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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22화 (122/366)
  • 122화

    “너, 절대자와 접촉한 적이 있나?”

    레일리가 직구를 던졌다. 나는 일단 아무런 말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창조자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지가 관건인데…….’

    창조자는 사도들을 시켜 나를 죽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명령을 레일리가 가장 먼저 나서서 수행하고 있는 것일 테고.

    ‘근데 왜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닌 레일리가 제일 먼저 움직인 거지?’

    내가 기억하는 레일리는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거만하기까지 한 여자였다. 아무리 상대가 절대자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했다면 절대 듣지 않을 인간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는 건…….

    “아.”

    머릿속으로 결론이 내려지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가 샜다. 라파엘라와 레일리의 시선이 내게 꽂혔지만 신경 쓸 건 아니었다.

    ‘나 때문에 사도들의 힘이 약해진 건가.’

    자신의 야망과 힘 외에는 관심이 없는 레일리가 직접 나섰다는 건, 나로 인해 그에게도 변화가 생겼다는 걸 의미한다.

    창조자가 나를 죽이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했는지는 미지수지만, 나 때문에 변화가 생겼다는 건 언급했겠지.

    달그락―

    나는 찻잔을 내려놓은 후 라파엘라와 붙은 내 오른팔을 가리켰다.

    “이거 풀어주고 얘 내보내면 알려줄게.”

    “…네가 지금 요구할 입장이라고 생각하나?”

    “물리적으로 풀 수 있지만 참는 거야. 나도 너랑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자아로 알렌의 스킬을 푼 것을 확인했기 때문일까, 레일리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2 대 1의 상황이긴 하나, 내가 작정하고 스킬을 쓰면 소리의 범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DF 랭킹이 내 힘을 증명하고 있었다.

    [발언 결과: 수용]

    ‘그렇게 나와야지.’

    레일리는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격할 만큼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알렌.”

    “네에.”

    커튼 뒤에 숨어 있던 알렌이 살랑거리며 나타났다. 걸어올 때마다 갈색 꽁지머리가 통통 움직였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 보였고 이내 내 팔 위에 손을 댔다.

    우두둑―

    옷에서 실밥이 뜯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이 틈에 스킬이나 살펴봐야지.’

    오른쪽 눈을 살며시 감은 후 알렌을 흘끔 바라보았다.

    [각성자 알렌 빅토리아]

    [바람 속성]

    [고유 스킬 S등급]

    [S급 이동계 스킬 ‘웜홀(Worm hole)’ : 직접 본 대상이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 한다.]

    [연계 패시브 스킬 ‘체셔 고양이(Cheshire cat)’ : 웜홀 시전 후 1분 동안 모습을 감출 수 있다.]

    [B급 공격계 스킬 ‘패치워크(Patch Work)’ : 수십 개의 바늘을 소환해 두 개의 대상을 이어 붙인다. 시전자와 접촉 하거나 강한 충격이 가해질 시 해제된다.]

    [귀속 무기 : S급 장총 ‘카멜레온(Chameleon)’]

    [무기 비문 : 조용히 살긴 그렀네.]

    [업 해당 사항 없음]

    [사명 해당 사항 없음]

    [*구원 해당 사항 없음*]

    ‘웜홀로 날 데려왔군.’

    집에서 느껴졌던 인기척도 고유 스킬의 연계 패시브 스킬 때문이었다.

    직접 본 대상이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 하는 스킬이라……. 아마 내가 그리스로 타임 어택 하러 갔을 때 나를 미리 봐둔 것 같았다.

    우드득.

    얼마 안 있어 나와 라파엘라의 팔이 완전히 떨어졌다. 팔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라파엘라 님, 가시죠.”

    “나중에 봐요, 자매님~”

    라파엘라는 난데없이 나를 향해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손에 낀 가죽 반 장갑이 서로 마찰되어 눈을 밟는 듯한 소리가 났다.

    쿵.

    두 사람이 나가자 넓은 방이 조용해졌다. 레일리가 와삭거리며 쿠키를 먹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자, 이제 대화할 기분이 좀 드나?”

    “응.”

    내가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띠우자 그도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일단 창조자랑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 볼까.’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다 조심스럽게 내 오른쪽 눈을 가렸다. 황금색 글자가 그의 옆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

    [대지 속성]

    [고유 스킬 S등급]

    [S급 방어계 스킬 ‘아더의 방패(Shield of King Arthur)’ : 적의 공격을 전부 반사시키는 방패를 소환한다. 방패의 형태는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하다.]

    [연계 패시브 스킬 ‘정복자(Conqueror)’ : 딛고 있는 땅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

    [A급 정신계 스킬 ‘왕실의 긍지(Royal Dignity)’ : 왕족의 위엄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귀속 무기 : S급 메이스 ‘심판(Judgement)’]

    [무기 비문 : 탕자가 돌아왔다.]

    [‘카르마 : 오만한 소설가’ : 절대자 ‘창조자’가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에게 씌운 오만한 소설가의 업. 시나리오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다.]

    [사명 해당 사항 없음]

    [*오만한 소설가의 업 청산*]

    레일리의 의심을 사기 전에 손을 내렸다.

    ‘오만한 소설가의 업이라…….’

    최민 헌터는 그의 과거를 보기도 했고 죄인이라는 업 이름에서 대충 어떤 건지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업은 도저히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저 업을 짊어짐으로써 창조자에게 무언가 특별한 힘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어서 내 질문에 대답해. 두 번은 말 안 할 것이다.”

    “그래. 대신 너도 내 말에 대답해.”

    “그건 네 태도에 달렸다.”

    “난 대화를 하러 온 거지 취조를 받으러 온 게 아니야.”

    나와 레일리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레일리는 심드렁한 얼굴로 나를 들여다보다 이내 한숨을 길게 쉬며 소파 등받이에 눕다시피 기댔다.

    “…절대자와 만난 적이 있나?”

    “있어.”

    그는 예상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네가 만난 애랑 같은 놈이겠지.”

    “같은 놈이라…….”

    레일리가 쿠키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으며 키득거렸다.

    “보기보다 말하는 게 시원시원하군.”

    “…….”

    “근데 왜 거절했지?”

    웃고 있던 레일리가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고 물었다.

    “뭐를?”

    그가 무엇을 물었는지 알고 있지만 일부러 되물었다. 그러자 레일리가 이를 아득 갈곤 목소리를 낮춘 채로 다시 말을 덧붙였다.

    “왜 사도가 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한테는 그런 제안 안 하던데?”

    “뭐?”

    “난 그 누구의 사도도 아니야.”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말을 마치자마자 쿠키를 입 안에 쑤셔 넣었다. 달콤한 설탕 조각이 입 안에서 부서졌다.

    ‘어떻게 할 셈이야?’

    ‘새로운 계약을 제시하려고.’

    나는 자아에게 대답하며 천천히 쿠키를 삼켰다.

    ‘너 정말로 쟤 소원을 들어줄 거야?’

    ‘협상을 하겠다는 거지, 협상을.’

    정말로 나로 인해 그들의 힘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사도들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나를 죽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창조자를 배신해 계약을 파기하는 것.

    ‘창조자를 배신할 생각은 못할 거야. 어떻게 배신하는지도 모르고, 보복이 두렵기도 할 테니까.’

    ‘그리고 널 바로 안 죽인 걸 보면 얘도 얘 나름대로 엄청나게 머리 굴리고 있겠지.’

    자아가 동조했다.

    즉, 지금 레일리와 협상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넌 사도 제안을 받아들였나 보네.”

    “그렇다.”

    “왜? 창조자가 소원이라도 들어준다고 했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레일리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몰아붙이자.’

    “그 소원, 제대로 이루어…….”

    쾅!!

    [발언 결과 : 격노]

    ‘하여간 성격하곤……!’

    레일리의 메이스가 테이블에 꽂혔다. 방금까지 예쁘게 놓여 있던 찻주전자와 다과들이 산산조각 난 채 바닥을 굴렀다.

    타다닥.

    펼쳐두었던 실드에 접시 잔해가 부딪혔다. 반짝거리는 접시 잔해와 홍차 방울 너머로 레일리의 구겨진 얼굴이 보였다.

    잔뜩 일그러진 미간과 짐승 같은 황금색 눈동자 때문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우웅―

    곧바로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공기 전체가 진동하고 레일리의 움직임이 잠깐 멎었다.

    툭.

    금방이라도 나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은 그의 몸을 뒤로 밀어 소파에 앉혔다. 레일리의 몸이 등받이에 부딪히자마자 난 그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거래를 하자.”

    “하, 씨 엄청 성가신 공격이네…….”

    레일리가 숨을 몰아쉬며 나를 노려보았다. 은백색의 머리카락이 땀과 함께 이마에 엉겨 붙어 있었다.

    “그래서. 무슨 거래를 할 거지?”

    “창조자가 못 들어준 네 소원. 그게 이뤄질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레일리의 눈이 커졌다.

    아까 구원자의 눈동자로 보았을 때, 레일리는 오만한 소설가의 업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시나리오라는 것에 집착한다고 나왔다.

    분명 레일리가 창조자로부터 받은 능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쐐기를 박는 수밖에.’

    “너 같은 애송이가 무슨 소원을…….”

    “시나리오니 뭐니 하는 것 말고 네가 직접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발언 결과 : 혼란]

    시나리오라는 말이 나오자 레일리가 크게 동요했다.

    퉁―

    나는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다시 소파에 앉았다

    ‘레일리가 저런 표정 짓는 건 처음 보네.’

    ‘그러게.’

    자아의 말대로였다. 항상 다른 사람을 깔보는 듯한 눈은 화등잔만 하게 커져 누가 보아도 놀란 티를 내고 있었고, 입을 가린 한 손은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완벽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네가 내 소원을 들어준다고 치자. 그럼 넌 내게 뭘 요구할 거지?”

    “네가 갖고 있는 창조자의 파편을 부숴줘.”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메이스를 잡은 레일리의 손이 움찔거리며 손등 뼈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파편?”

    [발언 결과 : 혼란]

    ‘아, 그러고 보니 사도들은 그게 파편인 줄 모르겠구나.’

    녀석의 파편을 세상을 지키는 부적이니 뭐니 하는 걸로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레일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창조자와 계약하고 받은 검푸른 보석 말야.”

    “그게 녀석의 파편인 건가?”

    “맞아.”

    레일리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액막이 부적 같은 게 아니었나……?”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게 뭔지 알려줄게.”

    “제법 맹랑하구나.”

    “자신 있는 거야. 적어도 너랑 계약한 그놈보다는 내가 더 많이 알려줄 수 있을 테니까.”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종말을 맞이한 후 세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수많은 ‘나’들의 기억을 갖고 있다. 지금 시간선이라면 절대자들도 나보다 많이 알진 못할 것이다.

    “…좋다.”

    [발언 결과 : 수용]

    쿵―

    레일리가 바닥에 메이스를 찍으며 일어섰다. 창문을 등진 터라 밝은 햇살이 그의 실루엣을 따라 반짝이고 있었다.

    “지금 바로 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건 아니다. 나도 널 테스트 할 기회가 필요하니까.”

    “…….”

    “내일 오전 아홉 시 헝가리 A급 던전.”

    툭.

    그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커다랗고 새하얀 손에 힘이 실려 어깨가 살짝 저렸다.

    “그 던전에서 네 실력을 보겠다.”

    레일리가 나와 눈을 맞췄다.

    “네가 거기서 날 놀라게 한다면 난 네 제안을 받아들이고 창조자와 했던 계약을 말해주지.”

    “좋아.”

    “하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난 그 던전 안에서 널 죽이겠다.”

    “마음대로 해.”

    나는 일부러 더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흡족한 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

    98번째의 시간선에선 협상은커녕 그와 만나자마자 바로 전투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론 내가 그의 목숨을 앗아갔고.

    ‘이번에 내가 파괴할 건 녀석의 업뿐이다.’

    그의 눈동자에 담겨 있던 살의는 어느새 흥미와 호기심으로 가득 차있었다.

    똑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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