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02화 (102/366)
  • 102화

    “야! 이거 봐라~”

    “아, 황수아. 필통 돌려달라고!”

    아이들이 교실을 뛰어다니며 때 아닌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만화책을 돌려보는 아이들이,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다.’

    창밖으로 보이는 운동장과 교실 뒤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물함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아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세빈이가 나를 똑바로 보며 말을 걸었다. 미식가의 포크가 반응하지 않았으니 그건 진짜 세빈이가 아닌 그의 악몽 일부였을 텐데.

    한진우 헌터도, 차도윤 헌터도 본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의 악몽에서 나는 유령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왜 세빈이는 내게 말을 걸 수 있는 거지? 그저 내가 세빈이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서?

    “세빈아, 너는 왜 우리랑 안 놀아?”

    내 의문을 해결하기도 전에, 누군가 세빈이의 이름을 불렀다. 세빈이의 자리는 창가의 맨 뒷자리였다. 사물함에서 가장 가깝고 자리가 넓어서 아이들이 주로 모여 노는 장소였다. 하지만 세빈이는 애들 틈에 섞여 놀지 않았다. 창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거나 교과서를 읽으면서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세빈이가 이상해 보였는지 아이들 무리 중 한 명이 먼저 말을 건넸다. 문구점에서 팔 것 같은, 가짜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한 남자아이였다.

    “재미없어?”

    “어, 나 그러고 보니 세빈이 웃는 거 한 번도 못 봤어!”

    아이들이 점점 세빈이의 자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세빈이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그들을 바라보다 다시 교과서로 시선을 돌렸다. 갑작스럽게 원치 않는 관심을 받아서 당황한 눈치였다.

    “재미없어. 웃고 싶지도 않고.”

    세빈이의 말에 교실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 말에 악의는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하는 바람에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이 튀어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세빈이를 향했고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몸집을 키워 교실 전체를 집어삼켰다.

    주위는 순식간에 암흑으로 물들었다.

    쾅!

    “너가 훔쳐갔지! 빨리 내 목걸이 내놓으라고!”

    “뭐? 내가 안 가져갔어.”

    “애들이 다 너가 가져가는 거 봤다잖아! 야, 은찬아, 맞지?”

    “어, 어~ 내가 다 봤어~”

    이번엔 소란의 정도가 꽤 컸다. 사물함 앞에 있던 세빈이를 아이들 여럿이 둘러싸고 있었다. 세빈이는 자기 사물함 자물쇠를 만지작거리며 인상을 찌푸렸고, 목걸이를 잃어버린 남자아이는 얼굴을 붉히며 세빈이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빨리 안 내놔?”

    “없는 걸 어떻게 줘.”

    “아, 빨리 달라고!”

    남자아이가 거의 울 것처럼 소리 지르며 세빈이의 가방에 손을 댔다.

    털그럭.

    그 아이는 세빈이의 가방을 거꾸로 들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책, 필통, 그리고 가정 통신문처럼 보이는 종이들이 바닥 위로 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챙겨온 물통의 뚜껑이 열려 그 위로 물이 순식간에 쏟아졌다.

    “어, 어어…….”

    “우아악!”

    화를 내던 남자아이가 조금 당황했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도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세빈이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울거나 화를 낼 법도 한데 그저 입을 살짝 벌린 채 엉망이 된 자기 물건을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야! 너희 뭐 하는 거야?!”

    그때 교실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퍼졌다. 뒷문에서 머리를 하나로 묶은 아이가 뛰어 들어오더니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잠깐, 얘…….’

    “지의야, 다른 반에 들어가면 어떡해!”

    나였다. 교실 뒷문 밖에서 내 친구처럼 보이는 여자애가 호들갑을 떨며 손짓을 했지만 어린 신지의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어린 나의 모든 행동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나의 흑역사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때는 나도 정신없던 때였으니까.’

    지유를 떠나보낸 지 얼마 안 된 때라서 나보다 덩치만 작으면 다 지유처럼 생각하던 시기였다. 저 당시엔 세빈이가 나보다 훨씬 작았다 보니 괴롭힘을 당하던 그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어린 나는 물에 젖은 책과 목걸이를 잃어버린 남자아이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곤 세빈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따분한 표정을 하고 있던 세빈이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너희 지금 얘 괴롭히는 거야?”

    “안 괴롭혔어! 그리고 여기 우리 반이거든? 나가!”

    “맞아, 나가~”

    세빈이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어린 나를 향해 연신 나가라고 외쳤지만 나는 발에 쐐기라도 박아놓은 듯 우직하게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이 가방 지금 얘 거 아니야? 왜 바닥에 쏟아?”

    “아, 쟤가 먼저 내 목걸이 가져갔다고!”

    “얘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야, 김은찬! 너가 봤다며!”

    꽁지머리를 한 남자아이가 어딘가에서 튀어나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신지의는 세빈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고 추궁하듯이 입을 열었다.

    “훔쳤어?”

    “아, 아니…….”

    “얜 안 훔쳤다는데? 넌 쟤 말 하나면 다 믿냐? 쟤가 천재야? 신이야?”

    물음표 폭격에 목걸이를 잃어버린 남자애의 기가 팍 눌렸다. 일단 목소리가 크니까 아이들의 표적이 세빈이 대신 김은찬이라는 아이로 서서히 바뀌었다. 어린 세빈이는 여전히 나사 빠진 얼굴로 어린 내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많이 놀랐겠지. 난데없이 도둑으로 몰린 데다가 가방에 들어있던 물건은 물로 엉망이 되고, 이번엔 웬 모르는 애가 와서 자기 변호사 노릇을 해주고 있으니.

    “얘들아. 지금 뭐 하는 거니!”

    마침 좋은 타이밍에 선생님이 나타났다. 그의 등장에 바짝 긴장한 아이들 모두가 눈으로 그를 좇았다. 담임 선생님은 세빈이의 가방과 엎어진 물통, 그리고 세빈이를 둘러싼 아이들을 천천히 살폈다.

    “저 남자애가 얘 괴롭히고 있었어요.”

    담임 선생님은 어린 나를 쳐다보며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다른 반 애까지 여기에 끼어있는지 궁금해했을 것이다. 그는 내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 남자아이와 세빈이를 향해 조용히 말을 뱉었다.

    “종례 후에 선생님이랑 이야기 좀 하자꾸나. 오늘 둘 다 남아있으렴. 은찬이 너도.”

    목걸이를 잃어버린 남자아이는 사형 선고라도 들은 양 울상을 지으며 입을 쩍 벌렸고, 반면 세빈이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빈이의 시선 끝에는 어린 내가 있었다. 그 눈길을 느낀 내가 고개를 돌려 세빈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근데 넌 이름이 뭐야?”

    “어? 어, 가, 강세빈…….”

    “난 3반 신지의. 쟤가 또 괴롭히면 말해.”

    “어… 응.”

    세빈이는 말까지 더듬으며 겨우 대답을 했다. 어린 나는 빠진 앞니를 자랑하듯 활짝 웃은 후 친구가 기다리는 뒷문으로 달려갔다.

    “자, 잠깐!”

    “어?”

    그때 세빈이가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뒷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서서 다시 세빈이를 돌아보았다. 세빈이는 나를 보며 입술을 달싹이더니 주먹을 꽉 쥐고 힘겹게 말을 뱉었다.

    “안 괴롭혀도… 놀러 가도 될까?”

    “당연하지!”

    내 말에 세빈이가 조용히 미소 지었고, 난 세빈이를 향해 손을 흔들며 뒷문으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쿵.

    뒷문이 닫히자마자 교실 안이 순식간에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창문을 통해 노을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지평선에 걸린 붉은 해가 지면에 닿아있는 모든 것들에 붉게 칠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빨갛게 칠해진 건 이 교실 안에 있는 나와 어린 세빈이도 마찬가지였다.

    세빈이는 조용히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입을 비죽이며 쭈글쭈글해진 책을 가방 안에 넣었고 지퍼를 꼼꼼히 채웠다. 가방을 멘 후 세빈이는 자기 이름이 쓰인 사물함 앞에 섰다.

    “그깟 목걸이가 뭐라고 귀찮게…….”

    세빈이는 내게 이야기 하는 건지, 혼잣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투로 말했다.

    “학기 초에 친구 하자고 말 걸던 애들도 아무도 안 도와주고 말야.”

    “…강세빈?”

    철컥.

    세빈이가 자물쇠를 풀고 사물함 문을 열었다. 그러곤 인상을 찡그린 채 팔을 깊숙하게 집어넣어 무언가를 열심히 찾았다. 원하는 게 손에 걸렸는지 구겨진 미간이 펴졌다. 세빈이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며 사물함에서 팔을 빼냈다.

    “…어?”

    목걸이였다. 남자아이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그 목걸이. 인조 보석이 박혀 있는 촌스러운 목걸이가 세빈이의 손가락에 걸려 있었다.

    저게 왜 세빈이 사물함에서 나오지? 누명이 아니라 진짜로 가져간 거였어? 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자 발뒤꿈치에 의자가 차였다. 세빈이는 목걸이를 이리저리 살피며 눈을 가늘게 떴고 어깨를 으쓱하며 어딘가로 발을 옮겼다.

    “자꾸 나한테 뭐라 그러는 게 짜증 나서 슬쩍한 건데, 하필 그걸 들켰네.”

    세빈이가 교실 가운데 있던 책상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책상엔 ‘김은찬’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세빈이는 목걸이를 그 아이의 책상 서랍에 넣은 후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재밌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세빈이가 은찬의 책상에 걸터앉았다. 무릎에 팔꿈치를 댄 채 양손으로 턱을 괴자 말랑한 볼이 손 때문에 위로 눌려 올라갔다.

    “원래는 몰래 훔쳐서 다른 애 가방에 넣어두거나, 아니면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어.”

    “…….”

    “은찬이한테 들켜서 실패했지만.”

    세빈이가 책상에서 내려왔다. 덜그럭, 하고 가방 안에 있던 물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나름 괜찮은 결과가 나오긴 했어.”

    그가 가방을 고쳐 멘 후 양손을 쫙 펼쳤다.

    짝!

    작은 손바닥이 맞닿자마자 교실 안 풍경이 다시 바뀌었다. 텅 비어있던 교실은 아이들로 북적였고, 그 아이들의 중심엔 이리저리 얽힌 남자아이 두 명이 있었다.

    “김은찬! 니가 훔친 거였어?!”

    “나, 나 아니야……!”

    “그럼 이게 왜 네 서랍에서 나오는데에!”

    목걸이를 도둑맞은 아이가 김은찬이라는 아이를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었다.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며 반항했지만 체격 차이 때문에 되레 더욱 맞았다. 같은 반에 있던 아이들은 말리는 둥 마는 둥 하며 어떤 상황인지 듣기 바빴다.

    “그럼 강세빈이 훔친 게 아니야?”

    “무슨 일이야?”

    “목걸이 은찬이가 훔친 거래.”

    “아니야! 나 아니라고!”

    보기 힘들었다. 누명을 쓰고 누군가가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이 상황이 토 나올 정도로 역겨웠다.

    “…강세빈.”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어린 세빈이가 군중 속에 섞여 있었다.

    재밌는 만화를 보는 양,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띤 채.

    “세빈아, 내가 미안해…….”

    세빈이의 주위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세빈이는 살짝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싸늘한 태도에 사과를 한 아이들은 지레 겁을 먹었다.

    “히.”

    세빈이가 웃었다. 잘 빚은 인형처럼 귀여운 얼굴이 나를 향했다.

    타다닥.

    세빈이는 내 앞으로 총총 걸어오더니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등진 아이들의 싸움 장면과, 그의 차분한 얼굴이 대조를 이루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들킨 게 다행이었던 것 같아.”

    세빈이가 내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난 뒤로 물러났다. 자석의 같은 극끼리 서로를 밀어내는 것처럼, 나와 세빈이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턱.

    내 등이 교실 벽에 닿았다. 콘크리트 벽의 냉기가 아이테르의 로브를 뚫고 피부에 전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세빈이는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러곤 내 품에 안겼다. 내 가슴께에 닿을까 말까 한 키였지만 허리를 끌어안는 양팔은 제법 억셌다.

    “들킨 덕분에 지의 너랑 친구가 됐잖아.”

    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어린 세빈이에게 내 품을 내어준 채 서로의 심장 소리를 공유할 뿐이었다.

    두근.

    기시감이 든다. 이 어린아이가 모든 헌터들을 살해한 후 나를 끌어안은 채 잘못을 고하던 세빈이와 겹쳐 보였다.

    98번째의 회귀에서 세빈이가 얼마나 곪아있었는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세빈이가 마냥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면서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이랬을 줄은 몰랐어.’

    세빈이가 98번째의 회귀에서 그런 행동을 한 건 정신이 벼랑 끝까지 몰렸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세빈은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에게 복수하기 위해 물건을 훔쳤다. 그리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했다. 어린이의 심술로 치부하기엔 치밀하고, 악의로 뒤덮인 행동이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찌릿한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촘촘히 타고 올라왔다.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집요하게 훑고 있는 기분이 들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에도 시선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미식가의 포크를 꽉 쥐며 악몽의 다음 장면으로 데려다주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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