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01화 (101/366)
  • 101화

    쿵!

    “…여긴 또 뭐지?”

    세빈이 정신을 차렸을 땐 작은 방 안에 들어온 후였다. 방에 있는 거라곤 푹신해 보이는 가죽 소파와 붉은 커튼뿐이었다. 세빈은 손자국이 선명히 남은 목을 매만지며 한숨을 쉰 후 그림자 손으로 커튼을 걷었다. 커튼 뒤에는 새하얀 벽밖에 없었다.

    삐이이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붉은 커튼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오케스트라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새하얀 벽 위로 빛이 쏟아지더니 이내 제법 선명한 영상이 떠올랐다.

    누르스름한 흰 벽지, 집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는 뻐꾸기시계, 텔레비전 옆에 놓인 아기자기한 다육식물. 사람 냄새가 나는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하.”

    세빈이 그 장면을 바라보다 헛웃음을 쳤다. 자신이 예전에 살던 집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이 악몽들은 세빈이 수십 번도 더 겪은 것들이었다.

    텁.

    그때 살가죽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자 어린 세빈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야무지게 뜬 눈이 지금의 제 모습과 너무 닮아있었음에도, 세빈은 망설임 없이 아이를 향해 ‘영’을 들이밀었다.

    “뭘 할 생각이야.”

    “너에게 진짜 악몽을 줄 거야.”

    “…이미 이런 악몽들은 내게 안 통한다는 걸 알 텐데?”

    세빈이 차갑게 말을 뱉었다. 각성과 함께 공포라는 감정 자체가 사라진 그였다. 그 어떤 스킬로도 그의 정신을 무너트릴 수 없었으며 그를 두렵게 만들 수 없었다.

    으득.

    어린 세빈이 영의 날을 세게 움켜쥐었다. 새빨간 피가 날을 따라 흐르더니 바닥 위로 후드득 떨어졌고 몇 방울은 그의 얼굴에 튀었다. 세필 붓으로 그린 것처럼 섬세하고 앳된 이목구비와 검붉은 피는 끔찍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세빈은 검을 거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조금씩 흔들어 상처를 더욱 후벼 파기 시작했다.

    어린 세빈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말을 계속했다.

    “응, 알고 있어. 아마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도 너를 두렵게 만들 순 없겠지.”

    어린 세빈이 결국 영을 잡고 있던 손을 뗐다. 피로 흥건해진 손을 한 번 내려다본 후 다시 고개를 든 어린 세빈이 천천히 검지를 추켜올렸다.

    “딱 한 사람만 빼고.”

    촤악―

    손목을 돌려 영의 날을 가로로 가게 한 세빈이 그대로 어린 세빈을 베었다. 어린 세빈의 몸은 찐득한 검은 액체가 되어 녹아내렸고 바닥에서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세빈은 그 액체를 향해 영을 꽂아 넣곤 잇새로 억눌린 소리를 냈다.

    “지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안 했어. 걘 나한테도 하나뿐인 소꿉친구야.”

    검은 액체가 붉은 커튼 쪽으로 꾸물꾸물 기어가더니 이내 영상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바닥을 가득 채운 검은 액체가 다시 어린 세빈의 모습을 했고 뒤를 돌아 세빈을 쳐다보았다.

    “그 아이가 모르는 네 모습을 보여줄 거야. 넌 그게 더 두렵잖아.”

    탱그랑.

    영이 바닥에 떨어졌다. 세빈의 그림자가 크게 요동치며 방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을 찢어버릴 것처럼 위협적으로 일렁였다. 그는 어린 자신의 모습을 노려보며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았다.

    세빈은 자신의 악몽을 천천히 곱씹었다.

    ‘얼마나 적나라하게 보였더라?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알 수 있나? 만약 지의가 내 본심을 알고 내게 실망한다면?’

    “욱.”

    세빈은 긴장감에 헛구역질까지 했다. 그에게 있어 제 소꿉친구는, 공포라는 감정을 강제로 빼앗긴 몸이 유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날것의 감정을 견디지 못했는지 심장이 불쾌하리만치 빠르게 뛰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지의는 어떻게 행동할까?”

    콰앙!!

    세빈이 영으로 공간 전체를 베었다. 커다란 파열음과 함께, 순간 공간이 검게 물들었지만 금방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어린 세빈은 그 모습을 보며 까르륵 웃었다. 그 나잇대 아이 같은 웃음소리였다.

    “내가 추측하건대.”

    “…….”

    “지의는 우리에게 실망하고, 결국은 우릴 떠날 거야.”

    쿵.

    세빈이 무릎을 꿇은 채 멍하니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완전히 혼자가 된 기분을 느꼈다. 뉴스를 통해 부모의 죽음을 처음 안 그 순간처럼 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을 느꼈다.

    ‘제발 날 혼자 두지 마.’

    끼익.

    그때 영상 속 세빈의 집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으로 지의가 들어왔다. 어린 세빈은 소파에 얌전히 앉아 지의를 바라보았다.

    “안 돼.”

    세빈이 중얼거리며 영상 속 지의 위로 손을 올렸다. 영상 속의 지의는 덜덜 떨리는 세빈의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와 어린 세빈 쪽으로 발을 옮겼다.

    세빈의 진짜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차도윤 헌터와 한진우 헌터는 최민 헌터의 악몽을, 그리고 내가 세빈이의 악몽을 맡기로 했다. 어차피 미식가의 포크가 있어야 악몽의 근원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최민 헌터의 위치를 확보하는 게 전부일 것이다.

    ‘그것만 해도 큰 수확이긴 하지.’

    최민 헌터의 악몽 안으로 두 사람을 들여보낸 후 나도 세빈의 악몽 입구에 섰다.

    철컥.

    미식가의 포크를 구멍에 밀어 넣자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 음…….”

    세빈이의 악몽은 우주처럼 사방이 어둠 그 자체였다. 땅에는 정체 모를 덩어리들이 엉겨 붙어있었다.

    ‘낮말을 듣는 새’로 조심스럽게 밑으로 내려가자 그 덩어리들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삐죽 튀어나온 팔과 다리, 그리고 검은 액체에 완전히 절여진 머리카락. 이것들이 누군가의 몸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세빈이의 악몽이 시작되는 건 아닐 텐데.’

    천천히 그 덩어리들 쪽으로 내려가자 공중에 있을 땐 맡지 못했던 짙은 쇠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도저히 땅에 발을 디딜 수가 없을 만큼 시체가 쌓여 있었다.

    시체의 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착지하자 검은 액체가 찰박거렸다.

    땅에서 본 시체의 산은 더욱 거대했다. 전투의 흔적이라기보단 누군가의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숨을 참고 시체 중 하나의 얼굴을 살폈다.

    철퍽.

    그리고 곧바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세빈아.”

    곱슬거리던 머리카락은 검붉은 액체 때문에 이리저리 뭉쳐있었고, 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던 코트도 갈기갈기 찢긴 지 오래였다. 영을 잡고 몬스터를 토막 내던 팔은 아래로 축 처졌고 늘 빛나던 눈동자도 총기를 잃었다.

    ‘꿈이야, 이건 꿈이야. 세빈이 악몽의 일부야. 정신 차려야 해.’

    키이잉―

    미식가의 포크가 무너질 뻔한 내 정신을 끌어 올렸다. 포크는 시체 뒤쪽으로 빠르게 날아가더니 이내 어딘가에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 양손으로 뺨을 내리쳤다. 얼얼하고 알싸한 고통이 여린 살에 퍼졌다. 만약 이 중에 진짜 세빈이가 있었다면 미식가의 포크가 이쪽을 가리켰을 것이다. 시체의 산에서 시선을 떼고 포크가 날아간 곳으로 뛰어갔다.

    끼긱, 끼긱.

    미식가의 포크는 녹색 철문을 긁고 있었다.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는 포크를 잡은 후 문고리에 손을 올려 돌리며 그대로 문을 밀었다.

    “집……?”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손때 묻은 벽지엔 고장 난 뻐꾸기시계가, 텔레비전 옆에는 작은 다육식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거실 전체를 둘러볼 때쯤 시야 아래쪽에 무언가가 걸렸다.

    짧은 곱슬머리를 가진 어린애였다. 소파에 완전히 등을 대고 앉으면 땅에 발이 닿지 않는 작은 어린아이. 굳게 다문 입술은 아이를 제법 고집스러워 보이게 했고 동그랗고 부드러운 두 뺨엔 봄볕이 담겨 있었다.

    난 이 아이를 알고 있었다.

    “세빈아.”

    어린 세빈이였다.

    미식가의 포크가 반응하지 않는 걸 보니 이미 세빈이는 어렸을 때의 악몽을 지난 듯하다. 어린 세빈이는 내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텔레비전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텔레비전에선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S급 게이트가 현지 시각 오후 1시 30분경 폭발하였습니다. 몬스터는 인근 대형 쇼핑몰을 덮쳤고 현재 사상자는 4,000명에 육박하였습니다. 이재연 기자입니다.

    화면이 두 개로 갈라지더니 앵커 화면 옆에 마이크를 든 기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다 무너져 내려 골조만 겨우 남은 건물 앞에 서있었다.

    ―저는 지금 샌프란시스코 S급 게이트 폭발 사고 현장에 나와있습니다. 게이트는 현재 80% 소멸되었으며 경계 수습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입니다.

    ―쇼핑몰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현재 구조 상황은 어떻죠?

    ―게이트 폭발 당시 건물이 무너져 내려 구조 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으며 시신이 계속 발견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이트 폭발 발생 시간이 토요일 오후였던 만큼 가족 단위의 피해자가 많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한국인의 피해는 있습니까?

    ―출장을 온 40대 A씨 부부가 사망, 유학생 B씨가 중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기자와 앵커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저 게이트 폭발이 세빈이에게서 무엇을 앗아갔는지 알고 있다. 고개를 돌려 어린 세빈이를 바라보니 세빈이는 아무런 감정도 얼굴에 띠지 않은 채로 텔레비전 리모컨만 만지작거렸다.

    “…나 때문이야.”

    어린 세빈이 중얼거렸다. 아이는 텔레비전을 끄고 소파에 누웠다.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소파 구석에 얼굴을 묻자 이내 작은 등이 불규칙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세빈이의 등으로 손을 뻗었다.

    텁.

    닿지 못하고 통과될 거라 생각했는데 온기가 손바닥에 닿았다. 난 그대로 허리를 숙여 세빈이의 여린 등을 끌어안았다.

    고르지 못한 숨소리와 물기를 잔뜩 머금은 중얼거림이 귀에 파고들었다. 내용의 대부분은 스스로에게 하는 저주였다.

    “출장 가지 말라고 조를걸, 오는 길에 생일 선물 사오라고 하지 말걸. 나 때문에 엄마랑 아빠가 죽은 거야. 전부 나 때문이야.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죄책감에 절여진 목소리는 끔찍한 자기혐오로 끝이 났다. 난 눈을 질끈 감으며 세빈이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네 탓 아니야, 세빈아. 네 잘못 아니야.”

    차라리 하늘을 원망했으면 좋으련만. 세빈이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난도질했다. 너덜너덜해진 심장에서 흐른 피가 눈물이 되어 아이의 두 뺨을 적셨다.

    감았던 눈을 뜨자 나와 내 품속의 어린 세빈이는 검은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미식가의 포크도 나와 함께 맹렬하게 추락했다. 세빈이의 악몽 어딘가로 떨어지는 동안 젊은 남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아, 세빈이한테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네.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환경도 바뀌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걱정 마세요, 세빈이 이모님. 신경 써서 지도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세빈이네 이모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대화였다. 세빈이는 부모님을 잃은 후 이모 밑에서 자랐다. 공교롭게도 이모의 집이 우리 집 주변이라 세빈이와 나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우연…….

    “최고의 행운이었어.”

    “…어?”

    품 안에 있던 세빈이가 갑자기 뒤를 돌더니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입꼬리는 즐거운 듯이 올라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입을 벌린 채 버벅거릴 때쯤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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