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00화 (100/366)
  • 100화

    ―도윤이, 착한, 아하하… 효자죠.

    포크를 따라 한참 달리자 악몽의 다음 장면으로 넘어왔다.

    내 주변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잔뜩 있었고 그들의 렌즈는 모두 차도윤 헌터와 그의 부모를 향하고 있었다. 다시 차도윤 헌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가 공허한 눈으로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국내 최연소 S급 각성자가 되셨습니다. 차도윤 군, 소감이 어떠신가요?”

    “…….”

    “아하하! 저희 애가 부끄럼이 좀 많아서요.”

    ‘아, 세빈이가 각성하기 전까진 이 사람이 최연소 S급이었겠구나.’

    차도윤 헌터의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웃었고 그의 옆에 있던 아버지도 입을 가리며 활짝 웃었다. 하지만 묘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는, 그가 불안에 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키이잉.

    그때 미식가의 포크가 소파에 앉아있던 차도윤 헌터를 향해 맹렬하게 반응했다.

    찾았다.’

    포크를 잡아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은 후 기자들 틈을 비집고 차도윤 헌터 앞에 섰다. 멍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본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저… 뒤에 카메라 있는데요.”

    “차도윤 헌터. 일어나 봐요.”

    “네?”

    그가 인상을 찡그리자 그제야 내가 아는 얼굴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내 얼굴을 한참 보았고 이내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괴로웠죠.”

    “…….”

    “부모한테 시달리고, 가기 싫은 곳에 억지로 끌려가고, 아프고.”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어린 차도윤 헌터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보다 훨씬 앳된 얼굴의 그가 눈물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그거 알아요?”

    “…뭐를요.”

    “미래의 차도윤 헌터는 이 집에서 나오게 될 거예요.”

    차도윤 헌터가 고개를 들었다. 울음을 참느라 붉어진 눈시울이 안쓰러웠다.

    “혼자서 잘 살아요. 동료도 생기고요.”

    “…동료요?”

    동료라는 말을 듣자 눈물을 머금고 있던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거의 다 왔다.’

    “그리고 전 미래 차도윤 헌터의 동료예요.”

    “…….”

    “그러니까 이제 일어나요.”

    파아앗.

    [발언 결과 : 자각]

    차도윤 헌터가 눈을 크게 떴다. 그에게 심은 말의 씨앗이 동료와 관련된 거라 일부러 그 단어를 꺼냈는데,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그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빤히 내려다보더니 이내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하아아아…….”

    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악몽이라는 걸 완전히 자각했는지 멍했던 눈도 어느새 평소대로 돌아왔다.

    “여긴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일단 이거나 받아요.”

    미식가의 포크를 건네자 차도윤 헌터가 그것을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걸로 차도윤 헌터 악몽의 근원을 찌르면 여기서 탈출할 수 있어요.”

    “제 악몽의 근원이요……?”

    “알고 있잖아요.”

    차도윤 헌터가 나를 한 번 본 후 자신의 모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어느새 검은 먼지로 완전히 뒤덮여서 사람인지 몬스터인지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알고 있죠.”

    차도윤 헌터가 입술을 깨물었다. 깨물린 입술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들을 향해 집에서 나가라고 말할 땐 꽤 단호해 보였는데 막상 포크로 찌르려니 망설이는 것 같았다.

    “후우…….”

    그가 눈을 질끈 감고 그의 엄마 앞에 섰다.

    “도윤아, 왜 그러니? 얼른 자리에 앉으렴.”

    차도윤 헌터의 엄마는 여전히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제 아들의 다리를 툭 쳤다.

    차도윤 헌터는 무언가 결심한 듯 숨을 들이마시더니 미식가의 포크를 그의 앞으로 가져왔다.

    피잉―

    미식가의 포크가 그의 몸에 닿자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났다. 차도윤 헌터의 엄마는 눈보라처럼 작은 알갱이가 되어 소파 위로 쏟아졌다.

    [‘탐욕의 악몽’으로부터 ‘차도윤’이 탈출하였습니다.]

    [남은 식재료 : 2개]

    [미식가의 테이블에 오르기까지 남은 시간 : 14시간 8분]

    탐욕이라. 부모의 탐욕 때문에 차도윤 헌터가 이렇게 끔찍한 악몽을 겪은 것이긴 하지.

    우리를 둘러싼 풍경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 집에서 나온 이후 회장님 외의 사람들은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녹은 물감처럼 흘러내리는 집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지난 시간선에서도 차도윤 헌터는 사람들과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었다. 정 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다가가기 쉬운 사람도 아니었지.

    “그래서 신지의 헌터가 절 동료라고 불렀을 때, 솔직히 믿을 수 없었죠.”

    집의 내부가 완전히 녹아 없어졌다. 차도윤 헌터는 웬일로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저를 구해주는 게 전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랬나요.”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신지의 헌터가 한 말이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차도윤 헌터가 투덜거리듯이 이야기하곤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소중한 동료라고 한 말이요.”

    [각성자 ‘차도윤’의 ‘소중한 동료라고요’의 씨앗 개화]

    [각성자 ‘차도윤’은 각성자 ‘신지의’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고유 스킬 ‘호령여산(號令如山)’의 파괴력 증가]

    <사명>

    [사령탑]

    [‘말의 씨앗’을 개화시켜 동료로 만들어라.]

    [달성도 상승]

    [달성도 : 40%]

    [세상을 구원하는 자]

    [세상을 종말로부터 지켜내라.]

    [달성도 대폭 상승]

    [달성도 : 62%]

    ‘개화했어!’

    상태창 너머로 차도윤 헌터의 진지한 눈빛이 느껴졌다. 어느새 교복 차림의 차도윤 헌터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신지의 헌터가 절 동료로 생각한다는 말, 이제는 믿을게요.”

    “차도윤 헌터……!”

    “…저도 신지의 헌터를 진짜 동료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목까지 붉게 물든 게 눈에 들어와 잇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툭.

    그의 어깨를 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자 그도 눈동자만 굴려 나를 바라보았다.

    맑은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자 이제야 그의 진정한 동료가 된 기분이었다.

    파아앗.

    시야가 새하얗게 물드는 동시에 그의 악몽에서 빠져나왔다.

    타닥.

    “어어!”

    차도윤 헌터의 악몽에서 나오자마자 한진우 헌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빈이의 문 앞에 있던 그는 우리 쪽으로 달려오더니 ‘약손’부터 덕지덕지 붙였다.

    “아, 안 다쳤는데요…….”

    “그래도 붙이고 있어요! 떨어진 기력 보충에도 효과 있으니까!”

    차도윤 헌터의 말에 한진우 헌터는 제 허리에 손을 올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진짜로 정신이 좀 맑아지긴 하네.’

    피부에 스며드는 시원한 느낌이 꼭 숲속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이제 남은 건 강세빈 헌터와 최민 헌터 둘이군요.”

    차도윤 헌터가 고개를 돌려 세빈이의 이름이 적힌 문을 바라보았다.

    남은 시간은 열네 시간. 남은 두 사람의 악몽이 얼마나 길지 미지수다 보니 두 팀으로 나눠서 행동해야 한다.

    “제가 세빈이를 맡을게요. 두 사람이 최민 헌터의 악몽으로 들어가 주세요.”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식가의 포크를 들어 최민 헌터의 악몽 문을 열어주었다.

    “이 포크가 없어서 악몽의 근원까지는 못 잡겠지만, 최민 헌터에게 악몽이라는 걸 알려줄 수는 있을 거예요.”

    “저희만 믿으세요!”

    한진우 헌터가 양손을 꽉 쥐며 결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 있던 차도윤 헌터도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쿵.

    둘을 최민 헌터의 악몽으로 들여보낸 후 난 세빈이의 악몽 입구 앞에 섰다.

    ‘조금만 기다려.’

    철컥.

    미식가의 포크로 세빈이의 악몽을 열었다.

    * * *

    철퍽.

    “…하아.”

    세빈이 손에서 힘을 풀자 질척한 소리와 함께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처박힌 시체가 미처 감지 못한 눈으로 저를 죽인 세빈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는 시체의 검은 눈을 바라보다 이내 얼굴을 들고 주위를 살폈다.

    온 세상이 새카맣게 물들고 공허했다. 하늘과 땅의 경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다.

    세빈은 얼굴에 튄 피를 소매로 슥 닦으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악몽인 걸 알아도 나갈 수가 없네.”

    다시 고개를 내리자 그의 앞엔 아까 자신이 죽였던 시체가 멀쩡히 살아 돌아와 있었다. 시체는 입을 다문 채 세빈을 가만히 응시하기만 했다.

    “이건 지의가 와야 해결된다니까.”

    “…….”

    “그냥 얌전히 여기 앉아서 그 애가 널 구해주길 기다려.”

    서걱.

    세빈이 검을 잡아 시체를 다시 반으로 갈랐다. 시체는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축 늘어지더니 반쯤 감긴 눈으로 세빈을 바라보았다.

    콱!

    세빈이 시체의 머리 위쪽으로 ‘영’을 박은 후 허리를 숙여 그것과 눈을 마주했다.

    “이런 내 모습, 지의는 절대 보면 안 돼.”

    “너도 네가 추하다는 건 알고 있구나.”

    콰드득.

    커다란 그림자 손이 시체를 한 번에 움켜쥐었고 그대로 으스러트렸다. 세빈은 영을 다시 뽑아 고쳐 쥐고는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손과 얼굴에 튀어버린 피 때문에 얼굴이 피범벅이 되었다.

    그는 이미 이 공간이 악몽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끔찍했던 과거의 일도 전부 겪었다. 계속해서 말로 괴롭히는 이 망할 시체도 수백 번 죽였다.

    ‘그런데 왜 이곳에서 나갈 수가 없지?’

    머릿속으로 수십 개의 클리어 조건을 떠올려 시도해 볼 수 있는 건 전부 해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나갈 수 없었다.

    “내가 헛수고라고 했잖아.”

    “…….”

    “네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세빈이 뒤를 돌았다. 자신이 몇 번이고 죽인, 자기 자신의 모습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빈은 자신의 얼굴을 향해 영을 높이 들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나 말해.”

    “지의가 오길 기다려.”

    세빈의 미간이 구겨졌다. 눈앞의 자신도 미식가라는 의문의 몬스터가 만들어 낸 악몽의 일부일 뿐일 텐데, 세빈 스스로보다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라는 것까지.

    “지의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나는 너니까.”

    세빈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러더니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정교하게 흉내 낸 악몽 주제에.”

    “글쎄. 난 악몽으로 치부하기엔 좀 복잡한 존재라서.”

    악몽 속의 세빈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세빈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쭉 올라왔다. 저런 표정을 한 스스로의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툭.

    “너, 무섭지.”

    악몽 속 세빈이 얼굴로 영을 건드렸다. 볼에 자상이 남아 시커먼 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볼에 영을 댄 채로 세빈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지의가 네 악몽을 보고 네게 실망할까 봐.”

    “…….”

    “지의까지 결국 네 곁을 떠나갈까 봐 무서운 거지.”

    촤아악―

    세빈이 결국 그를 한 번 더 베었다. 악몽 속 세빈은 시커먼 재가 되어 흩날렸다.

    조용해지기도 잠시, 쌓여 있던 세빈의 시체 중 하나가 몸을 일으켜 다시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근데 너도 사실 알고 있잖아.”

    “뭘.”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너를 떠나간다는 걸.”

    쿵!

    세빈의 눈앞이 순간 크게 흔들렸다. 그는 악몽의 말에 조금도 반박할 수 없었다. 악몽의 말대로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저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 주던 부모는 던전이 앗아갔고, 평화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 기회는 각성과 함께 사라졌다.

    지금 세빈에게 남은 거라곤 자신의 소꿉친구뿐이었다.

    ‘지의마저 날 떠나면 난…….’

    철컥.

    그때였다. 새카만 공간에 갑자기 네모난 빛이 들어왔다. 세빈이 고개를 돌려 그쪽을 쳐다보자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실루엣의 주인은 아직 세빈을 발견하지 못한 건지 그저 고개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지…의? 윽!”

    세빈이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스킬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고 한 순간 악몽 속 세빈이 그의 목을 졸랐다.

    “마침 들어왔네.”

    “크, 윽!”

    “지의가 우릴 얼른 구해줬으면 좋겠다, 그치.”

    새카만 그림자 손이 세빈의 몸을 옭아맸고 끝도 없는 어둠 속으로 그를 끌고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