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93화 (93/366)

93화

“사라져.”

퍼버버벙!!

지의의 말에 검은 용이 터져 나갔다. 지의는 능숙하게 용의 잔해를 피한 후 상태창을 살폈다. 98번 회귀해도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정체불명의 던전은 창조자가 지옥도를 만들다 우연히 생긴 균열이었다.

‘이 균열에 난 99번이나 빠진 거고.’

기막힌 우연의 연속에 지의가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지이익―

지의는 손으로 옷을 살짝 찢은 후 바닥에 엎드린 채 눈을 감았다. 민이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부상을 당한 것처럼 쓰러져 있으면 민이 자신을 병원에 데리고 갈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출발선에 선 거나 마찬가지다.

지의가 흙바닥에 얼굴을 문질렀다. 날카로운 돌 조각 하나가 얼굴을 긁어 상처를 냈다.

쾅!

게이트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지의는 죽은 것처럼 온몸에서 힘을 풀었다. 온기와 함께 민이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리는 걸 느꼈다. 그의 한숨이 이마에 닿는 동시에, 얼굴에 난 상처에 닿는 손길이 느껴졌다.

‘이 사람은 정말 변함없이 다정하네.’

회귀를 거듭할수록 감정을 잃어가는 자신과 다르게 민은 한결같았다. 지의는 아랫입술을 꽉 문 채 머릿속으로 세상의 종말을 막을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 * *

털썩.

지의가 손을 놓자 사도 ‘가면’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관절은 전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고 몸 군데군데엔 커다란 구멍이 난 상태였다.

“하아, 하, 하…….”

그를 마지막으로 창조자의 사도는 모두 사망했다. 그들이 갖고 있던 창조자의 파편도 함께 소멸했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그들의 정체를 처음 알았을 땐 그들에게 스스로 파편을 파괴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창조자의 파편을 부수면 그에게 빌었던 소원이 무효화되는 걸 알자, 사도들은 지의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래서 이번엔 가장 간단한 방법을 택했다. 파편을 따로 해결할 필요도 없는 최고의 방법을.

‘진작 이렇게 할걸.’

지의는 자아의 방아쇠를 몇 번 더 당겨 가면의 몸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지의가 고개를 돌리자 후드를 뒤집어쓴 민이 베란다에 선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의는 현관에서 제 신발을 챙겨 인벤토리에 넣은 후 그쪽으로 발을 옮겼다.

“마침 딱 끝낸 참이었어요.”

“…….”

“파편은 전부 소멸했으니까 지옥도도 많이 약해질 거예요.”

민은 지의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최민 헌터?”

“…아닙니다. 가시죠.”

민이 지의를 안아 올리며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몸에 이식된 프로메테우스의 심장이 그의 비행을 도와주었다.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공항 쪽으로 한참 날아갈 때쯤 민이 입을 열었다. 지의가 눈동자만 올려 자신의 파트너를 응시했다.

최민, 조율자의 사도이자 세상의 종말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 때문에 지의는 매번 그에게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민이 그 부탁을 거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저런 질문을 한 적도 없었다.

지의는 다시 발아래 풍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후회 안 해요.”

“그렇습니까.”

이대로 종말을 무사히 막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지금까지 해온 자신의 노력들이 결실을 맺는다.

지의의 텅 빈 눈에 달라스 시내의 야경이 담겼다. 밤색 눈동자에 깃든 유일한 빛이었다.

* * *

파사삭.

다낭 S급 게이트를 마지막으로 하늘에 열린 지옥도가 부스러졌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일렁이던 새카만 하늘도 서서히 원래의 빛을 찾기 시작했다.

[재앙 ‘지옥도’가 소멸합니다.]

그리고 재앙의 끝을 알리는 상태창이 각성자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됐다.’

상태창이 사라지자 지의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디 하나 성한 사람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생존자가 가장 많았다.

“와아!!”

“됐어요! 막았다고요!”

“살, 살았다!”

헌터들이 소리를 지르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생존의 기쁨을 만끽했다.

“…하.”

행복해하는 군중 틈에서 지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기쁨과 해방감 대신 허무함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툭.

세빈이 그의 옆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몬스터의 피와 자신의 피 때문에 얼굴이 엉망이었지만 지의를 쳐다보는 눈만큼은 반짝거렸다.

“드디어 끝났네, 그치?”

지의는 고개를 돌려 제 소꿉친구를 쳐다보았다. 전투 내내 냉정하게 몬스터를 토막 내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한 얼굴이었다.

“응. 드디어 끝났네.”

‘드디어.’

지의는 그 부분에 힘을 주어 말했다.

지옥도의 핵심 재료인 창조자의 파편이 사라지자 그것은 소멸한 게이트를 이어 붙인 수준이었다. 경계 몬스터처럼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도 등장하지 않았다. 작전만 잘 세워서 정석대로 공략하니 게이트가 하나씩 소멸했다.

지옥도를 차례차례 해결할 무렵 배신자 놈은 숨겨두었던 게이트 몇 개를 더 꺼내려 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지의에게 들켰다. 지의는 그를 협회 건물 옥상에서 밀어버린 후 곧바로 전투로 돌아와 남은 게이트까지 전부 해치웠다.

“지호야, 다 끝났어. 응? 눈 좀 떠봐…….”

“선생, 흐끕, 님…….”

그렇다고 희생자가 아예 없던 건 아니다. 지옥도를 막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한국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 나라를 재건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의는 인벤토리에서 기력 회복제를 하나 꺼냈다. 입안이 바싹 마를 정도로 떫었지만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지의의 몽롱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동시에 하늘도 어느새 새파랗게 갰다.

‘이제 내 역할은 끝난 건가.’

회귀자로서, 세상이 정한 구원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마쳤다. 이번 시간선에서 지의가 유일하게 지키지 못한 것이라곤 자기 동생의 임종뿐이었다.

“하아아…….”

지의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주저앉았다. 몸과 다리 사이의 좁은 공간이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지의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 잠깐. 저기!”

그때 헌터 한 명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지의가 고개를 들자 새파란 하늘이 다시 검붉은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의 한가운데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치지직.

얼마 안 있어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던 상태창이 갑자기 눈앞에 생겨났다.

[회귀자의 업이 재앙 ‘지옥도’를 재창조합니다.]

[재창조까지 남은 시간 : 6시간]

[회귀자 사망 시 ‘지옥도’ 완전 소멸]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적막했다. 모두 눈앞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 어떤 소리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의도 멍하니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그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누군가 머리를 내려치는 것처럼 강렬한 고통이 느껴졌다.

치지직.

그리고 그의 앞에 또 다른 상태창이 떴다.

[회귀자의 업]

[있어서는 안 될 시간선을 만든 자의 업]

그제야 지의는 세상이 왜 자신을 구원자로 삼았는지 이해했다.

‘날 희생시켜서 재앙을 막을 생각이었던 거야.’

재앙을 막지 못하고 회귀한 그 시점부터 자신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다. 회귀자 한 명의 목숨으로 세상을 유지시키는, 최고로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마치 지의가 사도를 전부 죽인 것처럼.

“푸, 푸흡, 흐흐…….”

지의는 실실 웃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성이 마비되어서가 아니었다.

이미 희생을 할 준비가 된 자신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지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민을 바라보았다. 경악으로 물든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민의 손은 당장이라도 방공호를 펼칠 것처럼 움찔대고 있었다.

‘끝까지 날 보호하려 하네.’

지의는 옅은 미소를 얼굴에 띤 채 다른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회귀자……?”

“그, 만화에서 나오는 그런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저게 대체…….”

헌터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주제는 대부분 회귀자의 존재에 관한 것이었다.

짝.

그때였다. 미준이 손뼉을 마주치며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항상 여유로운 태도의 그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미준의 눈은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형형하게 빛났고, 입은 전혀 웃지 않았다.

“지금 회귀자 얘기할 때야? 지옥도가 다시 열리는 게 문제지.”

“재, 재정비해서 다시 대응하면……!”

“왕자님, 지금 살아남은 헌터가 몇 명 정도 될 것 같아?”

미준이 진우의 말을 끊었다. 진우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얼핏 계산해도 살아남은 국내 헌터의 수가 100명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많이 어려운 상황이죠.”

헌터들이 체념한 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중 몇 명은 완전히 좌절한 듯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회귀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죽어줬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지.”

미준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들이 악하게 보이진 않을까 우려한 것이다.

터벅.

지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지의야……?”

세빈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의는 헌터들의 한가운데 서서 씩 웃었다.

“저예요.”

“신지의 헌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

“제가 회귀자라고요.”

지의의 말에 모두가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아까의 전투 상황을 떠올렸다.

지옥도가 새로운 게이트를 뱉을 때마다 지의는 완벽에 가까운 지시를 내렸다. 마치 미래를 보고 온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지의의 말이 거짓처럼 들리지 않았다. 헌터들의 눈이 전부 지의에게 꽂혔다.

“으, 으아아악!!”

그때였다. 헌터 하나가 단검을 쥐고 빠른 속도로 지의에게 달려들었다. 지의는 눈을 감은 채 칼날이 자신의 목을 꿰뚫기를 기다렸다.

우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안 있어 쿵, 하고 무언가가 지면 위로 떨어졌다. 지의는 눈을 뜨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던 헌터가 목이 뒤틀린 채로 죽어있었다. 그의 목 주변에 있던 검은 손이 다시 그의 그림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얘기가 좀 필요할 것 같네요.”

까득.

“윽!”

“커헉!”

지의를 제외한 모든 헌터들이 목을 움켜쥐었다. 각자의 그림자에서 나온 검은 손들이 목을 강하게 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쿵, 쿵, 쿵.

지의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서늘한 얼굴로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는 세빈이 있었다.

“강, 세빈……?”

지의가 힘겹게 그를 불렀다. 세빈의 그림자는 점점 몸집을 키우더니 이곳에 있는 모든 헌터들의 그림자까지 집어삼켰다.

수십 번의 회귀를 겪은 지의도 이 상황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부터 벌어질 일은 자신이 그동안 겪은 그 어떤 일보다도 잔인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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