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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33화 (133/366)
  • 133화

    “아우레올라의 왕, 궁금하지?”

    레일리의 걸음이 멈췄다.

    나와 레일리가 동시에 뒤를 돌아 리애나를 바라보자 그는 숲 쪽으로 팔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불꽃 길드 영지 지나서 3킬로미터 정도 더 들어가면 거주 지구로만 구성된 영지가 있어. 그게 아우레올라 영지야.”

    “그래서, 뭐. 빨리 얘기해.”

    “아까 우리 땅으로 다시 복귀할 때 거기를 지나쳐서 왔거든.”

    리애나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근데 유일하게 어떤 집만 헌터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더라고.”

    “하아……. 아주 그냥 가둬놨다고 광고를 하는군.”

    아우레올라 왕의 왕관 개수는 7개. 그리고 헌터들이 보호하는 집.

    틀림없이 그 안에 아우레올라의 왕이 있을 것이다.

    ‘좀 폭력적이네.’

    레일리를 슬쩍 올려다보자 오만상을 찌푸린 얼굴이 보였다.

    “그저 추측일 뿐이긴 해. 그니까 그곳에 있는 게 만약에 왕 아니더라도 나 미워하기 없다?”

    “일단 참고하지. 그런데, 넌 그걸 왜 나한테 알려주는 거지?”

    리애나는 머리를 긁적이다 씩 웃었다.

    “글쎄. 너한테 제일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해서.”

    “누가 누굴 신경 쓰는지, 원.”

    “그리고 나도 걔네의 이번 작전은 마음에 안 들거든~”

    “알렌, 영지로 돌아간다.”

    레일리는 알렌에게 짧게 명령하곤 뒤를 돌았다. 그가 자신을 보든 말든 리애나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가 레일리~ 다음 여름엔 진짜로 박살을 내줄게~”

    치지직―

    알렌이 웜홀을 펼쳐 나와 노블레스 길드원 전부를 균열 안으로 끌어당겼다.

    펑―

    “윽?!”

    노블레스 성에 발을 딛자마자 얼굴에 뜨거운 기운이 훅 끼쳤다. 어지러웠던 시야가 완전히 돌아오고 나서야 영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쓰레기 새끼들이……!”

    순간 다른 곳으로 이동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로웠던 성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정원엔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레일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빈집 털이였다.

    쾅!

    레일리가 메이스로 부서진 의자를 내리쳤다.

    우리가 모네의 정원과 맞붙은 틈을 타 새로운 길드가 노블레스의 영지를 공격한 것이다. 레일리가 이곳에 없는 걸 알고 온 건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레일리의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것이다.

    “보나마나 불꽃 새끼들 짓이군. 당장 밖으로 나와!”

    “네!”

    레일리의 명령에 헌터들이 일제히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알렌과 함께 발코니 창문으로 나갔다. 그러자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정원이 보였다.

    “라파엘라 씨!”

    알렌이 쏜살같이 내려가 구석에 있던 라파엘라에게 다가갔다.

    라파엘라는 부상자들을 한데 모아두고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미 한차례 전투를 겪은 듯 곱슬거리던 머리카락은 산발이 됐고 안경엔 핏자국이 나 있었다.

    그는 알렌을 보자마자 살짝 눈인사를 하더니 성 입구 쪽으로 턱짓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기도를 외는 그의 입은 쉬지 않았다.

    그가 가리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전투의 한복판에서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단발머리의 남자가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비쩍 말라서 허약해 보이는 남자였다.

    퍼버벙!!

    하지만 그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남자는 자신을 노리는 헌터의 칼을 슬쩍 피한 후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고리 모양의 불꽃이 떨어졌다.

    그를 공격한 헌터가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자 물 속성으로 보이는 헌터가 불을 겨우 잠재우며 동료와 함께 거리를 벌렸다.

    “저 사람이 길드장이에요?”

    “네. 토마스 뮐러. 독일 ‘불꽃’ 길드장이에요.”

    실력이 범상치 않다고 느끼긴 했다.

    나는 자아를 꽉 쥔 채로 왼쪽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각성자 토마스 뮐러]

    [불 속성]

    [고유 스킬 S등급]

    [S급 소환계 스킬 ‘아우토반(Autobahn)’ : 자아가 있는 불의 고리를 소환한다. 불의 고리는 시전자 주위를 맴돌며 시전자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

    [연계 패시브 스킬 ‘안전제일(Sicherheit vor allem)’ : ‘아우토반’으로 피해를 입지 않는다.]

    [C급 치유계 스킬 ‘치료(Heilbehandlung)’ : 불의 온기로 시전자를 치유한다.]

    [귀속 무기 : S급 단검 ‘지루함(Lạngweiligkeit)’]

    [무기 비문 : 재미없는 남자에게 딱 맞는 재미없는 무기.]

    [업 해당 사항 없음]

    [사명 해당 사항 없음]

    [*구원 해당 사항 없음*]

    “저 길드 지금 몇 위예요?”

    “어디 보자…….”

    알렌이 현재 랭킹으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Current Ranking]

    1. NOBLESS(172) : 117(▲2)

    2. Le jardin de Monet(117) : 76(▼1) [END]

    3. Eintracht(98) : 40(-)

    .

    .

    .

    10. Funke(124) : 21(▼6)

    “10위요.”

    왕의 왕관 수는 124개. 우리 다음으로 많았다.

    ‘그렇다는 건 저 길드장이 왕일 확률이 높은 건데…….’

    하지만 왕관 수집은 얼마 못 했는지 순위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었다.

    콰앙!!

    그때 레일리가 메이스로 토마스가 있는 곳을 덮쳤다. 토마스는 반격하는 대신 몸을 돌려 공격을 피했다.

    “시시한 놈이 이번엔 꽤 재밌는 일을 하는구나.”

    “아, 네…….”

    레일리가 폭풍 같은 공격을 끝내고 발로 땅을 쳐 올렸다.

    쿠드드득―

    땅 속에서 거대한 흙더미가 솟아올라 토마스의 중심을 흩트려 놓았다.

    퍼버버벙―

    토마스는 자신의 주변으로 불의 고리를 소환해 레일리의 돌격을 차단했다.

    “아이쿠.”

    레일리의 공격은 막았지만 중심을 잃은 탓에 그는 힘없이 넘어졌다.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는 순간 그의 귀걸이에 왕관이 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예 숨길 의지가 없군.’

    나는 건물 잔해 뒤로 숨어 자아를 조준했다. 그의 정신은 레일리에게 팔려 있었기에 지금이 왕관을 뺏을 찬스다.

    탕―

    방아쇠를 당기자 작은 탄환이 빠르게 날아가 그의 귀를 향했다.

    티잉―

    “음?”

    “뭐야……?!”

    그때 그의 주위를 맴돌던 불의 고리가 내 탄환을 튕겨냈다. 그에 토마스의 시선이 내 쪽으로 넘어왔다.

    ‘불의 고리 자체에 자아가 있어서 그렇구나……!’

    애초에 아우토반은 소환계 스킬이다. 그 말인즉 토마스가 공격을 눈치채지 못해도 불의 고리가 인식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저쪽에도 뭐가 숨어 있나 보군요…….”

    휘이이잉―

    토마스의 중얼거림과 함께 불의 고리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낮말을 듣는 새로 빠르게 도약해 공중으로 몸을 피하자 고리는 애꿎은 건물 잔해만 부수고 다시 토마스의 주변으로 돌아왔다.

    “분명 뭐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젊은 놈이 이제 눈까지 침침해졌나 보구나.”

    “저랑 두 살밖에 차이 안 나시잖아요.”

    레일리가 토마스와의 거리를 좁힌 후 메이스로 내리찍었다. 토마스의 공격은 아더의 방패로 전부 막혔다. 하지만 시전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연계 패시브 스킬 덕에 토마스도 물러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여긴 레일리한테 맡기고 다른 곳을 정리해야겠어.’

    서로의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체력전으로 갈 것이다. 그럼 상대적으로 레일리에게 유리해지겠지.

    철컥―

    자아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로 영지를 둘러보았다.

    성 입구는 레일리와 토마스가 교전 중이고 보조하러 온 헌터들끼리도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우측은 라파엘라의 치료 구역, 좌측은 불꽃 길드의 치유계 헌터가 헌터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 전투가 장기전으로 간다면 지금 상황에서 보호해야 하는 건 단 하나.

    보급품이다.

    타닥―

    나는 부상당한 헌터들을 옮기던 알렌의 옆으로 가 그의 어깨를 쳤다.

    “보급품은 어디 있죠?”

    “1층 안쪽 창고요. 아직 확인은 못했는데 아마 거기도 고전 중일 거예요.”

    “제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이동시켜 주세요.”

    “네!”

    알렌의 대답을 들은 후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콰광!

    중앙 계단 뒤편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 안쪽으로 발을 옮기니 부서진 나무 문 너머로 사람들이 엉겨 붙어 있었다.

    한창 방어를 하던 보급팀 길드원들이 불꽃 길드원들에 의해 한 명씩 쓰러졌다.

    “커헉……!”

    “하아, 하. 엄청 끈질기네……. 얼마나 지났어?”

    “하아, 하아……. 이제 두 시간 정도 지났습니다.”

    “X발, 너무 오래 걸렸잖아!”

    저 무리의 우두머리 정도로 보이는 여자 헌터가 신경질을 내며 보급품이 든 상자를 발로 찼다. 그의 행동에 다른 길드원들까지 몸을 떨며 겁을 먹은 듯했다.

    난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 그를 응시했다.

    [각성자 루이사 슈미트]

    [불 속성]

    [고유 스킬 A등급]

    [A급 공격계 스킬 ‘불의 숨결(Der Atem des Feuers)’ : 시전자의 숨을 불로 바꾼다.]

    [귀속 무기 : A급 너클 ‘용광로(Blast furnace)’]

    [무기 비문 : 당장이라도 끓어 넘칠 것 같아.]

    [업 해당 사항 없음]

    [사명 해당 사항 없음]

    [*구원 해당 사항 없음*]

    ‘그래서 당했군.’

    보급팀은 대부분 비전투계의 B급 헌터로 구성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들로선 웬만큼 전투 경험이 있지 않는 이상 A급 공격계 헌터를 막는 건 어려웠을 터.

    “그나저나 이 상자, 스킬이 걸려 있는지 도저히 안 열려.”

    “부숴볼까요?”

    “그건 이미 내가 해봤지. 그러니까 스킬 걸린 거 아는 거잖아, 새꺄.”

    루이사가 옆에 있던 제 길드원의 뒤통수를 때린 후 보급 담당 헌터들을 향해 상자를 내밀었다.

    “야, 이거 누가 한 거냐.”

    “…….”

    “지금 죽은 척하냐?”

    퍽!

    그가 보급 담당 헌터들의 복부를 걷어찼다. 보급품 상자에 스킬을 건 이인 듯한 그는 이를 악물고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당장 스킬 안 풀어?!”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나는 창고 안쪽으로 자아를 조준해 보급 담당 헌터를 향해 실드를 뽑았다.

    쾅!

    “아아악!!”

    보급 담당 헌터의 몸을 걷어차려던 루이사의 발이 실드에 막혀 안쪽으로 꺾였다. 그는 발을 움켜쥐며 뒤로 물러났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온갖 욕을 뱉어댔다.

    “하, 씨 아파 뒤지겠네……! 니가 한 거지 이 X새끼야!”

    루이사가 이번엔 다른 헌터의 멱살을 쥐어틀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젠장, 스킬 쓰려고 하는구나……!’

    그가 불꽃을 가득 담은 숨을 토해내기 전.

    타앙!

    내 탄환이 그의 등을 먼저 관통했다.

    “우웁?!”

    후두둑―

    힘 조절을 못해서 그런가. 루이사는 뭐라 말 한 마디 못한 채 그대로 피를 토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루이사 씨?!”

    “루이사 님!”

    다행히 죽은 건 아니었다.

    숨을 돌린 후 남은 불꽃 길드원에게도 작은 탄환을 한 발씩 박아 넣었다.

    “윽……!”

    “허억, 큭, 으윽……!”

    온몸이 뒤흔들리는 고통에 하나둘씩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나는 불꽃 길드의 헌터들이 전부 쓰러진 걸 확인한 후에 창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괜찮으세요?”

    “ㄴ, 네…….”

    보급 담당 길드원들이 힘겹게 대답했다. 고개를 돌려 보급품 상자를 확인하니 봉합 스킬이라도 발라놓은 양 시퍼런 액체로 뒤덮여 있었다.

    ‘일단 얘네들이 깨기 전에 이 사람들부터 보호해야겠네.’

    쿵, 쿵―

    실드 몇 개를 더 뽑아낸 후 보급품과 길드원들의 주위에 높게 세웠다. 실드 너머로 보이는 길드원들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일종의 감사 인사처럼 느껴졌다.

    “라파엘라한테 이쪽으로 오라고 말할게요. 그때까지 잠깐 기…….”

    치지직―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익숙한 감각과 함께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타닥―

    풀이 타는 냄새와 피부에 닿는 열기.

    알렌이 웜홀을 통해 나를 다시 성 입구로 끌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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