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끼익.
쿵.
뒷문을 열자 커피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여긴……?’
프린터와 컴퓨터가 웅웅대는 소리, 키보드가 분주하게 눌리는 소리와 전화벨.
대한민국 헌터 협회
벽시계에 인쇄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협회 사무실인 모양이었다.
“어, 국장님? 어제 귀국하시지 않았어요?”
그때 세빈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등장에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빈이는 은은하게 웃어 보이며 가장 안쪽의 자기 자리로 성큼 들어갔다.
“잠깐 처리할 업무가 있어서요.”
“아이고, 힘드시겠네. 업무만 끝내고 바로 들어가서 쉬세요!”
나는 사무실의 화분이 된 것처럼 벽에 등을 붙이고 서서 세빈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일단 생긴 건 지금이랑 똑같은 모습이다. 최근에 여기서 겪은 악몽 같은 일이 무엇인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세빈이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메시지와 보고서를 찬찬히 훑었다. 일상적인 업무 모습이었다.
우웅, 우웅.
세빈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눈을 살짝 크게 뜬 채 화면을 내려다보다 이내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귓가에 댔다.
“안녕하세요, 지의 아버님. 잘 지내셨어요?”
‘아빠?’
난데없는 발신인의 정체에 세빈이의 자리 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덜컹.
그때 세빈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때 아닌 소란에 사무실에 있던 모든 직원들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의가… 던전에요?”
쩌적.
사무실 전체에 금이 갔다. 얇은 살얼음 판 위에 돌이 던져진 것처럼 가느다란 선이 점점 영역을 넓히더니, 이내 완전히 이 공간을 부숴버렸다.
세빈이의 핸드폰이 떨어지자마자 바닥도 무너져 내렸고 나와 세빈이는 끝없이 추락했다.
탁.
도착한 곳은 각성 직후 내가 입원했던 병원 복도였다.
문고리를 돌려 병실 안으로 들어가자 안쪽 침대의 커튼 너머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커튼을 옆으로 젖히니 잠들어 있는 나와 그런 내 옆을 묵묵히 지키는 세빈이가 있었다.
“사람은 오만하면 안 돼.”
세빈이가 이불에 붙어있는 먼지를 털며 입을 열었다.
“지의 너랑 평생 함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곧바로 널 데려가려 하잖아.”
세빈이가 고개를 위로 쳐들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사아아―
모래 위에 그린 그림이 파도에 쓸려가듯, 우리를 둘러싼 병실의 풍경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계 소리 대신 숨 막히는 적막이, 푹신해 보이는 침대와 소파 대신 시체의 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바닥엔 여전히 세빈이의 시체가 쌓여 있었고 검고 끈적한 액체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이게 내 악몽의 전부야.”
“뭐? 이게 끝이라고?”
“왜, 더 있었으면 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악몽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거야?’
눈앞의 세빈이는 한 손으로 제 머리를 정리하며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쩌적.
그때 시체의 산 옆에 균열이 생겼다.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그 시커먼 균열이.
“뭔…….”
세빈이가 당황한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난 그 틈을 타 공중을 날아다니는 미식가의 포크를 챙겨 균열 쪽으로 다가갔다.
[잠재된 악몽]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와 회귀자의 오른쪽 눈동자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자격 확인]
[잠재된 악몽을 재생합니다.]
“잠깐, 지의야……!”
세빈이의 외침을 뒤로하고 균열 안으로 발을 들였다.
타닥.
“…미술관?”
사방이 새하얀 공간이었다. 벽에는 똑같은 크기의 액자가 줄지어 붙어있었다. 도저히 현실에 있을 법한 미술관은 아닌 것 같았다.
‘지난 시간선이랑 관련이 없는 장소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가장 가까운 액자 앞으로 발을 옮겼다.
구원자의 첫 번째 죽음을 목격한 자
―강세빈 作
“…아.”
액자엔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몬스터에게 살해당한 채 바닥에 엎어진 나와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세빈이의 사진이었다.
‘그럼 설마 이게 전부……?’
액자를 따라 쭉 달리며 사진 옆에 붙은 글자들을 전부 살폈다.
구원자의 두 번째 죽음을 목격한 자
―강세빈 作
구원자의 세 번째 죽음을 목격한 자
―강세빈 作
.
.
구원자의 스물세 번째 죽음을 목격한 자
―존재가 잊힌 자 作
.
.
구원자의 아흔아홉 번째 죽음을 목격한 자
―존재가 잊힌 자 作
“…전부 봤어.”
최민 헌터처럼 세빈이도 내 죽음을 목격했다. 한두 번이 아닌,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시간선에서의 내 죽음을.
쿵, 쿵.
예상치 못한 상황에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 ‘구원자의 죽음을 목격한 자의 인과율’, 내가 사망하는 장면을 본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인과율이 올라갈수록 과거에 있던 내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제 눈앞에서 신지의 헌터가 계속 죽는 꿈이었습니다.”
최민 헌터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렇다는 건 이번 시간선의 세빈이도 내 죽음을 계속해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윽…….”
세빈이가 겪고 있을 고통이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가슴이 저릿해 숨 쉬기가 힘들었지만 생각하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구원자의 아흔여덟 번째 죽음을 목격한 자
―강세빈 作
고개를 돌려 아흔여덟 번째의 액자를 보았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영(影)’ 옆에 옅은 미소를 띤 채로 죽어있는 내 모습이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이 사진에는 세빈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설마.’
또각.
구두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균열의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까까지 나와 악몽을 함께 떠돌던 세빈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98번째의 강세빈이었다.
균열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과거 세빈이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의 그는 엉망이었다. 모든 헌터들의 목숨을 앗아간 후라 옷이며 얼굴이며 온통 피범벅이었고 눈은 이미 공허해진 상태였다.
“다 알고 들어온 거구나.”
98번째의 세빈이가 입을 열자 목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렸다. 그는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더니 액자에 손을 올렸다.
“사실 무서웠어.”
“…….”
“그 지옥과 다시 싸워야 하는 것도, 네가 회귀자라고 말한 것도, 그리고 갑자기 바뀌는 사람들의 눈빛도.”
후드득.
“다 무서웠어.”
세빈의 눈에서 새카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닥 위로 눈물이 떨어지자 하얗던 바닥이 검게 물들었다.
“꿈속에서 본 네 죽음들이 눈앞에서 자꾸 아른거리니까 몸이 먼저 움직이더라.”
“…하아.”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세빈은 양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쌌다. 벌어진 손가락 틈으로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98번째의 세빈이보다 지금의 그의 무의식 속에 내 죽음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기 무기에 찔린 내 모습을 봤을 수도 있다.
‘한시라도 빨리 찾아내야 해.’
얄팍한 거짓말로라도 세빈이를 진정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옥도를 해결한 후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세빈이 어디 있어.”
“…….”
“대답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잖아.”
98번째의 세빈이는 눈물만 흘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널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왜?”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내 모든 걸 보여주고 말았으니까.”
“뭐, 뭐……?!”
‘지금 세빈이가 내가 자기 악몽을 헤집고 다니는 걸 다 봤다는 소리야?!’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아 눈만 크게 뜬 채로 그를 보자 그가 말을 덧붙였다.
“물론 지금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르겠지. 걘 너처럼 회귀자도, 구원자도 아니고 이 시간선에 살고 있는 사람도 아니니까.”
“어쨌든 그전까지는 전부 봤다는 거잖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해졌다. 아까부터 느껴졌던 시선이 누구의 것인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나한테 실망했지?”
“…….”
“내 천성이 얼마나 추한지 봤잖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98번째의 회귀를 기억해 내기 전까지, 난 세빈이를 바보같이 착한 애로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하지만 아니야.’
세빈이가 대꾸를 하기 전에 곧바로 말을 이었다.
“고작 그딴 걸로 실망할 거였으면 지금까지 오지도 않았어.”
쿠구궁.
공간이 흔들렸다. 세빈이는 어깨를 흠칫 떨며 흔들리는 액자를 붙잡았다. 그는 얼빠진 얼굴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 액자 속에 있는 나는 회귀할 때마다 기억을 지워달라고 소원을 빌었어.”
“기억을……?”
“이 기억을 안 지우면 널 미워할 것 같아서.”
98번째의 세빈이가 숨을 들이켰다. 그는 액자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그 속에 있던 내 위에 손을 얹었다. 그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아마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지의야…….”
“강세빈.”
우득.
그의 멱살을 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건 이곳에 액자를 더 이상 걸지 않기 위해서야.”
“…….”
“그러니까 날 빨리 세빈이가 있는 곳으로 보내.”
또각.
세빈이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는 혼란스러운 듯 액자와 나를 번갈아 보다 이내 복도의 끝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힘겹게 올리며 웃어 보였다.
“막상 헤어지려니 좀 아쉽네.”
내가 세빈이를 악몽에서 데리고 나가더라도 98번째의 세빈이는 여전히 이 공간을 부유하고 있을 것이다. 죽음보다 더한 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세빈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혼자 둬서 미안해. 네가 제일 두려워하는 건데.”
“…내가 자초한 일이라 어쩔 수 없지, 뭐.”
툭.
세빈이가 내 등을 밀었다.
“얼른 가. 시간이 너무 흘렀어.”
“잘 있어.”
98번째의 세빈이를 두고 복도 끝 쪽을 향해 달렸다.
“잘 가. 지의야.”
쓸쓸한 목소리가 비극뿐인 미술관에 울려 퍼졌다.
세빈이가 가르쳐준 대로 쭉 달려 나가자 흰색 나무문이 있었다.
“허어, 헉, 후…….”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른 후 미식가의 포크를 쥐었다. 열쇠구멍처럼 보이는 곳에 포크를 쑤셔 넣자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돌아갔다.
끼익―
문을 열자 또 다른 흰색 공간이었다. 이리저리 널브러진 나무 조각 위로 누군가가 무릎을 꿇은 채 엎어져 있었다.
화염처럼 타오르는 그림자가 그의 주변에서 일렁거렸다.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릴 것처럼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탱그랑.
미식가의 포크는 그 사람 위를 맹렬히 돌다 이내 내 발 앞으로 떨어졌다. 난 포크를 주워 그 사람 앞에 같이 무릎을 꿇었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데리러 왔어, 세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