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미식가】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타서도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분명히 몸은 죽을 만큼 피곤한데 머릿속이 복잡해서 눈이 감기지 않았다.
직원을 통해 전달된 지금 가평 게이트의 상황은 내 귀로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부산물 채굴용 가평 D급 게이트가 갑자기 S급 게이트로 바뀌었다. 수십 년 전, 폭발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바로 그 가평 S급 게이트로.
그 과정에서 S급 몬스터와 D급 몬스터가 섞여서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다행히 이미 이 상황을 예측한 회장님이 헌터들을 대기시킨 덕에 몬스터는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마자 처리되었다.
‘사도가 움직였나?’
의미 없는 추측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뒤통수에서부터 저릿한 감각이 천천히 퍼졌다.
“지의야.”
그때 세빈이가 내 자리로 불쑥 찾아왔다.
“일단 좀 자둬. 피곤하잖아.”
“엇, 왁!”
세빈이가 팔걸이에 붙어있던 버튼을 누르자 의자가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얼결에 완전 누워버렸다. 내가 뭐라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세빈이는 내 위로 두꺼운 담요를 덮어주었다.
“컨디션이 회복돼야 게이트 수습할 힘도 생기는 거야. 아직 한참 가야 하니까 눈이라도 좀 붙여.”
“…알았어.”
세빈이가 내 자리 칸막이에 팔을 살짝 걸친 채로 씩 웃었다. 하지만 영 편해 보이는 미소는 아니었다.
‘세빈이가 한 일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세빈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잠들 수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일단 눈을 감았다.
웅웅거리는 비행기의 엔진 소리와 승무원들이 끌고 다니는 카트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 * *
“신지의 헌터님~”
“신지의 헌터님!!”
“미나 씨, 무하 씨!”
가평에 도착하자마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아자디바르 남매는 협회에서 나온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남매가 나를 향해 달려온 후 내 양팔에 매달렸다.
“신기록 세운 거 축하드려요! 아, 그리고 페이즈 스킵도! 진~짜 멋있었어요!”
“지금 입고 있는 게 전설의 아이템 맞죠? 그…….”
“아이테르의 로브!”
“어, 그래. 맞아, 그거!”
남매는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생각보다 처참한 광경에 가슴이 철렁했다.
몬스터의 피처럼 보이는 파란 액체가 강에 흘러들어 가고 있었고, 펜션과 식당의 골조들은 이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져 있었다. 남이섬으로 가는 선착장도 완전히 내려앉아 자갈밭을 굴러다녔다.
돌로 된 가평 S급 게이트만이 강 바로 앞에 우뚝 서있을 뿐이었다.
“꼬맹이들, 방해 그만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네, 네!”
드론과 함께 나타난 미래 씨가 아자디바르 남매를 다시 돌려보냈다. 미나는 끝까지 손을 흔들며 기계들이 쌓인 천막 쪽으로 돌아갔다.
“게이트 폭발인가요?”
“비슷하긴 한데 게이트 폭발과 완전히 똑같진 않아.”
미래 씨가 심드렁한 어투로 덧붙였다.
“아까 몬스터가 한 번 쏟아져 나온 이후로 저 안은 잠잠하거든.”
“파견 팀이 안 들어갔는데도?”
“엉.”
던전을 클리어하고 경계를 처리할 때까지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게이트 폭발과 확실히 다른 양상이다.
또각.
“타임 어택 축하하네. 마음 같아선 포상을 크게 내리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군.”
회장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눈 밑으로 다크서클이 짙게 자리하고 있었다.
“천명으로는 뭐 안 보였어요?”
“폭발과 비슷한 수준의 재앙으로 나타났네.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심할지도 모르겠군.”
회장님의 손 주위로 새파란 빛무리가 모여들더니 이내 스파크와 함께 터졌다.
“사용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정확한 건 볼 수 없군. 얼핏 보기론 경계와 상당히 유사한 공간이었네.”
“괴수 종류는요?”
“사물. 무슨 후추 통 같은 것도 보였고.”
세빈이가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난 게이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배신자는 게이트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놈이었다. 이미 사라진 가평 S급 게이트를 꺼냈다는 건, 지금 이 사태를 벌인 놈이 배신자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이 짓을 벌인 게 정말로 배신자라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왜 굳이 인적이 드문 곳을 택한 거지?’
이곳, 남이섬 선착장 주변은 가평 S급 게이트 폭발로 인해 수십 년째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다. 그 게이트의 몬스터들은 대부분 맹독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독 기운을 몰아내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고 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사는 곳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만약 배신자가 많은 사람들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도심에 있는 평범한 게이트를 S급 게이트로 바꿔치기했을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수백 명은 죽을 테니까.
탁.
“아, 최민 헌터. 어서 오게.”
그때 붉은 불꽃과 함께 최민 헌터가 가볍게 착지했다. 강바람 때문에 차가웠던 피부에 온기가 닿았다.
‘아.’
그와 눈이 마주쳤다. 최민 헌터는 시선을 내려 아이테르의 로브를 슬쩍 보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 사람 괜찮으려나. 여전히 게이트 폭발 트라우마에서 못 벗어난 것 같았는데.
가평, 최민 헌터에게 있어 씻을 수 없는 악몽을 선사한 공간이다. 그가 웃음을 잃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최민 헌터는 평소와 다름없는 무감정한 얼굴로 회장님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하아, 하… 늦어서 죄송해요!”
밴에서 내린 한진우 헌터까지 합류해 국내 최상급 헌터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였다.
삐빅.
그때 미래 씨가 들고 있던 태블릿에서 짧은 알람이 울렸다.
“아, 환경 분석 결과 나왔네요.”
“말해 보게.”
드론이 들고 있던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미래 씨가 태블릿을 우리를 향해 들어 보였다. 온갖 복잡한 수치가 나와있는 그래프와 몬스터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화면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까 게이트가 열렸을 때 캐온 부산물과 몬스터 놈들 살점으로 봤을 때… 확실히 게이트 폭발 때 추출한 부산물과 구성이 비슷합니다.”
미래 씨가 혀를 차더니 고개를 들어 회장님을 바라보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가 있죠.”
“뭐지?”
“타액이 검출됐어요.”
‘타액?’
미래 씨는 가운 주머니에서 다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고 불을 붙였다.
“뭐, 그게 몬스터의 타액이라면 충분히 검출될 만하지 않아?”
“그게 확실하게 몬스터의 타액이라면 내가 이걸 마음에 뒀겠냐, 멍청아? 분~명히 타액은 맞는데 몬스터 타액과는 25%밖에 일치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하미준 헌터에게 독설을 날린 후 미래 씨가 숨을 들이마셨다. 담배를 무슨 생명수 빨아들이듯 흡입하고 있었다.
“타액이 아닐 가능성은?”
“타액은 확실해요. 비율이 미묘하게 안 맞지만 구성 자체는 똑같거든요.”
“몬스터 타액과 제일 유사하나?”
“네. 나머지는 부산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분이랑 철분, 뭐 이 정도?”
미래 씨가 회장님에게 대답한 후 머리를 거칠게 털었다.
“저도 존… 엄청 찝찝하다고요. 저 게이트 자체가 뭔가의 입 같아서.”
꽤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타액, D급 게이트에 덮어씌워진 가평 S급 게이트, 그리고 그 현상의 배후에 있는 존재.
그 모든 것이 나를 괴롭혔다.
“일단 정예 멤버만 뽑아 보내지.”
회장님이 입을 연 후 손바닥을 쫙 펴 보였다. 투명한 물방울이 그의 손 주변에 생겨나더니 이내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똑.
물방울은 내 손바닥 위로 떨어진 후 푸른빛을 내며 사라졌다.
“아.”
그때 하미준 헌터가 소리를 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의 손바닥 위에 시뻘건 핏방울이 담긴 게 보였다.
“운명을 간단하게 점쳐 보았네. 안 좋게 나왔다고 해서 무조건 죽는 건 아니니 적당히 참고만 하게.”
“제 목숨이 약~간 간당간당하다는 거네요.”
하미준 헌터가 손을 털며 대답했다. 회장님은 고개를 끄덕인 후 우리 쪽으로 시선을 건넸다.
“신지의 헌터, 강세빈 헌터, 차도윤 헌터, 한진우 헌터, 최민 헌터.”
“…….”
“저 게이트를 수습해 주길 바라네.”
나를 포함한 나머지 네 명도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게이트 폭발 대응 매뉴얼대로 행동해 주게. 특이점이 발견되면 바로 연락하지.”
“보급품은 게이트 앞에 뒀다.”
미래 씨가 턱짓으로 게이트를 가리켰다.
다들 게이트 쪽으로 이동하자 대기 중인 헌터가 내 손에 이것저것 들려주었다. 나는 그것을 부지런히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정말로 아이테르의 로브를 얻으셨군요.”
“깜짝이야!”
최민 헌터가 슥 나타나 내게 말을 건넸다.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네.’
그는 보급품을 챙겨 인벤토리에 넣은 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네? 아, 네.”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말에서 느껴지는 진심만큼은 따뜻했다.
최민 헌터가 나보다 먼저 게이트 쪽으로 향했고,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게이트 내부는 예상과 다르게 잘 관리된 정원이었다. 예쁘게 가지치기를 한 나무들이 울타리처럼 정원을 에워싸고 있었다.
동그란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제법 본격적인 정원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익숙한…….’
치지지직.
“어?”
그때 눈앞이 크게 흔들렸다. 고장 난 텔레비전에서 나올 법한 노이즈 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열지도 않은 상태창이 눈앞에서 떴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파편의 소유자가 입장하였습니다.]
쿵!
검푸른 글자를 보자마자 심장이 내려앉았다. 사명 ‘카르마를 밟는 자’가 반응할 때마다 느꼈던 불쾌한 익숙함이 내 목을 졸랐다.
그래, 난 이 공간을 알고 있다.
이 공간에서 아무런 저항도 못 한 채 죽었고, 시간을 되돌렸다.
온몸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침을 삼키는 것조차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여긴 창조자의 파편 내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