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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88화 (88/366)
  • 88화

    끼기기긱!

    ‘영’과 ‘진(眞) 크로노스’의 낫이 맞닿았다. 소름 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녀석의 시선이 세빈에게 향한 틈을 타 자아를 일부러 녀석의 볼 옆으로 쐈다.

    탄환이 녀석의 볼을 스쳤다. 새빨간 피가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자 녀석의 고개도 내 쪽으로 돌아왔다.

    “이… 벌레 같은 게!”

    쾅!!

    ‘걸려들었다.’

    진(眞) 크로노스가 눈을 매섭게 뜨며 낫을 아래에서 위로 쳐들었고, 난 곧장 작살 총으로 회피했다.

    하지만 녀석도 나와 금방 거리를 좁혔다.

    아래에서 위, 위에서 오른쪽 사선으로, 그리고 다시 가로 베기. 실드를 뽑아내며 공격을 조금씩 흘리자 녀석의 움직임이 보였다.

    일부러 자세를 살짝 낮춰보았다. 진(眞) 크로노스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낫을 낮게 들고 아래에서 위로 다시 그었다.

    쨍그랑.

    실드가 깨지고 새하얀 빛무리가 나와 녀석의 사이에서 반짝거렸다.

    ‘역시, 그랬군.’

    녀석은 낫으로 내려찍는 공격을 꺼리고 있다. 아까 3페이즈에서 땅에 박힌 낫을 제대로 뽑지 못한 걸 마음에 걸려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화염구는 봉인당한 건지 구경조차 못 했다. 결국 4페이즈는 저 낫을 못 쓰게 만든 후 단번에 목숨을 끊어버리면 끝이란 뜻이다.

    우득.

    “커헉!”

    그때 진(眞) 크로노스가 낫의 손잡이 끝으로 복부를 쳐올렸다.

    “형편없구나.”

    ‘숨이……!’

    순간적으로 들어온 공격에 몸이 뒤로 넘어갔고, 몇 미터를 굴렀다.

    폐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100% 갈비뼈 나갔다. 운이 좋으면 금 간 걸로 끝날 수도 있고.

    고개를 들었다. 진(眞) 크로노스가 나를 내려다보며 대낫을 높게 들고 있었다. 바로 찍어 내리면 본인의 승리일 텐데도 녀석은 여전히 망설였다.

    그렇다면…….

    “그래, 차라리 그냥 죽여.”

    ‘방심하게 만드는 수밖에.’

    아예 ‘날 찍어 눌러라’ 하는 자세로 대자로 뻗자 진(眞) 크로노스가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스윽.

    녀석이 드디어 낫으로 날 내려칠 준비를 했다. 날카로운 선단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자아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잘 가라.”

    휘이이익.

    진(眞) 크로노스의 대낫이 내 머리를 향해 쏜살같이 내려왔다.

    쾅!!

    난 곧바로 실드를 만들어 녀석의 공격을 바닥 쪽으로 흘렸다. 실드에 금이 쩍 갔지만 녀석의 낫이 내 머리를 꿰뚫지는 못했다. 검은 먼지바람이 폭풍처럼 일고, 녀석의 낫은 내 머리 바로 옆을 찍었다.

    “뭣……!”

    쿵!

    진(眞) 크로노스의 대낫 위에 올라섰다. 내 무게 때문에 낫은 더욱 깊게 땅에 박혔다.

    “이, 우, 우매한……. 큭!”

    “드디어 잡았네.”

    낫에 올라탄 채 진(眞) 크로노스의 머리채를 쥐었다. 당황한 녀석은 뿌리칠 생각도 못 하고 낫만 흔들 뿐이었다.

    철컥.

    녀석의 얼굴에 자아를 딱 붙였다. 진(眞) 크로노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자아야, 큰 걸로 부탁해.’

    ‘오케이.’

    탕!!

    자아는 내 복수라도 해주는 양 제법 큰 소리 탄환을 뽑아주었고, 진(眞) 크로노스는 피할 새도 없이 그대로 공격을 맞았다.

    우우우우웅―

    공기가 강하게 진동하더니 주변에 있던 먼지바람을 전부 몰아냈다. 진(眞) 크로노스의 얼굴은 이미 바닥에 떨어트린 조각상처럼 산산조각 났고 몸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사사삭.

    녀석의 몸이 완전히 가루가 되고 낫은 끈적하게 녹아내렸다. 녀석의 소멸과 동시에 땅 위로 착지한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으으윽…….”

    “지의야!”

    “신지의 헌터!”

    아까 공격받은 복부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차도윤 헌터가 ‘하늬바람’으로 급하게 치료를 시도했지만 고통을 조금 줄여줄 뿐 망가진 갈비뼈를 고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심마니… 잘 유지되고 있겠지.’

    상태창을 켜 축복 심마니부터 확인했다.

    [축복]

    [심마니]

    [‘심마니’ : 나타났다 하면 최상급 아이템을 쏙쏙 뽑아내는 심마니의 축복. 심마니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던전에서 최상급 아이템을 얻을 확률이 ‘대폭’ 상승한다.]

    [지속 시간 : 1일 17시간 2분 52초]

    다행히 지속 시간 내에 클리어했다.

    ♪♩♬

    입술을 꽉 문 채 숨만 겨우 몰아쉬고 있는데 갑자기 아름다운 하프 소리가 들려왔다.

    처박았던 고개를 다시 들자 새하얗고 커다란 날개를 가진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별가루를 두른 양 온몸이 빛나는 그들이 제우스를 지나쳐 내 주위로 다가왔다.

    “테미스 님한테 또 못 드렸네.”

    “테미스 님이 안 받으시겠다잖아. 어쩌겠어.”

    “하지만 이번에도 못 드렸다고 하면 가이아님이 화내실 게 분명해!”

    ‘이런 패턴이 있었나……?’

    제우스에게 아이템을 받고 게이트 밖으로 나와서 클리어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웬 천사들이 나와 콩트를 하고 있었다.

    “잠깐, 내게 방법이 있어.”

    “뭔데?”

    사라락.

    ‘어……?’

    그때 내 몸 위에 부드러운 천이 덮였다. 살며시 고개를 돌리자 살짝 반짝거리는 흰색 천이 보였다.

    “테미스 님과 가장 닮은 이 인간에게 줘버리자!”

    키이이잉―

    [아이템 획득]

    [아이테르의 로브/방어구/빛 속성/??급]

    [귀속자 ‘신지의’]

    [귀속자 ‘신지의’의 등급을 계승합니다]

    [최종 등급 : SS급]

    [특이 사항 : 창공의 신 아이테르의 축복을 받아 귀속자의 방어력을 대폭 상승시킨다.

    착용 시 귀속자의 자가치유력을 대폭 상승시킨다.

    귀속자가 원하는 형태로 자유롭게 형태를 바꿀 수 있다.

    아이템 스킬 ‘스틱스 강’ 사용 가능]

    [아이템 스킬 ‘스틱스 강’ : 귀속자에게 스틱스의 강물을 주입해 물리적 상처를 완전히 치유한다. 사용 제한 시간은 24시간]

    [가이아, 당신께 제 로브를 드리겠습니다. 대신 창공의 가장 높은 곳에서 심판할 자격을 갖춘 자에게만 이걸 전달해 주십시오.]

    사라락.

    “신지의 헌터, 이거 설마……?”

    “하, 하하하…….”

    ‘됐다.’

    아이테르의 로브. 수많은 시간선 중 단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는 아이템이 내 손에 들어왔다.

    우득.

    “윽!”

    일단 갈비뼈부터 고치자.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느껴지는 날카로운 고통에 눈앞이 자꾸 아찔해졌다.

    ‘스틱스 강, 발동.’

    똑.

    수면 위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곧바로 온몸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벌떡 일어나 갈비뼈를 더듬었다. 아프긴커녕 전보다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몸은 괜찮은 거예요?”

    “네… 이 아이템에 치료 스킬이 붙어있거든요. 시간제한이 있지만.”

    차도윤 헌터에게 대답해 준 후 바닥에 떨어진 아이테르의 로브를 주웠다. 그 어떤 것도 이것을 더럽힐 수 없을 정도로 성스러운 느낌을 풍겼다.

    곁눈질로 다른 사람들을 슬쩍 보니 모두 똑같은 반응이었다.

    ‘한번 입어볼까.’

    분명 내가 원하는 대로 모양을 바꿀 수 있다고 써져 있었다. 나는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인벤토리에 넣었고 아이테르의 로브를 어깨에 걸쳤다.

    파아아앗―

    머릿속으로 내 점퍼와 비슷한 옷을 떠올리자 아이테르의 로브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툭.

    그러곤 모자가 달린 새하얀 점퍼가 되었다. 곧바로 입어보니 내 몸에 꼭 맞춘 것처럼 잘 맞았고, 천 자체가 워낙 가벼워서 아무것도 안 입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주인 잘 만났네.”

    하미준 헌터가 픽 웃으며 게이트 쪽으로 먼저 발을 돌렸다. 다른 헌터들도 서둘러 게이트로 향했다.

    차차차차차.

    하미준 헌터가 게이트를 열자 그 틈새로 눈뜨기도 힘들 만큼 엄청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돌아왔다!!”

    “오오오오!”

    “훠우~”

    “축하해!”

    온갖 감탄사와 고성이 귀에 꽂혔다. 자동 통역기도 버거웠는지 몇 문장은 외국어로 출력됐다.

    “지금 쟤가 입고 있는 게 그거야?”

    “생각보다 현대적인 디자인이네.”

    “아까 방송에선 그냥 천 아니었어?”

    “최상급 아이템이잖아. 변형 특성 정도는 있겠지.”

    아이테르의 로브를 향한 말도 종종 들렸다.

    “축하드립니다!”

    그때 그리스 헌터 협회 직원이 꽃다발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차도윤 헌터가 그것을 들고 엉거주춤하게 설 때쯤, 하미준 헌터가 직원에게 타이머를 내밀었다.

    직원은 타이머를 본 후 눈을 크게 뜨더니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공식 클리어 시간 발표하겠습니다.”

    직원이 카메라를 향해 타이머를 들어 보였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 소속의 파견 팀이 그리스 S급 던전을 4일 21시간 15분으로 클리어했습니다.”

    다시 한번 셔터 소리가 장맛비 소리처럼 들렸다.

    4일 21시간이라……. 기존 기록보다 하루를 더 앞당겼다. 정말 죽기 살기로 전투에만 집중한 보람이 있는 결과다.

    ‘아이테르의 로브를 얻은 게 가장 큰 수확이기도 하고.’

    “신지의 헌터! 지금 입고 계신 아이템이 아이테르의 로브가 맞습니까!”

    수많은 카메라의 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그리스 헌터 협회 직원이 내게 마이크를 내밀었고 난 그것을 건네받았다.

    “네, 맞습니다.”

    “S급인가요?”

    “아이템 정보를 등록할 의사가 있으신가요?”

    “특이 사항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타임 어택 기록을 갱신한 것보다 전설의 아이템인 아이테르의 로브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의 정보를 공유하는 건 헌터의 도리 중 하나다. 그 정보들은 던전 안에 숨은 또 다른 아이템의 존재 유무나 던전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섣불리 공개하기 어려워.’

    나도 이 아이템을 난생처음 본다. 어떤 페널티가 있을지, 그리고 이 아이템을 노릴 만한 다른 헌터들이 있을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지금 함부로 공개했다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아직 어떤 아이템인지 제대로 못 봤습니다. 확인 후 협회와 논의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이럴 땐 대답을 보류하는 게 최고다. 최대한 정제된 언어로 대답하자 질문하던 기자들의 말수가 현저히 줄었다.

    “잘했어. 어른스러워졌네.”

    뒤통수에서 하미준 헌터의 칭찬이 들려왔다. 왠지 어색해 가슴 한켠이 간지러웠다.

    끼이이익.

    “오우!”

    “뭐야?!”

    “운전자가 미쳤나!”

    그때였다. 갑자기 미니밴 한 대가 기자들을 지나쳐 우리 바로 옆에 섰다. 나와 다른 헌터들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차를 바라보았고, 얼마 안 있어 차 문이 벌컥 열렸다.

    차 안엔 우릴 여기까지 데려온 헌터 협회 직원이 있었다.

    “헌터님들!”

    “어, 왕자님. 축하 인사가 너무 과격한…….”

    “지금 빨리 귀국하셔야 돼요!”

    ‘뭐?’

    직원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가평 S급 게이트가 다시 등장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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