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19화 (119/366)
  • 119화

    【악(惡)과의 조우】

    띵.

    엘리베이터가 107층에 도착했다. 안내 직원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바 테이블 앞에 앉은 김강희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의 앞에 있던 셰프가 나를 먼저 발견한 후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 왔나.”

    “…안녕하세요.”

    김강희도 살짝 고개를 돌리며 생긋 미소 지었다. 그의 진짜 모습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우아한 미소라고 생각했겠지만, 난 가증스럽다고 느낄 뿐이었다.

    드르륵.

    직원이 빼준 의자에 앉자 맞은편의 셰프가 뜨거운 차를 자리에 올려주었다.

    “혹시 스시 좋아하나?”

    “음식은 안 가리고 다 먹습니다.”

    “다행이네.”

    김강희가 낮게 웃었다.

    ‘엄청 호화스러운 음식점이구만.’

    커다란 홀에 셰프의 조리대와 바 테이블 하나만 있는 식당이었다. 셰프 뒤쪽으로 커다란 창문이 나있어서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보였다. 손님도 나와 김강희밖에 없어 들리는 소리라곤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셰프가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뿐이었다.

    “몸은 좀 괜찮나?”

    “네. 푹 쉰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른 헌터들 말을 들어보니 쉬운 던전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과거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던전이었다고 하던데.”

    ‘다 알고 들여보냈으면서.’

    우리가 어떤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지 직접 볼 수는 없었겠지만 창조자를 통해 대충 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미식가의 식재료에서 제외됐다는 사실도.

    “확실히 어려운 던전이었죠. 동료들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느껴서 괴로웠고요.”

    “다른 헌터들이 신지의 헌터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했어. 자네가 없으면 거기서 못 나왔을 거라면서.”

    탁.

    그때 첫 번째 요리가 올라왔다. 큰 접시 위에 서로 다른 종류의 애피타이저들이 올려져 있었다. 그가 각 메뉴에 대해 설명했지만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좀 먹게. 빨리 컨디션을 회복하려면 잘 먹는 게 중요하니까.”

    “…감사합니다.”

    두부처럼 보이는 요리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불편해서 목구멍으로 잘 들어갈까 싶었는데 마사지와 면역 증진제 덕분인지 평소보다 편하게 넘어갔다.

    말없이 전채 요리를 다 먹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쌉싸름한 맛이 혀끝에 감돌았다.

    “자네가 각성한 지도 어느새 반년이 넘었군.”

    “벌써 그렇게 됐나요?”

    “그땐 정말 아마추어로만 보였는데 지금은 베테랑 헌터가 다 됐어.”

    김강희가 입가를 닦으며 말을 덧붙였다.

    “동료와도 돈독해진 것 같아서 마음도 놓이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는 동료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걸 매번 강조했지.’

    그 이유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길드 제도를 채택하지 않은 건 헌터의 수가 관리하기 힘들 만큼 많지 않아서라고 했지만, 그가 헌터들 사이에 파벌이 생기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많이 친해졌죠. 이제 차도윤 헌터도 절 동료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김강희’가 동요한다.]

    달그락.

    두 번째 요리가 올라왔다. 셰프는 참치뱃살초밥이라고 설명한 후 다시 한 발짝 물러났다.

    “역시 자네는 대단해.”

    [발언 결과 : 불쾌]

    ‘도발이 제대로 들어갔네.’

    자신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맹세한 존재가 만난 지 1년도 안 된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동료라고 인정했으니. 다른 사람도 아닌 차도윤 헌터가 그랬으니 꽤 놀랐을 것이다.

    내 나름의 경고였다. 당신의 패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언제든지 뺏어올 수 있다는 경고.

    달그락.

    적막한 식사가 이어졌다. 입에 넣자마자 녹는 초밥들이 다섯 종류나 나왔고 트러플이 올라간 광어지느러미초밥까지 먹자 어느 정도 배가 찼다.

    차로 입을 헹군 후 김강희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푸른 눈동자가 서울의 야경을 담고 있었다.

    “회장님께서는 동료들의 결속을 중요시 여기시죠.”

    “당연하지.”

    “…바보 같은 질문 같겠지만 이유가 뭔가요?”

    “아하하!”

    그가 크게 웃었다. 내가 들었던 그의 목소리 중 가장 큰 음성이었다. 동료들끼리 잘 지내야 한다는 말에 의문을 가진 게 우스웠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싶었다. 그가 창조자의 손을 잡으면서도 동료들의 결속을 강조한 이유를.

    탈그락.

    그때 새로운 요리가 올라왔다.

    “병아리콩으로 만든 완자입니다. 폰즈소스와 함께 드시면 됩니다.”

    예쁜 접시에 동그란 완자와 삶은 병아리콩이 놓여 있었다.

    도르륵.

    김강희가 젓가락으로 병아리콩을 살짝 건드렸다. 병아리콩이 접시 위를 데굴데굴 굴러 다른 병아리콩까지 쳤다.

    “힘을 합치지 않은 상태라는 건 이런 걸세.”

    “…….”

    “외부의 공격에 쉽게 영향을 받다 보니 이리저리 휩쓸릴 뿐이지.”

    턱.

    그가 똑같은 힘으로 완자를 건드렸다. 당연히 그것은 움직이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켰다. 완자에서 김강희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맹수 같은 눈과 마주쳤다.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합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지. 그렇지 않나?”

    “…목적이 생존이다 보니 아름답기보단 처절합니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김강희’가 동요한다.]

    동료들이 힘을 합치는 행위는 분명 멋지고 벅찬 일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모두가 생존했을 때 느끼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것.

    누구 하나라도 목숨을 잃는 순간, 모든 건 후회의 늪으로 가라앉는다.

    “그건 그렇지.”

    [발언 결과 : 긍정]

    김강희가 은은하게 웃으며 완자를 반으로 갈라 입에 넣었다. 그러곤 한참을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뭐, 단순하게 생각하게. 한 사람이 몬스터 하나를 잡는 것보다 두 사람이 잡는 게 더 쉽지 않겠나. 그냥 그런 뜻일세.”

    ‘이 부분은 그냥 순수하게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동료에 관한 질문은 시시하게 끝나 버렸다. 나도 완자를 소스에 찍어 먹으며 조용히 턱을 움직였다.

    “그럼 내가 신지의 헌터한테 뭘 좀 물어봐도 되나?”

    “물어보세요.”

    “자네는 전생을 믿나?”

    쿵.

    갑작스러운 질문에 하마터면 젓가락을 놓칠 뻔했다. 회귀하지 않은 최초의 시간선까지 포함하면, 내겐 100개의 전생이 있는 셈이었다.

    ‘설마 내 회귀를 눈치챘나?’

    아무리 절대자라도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은 모른다. 창조자가 모르니 김강희도 알 리가 없다.

    “아뇨. 딱히 안 믿습니다.”

    “아하하, 그런가.”

    아직 그에게 확증은 없다고 확신한 후 일부러 뻔뻔한 태도로 나오니 그의 눈매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나는 믿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덜그럭.

    직원이 완자 접시를 치우자 셰프가 작은 솥과 냄비가 올려진 쟁반을 놓아주었다.

    “식사인 전복내장 솥밥과 맑은 대구탕입니다. 다 드시면 차와 후식 올려드리겠습니다.”

    “냄새가 고소하군.”

    김강희가 숟가락으로 밥을 섞으며 낮게 웃었다. 난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국물을 먼저 떠먹었다.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들킬까 숟가락을 빠르게 내려놓았다.

    “믿게 된 계기라도 있으신가요?”

    “이렇다 할 계기는 없네. 그냥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 거지.”

    그는 솥밥을 입에 넣은 후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그의 반응에 셰프도 기쁜지 은은하게 웃어 보였다.

    창조자가 파편 안에서 있었던 일을 김강희에게 얘기했다면 내가 식재료에서 배제된 사실만 알고 있을 텐데.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음식을 목구멍에 밀어 넣으며 쉬지 않고 머리를 굴렸다.

    “아, 굳이 계기를 꼽자면 하나 있긴 하지.”

    탁.

    그가 숟가락을 놓고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꿈을 꿨네.”

    “…….”

    “현실을 너무나 똑 닮은 꿈이었어.”

    “제 눈앞에서 신지의 헌터가 계속 죽는 꿈이었습니다.”

    “꿈속에서 본 네 죽음들이 눈앞에서 자꾸 아른거리니까 몸이 먼저 움직이더라.”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날 구하려다 내 죽음을 목격한 자가 있다면, 날 죽였기 때문에 내 죽음을 목격한 자도 있을 것이다.

    틀림없다. 김강희에게도 구원자의 죽음을 목격한 자의 인과율이 적용되고 있었다.

    “어떤 꿈이었나요.”

    “…누군가의 최후더군. 세상은 멸망했고 말이야.”

    “꼭 영화 같네요.”

    미소를 살짝 머금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강희도 ‘그렇지?’라고 말을 덧붙이며 식사를 이어갔다.

    몇 번이나 본 거지?

    최민 헌터나 세빈이가 본 것만큼 많지는 않겠지만, 그는 날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탈그락.

    식사가 끝났다. 직원들이 테이블을 정리한 후 과일과 양갱, 그리고 차를 올려주었다. 셰프가 디저트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군.’

    사도를 만나기도 전에 이자에게 모든 걸 간파당하면 안 된다.

    “…헛수고였겠네요.”

    “응?”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엉켜있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김강희가 과일을 입가로 가져가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만약 회장님의 꿈이 정말로 전생이었다면.”

    “…….”

    “세상을 멸망시킨 사람이 헛수고한 거라고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김강희’가 동요한다.]

    “기껏 멸망시켰는데 다시 초기화됐으니까 말이에요.”

    멜론을 찍어 입에 넣었다. 설탕물에 넣었다 뺀 것처럼 달콤한 맛이 혀에 퍼졌다. 난 눈동자만 굴려 김강희를 쳐다보았다.

    “망한 게 한 번이 아니라면 더더욱 헛수고였겠네.”

    [발언 결과 : 격노]

    김강희의 입꼬리 끝이 파르르 떨렸다. 잘 만든 가면에 금이 간 순간이었다.

    난 포크를 내려놓고 그에게 손을 뻗었다.

    “이번에도 헛수고가 될 수 있게 잘해 봐요.”

    “…재미있는 포부군.”

    텁.

    김강희가 내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자신의 실패를 비는 사람과의 악수는 어떤 느낌일까.’

    속으로 그를 비웃으며 손을 더욱 꽉 잡았다.

    * * *

    “후우…….”

    체력이 훨씬 좋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집에 올라가는 오르막길은 힘들었다. 좁은 골목에 꾸역꾸역 주차해 놓은 차를 지나 집 앞에 도착했고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쿵.

    집 안으로 들어오자 보일러 덕분에 훈훈한 기운이 얼굴에 훅 끼쳤다.

    그의 저녁 초대에 응한 건 잘한 선택이었다. 그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파악했고 그의 속을 좀 긁어놓을 수도 있었으니까.

    바스락.

    ‘…잠깐.’

    현관에서 신발을 벗기 직전 어딘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밖에서 난 소리치고는 너무 컸다. 이 소리는 분명히 우리 집 안에서 나는 소리다.

    이 집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텁.

    숨을 죽인 채 소리가 난 쪽으로 발을 옮겼다. 부모님의 침실로 쓰던 방이었다. 자아까지 한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뺐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기분 탓인, 윽!”

    퍽!

    그때였다. 무언가가 내 머리를 강타했고, 순간적으로 눈앞이 새하얘져 중심을 잃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웁, 읍!”

    자아로 조준할 시간이 없어 소리를 질러 전부 떨어트려놓으려 했지만 누군가의 손이 내 입을 강하게 틀어막아 숨 하나 토해낼 수 없었다.

    ‘젠장, 약물인가!’

    설상가상으로 달큼하면서도 톡 쏘는 향이 코를 찔러 온몸을 마비시켰다.

    의식이 점점 멀어지고 바닥 쪽으로 몸이 빨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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