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끼야아아아악!!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커다란 물갈퀴가 지축을 흔들었다. 공격이라곤 커다란 날개를 휘두르는 게 전부인 조류형 보스 몬스터였지만 한 사람을 패닉 상태에 빠지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차도윤 헌터는 활을 든 채로 얼어버렸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날개를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듯했다.
쿵!
차도윤 헌터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갔고, 그가 들고 있던 낡은 활은 바닥을 구르더니 내 발 앞에 놓였다.
“커흑! 컥! 허억, 허욱…….”
“어유, 이거 못쓰겠네.”
수풀 뒤쪽에서 아까 운전하던 브로커가 나왔다. 그는 차도윤 헌터를 한 손으로 일으키며 몬스터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굵은 물줄기가 새의 목을 짓눌러 바닥으로 처박았고, 그대로 숨통을 끊었다. 몬스터는 부산물 몇 개와 아이템처럼 보이는 날카로운 깃털을 남기고 사라졌다.
“혹시 파란색 글자 뜨진 않았어요?”
“…안 떴, 윽! 어요.”
“아이고, 갈비뼈에 금 갔나? 영차.”
브로커가 차도윤 헌터를 업었다. 동시에 차도윤 헌터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고 억지로 눈을 뜨려 할 때마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런 경험을 도대체 몇 번이나 한 걸까.’
차도윤 헌터에게서 시선을 떼고 미식가의 포크를 위로 던졌다. 포크는 몬스터의 시체가 있던 곳 뒤쪽으로 날아갔다. 포크를 쫓아 던전 안쪽으로 달려갈수록 나를 둘러싼 풍경이 이리저리 바뀌었다. 꼭 카메라 필름 사이를 뛰어다니는 기분이었다.
“고객님. 안타깝게도 아드님이 이번에도 각성에 실패했어요.”
“…저 부모 속 썩이는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흐음~ 뭐, 가능성을 조금 더 높이는 방법이 있긴 한데~”
돈을 더 받을 생각에 어쩐지 즐거워 보이는 브로커와 주먹을 꽉 쥔 차도윤 헌터의 엄마. 그리고 그들의 뒤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차도윤 헌터가 있었다.
정작 차도윤 헌터에게 무릎 꿇고 빌어야 하는 사람은 저렇게 당당한데.
나는 쉬지 않고 다리를 움직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 갚아. 갚는다고!”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차주연!”
“현진아, 내가 진짜로 이번 한 번만 신세 좀 질게. 내가 이렇게 빌게, 응?”
차도윤 헌터의 엄마가 웬 여자의 손을 꽉 잡은 채 애원인지 호통인지 모를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현진이라고 불린 중년 여자는 한 손으로 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너, 도대체 왜 그래? 양궁 관둔 이후로 너 이상해진 거 알아?”
“…야, 닥쳐. 사람이 할 소리가 있고 못 할 소리가 있지.”
“도윤이 이제 양궁 안 시킨다며. 너 도대체 그 돈으로 뭐 하려고 하는 거야?”
차도윤 헌터의 엄마는 여자의 손에서 돈 봉투를 빼앗듯 낚아채고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주연아, 차주연!!”
그 이후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차도윤 헌터의 엄마는 여기저기서 돈을 빌렸고 사채업자까지 찾아가서 높은 이자율을 조건으로 돈을 끌어모았다. 차도윤 헌터를 죽일 듯이 때리던 그의 팔은 점점 가늘어지기 시작했고, 얼굴도 더욱 수척해졌다.
저렇게까지 하면서 아들을 각성시키려고 하다니. 도저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탱그랑.
한참 날아가던 미식가의 포크가 게이트에 부딪히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리를 숙여 포크를 줍자 내 뒤쪽에서 브로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마지막 카드를 지금 쓴 거예요. 제가 협회 직원한테 뒷돈까지 찔러주면서 온 거니까 도윤 군도 노력해야 해요, 알았죠?”
“네.”
“이번엔 진짜 각성했으면 좋겠네~ 나도 도윤 군이랑 같이 다니다 보니 정 많이 들었거든.”
브로커는 쉴 새 없이 나불거리며 게이트를 열었고 차도윤 헌터가 그 뒤를 따랐다.
‘이 게이트가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뒷돈까지 줬다는 거지?’
게이트와 그들의 뒷모습을 번갈아 보며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찰방.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던전이다. 사방이 물이었고 보글거리는 공기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커다란 물고기가 지나갈 때면 그림자가 내 위에 걸렸다 금방 사라졌다. 길게 쭉 뻗은 길의 끝에는 근사한 궁이 있었다.
‘잠깐, 궁?’
“여기 홍천 B급 던전이잖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홍천 B급 던전, 내가 이번 시간선에서 처음으로 파견을 나왔던 곳이었다.
B급부터는 중상급 던전으로 친다. 종류에 따라선 A급 던전과 큰 차이가 없을 때도 있고. A급 이상의 헌터가 적어도 한 명, 아니 더욱 안정적으로 클리어하려면 두 명 정도가 투입되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뒷돈 얘기가 나온 거구나!’
게이트 입장 담당 직원에게 몰래 돈을 찔러 넣고 들어온 게 분명했다. 저 브로커, 끽해야 C급이나 B급일 텐데 비각성자를 데리고 B급 던전에 오다니, 정신이 나가도 제대로 나갔다.
차도윤 헌터와 브로커는 어느새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까지 왔고 용궁 안으로 겁 없이 들어갔다. 이건 차도윤 헌터의 악몽이고, 그가 지금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달려 나가는 다리는 점점 더 속도를 올렸다. 모래 때문에 발이 밑으로 푹푹 빠져서 ‘낮말을 듣는 새’로 공중을 밟았다.
콰아앙!!
“윽!”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누군가의 몸이 튕겨져 나오더니 궁의 기둥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르륵 흘러나온 새빨간 피가 바닥을 천천히 적셨다.
“차도윤 헌터! 정신 좀 차려봐요!”
“…….”
“차도윤 헌터!”
미식가의 포크가 반응하지 않는 걸 보니 이건 악몽의 일부겠구나.
‘빨리 이 장면에서 빠져나가야 해.’
포크를 다시 공중으로 던지려고 한 순간 갑자기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더니 시체처럼 엎어져 있던 차도윤 헌터의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를 이 고통 속에서 해방시킬 유일한 방법, 각성이었다.
‘여긴……?’
차도윤 헌터의 각성 이후 온통 새하얀 공간이 나를 반겼다. 땅과 하늘의 구분이 사라져서 내가 지금 공중에 서있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쩌적.
그때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새카만 균열이 나타났다. 균열 안쪽에서는 기분 나쁜 검은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이따금씩 별가루 같은 게 반짝거렸다. 균열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가 싶어 미식가의 포크를 공중으로 던져봤지만 포크는 균열과 반대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럼 이건 왜 생긴 거지?’
한 손에 자아를 든 채 조심스럽게 균열 앞으로 갔다.
[잠재된 악몽]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와 회귀자의 오른쪽 눈동자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헉.”
갑자기 상태창이 떴다. 잠재된 악몽, 그리고 그걸 보려면 구원자와 회귀자의 눈동자가 있어야 한다라…….
‘지난 시간선에서 겪은 일인가.’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차도윤 헌터의 악몽일 것이다.
조심스럽게 균열로 다가가 상체를 쭉 빼자 균열이 나를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자격 확인]
[잠재된 악몽을 재생합니다.]
쨍그랑!
균열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날카로운 파열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차도윤 헌터가 싱크대 앞에서 힘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차도윤 헌……!”
쿵!
쓰러지는 그의 몸을 받으려 팔을 뻗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대로 통과되었다. 환상인 걸 알아도 무심코 손을 뻗게 된다.
“컥! 콜록, 켁, 커흑……!”
괴로워하는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자 깨진 컵의 잔해와 유자 과육이 널브러져 있었다.
‘젠장할.’
자기 엄마에게 살해당할 뻔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랫입술을 꽉 물고 싱크대 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자청 병에 붙은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못난 엄마가.
“미친 새끼…….”
결국 입 밖으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눈앞이 잠시 아찔해져 싱크대에 몸을 기댄 채 두 눈을 꾹 감았고 숨을 고른 후 다시 천천히 떴다.
퍼버벙!
이번엔 도심 한복판이었다. 사방에서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지옥도가 열린 후인가.’
“큿……!”
그때 차도윤 헌터가 내 옆에 나타났다. 오른팔에 큰 부상을 입어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몬스터를 피해 골목 틈으로 몸을 숨긴 후 ‘하늬바람’으로 스스로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또각.
구두 소리가 들렸다. 아주 익숙하고 끔찍한 소리가.
고개를 돌리자 푸른 눈과 시선이 맞닿았다.
“김강희……!”
차도윤 헌터의 악몽의 일부일 뿐인데도, 꿈속의 김강희는 똑바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회장님……!”
차도윤 헌터가 김강희를 불렀다. 김강희는 눈을 크게 뜨며 차도윤 헌터가 있는 골목으로 발을 돌렸다. 그가 여기에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한 눈치였다.
“도대, 체 어디 계셨던 거예요!”
“…차도윤 헌터.”
“여긴 위험, 윽, 해요. 어서 안전한 곳으로……!”
김강희가 한쪽 무릎을 꿇고 차도윤 헌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도윤 헌터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손길이 무슨 구원의 손길이라도 되는 것처럼.
“도윤아.”
“…네, 회장님.”
끼기기긱.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차도윤 헌터의 바로 뒤에 철로 된 게이트가 생겼다. 김강희는 차도윤 헌터에게서 손을 떼고 느릿한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도윤 헌터가 눈을 뜨며 저 역겨운 배신자를 물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싱긋 웃으며 차도윤 헌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동안 내게 속아줘서 고맙구나.”
“네……? 커헉!”
콰득!
짧은 비명과 함께 차도윤 헌터의 상체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의 몸을 꿰뚫은 지팡이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그곳엔 파주 A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신사’가 서있었다.
“회, 장…님.”
차도윤 헌터는 목숨이 끊어지는 와중에도 김강희를 찾았다. 그를 향해 뻗은 손이 애처롭게 허공을 헤매는 모습을 끝으로 잠재된 악몽은 모래처럼 날아갔다.
타닥.
균열이 나를 밖으로 밀쳐냈다. 뒤로 물러나자 잠재된 악몽이 있던 균열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악몽은 하나같이 끔찍하고 절망적이었다. 부모에게 고통받고, 신처럼 섬기던 사람에겐 배신당했다.
까득.
나도 모르게 이를 꽉 물었는지 이끼리 맞닿는 소리가 났다.
‘전부 구할 거야.’
내가 회귀한 만큼 다른 사람들도 이 끔찍한 일들을 여러 번 겪었을 테니까. 이번 시간선에서 반드시 모든 걸 정리하겠어.
우우웅―
미식가의 포크를 다시 던졌다. 포크는 전방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고 나도 그것의 뒤를 부지런히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