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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13화 (113/366)
  • 113화

    [‘내 샐러드가 어딜 간 거야?’]

    [괴식가가 당황합니다.]

    당황한 건 괴식가뿐만이 아니었다. 최민 헌터를 제외한 모두가 테이블에 솟은 방공호를 보며 잠깐 넋을 놓았다.

    ‘이거면 안심이다.’

    미소를 띤 채 최민 헌터를 바라보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20분 안에 끝내 봅시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퍼버벙!

    폭발음이 전투의 신호탄이 되었다. 괴식가는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고 양손에 든 포크로 허공을 마구 찔러 댔다.

    ‘포크를 들지 않아도 몸 자체가 흉기다.’

    녀석의 팔이 한 번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묵직한 바람이 불었다. 몸의 중심이 약간 흔들려 자세를 낮춘 채로 공격을 준비했다.

    [음식을 먹지 못한 괴식가가 분노합니다.]

    [괴식가가 테이블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려 합니다.]

    상태창이 뜨자마자 괴식가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수많은 이빨 사이로 초록색 줄기가 꿈틀거리더니 테이블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쨍그랑.

    유리잔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나고 날카로운 잔해들이 다시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자아를 높이 들어 방아쇠를 길게 당기자 공기 전체가 진동했다. 소리의 파도에 맞은 접시 잔해가 한 줌의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먹고싶어먹고싶어먹고싶어먹고싶어.’]

    [‘누군가의 끔찍한 악몽이 먹고 싶다고!’]

    [공복은 괴식가의 적입니다.]

    괴식가는 이성을 잃은 듯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콰광!

    그림자 손이 녀석의 목을 잡아 테이블 위로 내리쳤다. 곧이어 연둣빛 화살비가 녀석을 덮쳤다.

    <■재 상■>

    <배■ ■프다. 자■적인 음■이 먹고 ■다.>

    <■은 체력 : 98■,■■2>

    적지만 공격은 확실하게 들어가고 있다. 음식을 먹지 못해서 체력도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이대로만 공략하면 돼.’

    초록색 줄기를 피해 공중을 뛰어다니며 손으로는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괴식가는 달그림자를 떼어내며 테이블 한가운데 있던 후추통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더니 입을 쩍 벌리고 후추를 입에 부으려 했다.

    “별걸 다 먹네, 진짜……!”

    탕!!

    소리 탄환이 녀석의 손목을 날려버렸다. 후추와 함께 새하얀 손이 바닥에 떨어지자 시뻘건 불길이 녀석의 입을 터트렸다. 괴식가는 턱이 빠진 듯 입을 벌린 채로 침을 줄줄 흘렸다.

    <현재 ■■>

    <뭐■도 먹■ 싶다.>

    <남■ 체력 : 7■5,61■>

    공복이 길어질수록 녀석의 체력도 빠르게 닳았다. 다른 헌터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공격을 넣어주고 있었다.

    최민 헌터의 말대로 20분 안에 종료될 수도 있다. 다음 음식이 소환되더라도 지금처럼 음식을 봉쇄한 상태에서 공격한다면 승리는 우리 쪽이다.

    “신지의 헌터!”

    “헉……!”

    아―우!

    펑!

    실드를 뽑기도 전에 약한 폭발음이 들렸다. 곧바로 몸을 돌리자 끝이 날카로운 초록색 줄기가 녹두의 하울링에 먹혀 풍선처럼 터지고 있었다. 녹두는 공중을 달려 내 앞에 서더니 괴식가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고, 고마워. 녹두야!”

    ‘언니, 방심하지 마!’

    ‘이제 내가 녹두한테 도움을 받는 일이 생기네.’

    마음 같아선 마구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달그락.

    그때 테이블에 다시 후추통이 생겨났다. 고개를 그쪽으로 돌린 괴식가가 그것을 다시 낚아챘다.

    “아이 씨……!”

    타앙!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손목째로 날리는 건 실패했지만 일단 후추통을 맞혀 가루가 밑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괴식가가 떨어지는 가루를 받아먹으려 고개를 내린 순간 그림자 손이 녀석의 목을 비틀어 의자 쪽으로 끌어왔다.

    ‘잠깐.’

    빙글빙글 돌며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후추통의 모습이 꼭 슬로모션 비디오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제야 후추통의 겉면에 적힌 글씨가 보였다.

    트라우마 파우더

    악몽에 들어오기 전 싸웠던 식용 괴수였다. 통 안에 든 가루들이 테이블을 향해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다들 숨 참으세요!!”

    펑!

    트라우마 파우더가 테이블 위로 떨어지자마자 반짝이는 가루가 사방으로 퍼졌고 순식간에 테이블을 집어삼켰다.

    ‘가루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여……!’

    핑크색 가루가 테이블 주위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다들 괜찮…….”

    ―언니, 내일도 올 거지?

    ―미안해, 지의 양. 악감정은 없어.

    ―우리 집 지하에 벙커가 있어. 일단 거기로 가자.

    “허억……!”

    악몽의 순간들이 귀를 파고들었다. 순간 눈앞이 아찔해져 중심을 잃었다.

    텁.

    녹두가 내 옷자락을 물고 버텨준 덕분에 테이블로 떨어지진 않았지만 그 말들은 메아리처럼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정신 차려. 악몽은 아까 실컷 꿨잖아.’

    촤아악―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인벤토리에 있던 생수병을 머리에 부었다. 차가운 액체가 머리카락을 적시고 얼굴 위로 흘러내리자 절망감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콰득.

    그때 괴식가의 그림자에서 검은 손과 함께 세빈이가 튀어나왔다. 그의 옆구리엔 축 늘어진 한진우 헌터가 끼워져 있었다.

    “그냥 정신계 스킬에 당한 거야. 곧 있으면 깨어날 거야.”

    내가 묻기 전에 세빈이가 먼저 대답했다. 정신계 스킬 면역 덕분일까, 멀쩡한 모습의 세빈이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테이블 위에 있던 차도윤 헌터와 최민 헌터는 아직 트라우마 속에서 헤매고 있을 게 분명하다. 저 두 사람을 빠르게 깨울 방법이…….

    ‘…있다.’

    철컥.

    곧바로 테이블을 향해 자아를 들었다. 그러곤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 트라우마 파우더로 뒤덮인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각성자 차도윤]

    [각성자 최민]

    두 사람의 위치가 보였다.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말의 씨앗이 개화한 대상입니다.]

    “다들 정신 차리세요!!”

    타앙!!

    [자각의 탄환 사출]

    [표적 : 각성자 ‘차도윤’]

    [표적 : 각성자 ‘최민’]

    이 공간이 떠나가라 소리치며 방아쇠를 당겼다. 새하얀 탄환이 핑크색 가루를 전부 몰아내더니 두 갈래로 갈라졌다. 가루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서야 테이블 위에 있던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발언 결과 : 자각]

    두 사람의 눈빛이 원래의 상태를 찾았다. 다행히 큰 외상은 없었다.

    “하아…….”

    차도윤 헌터가 크게 한숨을 쉬며 ‘나팔꽃’의 시위를 당겼다.

    피잉―

    바람 화살이 연둣빛 궤적을 남기며 괴식가의 얼굴에 박혔다.

    펑!!

    그와 동시에 새파란 불꽃이 녀석의 얼굴을 무참히 불태웠다. 폭발을 일으킨 최민 헌터는 곧장 내 쪽으로 날아와 조용히 미소 짓곤 다시 괴식가의 양쪽 어깨를 태워버렸다.

    <■재 상태>

    <뜨■워 죽■다.>

    <남■ ■력 : 69■,1■■>

    “헉.”

    “아, 일어나셨네요.”

    “가, 가, 강세빈 헌터……! 으악, 죄송해요!”

    한진우 헌터까지 깨어났다.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세빈이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한 후 ‘행운의 토끼발’에 올라탔다. 세빈이 팔에 들린 게 민망했는지 귀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시 정리하고 갈까.”

    “그래.”

    세빈이는 내게 눈짓을 한 후 곧바로 위쪽으로 높이 도약했다. 그러곤 검날을 아래쪽으로 돌렸다.

    키이잉!!

    꽃다발 머리를 세로로 베자 그 속에서 초록색 줄기가 뿜어져 나와 검과 충돌했다.

    “윽.”

    “조심해!”

    콰광!!

    줄기의 힘 때문에 세빈이가 테이블 쪽으로 던져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존재를 지울 틈도 없이 그가 테이블 위를 굴렀다.

    ‘젠장, 얕보면 안 되는 놈이야.’

    줄기 자체도 위협적이었지만 저 줄기에 당한 순간 녀석의 입으로 들어가기 십상이었다.

    방아쇠를 길게 당겨 공기부터 진동시켰다. 그러자 줄기들의 움직임을 더뎌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얼마 안 있어 다시 나를 향해 맹렬하게 솟구쳤다.

    탕, 탕, 탕!

    탄환으로 줄기들을 끊어내며 녀석의 주의를 끌었다. 줄기를 터트릴수록 더욱 굵고 날카로운 것들이 튀어나와 나를 집요하게 쫓았다.

    “물러나세요.”

    화르륵―

    갑자기 최민 헌터가 나와 줄기 사이를 파고든 후 줄기들을 불태웠다. 시커먼 연기와 함께 줄기들이 뜯어져 나갔다.

    ‘확실히 폭발 공격이 잘 들어가.’

    불이라서 그런지 최민 헌터의 공격이 유독 잘 먹히는 느낌이었다.

    쉬익.

    그때 시커먼 연기를 뚫고 무언가가 맹렬히 최민 헌터 쪽으로 다가왔다. 입보다 몸이 더 빨리 움직여 최민 헌터를 옆으로 치우다시피 밀어버렸다.

    ‘제발 기절하지만 마라……!’

    어금니를 꽉 물고 업적 ‘생명의 은인’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빌었다.

    푹―

    “커헉……!”

    ‘아, 줄기가 아니라 포크였네.’

    몸을 쥐어짜는 고통이 느껴질 줄 알았는데 날붙이가 몸을 반 토막 내 내장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업적>

    [생명의 은인]

    [본인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구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업적]

    [업적 효과 : 누군가를 대신하여 물리적 공격, 또는 상태 이상에 걸릴 때 절대 사망하지 않는다. 단, 고통은 느껴진다.]

    비록 고통 때문에 눈앞이 계속해서 번쩍거렸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지의야!”

    “신지의 헌터!”

    여러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내게 다가오는 기척들이 느껴졌다. 하지만 괴식가가 줄기로 나를 찌른 포크를 보호하는 터라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었다.

    ‘걱정 마세요, 여러분.’

    철컥.

    괴식가의 쭉 찢어진 입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 난 자아를 바주카 형태로 바꾸었다.

    ‘계획의 일부였으니까.’

    콰과과과광!!

    커다란 소리 포탄이 녀석의 입에 정확히 들어갔다. 꽃송이가 사방으로 터져 나가고 꽃잎들과 이름 없는 풀들이 공간을 유유히 떠다녔다.

    당황한 괴식가가 내 몸에서 포크를 빼냈고 반쯤 날아간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더듬었다. 내 몸이 테이블 위로 추락하는 걸 느끼며 손등을 덮은 아이테르의 로브 소매를 살짝 쥐었다.

    ‘스틱스 강, 발동.’

    똑.

    세상의 모든 고통과 상처를 잊게 하는 물방울 소리가 귓가에 퍼졌다. 입에서 느껴지던 비릿한 피 맛도 완전히 사라졌고 눈앞이 아찔해지는 고통도 씻은 듯이 나았다.

    후드득.

    괴식가의 꽃송이와 함께 테이블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고개를 들어 괴식가의 상태를 확인했다.

    녀석의 입에선 꽃잎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헛구역질을 하는 듯 몸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렸고 그럴 때마다 아래턱이 덜렁거렸다.

    “완전 치유는 나도 있는데, 아쉽게 됐네.”

    <■재 상태>

    <죽■ 것 같■. 당장 눈앞의 음■을 먹■치■■ 싶■.>

    <남■ ■력 :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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