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98화 (98/366)
  • 98화

    [‘질투의 악몽’으로부터 ‘한진우’가 탈출하였습니다.]

    [남은 식재료 : 3개]

    [미식가의 테이블에 오르기까지 남은 시간 : 16시간 38분]

    주변이 시커멓게 물들고, 나와 한진우 헌터는 악몽에서 빠져나왔다. 우리는 아까까지 내가 있던 레스토랑 같은 공간으로 들어왔다.

    “제 속이 다 시원했어요.”

    “앗.”

    내 말을 들은 한진우 헌터는 자신이 아까 한 행동이 부끄러운지 내 시선을 피했다.

    “뭐,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희 둘 사촌 형제거든요…….”

    “근데 한휘연 그 인간은 왜 그렇게 한진우 헌터를 미워하는 거예요?”

    “열등감이죠, 뭐.”

    한진우 헌터는 내게 포크를 다시 건네며 말을 덧붙였다.

    “어렸을 때 고모가 휘연이 형보다 제가 더 예쁘다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고모는 장난식으로 얘기했던 건데 그게 형한테는 아니었던 거죠.”

    “그럼 한휘연이 아이돌 된 것도 설마 비슷한 이유예요?”

    “네. 걘 아이돌 생각도 없었어요. 제가 연습생 시작한다고 하니까 자기도 오디션 보고 들어간 거예요.”

    한진우 헌터가 입을 비죽거리며 투덜거렸다. 정말 어지간히 할 일 없는 놈이다. 학교 다닐 때 한휘연 좋아하는 애들이 정말 많았는데, 걔네들이 들었으면 정말 실망할 이야기네.

    “형네 그룹이 엄청 뜨니까 그제야 자기가 절 이겼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럼 미래 씨는 어쩌다……?”

    “네?! 아, 그…….”

    결국 궁금증을 못 이겨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진우 헌터가 순식간에 붉게 물든 두 뺨을 양손으로 감쌌다.

    “가, 각성 직후에 휘연이 형이 협회 건물로 찾아온 적이 있었거든요.”

    “한휘연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데없이 찾아온 거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주변 시선도 신경 쓰여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는데…….”

    “미래 씨가 왔군요.”

    “네…….”

    한진우 헌터는 그 순간을 떠올리는 건지 허공을 바라보며 완전히 사랑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각성 검사 날이라서 미래 씨가 절 데리러 왔는데 하필 한휘연이랑 딱 마주친 거죠.”

    “그리고요?”

    “…알짱거리지 말라고 슬리퍼로 한휘연 머리를 때렸어요.”

    “오.”

    그 어떤 인간이 와도 공평하게 싫어하는 미래 씨다운 모습이다.

    이 눈물 나는 짝사랑이 시작된 계기는 엉뚱했지만, 그를 향한 한진우 헌터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미래 씨 이름을 듣고 악몽 속에서 깰 정도니까.’

    한진우 헌터에게서 시선을 떼고 라운지 구석에 있는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남은 건 차도윤 헌터와 최민 헌터, 그리고 세빈이였다.

    누구의 트라우마가 더 쉽냐, 아니냐를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민이 됐다.

    “신지의 헌터가 강세빈 헌터 쪽으로 가시고 제가 차도윤 헌터를 도우러 가는 게 어떨까요? 저보다는 신지의 헌터가 강세빈 헌터랑 훨씬 친할 테니까요.”

    한진우 헌터가 의견을 냈다. 무난하게 좋은 공략법이긴 하다. 포크가 하나밖에 없어 악몽을 잡는 시간은 약간 지체되겠지만, 그래도 미리 악몽이라는 걸 인지시켜 놓으면 일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게 좋겠어요. 그럼 차도윤 헌터는 한진우 헌터한테 맡길…….”

    ‘잠깐.’

    일단 말을 삼켰다. 그러곤 차도윤 헌터의 이름이 걸린 문을 쳐다보았다.

    그의 트라우마는 아마 100퍼센트 부모와 관련된 일일 것이다. 학대를 당한 것도, 브로커를 통해서 각성한 것도 나밖에 모른다.

    한진우 헌터가 차도윤 헌터의 악몽에 들어가면 그의 어두운 과거를 알게 되는 사람이 더 늘어난다.

    한진우 헌터는 신경 안 쓰겠지만 차도윤 헌터 혼자 엄청 껄끄러워할 것 같단 말이지.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입을 열었다.

    “…제가 차도윤 헌터 쪽으로 갈게요.”

    “네에?! 차, 차도윤 헌터랑 사이 좋아지셨어요?”

    “뭐, 조금?”

    확실히 좋아진 건 맞다. 처음 시작은 다른 시간선만도 못했지만, 그를 부모로부터 구해주고 파주 A급 던전에 고립될 뻔한 걸 구해준 이후 그는 확실하게 나를 신뢰했다.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한진우 헌터를 향해 대답했다.

    “한진우 헌터는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제가 차도윤 헌터 금방 데리고 나올게요.”

    “네, 알겠어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혹시라도 다른 사람 나오면 설명 잘 해주세요!”

    한진우 헌터가 엄지를 추켜올리는 걸 본 후 차도윤 헌터의 이름이 쓰인 문 앞으로 갔다.

    차도윤

    평범한 가정집 대문이네.

    열쇠 구멍에 미식가의 포크를 밀어 넣고 옆으로 돌리자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바깥쪽으로 열렸다.

    ‘실례 좀 할게요, 차도윤 헌터.’

    맴, 맴, 매앰.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뜨거운 햇살이었다. 매미는 온힘을 다해 울어대고, 가끔씩 부는 뜨거운 바람이 나뭇잎들을 스쳐 파도가 철썩이는 것 같은 소리를 만들었다.

    ‘눈부셔.’

    소매로 햇빛을 가린 채 겨우 눈을 뜨자, 양궁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피잉―

    그 아이들이 누군지 알아보기도 전에 고무줄 튕겨 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날카로운 것이 어딘가에 꽂혔다.

    ―아~ 7점입니다. 차도윤 군, 오늘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요.

    ―중등부 우승은 길동 중학교 2학년 김정우 군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내 앞에 있던 남자아이가 조용히 활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긴 속눈썹과 유려한 얼굴선, 의심할 여지도 없이 저건 차도윤 헌터의 어린 시절이다. 머리색만 검을 뿐이지 지금의 얼굴이 은근하게 보였다.

    차도윤 헌터의 악몽은 아무래도 양궁 경기장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양궁 활과 화살 천지였다. 커다란 스크린에 경기 결과가 나오자 어린 차도윤 헌터의 옆에 있던 아이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벤치에 있던 사람들도 그 아이를 끌어안으며 축하해 주었다.

    반면 차도윤 헌터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옆 아이를 보며 부러워하지도, 슬퍼서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그저 멍하니 과녁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가자, 도윤아.”

    “…네.”

    그때 체격이 꽤 좋은 여자가 벤치에서 일어나 차도윤 헌터의 어깨를 감쌌다. 그의 얼굴은 검은 먼지로 뒤덮여 있어서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차도윤 헌터의 표정과 잔뜩 긴장한 목소리를 듣고 확신했다.

    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차도윤 헌터의 엄마였다.

    그는 차도윤 헌터의 어깨를 꽉 잡은 채 경기장 뒤편으로 나갔고, 그렇게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키이잉―

    미식가의 포크가 내 손에서 빠져나와 공중에서 요란하게 움직이더니 경기장 뒤편으로 날아갔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 한참 달리자 우리 집 베란다 문과 똑같은 유리문이 나왔다.

    포크는 노크하듯이 문을 두드렸고 이내 밑으로 툭 떨어졌다.

    “차도윤, 일어나.”

    ‘차도윤 엄마의 목소리…….’

    유리문이 불투명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인영이 두 개인 건 제대로 보였다. 포크를 주운 후 문을 옆으로 밀자 또다시 후끈한 기운이 피부 위에 닿았다.

    퍽!

    “…어?”

    “차도윤. 양궁은 하계 종목이야, 아니면 동계 종목이야.”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 현장에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발코니 타일 위로 차도윤 헌터가 엎어졌고 그런 그의 앞에 활을 든 여자가 있었다. 차도윤 헌터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무릎을 꿇은 채 앉았고 터진 입술을 열어 대답을 했다.

    “하계요.”

    “그걸 알면서 더위 때문에 그랬다는 말이 나와? 너만 더운 줄 알아? 다른 애들도 다 더웠어.”

    “…….”

    “그리고 2학년한테 왜 져? 네가 근력도 더 좋을 거고, 경험도 더 많은데. 자꾸 나 쪽팔리게 할래, 어?!”

    차도윤 헌터의 엄마가 그의 머리 위로 활을 던졌다.

    “그만해요!”

    퍼억!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차도윤 헌터의 머리를 가렸지만 활은 그대로 내 팔을 통과해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활이 바닥 위로 떨어졌지만 차도윤 헌터는 눈을 질끈 감을 뿐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오직 매미만이 차도윤 헌터 대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차도윤 헌터의 엄마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발코니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너, 내가 들어오라고 할 때 들어와. 알았어?”

    “네.”

    쾅!

    유리문이 닫혔다. 한여름의 햇살은 지면에 있는 모든 걸 태워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아이테르의 로브가 아니었으면 진작 쓰러질 정도로 지독한 더위였다.

    차도윤 헌터를 내려다보자 이미 얼굴과 목이 땀범벅이었다. 아까 말하는 걸 대충 들어보니까 더위 때문에 컨디션 조절을 못 한 것 같은데. 그걸 알면서도 이 더위에 애를 발코니에 내버려 두다니.

    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한 부모답게, 완전히 상식 밖의 인간이었다.

    “여보… 애 쓰러지면 어떡해?”

    “그전에 들여보낼 거야. 내 교육 방침에 태클 걸지 마. 난 더 세게 훈련받았다고.”

    “그래도…….”

    유리창 너머에서는 부부가 실랑이를 벌였다. 차도윤 헌터 아빠의 인영처럼 보이는 형체가 유리창에 가까이 왔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시 사라졌다.

    또 다른 형태의, 아주 명백한 가해였다.

    우우웅―

    미식가의 포크가 발코니에서 벗어나 밑으로 뚝 떨어졌다.

    ‘마음이 너무 안 좋네.’

    쓰러질 것처럼 숨을 헐떡이는 차도윤 헌터를 뒤로한 채 발코니를 뛰어넘어 밑으로 몸을 날렸다.

    덜컹.

    “윽?!”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고, 그와 동시에 몸이 뒤로 쏠렸다. 제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고 생각했는데 꼬리뼈는 지나치게 멀쩡했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자 창밖의 풍경이 움직이고 있었고, 내 왼쪽에선 웬 중년 여자가 한 손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조수석 신세다. 혹시 아는 사람일까 싶어 여자를 빤히 바라봤지만 정말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여자는 눈동자만 움직여 백미러를 슬쩍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죠?”

    “차도윤이요.”

    “이야, 얼굴 따라 이름도 예쁘네. 누가 지어주신 거예요~?”

    “…몰라요.”

    여자의 말을 듣자마자 뒤를 돌았다. 발코니에서 땀을 줄줄 흘리던 중학생 때의 모습에 비해 제법 어른 티가 나는 차도윤 헌터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님이 큰돈 들여서 보내는 거니까 잘 해봐요. 알았죠?”

    “…….”

    차도윤 헌터가 인상을 구기며 입을 꾹 다물었다. 짧은 대화에서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각성 브로커랑 던전에 가는 길이구나.’

    5:49

    내비게이션 한 귀퉁이에 시간이 떠있었다. 내가 한철민이랑 같이 던전에 들어갔던 시간이랑 비슷했다. 운전석에 있던 여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핸들을 돌렸고 큰 길을 따라 쭉 달렸다.

    “전에 양궁 했으니까 체력이랑 무기를 쓰는 감각도 있을 테고……. 어쩌면 바로 각성하겠는데요?”

    “…저.”

    “네?”

    “안 가면 안 될까요?”

    차도윤 헌터가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꽉 깨문 입술에선 피가 약간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내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차가 신호에 걸리자 여자가 뒤를 돌아 차도윤 헌터를 바라보았다. 그는 울상을 지으며 차도윤 헌터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쩌겠어요, 우리는 이미 도윤 군 부모님께 돈을 받았는걸.”

    “이런 미친……!”

    욕이 치밀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이건 차도윤 헌터의 과거이고, 그 종착역은 차도윤 헌터의 현재였다.

    ‘여기서 빨리 꺼내주는 수밖에 없어.’

    어린 차도윤 헌터는 입을 벌린 채로 굳었고 무릎 위로 얼굴을 묻었다. 연약한 어깨가 희미하게 떨리는 동안, 차는 지옥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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