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03화 (103/366)

103화

지이잉―

손안에 있던 미식가의 포크가 약하게 진동했다. 난 알람을 듣고 일어나듯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눈에 익은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네.’

쉬는 시간인지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며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헐. 야, 대박.”

시끄럽던 복도가 잠깐 조용해지고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을 향했다.

“3반 걔다, 걔.”

“쟤는 연예인 안 한대?”

노골적으로 보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는지 아이들은 이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주인공은 굳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을 단정히 반으로 묶고 교복 넥타이까지 제대로 갖춰 입은 ‘3반 걔’ 강세빈이었다. 세빈이는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복도를 쭉 걸어가며 밝게 웃었다. ‘하나도 안 웃겨.’라고 차갑게 말하던 어린 세빈이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키이잉―

미식가의 포크가 둥실 떠오르더니 세빈이가 가는 방향으로 죽 날아갔다. 난 그것의 뒤를 따르며 나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는 세빈이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이들이 S급이라고 언급하지 않은 걸 보니 아직 각성 전일 것이다.

‘혹시 세빈이가 각성하는 장면도 볼 수 있는 건가?’

세빈이는 정말 뜬금없이 각성했다. 어쩌다 각성한 건지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이 전부였다.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살짝 들자 세빈이의 옆얼굴이 보였다. 그는 곁눈으로 나를 빤히 보며 은근히 미소 지었다.

“지의 덕분에 학교생활은 어렵지 않았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배웠고.”

세빈이는 이젠 대놓고 내게 말을 걸었다. 미식가의 포크가 복도 끝을 향해 날아가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던 새파란 하늘은 어느새 심해의 색이 되었다.

운동장에 드문드문 서있는 가로등 주변에 나방들이 꼬였다. 순식간에 밤이 된 것이다.

“우리 이모가 그랬어. 내가 지의 널 만나서 다행이라고.”

세빈이가 대뜸 중간에 멈춰 서더니 벽에 기대었다. 창밖의 달빛을 등진 터라 그의 얼굴엔 그림자가 생겼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해. 네가 아니었으면 난 음침하고 사회성 없는 애로 자랐을 테니까.”

“…세빈아.”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더라.”

세빈이가 손가락으로 교실을 가리켰다.

1―5

내 반이었다. 세빈이를 올려다보자 빛을 잃은 눈으로 교실을 바라보는 얼굴이 있었다.

“그때 괴롭힘을 당하던 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지의는 그 사람을 구해줬겠지.”

“어?”

“…라는 생각 말이야.”

그 말에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말할 수 없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여서, 그리고 두 번째는…….

‘굳이 세빈이가 아니었어도 구해줬을 거라서.’

세빈이는 나를 흘끔 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그의 시선은 우리 반 교실로 향했다.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교실엔 두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어허엉. 고마워, 지의야…….”

“아유, 뭐 별것도 아니고. 또 걔가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커헝, 아, 아냐……. 너무, 너무 고마워.”

교실 안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신지의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애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게 도대체 뭔 상황이야.’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구해준 일은 전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눈앞의 저 상황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교실에 있는 나는 그 남자애의 등을 몇 번이고 토닥여주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휴지로 닦아주었다.

세빈이를 바라보자 그 모습을 익숙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교실 쪽으로 뻗은 우리의 그림자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지의 네가 날 구하러 와줘서 평화롭게 살 수 있었어.”

“…….”

“근데 넌?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을까?”

세빈이가 한 손으로 자기 눈을 가렸다. 하지만 손가락 틈으로는 나와 그 남자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삐이이이.

귀를 찢는 듯한 이명이 머릿속을 울리는 동시에 온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머리를 감싸고 눈을 질끈 감았다. 숨 막힐 정도로 고요한 정적만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이명이 어느 정도 잦아든 후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세빈이의 뒤로 뜬 푸른 글자들이 보였다.

[각성자 강세빈]

[어둠 속성 개방]

[고유 스킬 ‘달그림자’ 개방]

[고유 스킬 ‘공포’ 개방]

[고유 스킬 ‘무아(無我)’ 개방]

[S급 공격계 스킬 ‘달그림자’]

[‘달그림자’ : 그림자와 어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한다.]

[S급 정신계 스킬 ‘공포’]

[‘공포’ : 생명체를 압도하는 공포를 느끼게 한다. 모든 공포 피해에 면역이 생긴다.]

[S급 은신계 스킬 ‘무아(無我)’]

[‘무아(無我)’ :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운다. 오래 사용할 시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잊힌다.]

[연계 패시브 스킬 ‘흡암(吸暗)’ 개방]

[‘흡암(吸暗)’ : 암전 상태로부터 완전 면역을 유지한다.]

[연계 패시브 스킬 ‘무의식’ 개방]

[‘무의식’ : 모든 종류의 정신계 스킬에 강한 면역이 생긴다.]

[연계 패시브 스킬 ‘밤말을 듣는 쥐’ 개방]

[‘밤말을 듣는 쥐’ : ‘무아(無我)’ 상태 유지 시 비행이 가능하다.]

‘이게 왜 보이는 거야?’

한진우 헌터와 차도윤 헌터의 각성 순간에도 그들의 각성창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세빈이의 악몽은 달랐다. 세빈이의 눈을 공유하는 것처럼 나도 그의 각성창을 전부 볼 수 있었다.

세빈이는 자기 상태창을 등진 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거야.”

“세빈, 읍……!”

“너는 굳이 내가 아니었어도 상관없다는 걸.”

그림자가 내 입을 막고 그대로 끌어내렸다. 복도 바닥이 무너져 내 몸은 아래를 향해 무력하게 추락했다.

투둑.

차가운 물방울이 볼에 닿았다. 그것이 세빈이의 눈물이라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또다시 혼자가 될까 봐 무서웠던 거야.’

세빈이가 내게 매달렸던 이유, 그리고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낼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했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어둠 속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동안 여러 장면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S급 고유 스킬이 세 개라고? 하하하. 대단하군.”

“강세빈 헌터! 앞으로의 포부를 말씀해 주시죠!”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세빈이의 등을 토닥이는 김강희의 모습이 지나갔다. 그 후엔 기자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세빈이의 차분한 얼굴이 나타났다.

“이걸, 지의한테?”

스쳐가는 수많은 영상들 중 하나에서 내 이름이 들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교실에서 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세빈이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때 너무 정신없어서 고맙다는 말을 못 했거든…….”

“…아, 그렇구나.”

세빈이의 맞은편엔 마른 체구의 남자애가 있었다. 낯이 익어 고개를 쭉 빼 얼굴을 들여다보자 체육 창고에 널브러졌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D급 양아치한테 맞았던 그 남자애다.’

입학하자마자 누가 한 학년 위의 D급 각성자한테 맞고 있는 걸 발견해서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저 남자애였다. 세빈이와 같은 반이었던 건 오늘 처음 알았다.

세빈이는 남자애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물은 좀 그렇지 않을까? 지의는 그런 거 부담스러워하거든.”

“앗, 진짜? 그럼 이거 카드라도 전해주라.”

남자애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세빈이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손바닥만 한 카드였다. 그걸 보자마자 세빈이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편지야?”

“응. 사실 별 내용 없긴 한데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

“알았어. 전해줄게.”

“뭐?”

‘난 저런 편지를 받은 적이 없는데?’

세빈이는 편지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 그리고 이건 뇌물! 매점에서 사 왔어.”

남자애가 매점에서 사온 버터쿠키를 세빈이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영상은 사라졌다.

타닥.

한참 떨어지고 나서야 발이 땅에 닿았다. 중심을 잡은 후 주위를 둘러보자 학교 뒷문 화단이 보였다.

“하아…….”

하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말소리 틈에서 세빈이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는 학교 벽에 기댄 채 편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한테 말 안 한 게 있는데.”

“…응.”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강아지를 키웠어.”

그때 세빈이가 눈만 굴려 나를 보았다. 새까만 눈동자가 오늘따라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원래도 아픈 애라서 두 살을 못 넘기고 무지개다리를 건넜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야.’

세빈이는 편지를 손에 꼭 쥔 채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후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말야.”

“…….”

“장례식이 끝나고 이모 집으로 가는 차에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세빈이가 편지를 놓았다. 편지는 힘없이 그의 그림자 위로 떨어졌다.

콰직.

세빈이의 그림자가 편지를 구겼다. 그걸로는 성이 안 찼는지 족히 열 개는 되어 보이는 검은 손이 튀어나와 갈가리 찢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소중한 것들은 결국 다 내 곁을 떠나는구나.”

쿵.

세빈이가 포기했다는 듯 옅게 미소 짓자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쩌면 세빈이는 저 생각 때문에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떠나갈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정을 주기 힘드니까.

“그래서 지의 너도 몇 년 안에 내게서 멀어질 줄 알았는데.”

“…강세빈.”

“네가 계속 내 옆에 있어주니까…….”

세빈이가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엉망진창이 되었다.

“자꾸 내 미래에 네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는 말끝을 흐리며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당장이라도 그림자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보였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세빈이의 속은 문드러져 있었다. 98번째의 세빈이가 저지른 만행은 그의 천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수년간 중첩된 트라우마가 그의 목을 졸라 완성된 비극일 뿐이었다.

우우웅―

그때 미식가의 포크가 진동하더니 뒷문을 향해 날아갔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 그것의 뒤를 쫓았다.

뒤통수에서 진득한 시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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