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07화 (107/366)
  • 107화

    가평 S급 게이트 폭발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게이트 폭발이었기에 미리 대비할 수도 없었고 경계나 소멸 조건 역시 알려진 바가 없어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김강희가 상황을 미리 파악하긴 했지만 그답지 않게 지원 요청이 느렸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방관한 걸 수도 있겠어.’

    초기 대응도 늦은 데다가 S급 게이트를 수습할 만큼 유능한 전투계 헌터들의 수 역시 적었다. 최악의 참사가 될 모든 조건을 갖춘 상태였다.

    “으아악! 저리 가!”

    “엄마! 아빠!”

    한진우 헌터의 악몽의 일부였던 여의도 S급 게이트 폭발 사고 현장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거대한 카멜레온이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닥치는 대로 건물을 부쉈다. 사람들의 비명과 폭발음이 뒤죽박죽 섞여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의미한 짓인 걸 알면서도 몬스터를 향해 소리 탄환을 발사했다. 당연하게도, 몬스터들은 죽지 않았다.

    “커헉! 쿨럭! 컥……!”

    무너진 펜션의 잔해 밑에서 누군가가 고통스럽게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나무판자 밑에서 팔이 튀어나오더니 이내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최민 헌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엄, 마……! 아빠……. 혁, 아!”

    최민 헌터는 잔해에 옆구리를 찔렸는지 한 손으로 갈비뼈 언저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손 틈새로 붉은 액체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그가 겨우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그의 가족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콰그작!!

    건물 잔해 위로 누군가의 몸이 떨어졌다. 최민 헌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시 힘겹게 일어나 몸의 주인을 살폈다.

    “허억, 헉. 윽!”

    그가 아는 얼굴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 다른 곳에서 놀다가 봉변을 당한 또 다른 피해자이리라. 최민 헌터는 다리를 질질 끌며 잔해들을 하나씩 치웠다. 몸 하나 움직이는 것도 어려울 텐데, 그는 이를 악물고 가족을 찾아 헤맸다.

    “아으……!”

    “엄마! 괘, 괜찮아요?”

    “미… 민이니?”

    “하아… 다행이다.”

    산산조각 난 벽돌 담벼락을 치우자 온몸이 피범벅이 된 최민 헌터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는 제 모친의 몸을 끌어안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연신 누군가를 향해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끔찍한 절망 속에서 잠깐 맛본 희망은 그 무엇보다도 달콤했을 것이다.

    최민 헌터는 어머니를 다 찌그러진 차 뒷좌석에 태운 뒤 곧바로 잔해 쪽으로 몸을 틀어 다른 사람들을 구하려 했다.

    ―아빠, 혁아……. 제발 살아만 있어줘.

    “어?”

    그때 최민 헌터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귀를 막아도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전부 들렸다.

    우웅, 우웅―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진정시키듯 미식가의 포크가 울리기 시작했다.

    ‘설마 이게 있어서 들을 수 있는 건가?’

    우우웅―

    내 의문에 대답하듯 포크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포크의 기묘한 기능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일단 지금은 최민 헌터를 악몽에서 깨우는 게 먼저다.

    펜션 주위를 맴도는 최민 헌터를 향해 다가가자 또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왜? 몬스터들이 밖으로 왜 나온 거야? 헌터들은 오고 있나?

    쾅!!

    최민 헌터가 자갈밭에 있는 잔해를 발로 걷어차자 엉겨 붙은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아빠! 혁아!”

    “누, 나아……. 윽!”

    “얘기하지 마. 정신 꽉 붙잡고 있어.”

    최민 헌터의 아버지와 남동생이었다. 남동생의 머리를 끌어안고 등을 쓸어주던 그의 얼굴이 제 부친의 모습을 본 순간 사색이 되었다.

    “아, 아빠?”

    그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최민 헌터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엎어져 있던 그의 몸을 돌리자 가슴을 꿰뚫은 거대한 상처가 보였다.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남자의 초점 잃은 눈을 보자마자 확신했다. 이미 최민 헌터의 아버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걸.

    “허, 억, 우윽……!”

    최민 헌터가 입을 틀어막았고 그와 동시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의 남동생도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목을 놓아 울었다.

    퍼버벙!!

    그러나 애도할 시간조차 없었다. 마네킹 팔이 달린 뱀이 게이트 밖으로 기어 나와 강에서 헤엄치기 시작했다.

    최민 헌터는 남동생을 부축하며 자갈밭을 계속해서 올라갔다. 몇 번이고 굴렀고 발목은 점점 부어올라 보는 것만으로도 욱신거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최민 헌터는 끈질기게 버텼다. 남동생을 조수석에 쑤셔 박곤 다시 비틀거리며 아버지를 향해 갔다.

    ―도대체 왜,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최민 헌터, 제발 정신 차려요!!”

    더 이상 그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최민 헌터가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이 비극을 계속해서 되풀이하다, 언젠가 미식가의 테이블에 올라갈 것이다.

    소리를 지르며 최민 헌터의 앞을 막아섰고 그의 양팔을 붙들었다. 그는 또다시 등장한 내 얼굴에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온 힘을 다해 나를 밀쳤다.

    “너 아까부터, 윽, 도대체 뭐야…….”

    “여긴 지금 최민 헌터의 악몽 속이에요! 저는 신지의고 최민 헌터 동료예요!”

    “악몽이라고? 여기가?”

    “네! 이제 좀 기억이 나…….”

    “웃기지 마!”

    최민 헌터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고통을 참는 듯 입술을 꾹 깨물더니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나도 이게 악몽이었으면 좋겠다고…….”

    “최민 헌터…….”

    “헌터는 무슨 헌터. 상황이 이 지경이 돼도 코빼기도 안 비치는 망할 놈들은 왜?”

    잔뜩 날이 선 말을 끝으로 최민 헌터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난 더 이상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이 상황이 현실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악몽이기를 바라는 그의 모습에서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악몽이라고 말해 봤자 그의 생각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윽!”

    “최민 헌터!”

    “이거 놔!”

    최민 헌터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를 잡아주려 했지만 손바닥이 날카롭게 나를 쳐냈다. 그는 그대로 힘없이 자갈밭을 굴렀고 이미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의 옆에 엎어졌다.

    ―여기서 이렇게 쓰러질 순 없어. 절대 쓰러지면 안 돼. 아빠를 차에 싣고, 엄마랑 혁이랑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돼. 포기하지 마, 일어나.

    이 상황의 끝을 알고 있다는 게 이렇게 괴로운 일이라니. 최민 헌터는 정말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희망의 끈이 무너져 내리기 직전의 정신을 겨우 묶어두는 것일 수도 있다.

    최민 헌터는 다시 몸을 일으켜 아버지의 시체를 잡아끌었다.

    드르륵, 드르륵.

    시체의 발이 자갈밭을 갈랐다. 최민 헌터는 이를 악물고 차를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갔다. 차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의 중얼거림은 더욱 커졌다.

    “할 수 있어, 돌아갈 수 있어. 다 같이, 우리 가족 다 같이 돌아가는 거야.”

    처절한 저 말이 내 귀엔 비명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가 차에 도착하기 정확히 세 발자국 전.

    콰아앙!!

    커다란 발톱이 차를 짓눌렀다. 차는 음료수 캔처럼 찌그러졌고, 동시에 투명하면서도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펑!!

    차가 불길에 휩싸였고 순식간에 불꽃이 위로 솟구쳤다. 시커먼 연기와 함께 핏빛 불꽃은 활활 탔지만 누군가의 생명의 불씨는 사그라졌다.

    “어, 어……?”

    철퍽.

    최민 헌터는 제 부친의 시체를 놓았다. 시체는 질척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고, 얼마 안 있어 최민 헌터 역시 무릎을 꿇고 그 참상을 지켜보았다.

    “으아아악!! 아, 아아악!!”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최민 헌터의 절규였다. 내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난 듯한 거친 목소리가 주변에 있던 그 어떤 사람들의 비명 소리보다도 처절하게 들려왔다.

    그는 몬스터 발밑에 깔린 차의 잔해를 바라보며 그들의 이름을 울부짖다 이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인 커다란 카멜레온은 눈알을 굴려대며 최민 헌터를 향해 혀를 날름거렸다.

    ―이제 다 의미 없지 않나?

    완전히 쉬어버린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삶을 포기한 목소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최민 헌터는 몸을 천천히 일으키더니 몬스터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곤 눈을 감았다.

    [각성자 최민]

    [불 속성 개방]

    [S급 방어계 스킬 ‘방공호’ 개방]

    [S급 방어계 스킬 ‘방공호’ : 불로 된 방공호를 만든다. 방공호 내부는 정신적, 물리적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으며 시간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연계 패시브 스킬 ‘염제(炎帝)’ : S급 미만의 화상 피해에 면역이 생긴다.]

    그를 기다린 건 달콤한 죽음이 아니라 비참한 각성이었다. 최민 헌터는 눈앞에 뜬 글씨를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그가 상황을 이해하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 하하… 푸흐흡.”

    최민 헌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가 위아래로 크게 떨리더니, 그가 이내 허리를 뒤로 젖히곤 입을 크게 벌렸다.

    “아하하하하!! 아하하!! 아, 아아… 아아악!!”

    웃음은 다시 절망 섞인 비명이 되었다. 최민 헌터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가자 새하얀 공간과 푸른 글씨가 사라졌고 시뻘건 불길이 그를 안락하게 감쌌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불이 최민 헌터와 세 구의 시체를 보호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각성을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지?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나?

    최민 헌터가 눈을 감자 방공호가 연기를 남기고 사라졌다. 최민 헌터를 집어삼키려 했던 호랑이 무늬의 카멜레온은 그의 등장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를 향해 한 발짝 다가왔다.

    ―그래, 그냥 이걸로 끝을 내자.

    카멜레온이 커다란 발을 높이 들자 최민 헌터의 몸 위로 그림자가 졌다.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이 바닥을 향해 맹렬하게 떨어졌다.

    “최민 헌터!!”

    쾅!!

    거대한 먼지바람이 일고 시야가 잠시 차단되었다. 소매로 입과 코를 가린 채 먼지가 걷히기를 기다리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최민 헌터가 눈에 들어왔다.

    ―왜, 왜 피한 거지? 가족들의 뒤를 따르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 이기적으로 혼자 살아보려고?

    최민 헌터는 눈을 크게 뜨고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손가락 틈새로 보이는 그의 눈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나 혼자 살겠다고 피할 수가 있어? 미친 거 아니야? 하지만 무서워. 지금도 몸이 부서질 것 같은데 저 발톱에 당하면 정말로 죽는 거잖아.

    그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살고 싶다는 본능과 죽고 싶다는 감정이 충돌해 자괴감의 늪을 만들었고 그 속으로 서서히 잠겨가고 있었다.

    최민 헌터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자갈밭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선홍빛 핏물이 자갈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자, 잠깐. 최민 헌터, 멈춰……. 크읏!”

    퍼엉!

    최민 헌터의 행동을 막으려 손을 뻗은 순간 몸이 뒤쪽으로 튕겨 나갔다. 온 세상이 또다시 새하얗게 물들고 그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스킬 개방]

    [A급 공격계 스킬 ‘수라의 무(舞)’]

    [스킬 설명 : 불을 자유자재로 출력할 수 있으며, 신체의 일부를 불로 바꿀 수 있다.]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정신이 무너져 내린 틈을 타, 그 안의 수라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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