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31화 (131/366)
  • 131화

    【구원자, 그리고 수호자】

    [Time]

    [00:00:60]

    길드전 시작 1분 전, 기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나는 알렌과 함께 발코니에 서서 타이머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1초씩 줄어들 때마다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왕이라는 걸 아는 건 레일리, 라파엘라, 알렌뿐이다. 내게 은신 스킬을 걸어준 수잔이 내 존재를 알고 있긴 했으나, 왕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다른 이들에게 정보가 샐 일은 없을 터.

    [Time]

    [00:00:31]

    “아우레올라 놈들이 어떤 녀석을 왕으로 세웠는지 궁금하군.”

    우리 쪽으로 걸어온 레일리는 발코니 난간에 걸터앉았다. 그의 시선이 현재 랭킹에 꽂혔다. 아마 저 타이머가 0이 되면 각 길드의 왕관 수가 공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레일리처럼 현재 랭킹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10! 9! 8!”

    “저놈들 또 난리군.”

    영지 맞은편에 있던 스페인 길드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카운트다운을 했다.

    “즐기는 것 같아서 보기 좋은데요, 뭘~”

    어느새 다가온 라파엘라가 말을 얹었다. 레일리는 그를 향해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랭킹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라파엘라, 넌 우리가 모네 놈들 잡는 동안 빈집 털이 하려는 놈들 처리해라. 소형 길드 놈들은 겁만 주고 내보내고.”

    “아하하, 노블레스 오블리주인가요?”

    “그런 놈들한테 쓸 시간이 없는 거다.”

    펑!

    그 순간 하늘에서 폭죽이 터졌다. 타이머는 0을 가리켰고, 현재 랭킹에는 노이즈가 끼더니 얼마 안 있어 순식간에 글자를 출력해 냈다.

    “첫 랭킹은 그냥 왕관 수대로 출력되기 때문에 실제 순위와는 관련이 없다.”

    “알고 있어.”

    “하, 이제 대꾸를 다 하는군.”

    레일리의 대답을 끝으로 모든 길드들의 왕관 수가 나타났다.

    [Current Ranking]

    1. NOBLESS(172) : (-)

    2. Funke(124) : (-)

    3. Le jardin de Monet(117) : (-)

    4. Las Fallas(102) : (-)

    5. Eintracht(98) : (-)

    .

    .

    .

    상위 5개의 길드들 이름을 힘겹게 읽었다. 입으로 최대한 발음을 따라하며 읽어 내려갈 때, 왠지 모르게 찝찝함이 느껴졌다

    “…아우레올라가 없네?”

    눈 씻고 찾아봐도 아우레올라로 읽을 법하게 생긴 단어가 어디에도 없었다.

    “작년엔 120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왕을 바꿨나 본데요?”

    라파엘라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재 랭킹을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아 염병할.”

    쾅!

    그때 레일리가 주먹으로 난간을 내리쳤다. 그는 인상을 찡그린 채 불쾌한 감정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 여러분 저기 밑에!”

    알렌이 랭킹의 가장 마지막 글자를 가리켰다.

    40. Aurèola(7) : (-)

    “일곱 개?!”

    “D급 이하의 길드원을 왕으로 세운 거다.”

    레일리는 이마를 짚으며 이를 까득 갈았다.

    “비겁한 놈…….”

    “아마 영지 안에 해당 길드원을 숨겨 놓고 거기만 집중 보호할 생각이겠죠. 우리 길드장님이 딱! 싫어하는 스타일~”

    라파엘라가 말을 끝내자마자 레일리가 몸을 돌려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방어구로 보이는 가죽 롱코트를 꺼내 입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아우레올라 길드원은 최소 B급 이상일 텐데.”

    “이 작전을 위해 누군가를 데려왔을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

    레일리가 그의 말에 대꾸하곤 뒤돌아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우레올라는 마지막에 치는 걸로 하지. 아마 소형 길드 놈들이 걔네 영지를 이 잡듯 뒤지고 있을 거다.”

    “그럼 바로 모네 쪽으로 갈 거야?”

    “그래. 따라와. 알렌 너도.”

    “네~”

    은신계 스킬이 충분히 잘 걸려 있겠지만 난 다시 한번 아이테르의 로브 모자를 뒤집어썼다. 점퍼 형태는 이미 노출된 적이 있기 때문에 후드 티로 형태를 바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왕관도 잘 있네.’

    태양을 삼킨 늑대에 끈을 하나 더 엮어 왕관을 묶어놓았다. 후드 소매 때문에 보이지도 않고 가위로 자르지 않는 이상 왕관이 떨어질 리도 없을 안전한 곳이었다.

    “길드장님, 모네의 정원 영지 상태 보고드립니다!"

    레일리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자 중년 남자 길드원이 빠르게 뛰어 올라와 그의 옆에 섰다.

    “10초 안에 얘기해 봐.”

    “기후는 여름. 거주 지역보다 목초 지대가 더 많았습니다.”

    “쳇, 리애나 자식이 날뛰기 딱 좋겠네.”

    “이미 씨앗이 심어진 상태일 수 있으니 들어가시거든 동쪽의 거주 지역으로 통해 가십시오. 제가 표식을 남겨두었습니다.”

    “알았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끼익―

    레일리가 저택 문을 열자 울창한 숲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등장에 보초를 서고 있던 노블레스의 길드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마가렛, 필, 휴톤. 따라와라.”

    “네!”

    ‘처음 계획한 대로 가는군.’

    레일리는 내게 말한 대로 불 속성 원거리 전투계 헌터들을 중심으로 모네의 정원 길드를 칠 생각이었다.

    길드장인 리애나 마르틴이 길드 내의 유일한 S급이라고 했다. 모네의 정원 길드는 실력 좋은 전투계 A급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 중 대부분은 근거리 전투에 특화된 사람들이다.

    그러한 정보를 꿰뚫고 있는 레일리는 자신이 미끼가 돼서 아더의 방패로 모네의 정원 소속의 헌터들의 발을 묶을 생각이었다. 그런 뒤 나머지는 불 속성 헌터들을 이용해 공격을 퍼부을 작정이었다.

    “애송이, 비행 스킬 있지?”

    “비행은 아니지만 공중에 떠있을 순 있어.”

    “그렇다면 넌 알렌이랑 같이 공중에서 지원해라.”

    레일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수색팀이 남겨 놓은 표식을 따라 모네의 정원 영지를 향해 나아갔다.

    * * *

    바스락―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소요됐다. 레일리는 그것들을 전부 메이스로 쳐내며 전진했고 다른 헌터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길을 냈다.

    “여기군.”

    한참을 들어가자 벽돌로 된 좁은 골목길이 나타났다. 얼마나 긴지 골목의 끝이 안 보일 정도였다.

    툭―

    그때 알렌이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저희가 올라가서 미리 길을 봐두죠.”

    “네.”

    그는 내게 먼저 올라가라는 눈짓을 한 후 레일리 쪽으로 고개를 쭉 뺐다.

    후웅―

    낮말을 듣는 새로 도약해 허공을 디뎠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듯 위로 조금씩 오르자 거주 지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골목으로만 계속 가면 성의 우측 건물과 바로 연결되는군.’

    눈으로 길을 익힐 때쯤 알렌도 내 옆으로 날아왔다.

    “모든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만 가면 돼요.”

    “으음~ 일단 매복하고 있는 헌터들도 없는 것 같네요.”

    알렌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길을 훑었다.

    치지직―

    그는 웜홀로 레일리의 옆으로 이동해 말을 전한 후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왔다. 레일리와 헌터들이 곧장 오른쪽 골목으로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난번에도 이 길드랑 싸운 적 있어요?”

    “네. 저희가 이기긴 했지만 기력 소모가 좀 컸죠.”

    알렌은 그때를 떠올리는 듯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모네랑 싸울 땐 무조건 속도전으로 가야 해요. 처음엔 한두 송이였던 꽃이 나중엔 수백 송이로 불어나 있으니까.”

    성을 향해 한참 달리자 어느새 성의 동쪽 문에 다다랐다. 레일리가 알렌을 슬쩍 올려다보곤 문을 향해 턱짓을 했다. 그런 뒤 그는 바람처럼 날아가 성곽에 조심스럽게 착지했다.

    알렌이 팔로 큰 원을 만들었다. 그의 사인에 레일리가 동쪽 문을 양손으로 밀었다.

    끼이이익―

    육중한 소리를 내며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너머로 성의 입구와 잘 꾸며진 정원이 펼쳐졌다.

    에에에엥―

    “침입 확인! 침입 확인!”

    “이런……!”

    레일리가 정원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사이렌과 함께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성 옥상에 있던 헌터가 확성기를 든 채 소리치고 있었다.

    “노블레스 길드원 세 명, 노블레스 길드원 세 명이다.”

    “마가렛! 옥상을 향해 공격 개시! 나머지는 나를 계속 따라와!”

    “네!”

    레일리의 명령에 마가렛이 그 자리에 멈춰 서 목걸이를 부메랑으로 변형했다. 그러곤 그 위에 불을 붙여 옥상을 향해 던졌다.

    콰과광!

    활활 타는 부메랑이 모네의 정원 길드 옥상을 빠르게 헤집어 놓은 후 다시 마가렛의 손에 돌아왔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모네의 정원 소속 헌터들이 빠르게 진열을 되찾은 후 지면을 향해 스킬을 쏟아 부었다.

    “멍청한 자식들아!”

    쿠구궁―

    레일리가 소리를 지르며 아더의 방패를 높이 들었다. 그 덕에 그를 향하던 스킬들이 그대로 튕겨져 나와 옥상을 덮쳤고, 옥상은 순식간에 반쯤 날아갔다.

    아더의 방패는 몬스터가 쓰는 반사 스킬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의 방패에 닿자마자 시전자의 눈앞에서 공격이 반사되다 보니, 그가 반사 스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피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일단 왕으로 의심되는 사람부터 골라낼까.’

    오른쪽 눈을 감은 채 부서진 옥상 쪽을 바라보았다. 왕관 개수로 봤을 때 리애나가 왕일 확률이 높지만, 공격계 A급 헌터 중 파괴력이 높은 사람도 왕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윽…….”

    흙먼지가 걷히고 모네의 정원 소속 헌터들의 모습이 보이자 그들의 정보가 눈앞에 어지럽게 떴다. 대부분 B급과 C급 헌터들이었다.

    ‘정예는 따로 빼둔 건가.’

    옥상에 있던 헌터들 중 A급은 없었다.

    “애송이!”

    “어? 큭……!”

    아래에서 레일리가 소리친 동시에 쇠사슬이 나와 알렌 사이를 파고들었다.

    곧바로 뒤로 물러나자 사슬은 힘없이 아래로 떨어지더니 이내 건물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슬이 날아왔던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우락부락한 체형의 남자가 알렌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이! 이제 내려오지? 머리 꽁지를 확 뜯어버리기 전에!”

    “우와… 상스러운 것 봐.”

    알렌이 질색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멀리 있던 터라 다행히 남자는 은신 스킬이 걸린 나까지 인지하진 못했다.

    나는 일단 알렌의 뒤에 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철컥―

    알렌이 팔찌에 손을 대자 팔찌가 순식간에 긴 장총으로 변했다.

    탕, 탕, 탕―

    그는 빠르게 저격 자세를 취해 방아쇠를 당겼다. 공중에 떠있어서 조준이 쉽지 않았을 텐데, 총구는 정확히 그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사슬을 든 남자는 탄환을 쳐내며 다시 우리 쪽으로 사슬을 던질 준비를 했다.

    “알렌 씨, 어깨 좀 빌릴게요.”

    “네? 우왁!”

    “계속 쏘세요!”

    알렌의 어깨에 자아를 얹은 채 소리치자 그가 다시 저격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나는 알렌의 발포 타이밍에 맞춰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소리 탄환이 알렌의 총탄과 함께 날아갔다.

    끼긱!

    “아주 시시한 공격이구……. 컥!”

    알렌의 총탄은 사슬에 저지됐지만, 나의 소리 탄환은 남자의 가슴에 정확히 박혔다. 평소 위력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이겠지만 남자의 움직임을 제어하기엔 충분했다.

    쾅!!

    곧바로 레일리가 메이스로 남자의 몸을 쳐올렸다. 남자는 사슬로 겨우 공격을 막긴 했지만 차마 레일리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쪽으로 날아갔다.

    “레~일리!”

    쿵!

    그때였다. 옥상에서 누군가 몸을 날려 레일리의 바로 앞에 운석처럼 떨어졌다.

    흙먼지가 일어 지면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레일리가 아더의 방패를 높이 들어 먼지를 몰아냈다.

    흙먼지가 거둬진 레일리의 앞엔 금색 머리카락을 하나로 내려 묶은 여자가 서있었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쓴 후 흙이 잔뜩 묻은 앞치마를 두어 번 털었다.

    콱―

    그는 땅에 삽을 박아 넣더니 레일리를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어떻게 빈집 털이를 할 수 있어? 우리 토끼 같은 제럴드를 저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말이야, 응?!”

    그는 어린아이를 혼내는 양 레일리를 쏘아붙였다. 그에 레일리는 완전히 질린 얼굴을 하며 그의 잔소리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하아… 조금만 늦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네.”

    금발의 여자는 한숨을 푹 쉬며 앞치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왕관……?”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왕관 두 개가 끼워져 있었다.

    아직 길드전이 시작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길드 두 개의 왕관을 손에 넣었다.

    콰그작!

    그가 힘을 주어 왕관을 쥐었다. 그런 뒤 손을 펼치자 설탕 같은 왕관 파편이 바스러진 게 보였다.

    [Current Ranking]

    1. Le jardin de Monet(117) : 76(▲2)

    2. Eintracht(98) : 23(▲3)

    3. NOBLESS(172) : 0(▼2)

    굳이 구원자의 눈동자로 볼 필요도 없었다.

    저 금발 여자가 바로 모네의 정원 길드의 길드장, 리애나 마르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