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11화 (111/366)

111화

【괴식가】

[카르마 : 죄인(罪人)이 파괴되었습니다.]

[각성자 ‘최민’이 절대자 ‘조율자’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이걸로 된 걸까.’

최민 헌터가 조율자와 맺은 사도 계약을 파괴해 버렸다. 절대자를 적으로 돌린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어차피 절대자들은 인간의 편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세상을 구하는 건 나, 그리고 내 동료들의 역할이다.

멀어지는 의식 때문에 온몸을 찢는 듯한 고통도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악몽 속에서 추방된다면 이 안에 있는 최민 헌터는 어떻게 되는 걸까. 미식가의 테이블에 올라가도 구할 수 있는 걸까.

쿵, 쿵.

그때 누군가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렸다. 시원하면서도 톡 쏘는, 나무 타는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천천히 눈을 뜨자 검붉은 색의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최민 헌터…….”

이름을 부르자 그의 눈이 커졌다.

“허, 와, 하아아… 다행이다. 진짜 최민 헌터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 내가 누군지 명확하게 인식하는 눈이었다.

마음이 놓이고 나서야 주위가 좀 보이기 시작했다. 사방이 불타고 있는 걸 보니 아직 방공호 안인 것 같고, 최민 헌터는 그 속에서 의식이 없는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타닥.

그는 나를 내려준 후 아무런 말 없이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달싹거렸지만 제대로 된 문장은 나오지 않았다.

‘이젠 감정에 좀 솔직해진 것 같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머리카락이…….”

“네?”

머리카락?

최민 헌터의 말을 듣고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더듬어보았다.

“아.”

짧다. 귀 밑이 휑하다. 안 자른 지 꽤 돼서 어깨선에 닿을 듯 말 듯한 길이였는데, 지금은 어깨는커녕 목을 간신히 덮는 길이가 되었다. 목 언저리에서 뚝 끊긴 머리카락이 어색해 몇 번이고 목을 더듬었다.

“불 때문에 탔나 보네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키이잉―

그때 미식가의 포크가 요란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시간이 정말 안 남았나 보군.’

공중에 있던 포크를 낚아채 최민 헌터의 손에 쥐여 주자 그가 포크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세한 얘기는 나가서 해요. 일단 방공호부터 거둬주세요.”

“알겠습니다.”

최민 헌터가 주먹을 꽉 쥐자 우리를 감싸고 있던 시퍼런 불길이 하늘로 솟구쳤고 그대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콰과광!!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방공호가 사라지자마자 새빨간 불길이 우리를 집어삼키려 했다. 최민 헌터와 나는 동시에 옆으로 피했다.

악몽의 근원은 우리를 태우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지 공중에서 집요하게 폭발을 일으켰다.

“몬스터입니까?”

“몬스터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고, 최민 헌터의 악몽의 근원이에요.”

“…저를 꼭 닮았군요.”

최민 헌터는 곁눈질로 자신의 악몽을 바라보다 쓰게 웃었다.

펑!!

악몽의 근원이 최민 헌터를 향해 불꽃을 날리자 그가 지면으로 하강하며 공격을 피했다. 공기 가르는 소리가 악몽 내부를 울렸다.

“포크로 찌르세요!”

최민 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악몽의 근원을 향해 운석처럼 날아갔다.

[미식가의 테이블에 오르기까지 남은 시간 : 1분]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진짜 얼마 안 남았어……!’

퍼버벙!!

악몽의 근원이 사방으로 불을 뿜어대며 최민 헌터를 공격했지만, 불이 자신의 진짜 주인을 알아보는 건지 그의 살점 하나 태울 수 없었다.

최민 헌터가 날아간 경로를 따라 미처 꺼지지 않은 불씨가 반짝거렸다. 넋 놓고 볼 정도로 아름다운 흔적이었다.

[22초]

카운트다운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똑 닮은 두 개의 인영이 겹쳤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쾅!!

폭발이 일고 잿빛 연기가 두 사람을 삼켰다. 연기가 사라지자 서로의 목을 움켜쥔 악몽의 근원과 최민 헌터가 보였다. 둘은 동시에 손에서 불꽃을 일으켰지만 그 어느 쪽도 재가 되지 않았다.

시뻘건 불길의 틈으로 최민 헌터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죄책감과 자기혐오로 가득 차있던 눈동자는 어느새 삶에 대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10초]

“최민 헌터!!”

최민 헌터가 한 손에 들고 있던 미식가의 포크를 악몽의 근원의 머리에 찔러 넣었다.

[6초]

악몽의 근원은 최민 헌터의 목을 더욱 세게 조였지만 최민 헌터도 팔에 힘을 주어 포크로 녀석의 머리를 갈랐다.

“꺼져!!”

쨍그랑.

최민 헌터의 포효와 함께 검은 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 기능을 다한 포크도 유리처럼 깨졌다. 시뻘건 구름이 떠다니던 하늘에 금이 갔고 붉은 불씨가 눈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죄책감의 악몽’으로부터 ‘최민’이 탈출하였습니다.]

[남은 식재료 : 0개]

[주방장이 당혹스러워하며 미식가에게 상황을 알리러 갑니다.]

예상은 했지만, 최민 헌터의 악몽은 혼자 살았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이 만든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든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최민 헌터의 목에는 그의 죄책감이 만든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저 자국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국은 자국일 뿐, 더 이상 최민 헌터의 목을 조를 순 없다.

최민 헌터가 고개를 내려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보는 그 얼굴이 제법 따뜻해서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탁.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해지나 싶더니 금방 악몽 밖으로 나왔다. 고급스러운 붉은 융단 바닥 위로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헌터들이 착지했다.

“지의야!”

“어? 컥!”

세빈이가 나를 콱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충돌에 온몸이 흔들렸지만 세빈이가 나를 거의 들다시피 안은 탓에 뒤로 넘어가진 않았다. 그가 곧바로 내 어깨를 잡아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다친 데는 없어? 특별한 외상은 없어 보이긴 하는…….”

그때 세빈이가 말을 뚝 멈췄다. 그의 시선은 내 머리카락에 꽂혀 있었다.

“아. 좀 탔어.”

“…고등학생 때 같다.”

‘그러고 보니 육상 하느라 짧게 자른 적이 있었네.’

세빈이가 배시시 웃으며 내 머리카락 끝을 매만졌다. 손가락 끝이 목을 건드려 조금 간지러웠다.

“두 분 다 무사하신가요?!”

이번엔 한진우 헌터였다. ‘행운의 토끼발’에서 내린 그가 나와 최민 헌터의 몸에 ‘약손’을 덕지덕지 붙였다. 그걸로도 성이 안 찼는지 뒤늦게 합류한 차도윤 헌터가 ‘하늬바람’까지 시전했다.

옹기종기 모인 헌터들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악몽 속에서 전부 구했어.’

정말로 이들을 구해냈다. 내 소중한 동료들을 악몽에 익사하게 두지 않았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고개를 홱 돌리자 세빈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눈물 날 것 같아.’

키이이잉―

볼 안쪽을 씹으며 울음을 참을 때쯤 팔찌에서 녹두가 튀어나왔다.

꺄우! 아웅!

“아, 녹두야…….”

녹두는 내 얼굴 바로 앞에 선 채로 내 눈을 핥았다.

‘짜!’

“푸흐…….”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는데 녹두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서서히 진정되었다.

“신지의 헌터.”

최민 헌터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놀랍게도 그의 입가엔 아주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다행이네요. 자기랑 친해져서 좋을 거 없다고 했던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하니.”

최민 헌터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검붉은 눈동자 때문에 왠지 모르게 그가 토끼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같이 시간을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딱딱하게 안 물어봐도 돼요.”

그는 내 대답이 수긍이라는 걸 눈치챘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여기서 언제 탈출할 수 있는 걸까요?”

한진우 헌터가 입을 열었다.

‘이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단순히 악몽에서 탈출하는 것만으로 미식가의 파편이 소멸할 것 같진 않았다. 물로 목을 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붉은 커튼과 카펫, 그리고 커다란 창문들……. 아까와 다름없는 풍경이다.

식재료들이 전부 탈출했으니 미식가의 테이블에 올려놓을 음식이 없을 텐데.

또각, 또각.

생각에 잠겨 있을 때쯤 누군가의 구두 소리가 들렸다.

[주방장이 미식가에게 재료를 공급하는 데 실패하여 오늘의 알 라 카르트(a la carte)를 주문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 검푸른 글씨가 눈앞에 나타났다. 곧바로 고개를 들자 다른 사람들도 하던 행동을 멈추고 허공에 떠오른 글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식가가 주방장에게 삿대질을 합니다.]

[테이블이 뒤집히고 식기들이 떨어집니다.]

쿠구궁.

미식가의 패악질 때문인지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주방장이 미식가를 진정시키며 다시 자리에 앉힙니다.]

[미식가는 인상을 찌푸리며 마구잡이로 메뉴를 시킵니다.]

[주방장은 허둥지둥 주방 안으로 들어갑니다.]

끼이익.

“뭐……?”

갑자기 벽이 사방으로 갈라지더니 그대로 상자처럼 완전히 열렸다. 고개를 드니 높은 천장에 거대한 샹들리에가 보였다. 그리고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건 누군가의 테이블이었다.

마치 거인국에 온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쾅!!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 몸이 반응하는 것이 더 빨랐다. 서늘한 느낌과 함께 내 위로 그림자가 걸리자마자 나는 ‘발 없는 말’로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 내가 서있던 곳에 새하얀 손이 떨어져있었다.

손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기자 양복을 입은 팔이 보였다. 넥타이를 맨 목을 지나 얼굴을 보자 그곳엔 형형색색의 꽃들이 묶인 꽃다발이 있었다.

[미식가]

붉은색 카드에 금색 글씨로 녀석의 이름이 나타났고, 그 카드는 녀석의 머리 위를 떠다녔다.

꽃다발 머리의 정체는 미식가였다. 우리를 먹으려 했던 정체불명의 몬스터.

[□ㅣ???■ 식,,,,ㄱ▲ㅏ?]

그때 미식가의 머리 위에 떠있던 글자가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꽃다발의 한가운데, 아래쪽으로 휜 포물선이 생기더니 이내 서서히 벌어져 가로로 쭉 찢어진 입이 되었다.

원초적인 거부감이 들어 전신이 뻣뻣하게 저려왔다. 저것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를 쓰는 동안, 깨졌던 글자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괴식가]

[식사 예절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교양 없는 존재]

녀석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