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10화 (110/366)

110화

“누나, 행복이 뭔 것 같아?”

혁이의 추상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었다. 난 엄마처럼 철학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아빠처럼 ‘난 우리 가족이랑 있을 때 행복하지.’라고 상냥한 대답을 할 성격도 되지 못했다.

그리고 저런 질문을 한 혁이처럼 내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 역시 아니었다. 행복에 대한 대화는 나의 실없는 웃음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난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내게 절대 허락되지 않은 것이라고.

“저는 당신의 소원에 따라 행복과 관련된 모든 감정을 차단하겠습니다. 당신은 제 명령에 따라 창조자의 사도를 찾아내 없애십시오.”

쿠웅.

“커헉……!”

조율자라는 정체불명의 신이 내게 강제로 두 번째 기회를 주었다. 온몸이 찢기는 것 같은 고통에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리기 직전이었다.

“당신의 존재를 원래의 시간선에 끼워 넣는 중입니다. 좀 참으세요.”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난 그저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손톱으로 바닥을 긁을 뿐이었다.

<사명 해금>

[구원자를 구할 자]

[구원자를 구하라. 늘 그래왔듯.]

[달성도 : 0%]

[보상 : 구원자의 위치 열람, 구원자의 구원]

고통이 심해질 때쯤 눈앞에 난생처음 보는 상태창이 떴다.

‘구원자……?’

조율자에겐 저 글자가 보이지 않는 건지 그는 무감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가족 하나 구하지 못한 사람에게 구원자라는 존재를 구하라는 말이 우습게 느껴졌다. 사명을 잘못 줘도 한참 잘못 줬다. 내게 이 사명을 준 존재는 자신의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파지직.

상태창을 향해 손을 뻗자 글자들이 조각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늘 그래왔듯, 이란 건 내가 전에 구원자를 구한 적이 있다는 건가.’

어느새 몸을 옭아매던 고통이 줄어들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공호를 해제하자 역겨운 공기가 폐부에 갑자기 들어찼다.

“윽.”

“독성 물질이군요.”

화르륵.

몸을 불로 바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제야 숨쉬기가 편해졌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집. 시킬 일 있으면 알아서 찾아와.”

내 옆에 선 조율자를 뒤로한 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우리 집 쪽으로 날아갔다.

타닥, 탁.

집에 있던 물건들을 전부 태우며 나를 두고 지나버린, 20년이 넘는 세월을 천천히 곱씹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닫히는 건 일상이 되었고, 이젠 게이트가 열릴 시점이나 폭발할 시기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몬스터들을 찢어발길 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던 헌터들은 어느새 연예인만큼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헌터들이 전부 죽길 바랐는데, 결국 나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S급 헌터가 됐다. 여러모로 역겨운 상황이었다.

팔랑.

그때 엄마의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가족사진 하나가 떨어졌다. 사진 속 엄마와 아빠는 제법 점잖은 얼굴로 미소 지었고, 혁이와 나는 사진관에서 찍는 사진이 어색해 입꼬리만 겨우 올려 웃어 보이고 있었다.

“헉.”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웃을 뻔했다. 가족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이 사진 속의 나처럼 웃을 일은 다신 없을 것이다.’

타다닥.

가족사진을 마지막으로, 집에 남은 그들의 흔적은 단 하나도 없었다.

* * *

<사명>

[구■자■ 구■ 자]

[■해줘구■줘구해■지■를구■줘]

[빨■지■■라면늦■않■■야]

파견을 마친 후 집으로 들어가는 길, 갑자기 눈앞에 엉망진창으로 깨진 글자가 떴다.

누군가의, 아니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의 다급한 구조 요청이었다.

<사명>

[구원자를 구할 자]

[구원자를 구하라. 늘 그래왔듯.]

[달성도 : 0%]

[보상 : 구원자의 위치 열람, 구원자의 구원]

문장을 끝까지 읽기도 전에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 구조 요청이 존재도 모르는 구원자를 위한 것이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기사님, 차 좀 세워주시죠.”

“네? 어, 네.”

끼익.

차에서 도망치듯 내렸다. 그러곤 몸이 기억하는 곳으로 달렸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지금 그런 의문은 중요치 않았다. 오직 본능에 의존한 채 다리를 더 빨리 움직였다.

“헉, 허억…….”

낡은 빌라촌 골목, 바닥에 생긴 대리석 문이 눈에 들어왔다.

쾅!!

몸을 날려 게이트를 부수다시피 열었다. 게이트는 어느 던전의 하늘과 연결돼 있었다.

‘저기다.’

퍼버벙!

쓰러진 사람의 형체를 보자마자 그쪽으로 방공호를 펼쳤다. 빠르게 그 안으로 들어가 구원자의 정체를 두 눈으로 보았다.

평범했다. 특징이라곤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여자였다. 구원자라고 부르기엔 한없이 약해 보였다.

“…오해한 건…….”

그 여자를 안아 들자 갑자기 눈앞에 어지럽게 글자가 떴다.

<사명>

[구원자를 구할 자]

[달성도 대폭 상승]

[달성도 : 100%]

[달성 완료]

[구원자의 위치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구원자였다. 내 유일한 사명이 지금 내 품 안에 있다.

파지직.

[구원자의 상태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끼워 넣은 것처럼 새로운 보상이 추가되었다. 마치 이 사람을 구하라고 온 세상이 나를 떠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이 여자가……?’

혼란스러운 동시에 궁금해졌다.

이 평범한 사람이 과연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죄인인 나도 구원할 수 있을까.

* * *

구원자가 등장한 후로 이상한 일들이 자꾸 벌어졌다. 그의 위치와 상태를 알 수 있었고, 그가 내 눈앞에서 죽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전자는 정체불명의 사명으로 생긴 것이지만 후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그가 이 꿈의 원인을 알고 있을까 싶어 꿈속에 나온 장소로 데려갔지만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만약 그게 꿈이 아니라고 해도, 그건 최민 헌터 때문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최민 헌터는 절 구하러 온 사람이니까.”

그저 다정한 갈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이상한 말로 내 속을 뒤집어 놓을 뿐이었다.

“그냥 최민 헌터가 좋은 사람이라서, 좋은 동료라서 친해지고 싶은 거라고요.”

“제가 거기서 죽는 꿈을 꿨으면 최민 헌터가 신경 쓸 수도 있잖아요. 감천 때처럼.”

그의 행동을 이해하는 건 나에게 있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내던지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인간이었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를 완전히 믿고 있었다.

정말로 이상한 인간이었다.

“듣고 있습니까?”

“…아. 뭐라고 했지?”

“아무래도 그 SS급 각성자가 창조자의 사도 같으니 그를 제거하는 게 좋겠다고요.”

조율자의 말에 의문을 가진 적은 있어도 거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지?’

사실 나랑 별 상관도 없는 인간이다. 아니, 오히려 그가 나를 구원할 수 있다면 더더욱 그를 죽여야 한다. 애초에 난 구원받으면 안 되는 인간이니까.

“나중에 기회를 봐서 해치울게. 지금은 아니야.”

그의 명령을 또다시 거절한 후 TV의 볼륨을 높였다.

―신지의 헌터가 마무리를~

―했습니다!

구원자의 모습이 화면에 떴다. 냉정한 얼굴로 몬스터들을 공략한 후 동료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모든 걸 녹여버릴 만큼 따스했다.

저 눈을 보고 있으면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이제 나도 조율자에게서 벗어나 누군가의 동료가 되어 내 삶을 살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뚝.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결국 TV를 껐다. 더 보고 있다간 내 다짐이 산산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 * *

“그러니까 제발 정신을……!”

퍼버벙!!

‘조용하다.’

온 세상이 푸른 불꽃으로 일렁이자 날 괴롭히던 누군가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뜨거운 공기가 폐부에 가득 담겨 가슴이 쥐어짜지는 것 같았다.

지옥에서 숨을 쉬면 이런 느낌이겠지.

간만에 찾아온 고요함에 나는 때 아닌 평화를 느꼈다. 마치 이 불지옥이 원래 내가 있어야 할 곳처럼 느껴졌다. 그래, 나는 이곳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나는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친 죄인이자, 세상에 살아있을 자격도 없는 인간이다. 행복해질 자격조차 없는 인간.

“최, 민 헌터의… 잘못이 아니란 걸, 컥, 알잖아요!”

두근.

아득히 먼 곳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눈에 보이는 거라곤 모든 것을 불태우는 푸른 불꽃뿐이었다.

“무뎌져도 괜, 찮아요! 남은 사람들은, 윽, 남은 사람의 인생, 을 살아도… 돼요……!”

‘조용히 해. 시끄러워. 나를 이 절망 속에서 꺼내지 말아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럴수록 참을 수 없는 공포를 느꼈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엔 제가, 최민 헌터를, 구해줄게요……!”

목소리는 날 구해준다고 했다. 살 가치도 없는 나를.

도대체 당신이 누구길래. 그리고 내가 뭐길래.

“당신은 살아야만 하는 사람이니까!!”

쿵.

그는 기어코 내가 그토록 원했던 말을, 내게 허락되지 않은 말을 하고 말았다. 감히 생각할 수도 없던 그 말을.

비명과도 같은 그의 말이 그대로 뚝 끊겼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이 흐르는 걸 그대로 둔 채 난 길을 잃은 아이처럼 그 자리에 덩그러니 섰다.

“행복해지고 싶어.”

그래, 사실 이 지독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먼저 떠나보낸 가족들을 가슴에 묻고 내게 주어진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죄책감이 내 목을 졸라 단두대 밑으로 끌고 갔고, 넌 살아선 안 되는 놈이라고 자각시켜 주었다.

그럼 지금 이 목소리는 뭘까. 남은 사람의 인생을 살라며, 나를 구하러 왔다고 말하는 이 목소리는 누구일까.

난 두 눈과 귀를 모두 닫았다. 겹겹이 쌓인 기억들의 잔해 속에서 한 사람의 인영이 서서히 떠올랐다. 다정한 말을 해주던 입과 올곧은 갈색 눈이 차례로 나타났다.

투웅.

그의 모습을 전부 떠올리기도 전에 온몸에 따스한 기운이 퍼졌다. 기묘한 감각에 천천히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아…….”

시퍼런 불꽃 벽에 커다란 구멍이 나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 너머로 누군가의 형체가 보였다.

모든 생명에 대한 애정을 담은 황금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 뒤로 새하얀 후광이 떠있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빛무리가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경외심이 들었다. 절대자를 볼 때도 느끼지 못한, 두려우면서도 닿고 싶은 그 감정을 눈앞의 이 존재를 보면서 처음 느꼈다.

털썩.

그의 후광이 사라지더니 이내 불꽃의 틈을 통해 힘없이 떨어졌다. 난 두 팔을 뻗어 그의 몸을 잡았다. 두려움까지 들었던 그 존재는 내 품에 들어오자마자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신지의 헌터.”

내 악몽과 죄의 굴레를 끊어준 구원자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나의 구원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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