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25화 (125/366)
  • 125화

    쾅!!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양손을 높이 들어 지의가 있는 쪽을 내리쳤다. 공격을 피한 지의가 먼지바람 사이로 튀어나오자, 에르제베트의 커다란 눈이 그를 좇았다.

    “흡!”

    퍼버벙!!

    지의는 자아를 바주카 형태로 바꾼 후 곧바로 녀석을 향해 소리 포탄을 발포했다. 새하얀 포탄이 에르제베트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아아아악!!”

    하지만 소리 포탄에 의해 주위 공기가 진동한 탓에 녀석의 한쪽 귀가 날아갔다.

    에르제베트는 한 손으로 자신의 귀를 움켜쥐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더니 곧바로 진열장을 열어 날카로운 빗 수십 개를 꺼내 지의를 향해 던졌다.

    우우웅―

    지의는 날아오는 빗을 향해 자아를 들어올렸다. 곧게 뻗은 자아에서 새하얀 파도 같은 파동이 퍼져나갔다. 그러자 파동은 빗을 관통했고, 그것들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의가 녀석의 손목을 향해 자아를 겨눠 방아쇠를 당기기 무섭게 날렵한 탄환 하나가 에르제베트의 손등 뼈를 정확히 맞혔다. 에르제베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손에 잡히는 물건을 마구잡이로 던졌다.

    ‘애송인 줄 알았더니.’

    레일리는 에르제베트의 공격을 자신의 고유 스킬인 아더의 방패로 막으며 지의의 싸움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의 눈에 비친 지의는 그리스 S급 던전 타임 어택 때보다 더 날렵하고 절제된 공격을 구사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S급 헌터일지라도 A급 보스 몬스터의 몸을 일격에 뚫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범한 헌터들이 여러 번의 공격으로 몬스터에게 100의 피해를 입힌다고 가정하면, 지의는 공격 하나하나가 이미 100의 피해를 주고 있었다.

    “대단하군.”

    레일리의 입 밖으로 자신도 모르게 말이 샜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파괴력이기 때문이었다.

    지이잉―

    “라파엘라, 넌 계속해서 바토리 에르제베트에게 저주를 걸어.”

    “네~”

    “그리고 저 애송이한테도 잠깐 걸어 봐.”

    레일리의 말에 라파엘라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는 자신의 길드장이 본격적으로 지의를 시험할 작정이란 걸 눈치챘다. 라파엘라는 흥미롭다는 듯 입술을 말아 올리며 웃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의는 그들의 이야기엔 귀 기울이지도 못한 채 에르제베트의 공격을 피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에르제베트가 집어던지는 온갖 장신구와 날붙이들을 자아로 쏘아 맞히며 내달렸다.

    ‘아까보다 움직임이 좀 느려진 것 같지 않아?’

    낮말을 듣는 새로 허공을 달리던 지의를 향해 자아가 물었다. 지의는 에르제베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실드를 만들어 공격을 튕겨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쾅!!

    아파트 창문만 한 브로치가 날아와 지의의 실드에 부딪혔다. 실드는 금이 가는 걸로 끝났지만 브로치는 반으로 갈라져 다시 에르제베트의 발등을 향해 떨어졌다.

    “아아아악!!”

    에르제베트는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진짜로 느려졌어.’

    레일리의 피를 마시기 위해 빠른 몸놀림으로 카펫을 헤집던 녀석과 지금의 녀석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달랐다. 조금 전처럼 한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제게 떨어지는 브로치를 피하지 못한 에르제베트는 부서진 발등을 만지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틈에 지의가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A급 보스 몬스터 ‘마녀라 불린 자’]

    [어둠 속성]

    [아이언 메이든]

    [할퀴기]

    [던지기]

    [시종장 호출]

    [희생된 자]

    [*희생된 자 시전 시 시체들이 전부 사라지기 전까지 ‘마녀라 불린 자’는 무적 상태를 유지한다.*]

    레일리가 말한 대로 크게 특별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A급 무적 스킬이 있지만 시체를 처리하면 다시 공격할 수 있었다.

    콰앙―

    녀석의 앞에 있던 레일리가 아더의 방패로 녀석의 얼굴을 밀어낸 후 메이스로 턱을 쳐 올렸다.

    쿵, 쿵, 쿵.

    그러고는 레일리와 라파엘라의 무차별적인 난타가 이어졌다.

    에르제베트는 양손으로 그 공격을 막아봤지만 아더의 방패에 손이 닿자마자 반사된 공격이 녀석의 얼굴을 향했다.

    ‘어!’

    ‘왜 그래?’

    ‘아니, 방금 라파엘라가 뭐 하지 않았어?’

    그때 자아가 급하게 말을 걸었다. 자아의 말에 지의는 라파엘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쿵―

    “윽?!”

    그 순간 지의가 중심을 잃고 바닥 쪽으로 추락했다.

    탁.

    바닥에 처박히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착지했지만 쿵쾅대는 심장 탓에 한동안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뭐냐, 애송이. 지쳤나?”

    “…그럴 리가.”

    거짓말이었다.

    지의는 양어깨에 쌀가마니라도 얹은 것처럼 온몸이 무거워진 걸 느꼈다.

    ‘몬스터 스킬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지의가 허리를 바로 세우며 에르제베트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피범벅이된 얼굴을 드레스 소매로 벅벅 닦은 후 단번에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매님, 이제 3페이즈예요. 혹시 치료가 필요하신가요?”

    “아니.”

    “…흐응.”

    지의는 웃는 얼굴로 다가온 라파엘라를 밀어내고 곧바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쿵―

    “큭……!”

    지의는 또다시 다리에 힘이 풀려 순간 주저앉았지만 금방 중심을 잡았다.

    ‘그나저나 아까 하려던 얘기 뭐야? 라파엘라가 뭐 했어?’

    ‘성호 그었어. 왜, 그 천주교 신자들이 하는 거 있잖아.’

    자아가 숨을 깊게 들이켜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웅웅거렸다.

    ‘근데 성호를 원래 가슴부터 긋던가……?’

    ‘나 무교라 그런 거 잘 몰라.’

    ‘나라고 종교가 있어서 알겠냐.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랑 달라서 물어본 거지.’

    지의는 레일리와 라파엘라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확실히, 자아가 라파엘라의 어떤 행동을 목격한 이후부터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3페이즈는 에르제베트의 시종장도 합세한다.”

    그때 레일리가 입을 열었다.

    “그 녀석도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니 제대로 해봐라.”

    ‘할 수 있다면 말이지.’

    레일리가 뒷말을 삼키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시선의 끝엔 식은땀을 흘리는 지의가 있었다.

    “웬 벌레 같은 것들이 나타나서……!”

    딸랑―

    에르제베트가 침대 옆 협탁에 있던 종을 흔들었다. 경쾌한 종소리가 울리고 녀석의 침실엔 기묘한 적막이 감돌았다.

    지의는 자아를 높이 들고 언제라도 실드를 뽑아낼 준비를 했다.

    쿵!!!

    얼마 안 있어 지축을 뒤흔드는 큰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시커먼 구체가 떨어졌다.

    구체는 에르제베트 만큼 크기를 키우더니 이내 검은색 옷을 입은 시종장으로 변했다.

    “저의 주인에게 영원한 젊음을 바치겠습니다.”

    시종장이 품 속에서 커다란 식칼을 꺼냈다.

    쾅!

    시종장의 칼이 지의의 실드에 부딪혔다. 약한 진동과 함께 실드에 금이 가자 지의는 실드째로 녀석의 칼을 치워버린 후 거리를 좁혔다. 자아의 끝은 어느새 시종장의 미간 사이를 정확히 향하고 있었다.

    ‘여기서 바로 쏘면 치명타……!’

    후우웅―

    “윽?!”

    또다시 무형의 힘이 지의의 신체를 강하게 짓눌렀다.

    우두둑―

    “으아악!!”

    지의의 움직임이 더뎌진 틈을 타 시종장의 커다란 손이 그의 몸을 움켜쥐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고통에 순간 지의의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이거, 놔!!!”

    콰과광―

    모든 힘을 다 짜내어 소리를 지르자 새하얀 파동이 시종장의 전신을 훑었다.

    시종장은 지의를 던지곤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텁.

    “나이스 캐치~”

    “허억, 헉……!”

    라파엘라가 떨어지는 지의의 몸을 받은 후 바닥에 꽂은 자신의 십자가 앞으로 왔다.

    “치료 좀 할게요, 자매님.”

    치지직―

    ―지원하지 않는 언어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라파엘라가 입을 열자 지의의 귀에 꽂힌 자동 통역기가 낯선 안내 음성을 흘려보냈다. 난생 처음 듣는 언어가 지의의 귀를 파고들었다.

    우득―

    “큿……!”

    검은색 빛무리가 지의의 몸통에 스며들자 아찔한 고통과 함께 뼈가 붙었다. 지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댄 채 그를 노려보다, 이내 고개를 살살 돌려 왼쪽 눈동자로만 그를 응시했다.

    [각성자 라파엘라]

    [어둠 속성]

    [고유 스킬 S등급]

    [S급 치유계 스킬 ‘성자의 복음(Gospel of Saint)’ : 시전자의 기도로 외상을 치유한다. 기도를 들은 사람만을 치유할 수 있다.]

    [연계 패시브 스킬 ‘유다의 속삭임(Whispering of Judas)’ : 역(逆) 성호를 그을 때마다 시전자가 정한 대상에게 저주를 건다. 저주가 걸린 대상은 신체 능력이 퇴화하며 스스로 성호를 그으면 저주가 풀린다.]

    [A급 변신계 스킬 ‘뱀(nāḥāš)’ : 한 번 본 대상의 외형을 완벽하게 복사한다. 치명상을 입으면 변신이 풀린다.]

    [귀속 무기 : S급 부메랑 ‘죄(SIN)’]

    [무기 비문 : 순수한 뱀의 영혼이구나.]

    [업 해당 사항 없음]

    [뱀의 혀를 가진 자(달성 완료) : 상대의 충동을 이끌어낸다.]

    [*구원 해당 사항 없음*]

    “…쓰레기.”

    “네?”

    탁.

    고통이 사라지자 지의는 그대로 라파엘라의 품에서 벗어나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다.

    ‘저주를 걸어 놓고 뻔뻔하게……!’

    지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얼마나 꽉 쥔 건지 손등 뼈의 굴곡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후우웅―

    시종장이 레일리와 무기를 맞대는 동안 에르제베트가 다시 지의를 향해 달려들었다.

    에르제베트의 커다란 손이 지의를 짓누르기 위해 빠르게 하강했지만 지의는 그 손을 피하는 대신 자아를 높이 들었다.

    탕―!

    “아아아악!!”

    하나 남은 에르제베트의 손이 그대로 날아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에르제베트는 분노로 몸을 파들파들 떨며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눈으로 지의를 응시했다.

    “하아아…….”

    지의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분노 때문에 몸이 떨리는 건 지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몬스터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해서 바닥에 있는 두 사람에게 한 방 먹일 생각뿐이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무기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박격포다. 최고 출력으로 포탄을 뽑으면 시종장과 에르제베트를 한 번에 처리할 만큼의 성능은 나오지만, 녀석들의 움직임을 완전히 막은 상태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구원자의 무기 창고.’

    쾅!!

    지의는 에르제베트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창고를 살폈다. 수십 개의 화기류와 무기들을 눈으로 훑다 커다란 창에 시선이 멈췄다.

    수십 개의 시간선 중 단 한 번의 시간선에서 썼던 무기다. 생각보다 다루기 쉽지 않아 받자마자 후회한 형태였다.

    “저의 주인께 피를 바칩니다!”

    쾅!!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그때, 시종장이 라파엘라를 향해 나이프를 내려찍었다. 십자가에 막혀 그의 몸을 뚫진 못했지만 목을 살짝 베었다.

    “아하하하하! 젊은 인간의 피구나!”

    콰과광―

    에르제베트가 이성을 잃고 바닥에 엎드려 라파엘라의 피를 핥기 시작했다.

    “머저리 같은 놈. 너 때문에 녀석의 체력이 3분의 1쯤 회복됐을 거다.”

    “차근차근 하면 되죠~ 못 깰 던전도 아니고.”

    레일리가 라파엘라를 향해 혀를 찬 후 높이 도약해 에르제베트에게 메이스를 휘두를 준비를 했다.

    “주인님께 손대지 마라!”

    “큿……!”

    그러나 채 공격을 하기도 전에 시종장이 한 손으론 에르제베트를 막으며 다른 한 손으론 레일리를 밀었다. 아더의 방패 덕에 레일리는 공격을 정면으로 맞진 않았지만 중심이 흔들려 바닥 착지에 실패했다.

    ‘지금이 찬스다.’

    시종장과 에르제베트의 몸이 완전히 겹친 상태였다. 지의는 고민할 것 없이 창 형태의 자아를 꺼내들었다. 적당한 무게감과 함께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타다닥―

    그러고는 시종장의 등 뒤로 곧장 달렸다. 에르제베트가 피 섭취가 끝나 두 녀석이 다시 공격을 시작하면 이 작전은 실패다.

    “후읍……!”

    지의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양손으로 창을 높이 들었다. 동시에 바닥에 있던 레일리가 고개를 들어 지의를 바라보았다.

    “저 애송이가……?”

    “죽기 싫으면 비켜!!”

    두근―

    레일리가 순간 몸을 떨며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합니다.]

    [발언 결과: 수용]

    지의는 눈앞에 뜬 상태창을 무시하고 체중을 실어 시종장 쪽으로 몸을 던졌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새하얀 창이 시종장의 어깻죽지와 에르제베트의 등을 꿰뚫었다. 공격의 여파로 공기가 진동해 먼지바람이 사방으로 일고, 화장대에 있던 물건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아아아악!!”

    “꺄아아악!!”

    시종장과 에르제베트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제3 형태, 박격포.’

    끼리릭―

    지의는 빠르게 자아를 박격포 형태로 바꾸었다. 무게 때문에 팔이 떨어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자아를 겨눈 채 시종장의 뻥 뚫린 어깨 너머로 에르제베트와 눈이 마주쳤다.

    콰직.

    시종장의 상처 틈에 박격포의 포구가 끼워졌다.

    ‘됐다.’

    지의가 낮말을 듣는 새로 높이 도약하자.

    콰과과광―!!

    저택 자체를 날려버릴 만큼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떨어지고 고풍스러운 커튼 너머의 창문들이 모조리 깨졌다.

    “후우, 후우…….”

    바닥에 먼지가 자욱하게 깔려 두 몬스터가 어떻게 됐는지 보이지 않았다. 지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먼지가 걷힌 뒤 보일 공격의 결과를 기다렸다.

    휘이이잉―

    먼지가 걷히자 그곳엔 시종장도 에르제베트도 없었다.

    지의가 이번 시간선에서 두 번째 이뤄낸, 페이즈 스킵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