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87화 (87/366)

87화

―아~ 4페이즈 드디어 돌입!!

―저희가 중계를 한 지도 어느새 이틀이 지나가고 있는데요! 괜찮으신가요, 김수진 아나운서?

―사실 조금 몽롱하긴 한데, 헌터 협회 부산물 연구소에서 나오는 이 기력 회복제를 마시니 정신이 드네요.

―헌터들이 마시는 거라고 하니 효과가 훌륭한 것 같습니다. 조만간 비헌터용 기력 회복제도 판매 예정이라고 하네요!

[LIVE 실시간 채팅]

[저거 PPL임?ㅋㅋㅋㅋㅋㅋㅅㅂ]

[기력회복제 좀 궁금하긴 하더라]

[아까 하미준도 저거 마시지 않음?]

카메라 화면은 중계석 화면을 잠깐 비추다 다시 던전 안 모습을 크게 띄웠다.

―아까 아찔한 순간이 꽤 많이 나왔어요.

―아무래도 진(眞) 크로노스의 화염구가 매우 위협적이었죠. 신지의 헌터도 실드로 막아봤지만 버티기 힘든 모습을 보였습니다.

‘REPLAY’라는 라벨과 함께 지의가 실드를 던져버리는 장면이 화면 구석에 떴다.

[LIVE 실시간 채팅]

[마음아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손 개빨개짐ㄷㄷㄷㄷ]

[손바닥이 날아갔는데]

―아, 신전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4페이즈의 신호탄이죠! 먼지 때문에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천장은 물론 기둥까지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이제 신전이 아닌 폐허가 됐고, 잿빛 먼지가 자욱하게 꼈다.

―초록색 화살이 튀어나왔습니다! 먼지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차도윤 헌터의 공격인 것 같은데요. 멋집니다!

―아, 그 순간 진(眞) 크로노스가 하미준 헌터 쪽으로 달려갑니다!

진(眞) 크로노스의 낫과 미준의 ‘나무꾼’이 맞닿았다. 확연한 크기 차이에 미준은 아예 무기를 놓았고, 녀석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기울어진 틈을 타 맨주먹으로 턱을 날렸다.

―하미준 헌터의 주먹이 진(眞) 크로노스의 얼굴을 제대로 강타했습니다!

―턱이 돌아간 것 같지만 진(眞) 크로노스, 역시 S급 보스 몬스터답게 금방 회복합니다!

―하미준 헌터, 일단 대지의 보은으로 진(眞) 크로노스를 묶는데요, 아… 무참히 찢깁니다.

[LIVE 실시간 채팅]

[저 스킬 A급이라서 그런가]

[등급도 등급인데 걍 파괴력 낮아서 그런듯 최민도 공격 스킬은 A급인데 DF랭킹은 높자너]

[그 스킬 A급이라고? 구라치지마;;;;;;;]

[보스몹을 맨손으로 후리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眞) 크로노스의 그림자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녀석의 몸을 쥐어짜 내듯이 움켜쥐자마자 녀석의 바로 뒤에서 등장한 세빈이 그대로 ‘영’을 찔러 넣었다.

―아~! 이건 치명타죠!

―역시 강세빈 헌터!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진(眞) 크로노스는 피를 토하며 휘청거렸지만 곧바로 낫을 휘둘러 주위에 있던 모든 것들을 두 동강 냈다. 세빈은 유유히 뒤로 피해 자신의 검을 한 번 털었다.

―지금 신지의 헌터가 그… 이렇다 할 공격을 못 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진(眞) 크로노스가 현재 완전한 인간형이라서 아까와 같은 포탄 공격은 어려워 보입니다.

―뭔가 지시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아… 반응이 안 좋아 보입니다.

화면엔 뭔가 중얼거리는 지의와 사색이 된 세빈이 등장했다. 지의는 단호한 얼굴로 세빈에게 뭐라 말했고, 세빈은 잠깐 움찔하더니 이를 까득 물고 다시 진(眞) 크로노스를 향해 튀어나갔다.

[LIVE 실시간 채팅]

[ㄱㅊ또 저래놓고 ㄱㅈㅇ 참교육 하실듯]

[근데 진짜 지금 뭐함?]

[둘이 싸움?]

[이거 실시간인가요?]

[세빈 누나 표정 발린다…]

[풀네임 강세빈 언니 ㄷ ㄷ ㄷ]

정신없는 난전의 상황, 지의의 소리 탄환이 진(眞) 크로노스의 볼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세빈에게서 지의 쪽으로 진(眞) 크로노스의 목표가 바뀌었다.

―진(眞) 크로노스, 이번엔 신지의 헌터 쪽으로 타깃을 옮깁니다!

―지금까지의 전투 스타일로 봤을 때 신지의 헌터는 원거리 폭격에 특화된 것 같거든요.

―거리를 벌리지 않으면 아무래도 좀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진(眞) 크로노스가 아래에서 위로 낫을 쳐올렸다. 지의는 자아를 작살 총 형태로 바꾼 후 진(眞) 크로노스 뒤쪽 바닥에 소리 작살을 박아 넣었고 곧바로 방아쇠를 당겨 빠르게 회피했다.

[LIVE 실시간 채팅]

[반동 어케 이기냐 저걸]

[안 넘어지는게 ㅈㄴ 신기]

[육상했다자너]

[육상했음 신지의 ㅇㅇ]

[어케앎?]

[헌터익게안봄?]

[저거 사람이 찍는 거예여?]

[찍겠냐.]

아나운서가 실시간 채팅창을 흘끔 본 후 헤드폰에 붙은 마이크를 입 쪽으로 다시 끌어왔다.

―네, 여러분은 지금 그리스 S급 던전 타임 어택 보스전 4페이즈를 함께하고 계십니다. 현재 보고 계시는 화면은 그리스 S급 던전에 설치된 카메라로 실시간 송출되는 것이며, 카메라는 헌터들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촬영이 자동으로 시작되는 던전용 카메라입니다.

[LIVE 실시간 채팅]

[고마워요! 수피드웨건!]

[고전밈ㅋㅋㅋㅋㅋㅋㅅㅂ]

[저거 얼마임?]

그때 화면 속 지의가 진(眞) 크로노스의 낫 손잡이에 맞고 뒤로 나동그라졌다. 볼 안쪽을 깨문 건지 시뻘건 핏물이 지의의 입가를 타고 주르륵 흘렀다.

―아, 이거 좋지 않아요.

―사실 저렇게 근접해 있으면 다른 헌터들이 도와주기 쉽지 않거든요.

―강세빈 헌터의 ‘달그림자’가 틈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는데 아,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일단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LIVE 실시간 채팅]

[싸워서 안도와주는거아님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그래도 뒤지기 직전에도 그렇겟냐?♡♡]

[근데 이 정도로 안 도와주는 거면 정신계 스킬이라도 걸린 거 아님?”]

[근데 사실 강세빈 전부터 좀 쎄햇음]

채팅창은 온갖 추측들로 가득 찼다. 화면 속 지의는 명치를 움켜쥔 채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진(眞) 크로노스가 낫을 높이 들었다.

―어어!

속사포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카메라가 크게 흔들렸다.

실시간 채팅창이 물음표로 도배가 되고 중계진은 심각한 화면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검은 먼지바람이 불어 지의의 생사 확인이 어려워지자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아나운서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두었던 대본을 조심스럽게 꺼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치지직.

그때 화면을 가득 채웠던 검은 먼지바람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갑작스럽게 돌아온 시야에 카메라가 초점을 못 잡고 잠시 헤매다 금방 두 사람의 형체를 담았다.

[LIVE 실시간 채팅]

[?]

[???]

[????]

[엥?]

[ㅇ?]

[어?]

[??????????]

―어, 어……?

실시간 채팅창의 참여자 수가 폭주하는 바람에 서버가 거의 마비 상태가 되었다. 얼이 나간 속사포도 말을 더듬으며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신전 바닥에 박힌 진(眞) 크로노스의 대낫을 밟은 채 서있는 지의. 그의 왼손은 진(眞) 크로노스의 머리채를 쥐고 있었고, 오른손은 녀석의 얼굴에 자아를 바짝 붙인 상태였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볼품없이 이마에 붙고, 아까 당한 공격 때문에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추악한 절대신을 끌어내린 영웅 그 자체였다.

진(眞) 크로노스의 형체가 재가 되어 사라지고 커다란 낫도 끈적하게 녹아 없어졌다.

―크, 크…….

―클리어!!

―클리어했습니다!! 클리어라고요!!

[LIVE 실시간 채팅]

[(불타는 이모티콘)]

[(폭죽 이모티콘)]

[와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ㅁㅊㅁㅊㅁㅊ!!!!!!!!!!!!]

[ㄱㅈㅇㄱㅈㅇㄱㅈㅇㄱㅈㅇㄱㅈㅇ]

[갓지의 지의갓 갓지의 지의갓!!!!!!!!!!!!!]

[카메라 다른 각ㄷ도 없ㅇ므??? 어덯ㄱㄱ게된걵지 궁ㄱ금해 나 손덜ㄹ려]

[대한민국 헌터 여러분! 수고 하셨습니다 *^^*]

중계석과 채팅창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아나운서는 완전히 목이 쉬어 ‘신기록’이라는 말조차 제대로 뱉지 못했다.

지의가 숨을 몰아쉬며 부서진 옥좌 너머의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화면을 통해 나타나자 채팅창은 다시 한 번 더 뜨거워졌다.

[LIVE 실시간 채팅]

[아니 ♡♡ 미쳤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레전드]

[신기록ㄷㄷㄷㄷㄷㄷㄷㄷ]

[신지의 앞에서 무릎 꿇어도됨?]

[갓지의님은 날때부터 물 위를 걸으시고 어쩌고]

[???: 제가 천국의 신지의입니다]

[ㅇㅇ평.지.해줄게]

[나 무교인데 신지의는 믿을듯]

시간이 지나도 채팅창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 *

한 시간 전, 그리스 S급 던전 내부.

‘아무래도 이상해.’

진(眞) 크로노스는 상상 이상으로 민첩한 움직임으로 우릴 상대하고 있었다. 진영을 빠르게 헤집어 놓았고 제대로 된 공격 찬스조차 생기지 않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의 허점은 분명히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붙어보면 알 것 같은데.’

끼기기긱!!

“괜찮아? 아까부터 안색이 너무 안 좋아.”

“…쟤 내가 상대해 볼게.”

“뭐?”

내 말에 세빈이는 물론, 다른 헌터들까지 몸을 움찔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대낫으로 사방을 쓸어버리는 진(眞) 크로노스의 공격을 원거리 전투형 헌터인 내가 상대하기엔 상성이 안 좋으니까.

“몇 대 맞아보면 약점 알 수 있을 것 같아.”

“지의……!”

“도와줘.”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말에 각성자 ‘강세빈’이 동요한다.]

세빈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세빈이는 눈을 크게 뜬 채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무모하게 구는 거 아니야.”

“…….”

“내가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네 그림자로 도와줘.”

[발언 결과 : 수용]

“…알겠어.”

세빈이가 빠르게 튀어나가 진(眞) 크로노스의 낫과 영을 맞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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