙세 길드 전원이 투입하여 수습했죠.”

“그 길드는 S급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자국에서 벌어진 게이트 폭발조차 무시했다는 사실에 레일리가 이마를 짚었다.

‘길드전만 죽어라 할 생각으로 길드를 세웠군.’

치지직―

토마스가 불의 고리로 꽁초를 태워버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이기적인 길드에 당하는 것보다 적어도 당신네 길드한테 왕관을 빼앗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예요. 그뿐입니다.”

“좋은 판단을 했군.”

“아무튼 전 갑니…….”

콰앙!!

그때였다. 바닥에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천지가 뒤흔들린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이 공간을 울렸다. 아까까지 토마스가 서있던 곳은 먼지로 뒤덮여 그의 모습을 숨겨버렸다.

“어이, 뮐러!!”

“길드장님!!”

레일리와 불꽃 길드원들이 소리쳤지만 토마스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휘이잉―

길드원 중 하나가 바람으로 먼지를 몰아내자 그제야 엉겨 붙은 인영들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에에엥~? 뭐야. 왕관 없는데요?”

“커, 커헉……!”

2미터는 족히 될 큰 키와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이 되는 거대한 팔과 다리. 칼로 찔러도 멀쩡할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두꺼운 몸통을 가진 여자.

아우레올라 길드의 부길드장, 로미나 베네데티였다.

쿵―

로미나가 토마스의 목을 잡았던 손을 풀자 그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토마스는 바닥에 엎드린 채 마른기침을 토해냈고, 그의 길드원이 빠르게 그를 데리고 노블레스 영지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레일리는 아더의 방패를 더욱 단단히 만든 후 로미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현재 랭킹을 봐라, 멍청아.”

“현재 랭킹? 아아~”

로미나는 하늘을 한 번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노블레스 쪽에서 부쉈군요! 이야~ 아까워라…….”

더 말할 가치를 못 느낀 레일리는 눈동자만 흘끔 굴려 라파엘라와 자신의 정예 헌터들을 살폈다.

자신이 토마스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라파엘라가 기력회복제라도 입에 들이부었는지, 아까보다 훨씬 컨디션이 나아 보였다.

또각―

그때 낯선 구두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레일리가 입꼬리를 쭉 올려 웃었다.

“드디어 납셨군.”

신생 길드, 아우레올라의 길드장 피에트로 리나의 등장에 노블레스 영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모두의 눈동자가 작은 우두머리에게 꽂혔다. 시선이 담고 있는 감정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피에트로는 자신을 향한 시선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로미나의 옆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의 키는 로미나의 가슴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꼬락서니 하곤.’

레일리가 피에트로의 모습을 아래위로 훑으며 혀를 찼다. 그는 사립 초등학교 학생이나 입을 법한 흰 셔츠와 반바지, 그리고 타이즈와 구두를 신고 있었다.

“여전히 전투와는 거리가 먼 복장이군.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놈이 그런 차림으로 다니는 거 안 창피한가?”

“엥 왜요? 인형 같아서 귀여운데.”

“베네데티.”

“네?”

로미나의 말에 피에트로가 신호를 줬으나 그는 속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에 노블레스 길드원들 중 몇 명은 대놓고 로미나를 비웃기 시작했다.

‘애송이는 아직 멀었나.’

생각한 것보다 지의의 귀환이 늦어지자 레일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의를 풋내기 헌터라고 생각한 것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보여준 폭발적인 힘과 순간적인 판단력은 창조자의 말마따나 그를 여러 번의 삶을 살고 온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가 조금 길어졌다 하더라도 지금쯤 아우레올라의 왕관을 부쉈어야 한다. 적어도 레일리의 계산으론 그래야 했다.

“처음 보는 왕관 수네. 누군가를 데려온 건가?”

“마음대로 생각해라.”

“아니면 레일리 너한테 공격계 스킬이 생긴 건가?”

레일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피에트로가 질문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머릿속이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무슨 스킬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피에트로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한 번 슥 정리한 후 로미나의 팔을 두드렸다.

“예! 길드장님!”

로미나가 허리를 숙여 제 길드장에게 귀를 빌려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듣는 동안 레일리는 라파엘라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에 라파엘라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땅에 박아뒀던 십자가를 뽑아 들었다.

“알렌 형제님도 여차하면 길드장님 데리고 뒤로 빠지세요.”

“알겠습니다.”

아슬아슬한 기류가 오가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알렌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오케이! 알겠습니다~”

로미나가 피에트로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 후 레일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라? 생각해 보니 지난번엔 안대 안 썼던 것 같은데!”

“…….”

“아~ 그때 제가 레일리 길드장님 얼굴을 잡았던 게…….”

쾅!!

로미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레일리의 메이스가 그의 머리를 향했다. 로미나는 간발의 차로 팔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공격을 막은 후 메이스를 잡아 그대로 레일리를 던져버렸다.

“흡!”

쾅!

레일리는 메이스를 놓아버린 후 아더의 방패를 양손으로 펼쳤다. 그 덕분에 쇠공 같은 로미나의 주먹이 그대로 반사되어 그에게 꽂혔다. 그런 뒤 레일리가 허공을 쥐자 경량화되었던 그의 메이스가 다시 손으로 돌아왔다.

쿵, 쿵, 쿵, 쿵―

단순하지만 확실한 연속 공격이 이어졌다.

레일리는 아더의 방패를 높게 들어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오른손으론 쉴 새 없이 메이스를 휘둘렀다. 로미나가 몸으로 메이스를 튕겨냈지만 메이스가 닿은 곳에 멍이 들어 시퍼렇게 물들고 있었다.

“베네데티!”

“예엡!”

피에트로가 그의 이름을 부른 순간 로미나가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쿵―

그와 동시에 그가 서있던 곳에 십자가가 꽂혔다.

“쳇.”

라파엘라가 혀를 차며 십자가를 다시 뽑아 로미나를 향해 던졌다.

“우왓! 십자가를 마구 던지다니, 신성 모독 아닌가요?!”

로미나가 자신을 향해 날아온 십자가를 주먹으로 쳐 올린 틈을 타 라파엘라가 팔꿈치로 그의 명치를 찍었다.

“욱?!”

“아멘입니다, 자매님~”

웃는 얼굴로 역성호를 긋는 라파엘라의 뒤로 레일리가 뛰어 올랐다. 높이 도약한 그는 메이스를 로미나의 머리 위로 있는 힘껏 내리쳤다.

콰과과광!!

로미나가 딛고 있던 땅이 깊숙이 파일 정도로 묵직한 공격이었다.

먼지바람이 일어 이리저리 엉겨 붙은 실루엣들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푹―

공중을 빙글 돌던 라파엘라의 십자가가 바닥에 꽂히고 나서야 먼지가 걷혔다.

알렌은 저격 태세를 갖춘 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하마터면 진~짜로 머리 깨질 뻔했어요!”

“큿……!”

로미나의 한 손은 라파엘라의 목에, 그리고 다른 한 손은 메이스를 움켜쥐고 있었다. 라파엘라는 이미 기절한 건지 몸이 축 처진 상태였다.

탕!

알렌이 방아쇠를 당기자 탄환이 로미나의 손목을 향해 날아갔다.

쏴아아―

하지만 그의 탄환은 거센 폭포에 삼켜져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쾅!!

레일리가 메이스를 놓고 바닥에 착지해 아더의 방패로 로미나의 정강이를 내리쳤다. 그러자 로미나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라파엘라를 놓았고, 레일리는 그의 몸을 받아 들었다.

“플랜 H! 나 빼고 전부 다 성 안으로 들어가!"

알렌이 웜홀로 빠르게 레일리의 옆으로 이동해 라파엘라를 데리고 성 안으로 사라졌다.

플랜 H. 힐러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레일리를 제외한 모든 헌터들이 후퇴하는 전략이었다.

이 작전은 아우레올라의 기습에 대비한 작전이었다. 노블레스에서 로미나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레일리뿐이기 때문에 괜히 서포트를 하다 인질로 잡히는 일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였다.

“이야~ 몸 잘 풀었네요!”

로미나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자 근육의 움직임이 셔츠 너머로 훤히 보였다.

촤라락―

그가 양손을 불끈 쥐자 손목 주위로 물로 된 고리가 생겼다.

‘저 스킬은 대체 뭐지?’

고유 스킬이 폭포 생성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지금 레일리가 보고 있는 건 그것의 응용 형태일 터였다.

레일리는 메이스를 다시 제 손으로 돌려놓은 후 아더의 방패를 더욱 견고히 만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갑니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양손을 높이 든 로미나가 위로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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