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05화 (105/366)

105화

“데리러 왔어, 세빈아.”

세빈이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죽은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세빈!”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어 세빈이의 얼굴을 잡아 내 쪽을 향하게 하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이 나를 응시했다. 미약한 숨결이 피부에 닿았다.

“하아…….”

안도의 한숨이 입 밖으로 절로 튀어나왔다. 세빈이의 어깨를 잡아 상체를 겨우 일으켰다.

‘외상은 없네.’

딱히 다친 곳은 없어 보여 다행이었지만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듯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눈가는 한참 운 것처럼 붉었고, 이마에는 땀 때문에 앞머리가 엉겨 붙어있었다.

“강세빈.”

세빈이는 내 시선을 피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악몽에 있던 수많은 시체는 네가 한 일인지, 친구 목걸이는 다시 돌려줬는지, 그리고 편지는 왜 가로챈 건지.

그리고 내가 죽는 꿈을 꾸고 있는지.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물음표들이 나를 괴롭히다 결국 뒤죽박죽 섞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떼어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어.”

내 말에 세빈이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잘못을 들킨 아이처럼 눈동자만 굴려 나를 슬쩍 바라본 후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너는 굳이 내가 아니었어도 상관없다는 걸.”

“나에게 있어 소중한 것들은 결국 다 내 곁을 떠나는구나.”

“자꾸 내 미래에 네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의 너랑 평생 함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곧바로 널 데려가려 하잖아.”

세빈이가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내려앉았다.

차라리 내게 솔직하게 말했다면 이 정도로 속이 타들어 가기 전에 무슨 말이라도 해줬을 텐데.

내가 누군가의 부탁에 약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 세빈이는 내게 그 어떤 부담도 주지 않았다.

‘바보 같아.’

착하다고 말하기엔 양심에 찔려 적당한 표현을 빌려왔다.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응?”

“넌 계속 날 신경 쓰고 내 옆에 있어줬을 거야.”

줄곧 침묵을 유지하던 세빈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럼 안 돼.”

“…….”

“지의 넌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을 신경 쓰고 있으니까, 적어도 나는 네 짐을 줄여줘야 해.”

후드득.

검은 눈동자에서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적어도 누군가는 널 돌봐야 할 거 아냐.”

“세빈아…….”

“그러니까 난, 네가 신경 안 써도 되는 완벽한 사람이고 싶었어.”

세빈이가 옷소매로 눈을 벅벅 닦으며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린아이 같은 울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세빈이는 내게 있어 정말로 완벽한 친구였다. 어른들의 말에 반항한 적도 없었고 다른 사람과 싸우지도 않았다. 각성 전에는 성적도 좋았으며 각성 후에도 공부를 놓지 않았다.

세빈이가 내게 도움을 요청한 적은 단연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보면 난 또 혼자 남겨지는데, 그건 또 싫었고…….”

“하아…….”

“미안해. 내가 위선자라서 그래…….”

울음 때문에 세빈이의 말이 뚝뚝 끊겼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는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완전히 무너지고 나서야 진심을 드러낸 세빈이의 모습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약해 보였다.

‘바보는 얘가 아니라 나네.’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난 세빈이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가슴 한편이 쿡쿡 쑤셨다.

“나한테 실망했지.”

세빈이가 98번째의 자신과 똑같은 말을 뱉었다. 붉게 충혈된 눈에 내가 담겨 있었고, 본심을 이야기한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아니.”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유치한 실랑이가 오갔다. 세빈이는 어느 정도 진정됐는지 숨을 고르며 나를 빤히 보았다.

“내가 어떤 앤지 봤잖아.”

“…….”

“애들을 교묘하게 이간질하고,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미워하고…….”

세빈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물론 그 행동도 정상적인 건 아니었지만 얘가 저지른 일 중 그것들이 제일 순했다.

‘98번째 회귀를 겪고도 구하러 온 건데.’

콩.

“아.”

세빈이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내가 여기 왜 왔겠어.”

“지의…….”

“강세빈 너 구하러 온 거야.”

세빈이가 부정하기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10년 전에 내가 널 구한 건 우연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강세빈 ‘너’ 구하러 온 거라고.”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말에 각성자 ‘강세빈’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대혼란]

굳이 상태창이 안 떠도 지금 세빈이가 엄청나게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내 말을 이해하려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였으니까.

“강세빈, 네가 말했지. 너한테 소중한 것들은 결국 다 널 떠나간다고.”

“…응.”

“틀렸어. 내가 있는 한 그 문장은 성립하지 않을 거야.”

팟!

세빈이의 멱살을 잡았다. 그는 몸을 흠칫 떨며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보았다.

“내가 너의 오답이 될게.”

“…….”

“그리고 넌 내 옆에서 네가 틀렸다는 걸 지켜봐.”

[각성자 ‘강세빈’의 ‘절대 내게서 등 돌리지 마’의 씨앗 개화]

[각성자 ‘강세빈’은 각성자 ‘신지의’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고유 스킬 ‘호령여산(號令如山)’의 파괴력 증가]

<사명>

[사령탑]

[‘말의 씨앗’을 개화시켜 동료로 만들어라.]

[달성도 상승]

[달성도 : 56%]

[세상을 구원하는 자]

[세상을 종말로부터 지켜내라.]

[달성도 대폭 상승]

[달성도 : 78%]

세빈이의 두 눈에서 눈물이 또다시 흘러내렸다. 매끈한 얼굴을 타고 내린 눈물은 밑으로 후드득 떨어져 내 손등을 적셨다. 세빈이는 어떻게든 울음을 멈추려 했지만 결국 또다시 어린아이처럼 울었고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

모든 문제가 해결되자 잔뜩 긴장했던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제 세빈이의 악몽의 근원만 찾아서 나가기만 하면 됐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줘.”

“걱정 마.”

세빈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 때문에 붉어진 눈가와 묘하게 부은 눈 때문에 웃음이 샜다. 하지만 세빈이는 내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말을 뱉었다.

“네가 증명할 때까지, 난 지의 널 지킬게.”

‘기특한 소리를 하네.’

바스락.

엉망이 된 세빈이의 코트를 정리해 준 후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도 나를 따라 일어섰다.

그럼 이제…….

“악몽의 근원을 찾아야 해.”

“근원이라……. 의심 가는 건 다 죽여봤는데 말이지.”

세빈이에게 말없이 미식가의 포크를 내밀었다. 그는 포크를 이리저리 살핀 후 뭔가를 깨달은 듯 한쪽 눈썹을 올리더니 갑자기 자기 손목을 찔렀다.

푹.

“뭐, 뭐, 뭐 해?!”

“어? 결국 이 악몽은 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내가 근원…….”

“하아아아…….”

폐 안에 든 공기를 전부 토해 낼 정도로 길게 한숨을 뱉었다. 세빈이의 손목은 다행히 포크 자국이 약간 난 걸 제외하곤 멀쩡했다.

‘밖에 쌓인 시체들도 전부 얘가 한 거구나.’

왠지 모르게 입이 썼다.

“아…….”

그때 세빈이가 짧게 탄식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그림자를 빤히 내려다보는 그가 있었다. 공간 전체를 잡아먹을 것처럼 일렁이던 세빈이의 그림자는 어느새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지의야.”

세빈이가 포크로 그림자를 가리켰다. 그를 따라 같이 고개를 내리자 검은 먼지가 끓어오르고 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 속에 악몽의 근원이 있다고?’

고개를 다시 들어 세빈이를 바라보았다. 쓸쓸해 보이는 미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본심은 늘 추했어.”

“…….”

“그러니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날 죽일 게 아니라.”

푹.

“여길 죽였어야 했어.”

세빈이가 떨어트린 포크가 정확히 검은 먼지를 꿰뚫었다. 검은 그림자 속에서 검붉은 피가 새어 나오더니 이내 우리를 둘러싼 공간 전체에 금이 갔다.

[‘상실의 악몽’으로부터 ‘강세빈’이 탈출하였습니다.]

[남은 식재료 : 1개]

[미식가의 테이블에 오르기까지 남은 시간 : 5시간 28분]

쨍그랑!

글자가 뜨는 동시에 새하얀 공간이 깨졌다. 우리는 물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공중을 부유했다.

‘상실…….’

미식가의 라운지로 이동되는 동안 세빈이의 삶을 조용히 곱씹었다.

소중한 것들을 차례차례 잃고 결국 어느 시간선에선 자신의 존재마저 잃어버린 삶을.

텁.

세빈이의 손목을 잡았다. 그는 부드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절대로 사라지지 말자.”

세빈이가 눈을 크게 떴다.

“…응.”

그러더니 이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 무엇도 잃거나 버리고 가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나’도.

* * *

퍼버벙!!

“크윽!”

“차도윤 헌터!”

새파란 화염이 일었다. 도윤의 ‘천재지변’이 화염의 방향을 겨우 바꿨지만 불꽃의 몸집이 워낙 커서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가 팔을 움켜쥔 채 뒤로 물러나자 벗겨진 살가죽 위로 ‘약손’이 내려앉았다.

“하아, 하아, 윽!”

“차도윤 헌터,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시간을 좀 벌어볼게요.”

진우가 ‘행운의 토끼발’에서 내려와 발로 땅을 차올렸다. 메마른 땅이 흐물거리며 녹아내리더니 이내 찐득한 진흙이 되었고 새카만 먼지로 이루어진 인영을 빨아들였다. 그 검은 형체는 온몸에 불을 두르며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그럴수록 발이 더욱 깊이 빠질 뿐이었다.

‘신지의 헌터랑 강세빈 헌터가 올 때까지는 버텨줘야 하는데…….’

진우는 이를 악문 채로 검은 형체 뒤의 ‘방공호’를 바라보았다. 시뻘건 불길로 만들어진 정육면체는 그 어떤 공격에도 흠집 하나 없이 견고함을 유지했다.

“최민 헌터! 제발 좀 나와봐요!”

방공호를 향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봤지만 벼락도 폭풍우도 통하지 않는 불꽃 안으로 연약한 외침이 들어갈 리 없었다.

콰아앙!!

귀를 찢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진흙 속에서 불꽃이 솟구쳐 나왔다. 검은 형체는 하늘 위를 고고히 날며 진우와 도윤을 번갈아 보았다. 도윤은 팔 위에 있던 약손이 사라지자마자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의와 세빈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밖엔 없었다.

“저게 최민 헌터의 악몽의 근원인 건 확실한데.”

“문제는 저걸 잡아야 하는 최민 헌터가 방공호 안에 있다는 거죠…….”

진우의 말에 도윤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들은 민의 악몽 속을 부유하면서 그가 갖고 있던 트라우마를 전부 보았다. 그리고 악몽의 끝에 방공호 안에 있는 그와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지만 이미 정신이 녹아내리다 못해 자신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진우와 도윤은 방공호 밖으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민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온몸이 검은 먼지로 뒤덮인, 악몽의 근원이었다.

펑!!

또다시 시퍼런 불꽃이 튀었다. 진우와 도윤이 재빨리 피했지만 끔찍한 열기가 그들의 숨통을 졸랐고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이제 시간도 얼마 안 남았을 텐데……!’

도윤이 ‘나팔꽃’의 시위를 당겨 방공호가 있는 지면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콰과광!

바람 화살이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고 미친 듯이 땅을 파고들었다. 방공호 자체를 흔들 생각이었다. 도윤은 자세를 낮춰 화살 몇 발을 더 쏘았고, 화살들은 지축을 흔들며 방공호를 향해 날아갔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일었다.

후우웅―

도윤이 천재지변으로 먼지를 한 번에 쓸었다.

“후, 하아… 이런 젠장.”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헛웃음을 터트리는 그의 입꼬리가 기묘하게 비틀렸다.

땅이 완전히 무너져 낭떠러지가 되었음에도 방공호는 멀쩡히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민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한 악몽의 근원이 세상의 파멸자처럼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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